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미래에 어떤 변호사이고자 하는가? -

1. 뜻 깊은 모임에 초대받아 기쁩니다. 저로서는 처음 자리하는 변호사대회이고, 이렇게 많은 변호사를 한꺼번에 뵙는 것도 처음입니다.

‘여성변호사’에서 방점은 여성이 아니라 변호사에 있습니다. 그러나 여성이 단지 좋은 변호사이고자 하는 데에도 사회에는 아직 장애물이 있습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다 그것을 뛰어 넘어 지금 여기에, 이 자리에 계십니다. 남성인 변호사보다 여러분이 더 자랑스러운 이유입니다. 벌써 세 번째 대회라고 하니, 축하합니다. 세 번째가 아니라 첫 번째인 사법연수원 연수원 43기 및 로스쿨 3기생 여러분, 더욱 축하합니다. 현재 우리나라 변호사 다섯 명 중 한 명인 여성 변호사의 비율(19.9%)과 활동에 비추어 보면 이제 겨우 세 번째인가 싶기도 하지만, 이 대회가 더욱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 한편으로 언젠가 여성변호사대회가 없어지고 남성변호사 대회가 열리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습니다. 대한변협 협회장과 여러 지방변호사 회장을 여러분이 하게 되는 날 말입니다.

저에게 주어진 시간은 10분, “10분 안에 ‘여성변호사의 미래와 도전의식’이라는 주제로 이야기해 달라”, 주최 측에서 저에게 요구한 미션입니다(‘Mission Impossible!’). 한 가지를 말하기엔 길고 세 가지를 말하기엔 짧은 시간이어서, 두 가지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당연히 하나는 미래, 다른 하나는 도전입니다.

2. 여러 논객들에 따르면, 미래는 밝거나 어둡거나 둘 중 하나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미래는 밝기만 한 것도, 어둡기만 한 것도 아닙니다. 과거와 현재가 그렇지 않은 것처럼 말입니다. 미래는 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미지의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이 시차를 두고 반영되어 돌아오는 것, 현재의 숨은 그림들이 조각을 맞추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미래라고 하는 불확실한 주제도, 지금 바로 이 순간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로부터 풀어내야 할 것입니다. 과거에 관한 통찰력이 미래를 예측한다고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현재를 돌아보게 됩니다.
언젠가 법률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보았습니다. ‘주당 근무시간이 법정기준시간 40시간을 넘는다고 답한 사람이 91%, 그 중 60시간 이상을 근무한다는 사람이 42%에 이르고, 심지어 밤 12시 전에 퇴근하면 조퇴라는 말을 들어야 한다’. 누구의 이야기일까요. 어느 공단의 근로자 이야기 같습니까. 여성변호사를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입니다. 내친 김에 조금 더 인용하겠습니다. ‘결혼 3일 전에도 새벽 2~3시 퇴근, 아파도 쉴 수 없는 운명’, ‘일·가정 양립 불가능이 가장 큰 스트레스로’. 불과 1년 전의 신문기사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여성변호사의 비율은 늘어나지만 과중한 업무와 성과 위주인 로펌에서 모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여성변호사 대다수가 채용과 진급, 승진에 차별이 존재한다고 답했다. 결혼했는데 아이를 낳기 전이면 탈락 1순위, 곧 결혼계획이 있으면 탈락 2순위라는 것은 변호사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채용 후에도 중소로펌이나 개인변호사 사무실의 경우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직·간접으로 사직을 권고받는다’.

이것이 여러분의 이야기 맞습니까. 새내기 회원들 앞에서 굳이 이런 현실을 들출 것인지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결코 우리의 잘못 때문이 아니므로 감출 일이 아니며, 우리 사회가 함께 부끄러워해야 할입니다. 널리 알려서 시정되어야 할 일일 뿐입니다.

다행히 대한변협의 여성변호사특별위원회와 한국여성변호사회는 어느 로펌에서 임신한 여성변호사를 강제 퇴직시킨 사건을 계기로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설문조사와 심포지엄을 하고, 일·가정 양립위원회를 신설하여 여성변호사의 근로조건 개선을 논의하기로 하였다지요. 출산으로 인한 휴직 또는 대직 변호사를 위한 중개센터, 기간제 변호사 활용을 개선하는 등의 방안도 모색하구요. 역설적이지만, 열악한 현실은 우리의 의식과 능력을 자극하고 도발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면이 있습니다. 도전과 응전이랄까, 오랜 세월 차별과 억압으로 단련된 한국 여성이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더 강인한 것처럼 말입니다. 느리지만 점차 나아지겠지요. 길게 보면 사회는 진보하기 마련이니까요.

3. 현재가 이러하다면, 장차 무엇에 도전하고 극복해야 할 것인지도 분명해집니다.
물론 남녀를 불문하고 변호사 공통의 현안들이 있습니다. 변호사 수의 증가와 법률시장 개방, 시장경기의 악화, 유사 영역과의 경쟁 같은 문제 말입니다. 그에 대응하는 생존전략으로 전문분야를 심화하고 새로운 유형의 분쟁에 대비하며 변호사 영역을 확장하는 등의 해법도 제시되고 있습니다. 또한 성공한 선배 변호사를 모델로 삼아 높은 연봉이나 수임료, 승소율을 목표로 더 많은 사건을 유치하고 더 오래 사무실에 남아 있고 더 많이 뛰어다닌다면, 아마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대응하다 보면 외부의 도전이 많아지는 것에 비례하여 심신이 더 소진되고, 어느 순간 한계에 이를지도 모릅니다. 과도한 업무로 인한 탈진을 ‘시대의 질병’으로 보는 벨기에의 철학자 파스칼 샤보는, 업무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업무에 너무 잘 적응한 나머지 업무와 혼연일체가 되어 어디에서 업무를 멈춰야 할지 모르게 되는 것도 일종의 장애라고 주장합니다. 스트레스와 과로가 성공의 필수조건이라는 고정관념은 남성적 업무방식에 기인합니다.

무엇보다 그렇게 살면 행복할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강하게(Citius, Altius, Fortius)’라는 목표는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을 즐겁게 만드는 데에는 유용하지만, 일생을 통해 지속될 수도,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도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많은 사건, 넉넉한 수입, 높은 승소율을 자랑하는 이른바 잘 나가는 변호사가 되시라는 덕담 대신에, 행복한 변호사를 목표로 도전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세상에는 돈 잘 버는 변호사와 못 버는 변호사, 사건이 많은 변호사와 적은 변호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변호사와 덜 행복한 변호사, 행복하지 못한 변호사가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컨대 성공한 변호사의 기준을 달리 생각해보자는 것이지요.

성공의 다른 기준이 제시되고 있는 것은 세계적 추세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자원의 소모를 경험한 인류가 제3의 에너지에 눈돌린 것처럼, 성공을 위해심신을 소모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삶의 의미, 진정한 성공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허핑턴포스트를 창간한 아리아나 허핑턴, 메타경제학을 주창한 에른스트 슈마허, 막스프랑크연구소의 게르트 기거렌처 등은 인생과 기업의 성공에 관해 종전의 통념과는 다른 기준을 제시합니다. 근래 다시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적은 것이 많은 것이다(Less is more)’,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라든지 과유불급(過猶不及), 다불승소(多不賸少)와 같은 오래된 지혜는 모두 느리고 단순하고 소박한 삶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하고 있습니다.

파주출판단지의 한 출판사는 전 직원이 하루 6시간 근무한다고 합니다. 4시에 퇴근하지요. 그 회사의 목표는 이렇습니다. ‘300권 팔리고 말 책 10권을 만들기보다 3만부 팔릴 책 한권을 만든다’. 우리도 조급하게 성과를 내려고 하면 사건 유치에 무리가 따르고 변호사로서의 신뢰와 명성도 지속되지 못합니다. 적정 수의 사건조차 수임하지 못한다는 요즘의 경기침체를 생각하면 좀 생뚱맞게 들릴까봐 주저되는 말이긴 하나, 아무리 탁월한 변호사라고 하더라도 동시에 진행되는 사건 수에 정비례하여 변론준비를 더 충실히 할 수는 없기 마련입니다.

추위가 오면 난방을 가동하고 더 추워지면 실내온도를 더 높이고 하는 끝없는 소모전 대신에, 조금 느리더라도 내 안에 태양열 집열판을 마련하고 외부로부터의 도전을 태양열로 삼아스스로 체온을 높여가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도전은 내공을 높이는 계기가 될 뿐 나를 소모시키지 못하도록 말입니다. 자칫 소중한 시기에 소중한 것들을 잃지 않도록 말입니다.

4. 일 많이 하지 말고 일 잘 하는 것을 목표로 삼으세요.
여러분은 전문직업인으로서 또 사회지도층으로서 하고 싶은 일이 많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능력이라면 능히 할 수 있는 일도 많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많은 것에 도전하려 애쓰지 마세요. 크고 근사해 보이는 일에만 도전하지도 마세요. 세상에는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은 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보다는 작지만 정말로 의미있는 일은 나의 상담이 의뢰인에게 위로가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내 앞의 의뢰인은 여러분에게 이렇게 절규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나에게도 관심이 필요해. 알고 보면 나도 관심이 필요한 사람이야’라고 말입니다. 의뢰인의 절망을 함께 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열정이 법조인의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변호사로서 정말로 목표해볼만한 성취는, 내 준비서면과 변론이 우리 사회가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에 의미 있는 판결을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판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 참신한 발상의 전환, 법률지식과 법률외적인 지식의 융합이 필요합니다. 변호사의 좋은 소장과 준비서면이 없었더라면 법원의 그 많은 판례들은 불가능했습니다. ‘입자가속기가 국가안보에 도움이 되느냐’는 미국 의회의 질문에 대해 로버트 윌슨 초대 페르미국립연구소장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아니오. 하지만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가 되는 데에는 기여할 것입니다’. 나는 과연 우리 사회가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세상이 되는 데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일하고 있는가 스스로 물어 보십시오.

5. 무엇보다 일에 몰입하여 나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경계하세요.
내 영혼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여러분의 영혼이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자신의 영혼을 챙기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가르침은 그 옛날 플라톤이 쓴 소크라테스의 변명에도 나옵니다. 그리스인에게 있어 각자의 영혼을 돌보는 일은 철학이 아니라 현실적인 생존, 삶의 기술이었습니다.

불행히도 최근에 우리 사회가 겪은 일련의 사건은, 인생에서 본질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일을 성공의 지표로 삼거나 영혼에 보탬이 되지 않는 일에 일희일비하고 살아온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한동안 우리 사회는 열풍처럼 서로 안녕한지를 물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더 시급한 것은 우리의 영혼이 안녕한지를 묻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우리 더 늦기 전에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서 모두 제 정신으로 돌아오자. 정신이 돌아오면 각자 있어야 할 제 자리로 돌아가자’라고.
영혼의 소리를 듣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내 속에는 참 자아가 있고, 참 자아를 둘러싸고 있는 거짓 자아가 있습니다. 내가 자신의 욕구, 내면의 소리라고 생각하는 것 중 15%만이 참 자아의 소리이고 나머지는 거짓 자아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거짓 자아는 남과 비교하는 경쟁심에서 비롯합니다. 틈틈이 조용한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여 거짓 자아를 벗겨내고 그 속에 숨어있는 진정한 나, 자신의 본성과 마주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습니다.

6. 덧붙여, 초심을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가 법을 공부하고 법조를 일생의 직업으로 선택하였을 때의 초심이란 무엇일까요. 예나 지금이나 법조지망생의 젊은 날의 꿈은 법조인이 되어 우리 사회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는 것 아닌가요. 우리는 대개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는 갸륵한 생각, 사회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거창한 꿈을 안고 법조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법조인이 되어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는 꿈은 현실적으로는 판사나 검사가 아닌 변호사의 영역에서만 실현가능한 일일뿐더러 그 자체가 변호사의 고유한 업무이기도 합니다. 꿈과 사랑은 변호사의 업무와 모순되는 단어가 아닙니다.

7. 여러분은 변호사이지만, 변호사가 곧 여러분의 전부이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쓴 준비서면과 변론에는 민법, 형법, 의뢰인의 인생뿐 아니라 지나온 나의 전 생애와 인격이 녹아 있습니다. 우리는 의뢰인을 위해 일할 의무가 있지만, 상대편인 반대당사자와 그 대리인을 해하거나 아프게 할 권리는 부여받은 바 없습니다. 최선을 다하되 지나침이 없어야 좋은 변론, 좋은 변호사입니다. 그런 변호사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만 내 영혼이 평화롭기 때문입니다. 영혼의 평화는 과거와 현재뿐 아니라 미래에도 우리가 목표로 삼아 도전할 만한 최고의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도전하지 않으면 부와 지위, 명예에 덤으로 따라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강하게 미래에 도전하라는 독려를 기대하신 분들은 실망하셨나요. 그런 격려는 다른 분들로부터 이미 충분히 들으신 것 같아서요.

137억년이 넘는다는 우주의 한 모퉁이에서 우연인지 필연인지 이렇게 여러분과 만나 우리가 함께 나눈 이 시간이, 저에게는 큰 기쁨이었지만 여러분에게도 유익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이 만남이 서로의 가슴에 작은 불씨로 남아, 혹시라도 가슴 시리고 허전할 때 따뜻하게 피어올랐으면 좋겠습니다. 변호사로서, 법조인으로서 늘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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