형사재판장이 국선변호인에게 증거에 동의할 것을 요구하고, 판결 선고 후에 국선변호인 선정을 취소하면서 그 취소일이 공판절차 종료 이전인 것처럼 허위기재했다는 소식은 충격적이다 못해 참담한 느낌을 갖게 한다.

국선변호인 선정 권한이 판사에게 있다 하더라도 일단 선정된 국선변호인은 법원으로부터 독립된 지위에서, 피고인의 이익을 위하여 변론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원칙이다. 이런 국선변호인에게 판사가 절차상 편의를 위하여 변론 내용, 특히 형사변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증거에 대한 의견을 바꾸도록 요구하는 것은 형사재판의 근간을 뒤흔드는 행위라 하겠다. 국선변호를 형사재판의 장식 정도로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이다.

판사가 국선전담변호사를 부하 직원처럼 인식할 수 있는 현재의 국선전담변호사 제도도 이런 터무니없는 일이 벌어질 수 있게 만든 요인이라 생각된다. 법원이 국선전담변호사의 선발, 관리 및 평가를 담당하는 현 체제 하에서는 관계자들 사이에 알게 모르게 그러한 인식이 퍼질 수 있고, 그러한 인식에 젖게 되면 이 사건에서와 같은 무리한 요구도 쉽게 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런 잘못된 인식이 어느 판사 한 사람에게만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감봉처분 후 계속 재판에 종사하게 하는 것을 보면 법원 전체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 더욱 우려된다. 법원을 비롯한 형사사법에 관여하는 관계자들 모두가 국선변호제도의 의의에 대하여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인식의 전환, 제도의 개선에 나서지 않는다면 같은 사태의 재발을 막기 어려울 것이다.

그 첫걸음으로 법원은 국선전담변호사에 대한 관리·감독권을 외부로 넘기는 방안을 신속하게 취해야 할 것이다. 국선전담변호사제가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국선만을 전담하게 한 결과이지 국선변호인을 법원이 관리·감독한 결과라고 볼 수는 없다. 그로 인해 제기되는 문제점들은 제도적 보완과 운용과정에서 선정권의 적절한 행사를 통하여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