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국가나 사회도 재난이나 사고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누군가의 잘못 이나 천재지변에 의해서 재난은 갑자기 들이닥치기 마련이다. 그래서 어느 사회나 국가가 얼마나 성숙해 있고 준비가 되어 있는지는 재난이 얼마나 적게 발생하는가보다는 재난이 닥쳤을 때 얼마나 잘 대처하는가에 의해서 평가된다.

위기 대처능력은 충분한 준비가 만들어 준다. 재난 발생 후 직면하게 되는 온갖 상황에 대비한 매뉴얼이 만들어져야 하고, 그 매뉴얼에 따라 행동할 조직, 그리고 각종 장비와 물품이 준비되어야 하며, 그 매뉴얼은 누구라도 즉시 따라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이고, 현실에 맞게 업데이트돼 있어야 하며, 모두에게 충분히 교육되어 있어야 한다.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재난에 대한 대비가 안 되어 있다는 등의, 늘 들어오던 비판과 자성의 소리가 들려오지만 왜 그런 상황이 반복되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보이지 않는다. 어느 측면에서 평가해 보더라도 대비할 능력이 없어서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반복되는 수많은 붕괴나 침몰사고의 경험, 충분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이 지속되는 이유는 말과는 달리 우리사회 전체가 이 문제를 뒷순위에 두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생명과 안전이 최우선적으로 지켜져야 할 가치라는 생각이 시간이 지나면서 당장의 효율과 눈에 보이는 성장이나 복지를 우선시하는 가치관에 밀려나기 때문인 것이다.

물론 책임져야 할 사람들을 엄벌하고, 당장 현장에 대한 점검과 단속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며,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정교한 법과 매뉴얼을 만드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그러나 생명과 안전 우선의 가치관이 전제되지 않으면 그러한 매뉴얼은 장식으로 전락하게 되고, 우리는 또 다시 재난 앞에 무방비가 될 것이다. 우리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인간적인 삶을 위하여 우리가 무엇을 희생해야 하는지에 대한 길고 진지한 성찰이 없다면, 그래서 여전히 지금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또 다른 재난에서 다시 한번 가해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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