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화창한 봄 날씨에 비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홍콩의 5월도 제법 지내기 좋은 계절입니다. 몇 주만 지나면 아열대 기후에 걸맞게 잠시라도 바깥을 걷기 힘겨울 정도로 무더워지기 때문에 지금의 쾌적한 출근길이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직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출근길 풍경은 이곳이 화려한 야경과 거대한 쇼핑몰로 대표되는 관광지일 뿐만 아니라 저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의 일터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합니다.

저는 현재 홍콩의 금융회사에서 각종 법무와 준법감시업무(Compliance)를 담당하는 사내변호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홍콩은 잘 알려진 것처럼 세계적인 금융중심지 중 하나로, 상당수의 한국계 변호사와 금융인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해외 로스쿨 출신이 아닌 사법시험 출신의 한국 변호사가 홍콩에서 일을 시작하는 경우는 아직도 드문지라, 많은 분이 제가 어떻게 홍콩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해 하시고는 합니다.
사실 처음부터 해외진출에 대한 확고한 목표나 거창한 포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남편이 직장을 홍콩으로 옮기게 되었기 때문에, 저도 같이 홍콩으로 이주할 것인지 결정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외국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는 보장이 있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에 고민이 되었지만, 넓은 무대에서 일할 기회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침내 홍콩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 뒤 자연스럽게 이곳의 발달한 금융시장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나아가 직접 이 분야에서 경험을 쌓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금융 관련 회사의 문을 두드린 끝에 홍콩계 헤지펀드인 지금의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헤지펀드란 사모(私募) 펀드의 하나로서 통일된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지만, 일반적으로는 제한된 숫자의 투자자들로부터 비공개적으로 자금을 모은 뒤에 다양한 투자전략을 구사해 높은 수익률을 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펀드를 말합니다.
홍콩은 싱가포르와 더불어 아시아에서 드물게 헤지펀드가 활성화된 시장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꾸준히 그 수요가 있고 자금이 몰리고 있습니다.
펀드 내부에서 변호사로서 하는 일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펀드의 설립 및 마케팅, 판매 등 각 단계에 관련된 법규의 적용 및 합법성 검토와 더불어, 각종 법률문서를 작성하는 것이 주요한 업무입니다. 펀드 운용에 관련하여 외부업체와 계약을 체결할 때에는 그 조건에 대해 협상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펀드 자체도 법인으로서 설립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 기업법무도 다루게 됩니다. 준법감시업무는 펀드의 전반적인 운용에 있어서 각종 법규 및 내부통제기준의 위반 여부를 감독하는 역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금융위기 이후 투자자 보호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세계적으로 금융시장 관련 규제가 강화되고 있습니다. 사모펀드 시장을 규제하기 위한 유럽의 대체투자펀드운용자지침(AIFMD)이 시행되고, 자금세탁방지를 위한 미국의 해외금융계좌신고법(FACTA)이 홍콩에서도 7월부터 시행을 앞두고 있는 등 규제환경이 변화됨에 따라 금융업계 전체가 준법감시에 큰 힘을 기울이고 있는 추세입니다.

처음 일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는 헤지펀드가 무엇인지조차 생소했던 데다, 해외 근무경험도 따로 없고 유학도 다녀오지 않아 영미법적인 지식도 부족한 제가 과연 홍콩에서 그 역할을 다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정작 일을 하면서는 홍콩법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나라의 법규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세금을 절약하기 위해 펀드를 케이먼 군도 등 역외(offshore)에 설립하는 경우에는 역외 규정이 적용되고, 펀드의 설립지와는 별도로 특정 국가의 투자자를 대상으로 하게 되면 해당국가 금융당국의 규제 및 감독을 받게 되므로 그와 관련된 규정도 따로 살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업무 특성을 볼 때, 국적이나 변호사 자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제가 노력하기에 따라 어디서도 통할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홍콩의 금융업계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글로벌한 시장입니다.

이곳에서 변호사로서 일하면서 제가 겪고 느낀 바를 지면을 통해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겨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제 경험이 해외 근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참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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