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12. 12. 13. 선고 2010도10515 판결

 

1. 문제의 제기
부동산실명법이 1995년 7월부터 시행된 후 그 해석을 둘러싼 혼란과 무질서는 우리 민법이 과거 겪지 못한 미증유의 것이고, 시행 20년을 바라보는 현재에도 당최 가리사니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해석이 군맹평상식으로 주장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의신탁 이론은 사법상 권리 중의 권리인 소유권을 규율하는 이론에 그치지 아니하고, 나아가 형식과 실체가 대립하는 법률관계에 대처하는 이론을 정립하는 작업인 점에서 그 의미가 적지 아니한 것이다. 대상판결의 사안은 계약명의신탁 방식으로 명의수탁자가 당사자가 되어 명의신탁약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소유자로부터 부동산을 매수하는 계약을 체결한 후 명의수탁자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가 행해진 경우에 관한 것으로, 종전 계약명의신탁에서 횡령죄를 부정한 해석론의 외연이 확장된 것이라 할 수 있는바, 그 결론의 정당성에 대하여는 의문이 제기된다.

2. 공소사실
피고인은 1992년경 피해자 공소외 1이 분양받은 서울 마포구 성산동 소재 아파트 1402호에 대하여 피해자와의 명의신탁약정을 통해 1997. 4. 피고인 명의로 소유권보존등기를 하여 피해자를 위하여 보관하던 중, 2008. 4. 서울 마포구 공인중개사 사무실에서 피해자의 허락을 받지 아니하고 공소외 2에게 이를 매도하여 횡령하였다.

3. 대법원 판결의 요지
명의신탁자와 명의수탁자가 이른바 계약명의신탁약정을 맺고 명의수탁자가 당사자가 되어 그러한 명의신탁약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소유자로부터 부동산을 매수하는 계약을 체결한 후 그 매매계약에 따라 명의수탁자 앞으로 당해 부동산의 소유권이전등기가 행하여졌다면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 제4조 제2항 본문에 의하여 명의수탁자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는 무효이고 당해 부동산의 소유권은 매도인이 그대로 보유하게 된다. 나아가 그 경우 명의신탁자는 부동산매매계약의 당사자가 되지 아니하고 또 명의신탁약정은 위 법률 제4조 제1항에 의하여 무효이므로, 그는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부동산 자체를 매도인으로부터 이전받아 취득할 수 있는 권리 기타 법적 가능성을 가지지 못한다. 따라서 이때 명의수탁자가 명의신탁자에 대한 관계에서 횡령죄에서의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

4. 검토의견
1) 대상판결은 대법원이 법 제4조 제2항 단서의 계약명의신탁에서 ‘완전한 소유권 취득론’에 기초하여 명의수탁자의 횡령죄를 부정한 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명의수탁자가 당사자가 되어 그러한 명의신탁약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소유자로부터 명의수탁자 앞으로 당해 부동산의 소유권이전등기가 행하여 진 경우” 즉 법 제4조 제2항 본문의 명의신탁의 경우에도 명의수탁자의 처분행위는 횡령죄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이는 종래 대법원이 중간생략등기형 명의신탁 또는 3자간 등기명의신탁에 있어서 명의수탁자가 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한 경우 명의신탁자에 대한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본 것과 달리(2000도3463), 매도인과 명의수탁자 사이에 처분행위를 유효하게 만드는 어떠한 신임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의 지위를 부정한 대법원 2012. 11. 29. 선고 2011도7361 판결의 법리를 재확인하였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미를 갖는다.

2) 명의신탁의 분류이론에 관해 여러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으나, 종래 대법원 및 다수의 학설은 양자 간 명의신탁, 3자 간 등기명의신탁, 계약명의신탁으로 나누어 특히 매도인이 명의신탁 사실을 알지 못한 경우만을 계약명의신탁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았다. 관념적으로 볼 때, 매도인, 명의신탁자, 명의수탁자의 3면 관계로 구성된 등기명의신탁과 계약명의신탁의 각 경우에 매도인 선의인 경우와 악의인 경우를 상정해 볼 수는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별의 종국적 기준이 될 수밖에 없는 법 제4조 제2항의 규정 내용상, 매도인 악의인 계약명의신탁을 달리 표현하면 등기명의신탁과 같은 것이므로 양자를 구별해 논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고 양자가 어떻게 구별되는지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견해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므로 등기명의신탁과 본질적으로 달리 규율할 수 없는 ‘매도인 악의인 계약명의신탁’의 유형을 설정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3) 이에 관한 학설의 입장은 횡령죄가 성립한다는 견해, 배임죄가 성립한다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명의신탁계약은 민법 제103조의 반사회질서 행위로서 무효이므로 이를 기초로 횡령죄에서 요구되는 위탁관계가 발생한다고 할 수 없으므로 또는 명의신탁약정이 불법원인급여는 아니지만 형법으로 보호되어야 할 신임관계에 해당하지 아니하므로 횡령죄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견해가 있다. 특히 명의신탁의 반사회성에 주목하여 횡령죄의 성립을 부정하는 견해(오영근, 2010년 형법중요판례, 인권과 정의 제415호, 65면)는 명의신탁 자체를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는 입장이라 할 수 있는바[오영근, 형법각론(2009), 478면], 이러한 입장은 확립된 대법원의 입장과 맞지 않을뿐더러 명의신탁과 관련된 법률관계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어서 명의신탁을 둘러싼 법률관계의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고, 다른 무엇보다 실명법상의 규제는 실체적 권리관계의 귀속 자체를 변경시킬 수 없다는 극복할 수 없는 한계를 넘는 주장이어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후자의 견해[우인성, 악의의 계약명의신탁과 범죄성립 여부, 판례해설 제94호(2012), 698면] 역시 명의수탁자의 반환의무는 단지 민사상 정산의무의 위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할 것이어서 형법상 보호가치를 부정하기 어렵다 할 것이므로 역시 따르기 어렵다 할 것이다.

4) 명의신탁에서의 명의수탁자란 소유권의 실질을 갖지 않은 채 소유명의만을 갖는 자로서, 본질적으로 타인 재산의 보관자의 지위에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부동산의 경우, 횡령죄의 성립요건으로서의 보관자의 지위는, 점유를 기준으로 할 것이 아니라 그 부동산을 제3자에게 유효하게 처분할 수 있는 권능의 유무를 기준으로 결정하여야 하고(2007도1082), 부동산의 명의수탁자가 부동산을 처분한 경우 그 처분행위는 대외적으로 유효한 것이므로(법 제4조 제3항, 88도1368), 명의수탁자의 처분행위는 원칙적으로 횡령죄를 구성하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명의수탁자의 처분행위가 횡령죄를 구성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가 명의신탁 부동산에 대하여 반환의무 없는 완전한 소유권을 취득하는 경우이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계약명의신탁의 경우, 대법원이 ‘완전한 소유권 취득론’에 기초하여 명의수탁자가 매도인에 대하여서뿐 아니라 명의신탁자에 대한 관계에서까지 완전한 소유권을 취득한 경우 횡령죄가 성립할 수 없다고 본 것은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정확한 것이다. 다만 위 이론이 수긍될 수 없는 것은, 위 완전한 소유권 취득의 실체가 공허하고 실제로는 명의신탁 부동산 자체의 반환의무로 귀결되는 것이거나 부동산의 용익관계를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론이라는 데 있을 뿐이다.

5) 대법원 판례이론에 의하면, 양자 간 명의신탁, 3자 간 등기명의신탁, 계약명의신탁의 각 경우에 소유권은 명의신탁자, 매도인, 명의수탁자에게 각 귀속된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명의수탁자의 처분행위는 양자 간 명의신탁의 경우 명의신탁자, 등기명의신탁의 경우 매도인을 피해자로 하는 횡령죄가 성립되고, 계약명의신탁의 경우에만 그 성립이 부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대상판결에 의하면, ‘부동산 소유권은 매도인에게 있고 명의신탁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부동산 자체를 매도인으로부터 이전받아 취득할 법적 가능성이 없는 것이므로 타인재물 보관자의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한다. 위 판시는 매도인을 피해자로 하는 횡령죄의 성립은 별론, 명의신탁자를 피해자로 하는 횡령죄는 성립할 수 없다는 의미일까. 실제로 학설 중에는, 형식주의를 취하고 있는 우리 민법의 해석상 소유권을 취득하지 못한 명의신탁자에 대한 관계에서 횡령죄를 인정할 수는 없다는 견해가 있다[이재상, 형법각론(2012), 400면]. 그렇다면 종전에 대법원이 “등기명의신탁에 있어 명의신탁자는 매도인에 대하여 매매계약에 기한 소유권이전등기를 청구할 수 있고, 그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을 보전하기 위하여 매도인을 대위하여 명의수탁자에게 무효인 그 명의 등기의 말소를 구할 수도 있다. 명의수탁자가 임의로 신탁부동산을 처분한 경우 매도인이 명의수탁자의 처분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었다고 볼 수 없다”고 한 것(2001다61654)과는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 것이며, 도대체 자신에게 소유권이 있다고 인식하지도 못하고 있는 매도인을 피해자로 상정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가시지 않는 것이다.

6) 대상판결이 선고되기 전에는 계약명의신탁의 경우에 한하여 명의수탁자의 횡령죄가 부정되었으므로, 결국 피고인의 유죄인정 여부는 명의신탁 사실에 대한 매도인의 내부적 용태에 달려 있었다. 그리하여 검사는 매도인의 악의입증에, 피고인은 매도인의 선의입증에 주력하지 않을 수 없었고, 대상판결의 제1심 법원과 항소심 법원은 매도인의 선악의 여부에 따라 유무죄 판단을 달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매도인의 선악의 입증이 분명할 수 없다는 점을 논외로 하더라도 횡령행위의 실체를 직시하지 못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고, 이 경우 피고인에게 선고되는 무죄판결은 공소사실 불특정을 이유로 한 공소기각의 재판보다 더욱 뜻밖의 재판이 된다 하지 않을 수 없다 할 것이다[박재혁, 부동산 명의신탁의 3대 과제(2012), 159면].

5. 결론
대상판결은 매도인이 악의인 등기명의신탁의 경우에도 명의수탁자의 보관자 지위를 부정함으로써 매도인의 선악의 여부에 따라 횡령죄의 성립이 극명하게 갈라지는 불합리를 제거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법적 안정을 찾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명의수탁자는 본질적으로 껍데기뿐인 소유명의를 가지고 있음에 불과한 자로서, 그 소유권의 실체는 명의신탁자의 것이므로 명의수탁자가 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한 때에는 그 유형을 가려 볼 필요 없이 명의신탁자를 피해자로 하는 횡령죄가 성립된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된다. 한 가지 덧붙이면, 부동산 물권변동에 관한 형식주의를 근거로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하지 아니한 자는 어떠한 경우에도 소유권자가 될 수 없고, 따라서 횡령죄의 피해자가 될 수도 없다는 전제에 선 견해가 있으나, 우리 민법의 형식주의는 대내외적으로 유효한 소유권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소유권이전등기를 해야 한다는 것일 뿐 적법한 매매계약에 따라 대금을 모두 지급한 매수인이 그 부동산에 대한 소유권 행사(용익권능 또는 처분권능)가 전적으로 금지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는 없는 것이므로, 매도인을 피해자로 보는 입장은 타당하다고 할 수 없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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