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금아리무진 판결(대법원 2012. 3. 29. 선고 2010다91046 판결) 이후 촉발된 통상임금 법리에 관한 논쟁은 우여곡절 끝에 2013. 12. 18. 선고된 두 개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대법원 2013. 12. 18. 선고 2012다89399 전원합의체 판결, 2013. 12. 18. 선고 2012다94643 전원합의체 판결)에 의해 일단락되었다. 법원은 위 두 개의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통상임금과 관련된 판례 법리를 명확히 함으로써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렇게 일정 정도의 예측 가능성을 확보했다는 점은, 통상임금이 법정수당 산정의 도구라는 점을 고려할 때, 전원합의체 판결의 긍정적 효과라 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전원합의체 판결은 법정수당 소송에서 신의칙 적용 가능성을 열어 둠으로써, 즉 신의칙이라는 예외적 법리를 잠정적으로나마 일반적 원리로 바꾸는 마술(신데렐라 이야기를 떠올리면 쉽게 알 수 있듯이, 마술은 불가능한 걸 실현하지만 한시적이다)을 통해 변호사와 하급심 법관에게 통상임금 관련 소송의 해결 책임을 떠넘겼다는 비판도 함께 받고 있다.

이 평석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초하여, 통상임금 소송에 대한 신의칙 적용과 관련된 전원합의체 판결 내용의 요지를 설명한 후 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위 전원합의체 판결 중에서 통상임금 소송에 대한 신의칙 적용 법리를 명확하게 밝힌 것은 대법원 2013. 12. 18. 선고 2012다89399 전원합의체 판결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도 이 판결을 중심에 두고 검토한다(아래에서 ‘전원합의체 판결’이라고 부를 때는 위 2012다89399 전원합의체 판결을 가리킨다).

Ⅱ. 신의칙 적용과 관련된 전원합의체 판결 요지
첫째, 근로기준법상 통상임금에 속하는 임금을 통상임금에서 배제하기로 노사가 합의하였다 하더라도 그 합의는 효력이 없다. 따라서 노사합의가 있다 하더라도, 만약 그에 의해 계산한 가산수당이 근로기준법에 따라 계산한 법정수당보다 낮을 경우 근로자는 근로기준법에 근거하여 그 차액을 청구할 수 있다.

둘째, 단체협약 등 노사합의의 내용이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을 위반하여 무효인 경우에, 그 무효를 주장하는 것이 신의칙에 위배되는 권리의 행사라는 이유로 이를 배척한다면 강행규정으로 정한 입법취지를 몰각시키는 결과가 되므로, 원칙적으로, 그러한 주장이 신의칙에 위배된다고 볼 수도 없다. 다만, 예외적으로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것을 이유로 한 법정수당 청구가 신의칙에 위배되어 허용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예외를 인정하기 위해선 신의칙의 일반 요건과 함께 특별한 사정이 존재할 것이 요구된다. 즉, 신의칙을 적용하기 위한 일반적인 요건을 갖춤은 물론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성에도 불구하고 신의칙을 우선하여 적용하는 것을 수긍할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예외적인 경우에 한하여 그 노사합의의 무효를 주장하는 것은 신의칙에 위배되어 허용될 수 없다. 그 구체적 내용은 아래와 같다.

일반적 요건으로서, 신의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그 권리행사를 부정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신의를 공여하였거나 객관적으로 보아 상대방이 신의를 가지는 것이 정당한 상태에 이르러야 하고 이와 같은 상대방의 신의에 반하여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정의관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없는 정도의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

특별한 사정으로서, 신의칙에 의해 법정수당 청구가 금지되기 위해서는 협상 과정을 거쳐 임금 수준을 정하고, 법정수당 소송을 통해 합의된 임금 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예상 외의 이익을 추구하며, 이로 인해 기업에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 초래되거나 그 존립이 위태로워야 한다. 즉, ① 임금협상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노사합의에서 정기상여금은 그 자체로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오인한 나머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 산정 기준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하고 이를 전제로 임금 수준을 정해야 하고, ② 근로자 쪽이 이러한 임금 협상의 방법과 경위, 실질적인 목표와 결과 등은 도외시한 채 임금 협상 당시 전혀 생각하지 못한 사유를 들어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가산하고 이를 토대로 추가적인 법정수당의 지급을 구함으로써, 노사가 합의한 임금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예상 외의 이익을 추구하며, ③ 그로 말미암아 사용자에게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지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경우, ④ 이는 종국적으로 근로자 쪽에까지 그 피해가 미치게 되어 노사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결과를 가져오므로 정의와 형평 관념에 비추어 신의에 현저히 반하고 도저히 용인될 수 없음이 분명하므로, 추가 법정수당 청구는 신의칙에 위배되어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Ⅲ. 장시간 근로의 노사 담합에 대한 사법적 면죄부
한국의 장시간 근로는 기업이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 수준에서 장시간 노동을 유인하기 위해 초과근로를 이용하고, 근로자는 상대적으로 낮은 기대임금을 보전하기 위해 과잉 근로를 감내하는 상호 관계에 의해 고착되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체가 무노조 사업체보다 오히려 평일 연장근로시간이나 휴일근로시간이 길게 나타난다. 이런 현상은 노동조합이 근로시간 단축보다는 오히려 초과 근로시간을 늘려 초과근로수당을 많이 받기를 원하는 조합원의 이해관계를 묵인하고 추종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적 책임을 도외시한 대기업과 정규직 노조 중심으로 담합 구조가 형성되어 장시간 근로가 ‘일할 기회 부족’과 ‘일하는 사람들 간의 격차’라는 노동시장의 핵심 문제의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위와 같은 점에 비추어 볼 때, 기업과 노동조합 사이의 담합 구조를 법률적으로 용인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장시간 근로 실태를 타개하는 데 부정적 효과를 주게 된다는 걸 알 수 있다. 기업이 노동조합과의 단체협약 등 노사합의를 통해 법정수당의 부담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사법적 신뢰는 그러한 담합 구조를 더 공고히 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전원합의체 판결이 근로기준법 규정을 한시적으로 무력화하면서까지 노사합의 등에 근거하여 신의칙 적용을 가능하게 한 조치는 기존의 장시간 근로에 관한 노사의 담합 구조를 사법적으로 묵인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전원합의체 판결에 내재된 더 큰 문제점은 법원이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한 기업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것이다. 법원 스스로는 이를 의식하지 못 했겠지만, 전원합의체 판결에 의해 그동안 정기상여금을 포함하여 통상임금을 산정했던 기업들은 상대적으로는 손실을 입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들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배제한 기업에 비해 더 많은 가산수당을 지급했거나 더 많은 근로자를 고용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법원은 노동법적 책임을 충실히 이행하거나 판례 법리에 따라 통상임금 제도를 이미 정비한 기업이 입는 상대적 손해 혹은 불이익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였다.

자본주의 경제질서에서 기업을 바라볼 때는 경제적인 합리성을 갖추었다는 걸 당연한 전제로 할 수 있지만, 사법과 입법의 영역에서 바라볼 때 그 기업은 우리의 헌법적 가치와 노동법에 투영된 입법자의 뜻을 존중하는 존재여야 한다. 만약 우리가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기업만을 상정하고 그들에 맞춰 법률을 해석하고 입법한다면, 그렇지 않은 좀 더 윤리적이고 헌법적 가치에 부합하는 경제 활동을 하는 기업들은 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적어도 사법부는, 기업이 자본주의 시장질서 내에서 활동하는 경제적 존재라는 점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와 복지국가 원리에 기반하여 사회적 책임을 부담하는 존재라는 점을 함께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책임을 성실히 이행한 기업 또는 이행할 의사를 갖고 있는 기업이 사법의 영역에서 불이익을 받게 해선 안 된다.

Ⅳ. 기업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신의칙의 무리한 확장
전원합의체 판결에 의하면, 신의칙 적용을 위한 일반적 요건과 특별한 사정이 존재하는 경우 정기상여금과 관련된 법정수당 청구를 제한할 수 있다. 이는 법정수당 청구로 인한 기업 부담을 염려한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전원합의체 판결의 법리는 신의칙의 일반 법리 및 근로기준법의 입법 취지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그 동안의 기업 경영사항과 근로자와의 관계에 대한 판례 법리와도 모순된다.

첫째, 전원합의체 판결이 신의칙을 이용하여 강행규정인 근로기준법을 무력화한 것은 신의칙의 일반원리에 어긋난다.
민법 제2조 제1항은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고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을 규정하고 있다. 그 입법취지는, 형식적인 계약의 자유에서 나아가 당사자 모두에게 이익을 주는 계약의 공정을 실현하는 것을 지향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사적 자치 원칙의 제한 원리로서 ‘사회적 형평의 고려 또는 이념’ 또는 ‘사회적 조정의 원칙’을 들 수 있는데, 신의칙은 이러한 이념을 반영한 것이다. 그런데 이 이념은 흔히 특별법의 형식을 통해 실현되고 노동법은 그 대표적 예이다. 따라서 근로기준법과 같은 노동법 영역에서 신의칙은 제한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즉, 노동법 그 자체가 신의칙의 이념 또는 기초 원리인 ‘사회적 형평의 고려 또는 이념’ 또는 ‘사회적 조정의 원칙’에 근거한 법제이기 때문에 노동법의 효력을 무력화하는 수단으로서 신의칙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둘째,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신의칙 법리 적용의 전제로 내세운 노사관계는 기존 판례 법리와 어긋난다.
그동안 법원은 기업의 경영권이나 경영사항은 노동조합이나 근로자가 개입할 수 없는 영역으로 간주하였다. 예컨대, 구조조정과 관련하여 근로자는 사용자의 판단에 종속되는 사람이고 원칙적으로 그에 대항하는 쟁의행위도 할 수 없는 객체이다(대법원 2011. 1. 27. 선고 2010도11030 판결 참조). 판례에 따르면, 사용자의 경영권은 약정(단체협약)이 있다 하더라도 쉽게 포기하거나 제한할 수 없는 것이며 노동조합이 경영에 대한 책임을 분담하는지는 별도로 검토되어야 한다.

그런데 근로자 개인의 법정수당 청구권의 행사와 관련해서, 갑자기 근로자는 사용자와 함께 기업을 운영하고 경영책임을 공동 부담하는 주체가 된 것이다. 즉, “기업의 지속적인 존립과 성장은 노사 양측이 다 같이 추구하여야 할 공동의 목표이므로 기업 재정에 심각한 타격을 주어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기반에 영향을 주면서까지 임금을 인상할 수는 없고, 임금의 인상은 기업이 생산·판매 활동 등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수익에 기초하여 노동비용 부담능력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내적 한계가 있고, 이는 노사 상호 간에 양해된 사항”이라고 한다. 아무리 한시적인 법리라고 하더라도, 이런 모순되는 상황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을 듯 하다.

*이 글은 노동법연구 제36호(서울대학교 노동법연구회, 2014년)에 게재된 필자의 논문 내용을 요약한 것임을 밝혀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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