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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협이 만난 사람_100세를 향해 걸어가는 우직한 촌사람 변 무 관 변호사]“의기와 겸손 모두 갖춘 현명한 법조인이 되길”
인터뷰 박형연 공보이사  |  iamric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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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0호] 승인 2014.04.14  10: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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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생 우리 나이로 93세에 변무관 변호사는 지난 3월 19일 ‘나는 역시 우직한 촌사람이었다’란 자서전을 쓰고, 그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이 행사에 다녀온 위철환 협회장은 그분의 무엇에 감동을 하였는지 “너무 훌륭한 법조선배”라시며 공보이사인 나를 불러 꼭 인터뷰를 하라고 지시하셨다.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변무관 변호사 관련 많은 기사가 검색된다. 마치 정치의 첫발을 내디디는 장래가 총망되는 40대나 50대 변호사의 출판기념회 소식을 전하는 분위기이다. 그런데 그는 나이 90을 넘긴 검사 30년, 변호사 30년의 백전 노장이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한 마음에 광화문에 위치한 그의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자서전 책을 받아들고, 한 마리의 호랑이처럼 40년 후배변호사에게 검사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 최대교 검사처럼 검사란 모름지기 다른 검사를 구속 수사할 수 있어야 한다, 검사는 자기 아내 이외에는 인심을 잃을 배포는 지녀야 한다는 3개의 덕목을 말씀하시는데 아흔살을 넘겼다고 하기에는 호흡에 절도가 있다. 그런 강기와 호기를 가졌기에 검찰에서 잘나가지 못하고 말단에 머물렀나 했더니 대구검사장, 대검 총무부장까지 지냈단다. 정치에 눈꼼만치 관심도 없으면서 검찰에서 같이 근무한 사람들의 모임인 15인회의 멤버가 정해창, 정구영, 박희태, 김두희, 이명재, 김기춘 등으로 일당백하는 사람들이다. 변호사로 개업하여 변호사 시보를 매년 1, 2명씩 받아 자신의 호를 따라 정석회라는 모임을 결성했다. 그 맴버가 70명 정도인데 그 면면이 국회의원을 한 함승희, 법무법인 태평양의 이재식, 서울대 교수 정종섭, 박정훈, 판사 이민걸 등이다.

보스 기질이 있는데 왜 변호사 사무실을 크게 키울 생각을 하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정석회 시보들의 도움으로 충분했다고 크게 웃기만 하신다. 대형로펌이 부럽지 않은 일인성주의 모습이다. 동료들과 합동사무실을 운영하다가 2년 전에 당주동 변호사 회관 옆 건물로 여비서 하나 데리고 옮겨와 거의 매일 출근하고 있다. 변호사 업무를 하는 것은 아니다. 5시에 일어나, 한국신문, 영자신문을 읽고 출근을 하여 사무실에서는 젊은 시절 읽지 못한 일본 문학작품을 읽는 재미에 빠져있다. 정말 영자신문을 매일 읽냐고 물으니 밑줄 친 코리아 헤럴드 한뭉치를 펼쳐 보여주신다. 젊을 때는 바빠서 책을 읽지 못했는데 요새는 여유가 있어 책을 많이 읽는다. 일본 중앙대 출신이라 자연스럽게 일본 책들을 많이 읽는데 일본어 자랑이 아니라 일본문학작품의 수준은 아직도 깊이가 예사롭지 않다고 경계를 하신다. 아무리 보아도 구십살 할아버지는 아니다. 왜 그의 주위에 젊은 후배들(정석회), 동료들(15인회)이 모여들어 떠나지 않는지 알 것 같다. 나도 그 매력에 빠져 받은 책을 다 읽고, 정식으로 사진기자 데리고 와서 인터뷰를 하겠다고 이날은 자리를 떴다. 11시에 사무실에 도착했는데 벌써 12시 30분을 넘겼다.

▲ 변무관 변호사 자서전 출판기념회에서 위철환 협회장과 함께
이틀만에 그의 자서전을 다 읽고 인터뷰를 위해 일주일만에 다시 사무실을 찾았다. 그 사이에 더 유명인사가 되어 내가 들어서는 순간에도 KTV(국정방송)와 인터뷰 약속을 잡고 있었다. 다시 보니, 마치 내가 정석회 후배가 된 것처럼 반겨 주신다. 그 정석회 맴버에는 나와 연수원 동기인 노경식, 장상균, 조정철, 허용만 변호사의 이름도 보인다. 그에게 질문을 날려본다.

서정주 시인은 자신의 오늘을 있게 한 것은 8할이 바람이라고 하였다. 무엇이 오늘의 변무관 변호사를 만들었나?
작년 2월부터 책을 쓰기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죽기 전에 뭔가는 남겨야지 하면서도 결심을 못했는데 집사람을 먼저 묻은 천안 공원묘지에 가서 이곳이 내가 영원히 살 집이구나, 구십 평생을 보낸 이곳은 잠시 쉬었다가 가는 곳일 뿐이구나 느끼니 생의 마지막 기록을 남기고 싶어졌다. 쓰면서 제목을 뭐로 정할지 고민했다. 그래서 내가 정한 제목이 ‘우직한 촌사람’이다. 서정주 시인이 바람의 힘으로 살았다면 난 촌놈 기질로 여기까지 왔을 것이다.

사람복이 많은 것 같다. 15인회, 정석회 등 면면이 화려하다. 비결이 무엇인가?
내가 사법관 시보할 때 6·25 직후라 돈이 없어 점심밥을 굶을 때가 많았다. 그때 부장판사분이 1000원짜리 한 장 주시면서 점심 사먹으라고 했다. 요즘 돈으로 10만원이 넘는 돈이다. 무척 고마웠다. 그때 그 양반 보면서 나도 많이 베풀면서 살아야지 마음 먹었다. 그래서 그 후로 선배건, 후배건 항상 상대방에 대한 존경과 배우는 마음으로 살았다. 이런 나의 태도가 사람을 모이게 하였을지는 모르겠다.

인생에서 제일 힘들었던 때가 언제인가.
일본 중앙대 마치고 학도병으로 끌려 갔을 때이다. 정말 죽는 줄 알았다. 학도병들은 처음에 중국으로 갔다가 남태평양으로 다시 끌려갔는데 우리 앞 기수가 남태평양으로 떠나가고, 우리 순서에서 8·15 해방이 되었다. 한발 앞서 남태평양으로 떠난 친구들 중에 살아온 사람은 없었다.

돌릴 수 있다면 시계추를 되돌리고 싶은 제일 후회가 되는 순간은 언제인가.
책에 썼는데 부산에서 평검사 때 검사장에게 기록을 던지면서 “당신이 해보시오”하면서 호기를 부린 때이다. 검사장이 사건청탁을 했는데 아무리 봐도 안 될 것같았다. 그분이 나를 불러서 다시 지시를 하길래, 성질을 참지 못하고 “그러면 당신이 직접 해보시오”라고 기록을 던져주면서 검사장 방을 나와 버렸다. 그 검사장이 “내가 과한 것 같다”는 쪽지를 보내면서 사과를 했는데 젊은 혈기에 바로 찾아가서 사과를 못드렸다. 두 번 실수를 한 것이다. 나중에 사과하려고 하였더니, 그쪽에서 이번엔 나를 피했다. 괘씸한 후배가 된 것이다. 그 사건으로 ‘말 안듣는 검사’ ‘기록 던지는 검사’로 소문났는데 부끄럽고 후회가 된다. 그런 부족한 사람이 검사장까지 했으니 그 시절엔 검찰에 훌륭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나같이 부족한 사람을 받아주었으니 말이다. 후배들은 나같은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 의기를 잃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예의와 겸손을 갖추라는 말이다.

제일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인가?
고등고시 합격 때와 사실 더 기뻤던 때는 미국무성 초청 세계일주 선발에 뽑혔을 때이다. 부산지검에서 평검사 할 때인데 전국의 판사, 검사, 변호사 660명 중 2명을 선발해 6개월간 세계일주 기회를 줬다. 모두 25명이 지원을 했고, 내가 그 2명에 뽑혀서 세계일주를 했다. 중학교 시절 나중에 크면 영어가 중요할 것이라 생각해서 일어로 된 영문법책을 사서 15번이나 독파했었는데 그 덕을 본 것이다.

아들 3명이 모두 아버지를 닮아 잘생겼다. 한명도 아버지의 뒤를 잊지않았는데 아쉽지 않나?
솔직히 아쉽다. 자식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한명은 법조인, 한명은 의사를 시키고 싶었다. 고시 동기중에 고대 나온 박찬 변호사가 있는데 그 친구는 아들 한명은 의사, 한명은 법조인이다. 내가 제일 부러워하는 친구이다.

책에 김재순 국회의장과 연애편지를 주고 받는 것이 정겹다. 사실인가?
김재순 국회의장과는 40년된 친구이다. 같은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했는데 그가 항상 나에게 편지를 하나씩 써서 남겨 놓았다. 물론 나는 한번도 편지를 쓴 적이 없고, 받기만 했다. 참 책을 많이 읽는 분이다. 항상 많이 배운다. 그런데 슬프게도 내 책 축사는 써주고, 몸이 안 좋아져서 내 출판기념회에 오지 못했다. 오래 사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좋은 벗들을 먼저 떠나 보내고 있다.

인터뷰를 마쳤다. 책 1000부를 찍어 아직 200부가 남았단다. 그래서 이 인터뷰 기사를 읽고 인간 변무관의 일생을 알고 싶은 후배법조인들에게 자서전을 변협신문에서 받아 선물해도 되겠냐고 했더니 좋아 하신다.
2014년의 청년변호사들은 죽음을 넘나드는 사선은 없으나 나름의 어려운 시대를 만나고 있고, 그 시대를 넘어서야 한다. 그 젊은 청년변호사들에게 변무관의 자서전을 추천한다. 홍보과로, 나에게로 요청을 하면 선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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