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14. 1. 23. 선고 2013다56839

I. 사실관계
피고회사 대주주인 원고 등은 2010. 1. 22. 피고회사의 대출금 채무를 담보하기 위하여 피고회사 발행 주식에 관하여 A은행에게 주식근질권을 설정하여 주었다. 근질권 설정계약에 따르면, (i) ‘의결권 행사의 위임’이라는 제목 하에 제4조에서, 근질권 설정자는 향후 모든 주주총회에서 담보주식에 관한 의결권 행사를 근질권자에게 위임하되 이를 위하여 근질권자가 합리적으로 요구하는 수만큼 위임장을 작성하여 근질권자에게 교부할 것을 규정하였고, (ii) ‘근질권의 실행’이라는 제목 하에 제8조에서, 대출금 채무의 기한도래 또는 기한의 이익 상실로 인하여 피고회사가 채무를 이행하여야 할 때에 근질권자는 근질권을 실행할 수 있고(제1항), 이 경우 근질권자는 일반적으로 적당하다고 인정되는 방법, 시기, 가격 등에 의하여 담보주식을 임의 처분하고 그 취득금을 충당하거나, 일반적으로 적당하다고 인정되는 방법, 시기, 가격 등에 의하여 피담보채무의 전부 또는 일부의 변제에 갈음하여 담보주식을 취득할 수 있으며(제2항), 근질권자는 의결권 행사를 통한 임원 변경 등 필요한 절차를 진행할 수 있고, 피고회사를 대신하여 관련 주주총회를 개최할 수 있다(제3항)고 규정하고 있었다.

피고회사가 연장된 만기인 2011. 6. 30.까지 대출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하자, A은행은 피고회사에게 기한의 이익 상실 통지를 하였고, 피고회사 주식을 추가 매수하여 피고회사의 100% 주주가 된 원고와의 사이에 2011. 8. 10. A은행을 ‘피고회사의 주주총회 소집, 주주총회 의안에 대하여 보유주식에 대한 의결권 행사’에 관하여 원고의 대리인으로 선임한다는 내용의 위임장(‘이 사건 위임장’)을 작성받아 이를 수령하였다. 이 사건 위임장에 따르면 ‘주주총회의사록을 공증하기 위한 촉탁 및 이와 관련한 일체의 행위’에 관한 권한도 위임되어 있었다. 한편 원고는 피고회사 발행 주식과 함께 A은행에게 담보로 제공되었던 피고회사의 손자회사 주식의 지분을 희석시키는 등 담보권 침해행위를 한 적이 있었다.

A은행은 이 사건 위임장을 통해 위임받은 권한에 기초하여 “2011. 8. 11. 원고를 대리한 A은행 직원 B가 참석한 상태에서 피고회사의 본점 소재지에서 임시주주총회를 개최하여 원고와 백모를 각 대표이사와 사내이사에서 해임하고 김모를 이사로 선임하는 주주총회가 이루어졌다”는 내용의 임시주주총회 의사록을 작성하고, 이를 근거로 위와 같은 내용으로 피고회사의 임원 변경등기를 마쳤다.
이에 대하여 원고는 위 주주총회결의의 효력을 다투는 소를 제기하였다.

II. 법원의 판단
원심과 대법원 모두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원고 주장의 핵심은 이 사건 위임장은 의결권을 포괄적으로 위임한 것으로서 무효이고, 이 사건 주주총회의 의결권 행사는 위임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므로 효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대법원은 일반론으로서 “의결권의 행사를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항에 국한하여 위임해야 한다고 해석하여야 할 근거는 없고 포괄적으로 위임할 수도 있다”고 본 종래의 판례(대법원 1969. 7. 8. 선고 69다688 판결)를 다시 인용하였다. 구체적으로 대법원은 A은행의 이 사건 위임장 및 이 사건 주주총회를 통한 담보권자로서의 권한 행사는 근질권 설정계약에서 약정된 담보권 실행방법에 따라, 원고로부터 위임받은 의결권 행사의 범위 내에서 적법하게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았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주식근질권 설정계약에 따르면, A은행은 의결권을 위임받아 담보 권한을 확보하였을 뿐 아니라, 기한이 도래한 경우 주주총회를 개최하여 피고회사 경영진을 교체할 수 있는 것을 담보권의 실행방법으로 약정한 것이다. (2) 원고로서도 A은행이 이 사건 위임장을 이용하여 주식근질권 설정계약에서 정한 피고회사 임원 변경 등을 포함해 담보권 실행을 위해 필요한 목적으로 위임받은 의결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점을 예측할 수 있었다. (3) 상행위로 인하여 생긴 채권을 담보하기 위하여 주식에 대하여 질권이 설정된 경우에 질권자가 가지는 권리의 범위 및 그 행사 방법은 원칙적으로 질권설정 계약 등의 약정에 따라 정하여질 수 있고, 위와 같은 질권 등 담보권의 경우에 담보제공자의 권리를 형해화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담보권자가 담보물인 주식에 대한 담보권 실행을 위한 약정에 따라 담보제공자인 주주로부터 의결권을 위임받아 그 약정에서 정한 범위 내에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도 허용된다.

III. 검토
사안에서는 1인 회사의 경우 의결권 대리행사 방식에 관한 판단도 있었으나 이하에서는 주식에 대한 질권 설정과 의결권의 포괄위임 부분만을 살펴보기로 한다. 원래 의결권의 행사는 일신전속적인 것은 아니므로, 그 대리행사는 상법상 허용된다(제368조 제3항). 하나의 총회에 관한 의결권을 타인에게 위임할 수 있다는 점은 이견이 없으나, 수회의 총회에 관한 의결권을 포괄적으로 위임하는 행위가 가능한지에 대하여는 논란이 있다. 평석대상 판결에서 인용된 대법원 1969. 7. 8. 선고 69다688 판결은 “주주권 행사를 포괄적으로 위임할 수 있다”는 표현을 쓰고 있으나, 이에 관하여도 그 ‘포괄성’은 특정 총회에서 다양한 사항에 관해 위임할 수 있다는 의미일 뿐이라는 해석이 제기되고 있었다. 이 판결은 채권자가 주식질권을 가지면서 동시에 주식의 의결권도 포괄위임 받은 경우 그 효력에 관하여 여러 가지 흥미로운 쟁점을 다루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의결권을 주주, 채권자, 기타 이해관계자 중 누구에게 부여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문제도 제기될 수 있으나, 지면관계상 이 논점은 관련되는 부분에 한하여 언급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 수회의 총회에 관한 의결권 포괄위임 약정의 유효성 문제이다. 이 판결은 그 유효성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판결 이전에도 7년간의 의결권 위임이 유효한 것을 전제로 판단한 판례가 있었다(대법원 2002. 12. 24. 선고 2002다54691 판결). 이 같은 포괄위임은 사안처럼 주식의 담보제공과 같은 특수한 경우에 제한적으로 허용되어야 하는 것인가? 의결권 포괄위임의 일반적 허용에 관하여는 결국 주주권과 의결권의 분리를 가져온다고 하여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위임의 법리상 설사 포괄위임을 했다 하더라도 본인인 주주가 언제든지 위임을 해지할 수 있는 것이므로(민법 제689조), 주식 담보제공 이외의 경우에도 일반적으로 포괄위임의 효력을 인정함이 타당하다고 하겠다.

의결권을 포괄위임하면서 주주의 해지권을 배제하는 이른바 철회불능(irrevocable) 포괄위임도 가능한가? 이는 주주권으로부터 의결권을 완전한 분리함을 뜻하는 것이므로 우리 법제상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다. 사안으로 돌아오면, 이 사건 위임장은 기존 근질권 설정계약에 추가하여 특정 주주총회를 위해 부여된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어느모로 보나 무효로 보기 어려울 것이다.

두 번째로 의결권의 위임 자체가 유효하다고 할 때, 수임인이 의결권을 본인인 주주에게 불리하도록 행사할 수 있는지 여부이다. 사안에서 A은행은 원고의 의결권을 대리행사하면서 원고를 피고회사의 대표이사직에서 해임하였고, 이에 대하여 원고가 반발하고 있다. 원래 위임의 법리에 따르면, 수임인은 위임인의 이익을 위하여 행위할 선관주의의무를 부담한다(민법 제681조). 이러한 논리를 일관하면 이 사건 의결권의 행사는 위임의 본지를 벗어난 것이 되고, 이러한 행위의 사법적 효력이 문제될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사안에서의 의결권 위임 및 해임결의가 질권의 실행방법으로 이루어진 것에 주목하였다. 질권설정계약에 따르면 기한 도래시 A은행에게 질권의 실행수단의 하나로서 주식처분권과 함께 피고회사 임원변경권이 부여되어 있었고, 원고가 A은행에게 이 사건 위임장을 별도로 교부한 것으로 보아 위 임원변경은 어느 정도 예측가능한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대법원 판시에 따르면, 상사채권을 담보하기 위한 주식질권인 경우, (비록 주주의 권리를 형해화해서는 안 된다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담보권 실행의 수단으로서 임원변경을 포함하여 다양한 방식을 규정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위임 자체보다는 위임에 이르게 된 배경인 질권 설정 및 담보권 실행에 초점을 맞춘 해석이다. 기한도래시 A은행이 원고보유 주식을 처분할 수도 있었다는 점에 비추어본다면, 원고의 주주로서의 지위를 그대로 유지시킨채 그 대표이사로서의 지위만 박탈한 것이 과도하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편 “의결권을 왜 주주에게 귀속시키는가”의 관점에서 볼 때에도, 이 사안에서 A은행으로 하여금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것에 큰 무리는 없다고 본다. 원래 주주에게 의결권을 부여하는 이유는 주주가 잔여청구권자(residual claimant)로서 회사의 의사결정에 가장 큰 이해관계를 갖는 자이기 때문이다. 회사재정이 악화되어 있는 경우에 가장 이해관계가 큰 자는 오히려 채권자들이다. 사실관계상 회사의 재무상태가 분명하지는 않지만, 일정한 위기상황에 회사의 임원변경 등 주요의사 결정에 채권자의 의사를 반영시키는 것이 불합리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원고가 새로운 위임장을 별도로 교부한 점 등을 보면 위 해임이 꼭 위임의 본지에 반하는 것인지조차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판례의 입장은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생각해 볼 부분은 이 사건 A은행이 대출금 담보의 방법으로 활용한 ‘주식근질권+의결권 포괄위임’과 다른 방식과의 비교이다. 대주주 보유주식을 담보로 한 대출은 만약 회사가 도산에 이른다면 대출금 회수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이러한 주식담보 관행의 합리성은 별론으로 하고, 여기에서는 주식담보의 다양한 방식을 서로 비교해 본다. 만약 대출금의 담보로서 주식을 ‘양도담보’ 받아서 명의개서를 마쳤으면 어떠한가? 주식 양도담보에 관한 신탁적 양도법리에 따른다면, 회사에 대하여는 A은행이 곧 주주이므로 내부적 소유자에 불과한 대주주는 주주총회의 효력을 다툴 수 없다. 다만 A은행이 대외적으로 주식소유권을 이전받는 것까지는 원치 않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이 사건 판결로 인해 ‘주식근질권+의결권 포괄위임’에 따라 임원을 교체하는 방식도 유효하다는 판단을 받은 것이므로, 굳이 양도담보까지 이르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강력한 담보수단을 인정받게 된 것이라고 하겠다. 다음으로 ‘주식근질권+의결권 구속계약’과의 비교이다. 원래 의결권 구속계약은 단지 당사자에게 채권적 효력을 발생시키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회사법적 구속력 측면에서는 당사자가 언제나 철회할 수 있는 의결권 포괄위임에 유사한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사안처럼 일정한 경우 본인 주주를 임원으로부터 해임하는 주주총회 결의를 할 수 있다면, (이러한 결의가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의결권 구속계약보다는 의결권 포괄위임이 효과적인 추가 약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사안에서 원고가 이 사건 위임장을 작성, 교부하는 대신 오히려 기존 근질권 설정계약상의 포괄위임을 철회하여 버렸다면, 사안에서와 같은 주주총회 결의 및 임원 변경이 불가능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한계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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