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반에 70명이 넘고 한 학교에 같은 학년이 19반이나 되던 시절이 있었다. 1400명이 넘는 학생들을 대표하는 전교회장이나 부회장이 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대개의 경우 반장이라도 되면 어떨까 싶어 선생님 눈치만 보다가 결국 분단장이나 학습부장으로 만족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양창수 대법관이 오는 9월 7일자로 퇴임하니 그 뒷자리를 두고 마음 설레는 이들이 많다. 1만7000명 법조인 중 대법관은 단 14명(대법원장 포함)뿐이니 가문의 영광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대법관 구성을 면밀히 살펴보면 좀 실망스럽다. 현행 법원 조직법에 의하면, 판사뿐 아니라 변호사나 변호사 자격이 있는 교수와 법률사무 종사자 등도 대법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1980년 이후 임명된 대법관 84명의 구성을 보면 현직 판사 출신이 68명, 교수출신은 양창수 대법관이 유일하고 여성 대법관도 고작 4명에 불과하다. 대법관 구성이 지나치게 법원 중심이고 남성 중심임을 알 수 있다.

대법원은 하나의 사건을 최종적으로 판단해서 개인의 권리를 구제해주는 기능도 있지만, 그러한 판단을 통해 사회 전반에 걸쳐 새로운 가치관을 제시하고 선진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기능도 있다. 그런 면에서 명문대학교를 졸업하고 일찌감치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평생을 법원에서만 생활해 온 법원장 출신의 성골 인사보다는 다양한 경험과 배경 하에 균형 잡힌 감각을 갖추고 있는 새로운 피가 수혈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대한변협의 재야인사 추천은 적극 환영할만하다. 그동안 대한변협은 대법관 후보자 추천에 있어 순혈주의와 보수적 성향을 지닌 재조 중심의 구태의연한 행보를 이어왔다. 문제는 그와 같은 관행적 후보 추천으로 말 잘 듣고 고지식한 전교회장만이 살아남고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 같은 분단장들은 그 능력을 제대로 판단 받지도 못하고 낙제점을 받아왔다는 사실이다. 진정한 사법개혁 실천을 위한 의미 있는 한 걸음에 힘찬 박수를 보낸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