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13. 10. 31. 선고 2013두9625 건축불허가처분취소

I. 서론

건축허가는 강학상 허가로서 그 법적 성질은 기속행위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법원도 건축허가는 중대한 공익상의 필요가 없는 한 법령에서 정하는 요건을 갖춘 자에 대한 건축허가를 거부할 수 없다고 하여 건축허가를 기속행위로 이해하고 있다(대법원 2009. 9. 24, 2009두8946 등 참조).

그런데 대법원은 토지의 형질변경행위를 수반하는 건축허가는 재량행위이고 이 경우 사법심사는 재량권의 일탈ㆍ남용이 있는지만 심사하여야 한다고 한다(대법원 2013. 10. 31. 2013두9625).

토지의 형질변경과 같은 개발행위허가를 수반하는 건축허가가 재량행위라고 하는 것은 대법원의 오래된 입장이라는 점에서 이 판례가 그리 새삼스러울 것은 없지만, ① 건축허가는 기속행위이지만 개발행위허가는 재량행위이고 ② 재량행위의 경우 그 요건판단에 행정청의 재량이 인정된다는 대법원의 논리는 ‘요건에는 재량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화된 오늘날의 시점에서는 수정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아울러 개발행위가 절대적으로 금지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관점에서 개발행위허가의 법적 성질을 재량행위로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II. 대상판례의 내용

1. 관련규정

건축물을 건축하거나 대수선하려는 자는 특별자치시장·특별자치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건축법 제11조), 토지의 형질변경 등의 개발행위를 하려는 자는 특별시장·광역시장·특별자치시장·특별자치도지사·시장 또는 군수의 허가(개발행위허가)를 받아야 한다(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하 ‘국토계획법’- 제56조). 개발행위허가기준은 국토계획법 제58조, 동법 시행령 제56조 및 지방자치단체의 도시계획조례 등에 규정되어 있다. 건축허가를 받으면 국토계획법 제56조에 따른 개발행위허가를 받은 것으로 의제된다(건축법 제11조 제5항).

2. 사실관계 및 대법원의 판단

토지형질변경을 수반하는 이 사건 봉안당 건축허가신청에 대한 건축불허가처분에 대하여 제기된 취소소송에서 대법원은 ① 국토계획법에 따른 토지의 형질변경허가는 그 금지요건이 불확정개념으로 규정되어 있어 그 금지요건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행정청에 재량권이 부여되어 있다고 할 것이므로 국토계획법에 따른 토지의 형질변경행위를 수반하는 건축허가는 재량행위이고, ② 재량행위에 대한 사법심사는 행정청의 재량에 의한 공익판단의 여지를 감안하여 원칙적으로 재량권의 일탈이나 남용이 있는지 여부만을 대상으로 하고, 재량권의 일탈·남용 여부에 대한 심사는 사실오인, 비례·평등의 원칙 위반 등을 그 판단 대상으로 한다고 판시하였다.

이러한 판단을 전제로 대법원은 OO번 국도에서 원고가 건축허가를 신청한 이 사건 봉안당에 이르는 진입로 중 일부 구간은 폭이 5m 미만인 사실, 이 사건 봉안당의 부지인 이 사건 토지(임야)의 입목축적이 OO시 평균 입목축적의 117.38%에 이르는 사실 등에 비추어, 이 사건 봉안당의 건축이 주변 지역의 토지이용실태와 조화를 이룬다고 보기도 어려우며, 이 사건 봉안당의 건축을 위한 산림훼손 등으로 자연환경이나 경관을 해칠 우려가 상당하다는 등의 점에서 이 사건 건축허가를 거부한 이 사건 처분에 사실오인이나 비례·평등의 원칙 위배 등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하였다.

3. 논의점

이 사건 쟁점은 이 사건 건축허가신청이 개발행위허가요건을 구비하였는가 하는 것인데, 여기에서는 이러한 쟁점을 다투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쟁점의 해결과정에서 대법원이 ‘요건의 해당 여부에 행정청의 재량이 있다’고 한 점, 이를 바탕으로 요건판단에 ‘재량권의 일탈·남용이 없다’고 한 점과 관련하여 행정법의 이론적 관점에서 ① 토지의 형질변경허가의 금지요건이 불확정개념으로 규정되어 있는 경우 이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데 행정청의 재량이 인정될 수 있는지, ② 요건판단에 행정청의 재량이 인정되는 경우 개발행위허가가 재량행위인지, 이에 따라 토지의 형질변경행위를 수반하는 건축허가가 재량행위인지를 검토하고자 하는 것이다.

 

III. 대상판례의 비판적 검토

1. 행정법규범의 구성과 적용 체계

다수의 법규정들은 요건규정과 효과규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건규정에 불확정개념이 있더라도, 불확정개념의 해석·적용 문제는 요건규정의 판단 문제이다.

한편 요건에 해당하는 경우, 여기에 어떠한 효과를 부여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효과규정의 적용문제인데, 이와 관련하여 기속행위의 경우에는 법이 정한 효과를 그대로 부여하여야 하지만, 재량행위의 경우에는 효과의 부여 여부(결정재량) 또는 복수의 효과 가운데 어떠한 효과의 선택적 부여(선택재량)에 행정청의 재량권이 인정된다. 이처럼 재량행위인가 기속행위인가 하는 문제는 효과규정과 관련된 문제이다.

과거에는 불확정개념의 해석문제와 재량문제를 구분하지 아니하고 양자를 모두 재량의 문제로 다루었던 적이 있었으나, 오늘날 요건규정의 판단문제는 법적 판단의 문제이므로 이를 재량과 구별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삼권분립과 법치주의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법이 일정한 요건을 규정하고 있는 것은 예견가능성을 부여하고 이를 통해 행정의 적법성과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므로, 이와 같은 요건규정을 행정청이 재량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한다면 이는 법치국가원리에 반하는 결과가 된다. 따라서 요건규정에는 행정청의 재량이 인정될 수 없다.

2. 판단여지와 재량의 구별

요건규정에 불확정개념이 있는 경우 법원은 행정청의 요건판단의 적부에 대하여 심사하여야 한다. 다만 불확정개념의 해석에 대하여 법원의 사법심사가 어려울 정도로 고도의 전문성이나 복합성이 있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행정청의 판단여지가 인정되어야 하며 이 경우에도 법원의 사법심사가 전면적으로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① 판단기관이 적법하게 구성되었는지, ② 절차를 준수하였는지, ③ 정당한 사실관계에 기초하고 있는지, ④ 일반적으로 승인된 평가척도들(행정법의 일반원칙 포함)이 준수되었는지, ⑤ 사안과 무관한 사항을 고려하여 판단한 것은 아닌지 등의 여부는 심사하여야 한다.

논란은 있지만, 이와 같이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만 행정청의 판단여지를 인정하는 것이 대다수의 견해인데, 판례는 요건판단의 문제와 효과의 부여 문제를 구별하지 아니하고 이를 모두 재량의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고, 또한 요건판단에 있어서 판단여지가 인정되는가 하는 문제도 재량의 문제로 이해하고 있다.

판단여지는 요건판단에 관한 문제이고, 불확정개념에 대해서 언제나 판단여지가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극히 예외적으로만 인정된다는 점에서, 요건에는 이와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행정청의 재량적 판단이 인정되지 않는다. 이 점이 대법원과 같이 불확정개념에 언제나 행정청의 재량이 인정된다고 하는 점과는 크게 다른 것이다. 요컨대 법이 정한 요건의 충족 여부를 행정청의 재량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행정청의 자의를 배제하여야 한다는 법치행정원리에도 저촉된다는 점에서 양자를 구별하는 것이 타당하다.

3. 개발행위허가의 법적 성질

대법원은 서로 구분되는 건축허가와 개발행위허가를, ‘개발행위허가가 동반된 건축허가’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묶어서 보고 있는데, 이는 건축허가에 개발행위허가가 의제되는 점을 고려한 까닭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건축허가는 기속행위인데 재량행위를 수반하는 건축허가는 재량행위라고 하는 논리보다는, 건축허가는 기속행위이고 여기에 재량행위인 개발행위허가가 의제되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아울러 개발행위허가가 기속행위인지 재량행위인지에 대해서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고, 또한 개발행위의 억제적 측면을 강조하여 개발행위허가를 예외적 승인으로서 재량행위로 볼 여지도 충분하지만, 개발행위 자체가 절대적으로 금지되는 것은 아니고, 국토계획법령의 취지도 개발행위허가요건을 비교적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을 뿐 허가요건에 맞는 경우에는 허가를 발급하여야 하는 것으로 해석되므로, 원칙적으로 기속행위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건축허가와 같이 ‘중대한 공익상의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법이 정한 허가기준을 충족하더라도 허가를 하지 않을 수 있는데, 이 경우 ‘중대한 공익상의 필요’는 불문의 허가요건으로 보아야 하므로, 이 때문에 개발행위허가가 재량행위로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판례가 개발행위허가를 재량행위로 보고 있는 것은 불확정개념으로 규정된 허가요건의 판단에 재량이 인정된다고 보기 때문인데, 요건판단에는 재량이 인정될 수 없고, 다만 행정청의 고도의 전문적ㆍ기술적 판단 등이 요구되는 매우 제한된 경우에만 판단여지가 인정될 수 있을 뿐이라는 점에 근거하면 개발행위허가는 재량행위가 아니다.

 

IV. 결론

요컨대 불확정개념을 포함한 요건규정의 판단 문제는 법적 문제로서 오직 하나의 결정만이 가능한 것이므로 이를 재량으로 보는 대법원 판례는 법치행정의 원리에 반하는 것으로서 수정될 필요가 있다. 더불어 요건판단에 재량이 인정되기 때문에 개발행위허가가 재량행위라는 논리도 수정이 필요하다.

한 가지만 덧붙이지면, 판단여지는 행정청의 고도의 전문적·기술적 판단 등이 요구되는 매우 제한된 영역에서만 인정되는 것인데, 대법원의 판단대로라면 위 토지형질변경요건상의 모든 불확정개념의 해석에 행정청의 재량이 인정되지만, 판단여지의 관점에서는 이러한 정도의 요건판단은 법의 일반이론이나 사회통념으로도 가능한 것이므로 판단여지가 인정된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법원은 행정청의 개발행위허가의 요건판단에 재량권 일탈·남용 여부만을 심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전면적으로 심사할 수 있는 것이다. 행정에 대한 사법의 심사라는 권력분립의 이념에 비추어보더라도 후자의 경우가 법원의 역할에 더 충실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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