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국회 법사위 제1소위에서 ‘결정’만으로도 대법원의 상고를 기각할 수 있도록 한 민· 형사 소송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이춘석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번 개정안은, 대법원의 업무부담 경감이라는 행정편의적 이득에 비해 국민의 기본권(재판청구권)침해라는 손실이 훨씬 큼에도 발의 한달만에 속전 속결로 가결되었다.
국민의 기본권과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이번 법률안이 충분한 숙의 과정도 없이, 변협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과된 것은 통탄할만한 일이다.
특히, 법원은 상고이유서에 욕설만 있거나 상고이유가 아예 기재되어 있지 않은 경우 등 극단적인 사례를 들어 법사위 위원들을 설득했다는 후문이다.

엄청난 돈과 시간을 들여 1심과 2심을 진행하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최종 판단을 받아보겠다는 일념으로 비싼 인지대와 소송비용을 들여 상고를 했는데,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5년 넘게 기다렸다가 받은 것은 달랑 ‘심리 불속행 기각 결정문’ 한 장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왜 내 사건이 심리 불속행 기각되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국민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심리불속행 기각률이 70%를 넘어서고 그 해결책으로 대법관 수 증원이나 고등법원에 상고부 설치 등의 의
견이 제시되고 있는 가운데, 오히려 그와 같은 의견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의원 입법이 발의되어 통과를 목전에 두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통과된 법률안은 ‘상고이유가 전혀 없음이 명백한 상고사건의 경우, 결정으로 상고를 기각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상고이유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사건의 실체에 관해 심리해야 하고, 실체에 관해 심리했다면 그 이유를 밝히는 판결의 형식으로 선고되어야 마땅하다는데 있다.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한 행정 편의적 발상으로 내려진 결정에 대해 재판의 당사자인 국민이 전혀 납득할 수 없다면 ‘사법신뢰 제고’와 ‘국민과의 소통’을 주장해왔던 대법원의 행보는 말 그대로 하나의 제스처에 불과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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