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07. 12. 13. 선고 2007도7257

Ⅰ. 사실관계
검찰은, 피고인들에 대해 각 국가보안법위반으로 기소하면서 피고인들로부터 압수한 전자적 매체로부터, 피고인들이 ‘일심회’라는 이적단체를 구성하고, 북경 등 제3국에서 북한공작원을 접선하여 지령을 수수하고, 국가기밀을 탐지하여 북한에 전달한 사실 등을 확인하고 이를 출력하여 증거로 제출하였다.

변호인들은, 위 저장매체의 출력물에 대해 진정성을 입증하지 못하였고, 검증에 참여한 포렌식 조사관의 증언은 신뢰성이 부족하므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1심법원(서울중앙지법 2007. 4. 16. 선고 2006고합1365 등)은 “① 이 법원의 검증조서, 포렌식 조사관의 증언 및 기타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제반 사정을 종합하면, …이미지 파일은 전 세계적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 EnCase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작성되었는데, 디지털 저장매체 원본의 해쉬값과 이미징 작업을 통해 생성된 이미지 파일의 해쉬값은 동일한 점이 인정된다”고 하면서 이 주장을 배척하였다.

나아가 피고인측은, 항소심에서 “최초 이미징 작업 시 해쉬값을 작성하지 않았고, 포렌식 복구 수사과정에서 디지털 원본 매체의 변경 가능성이 존재하므로 증거능력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항소심(서울고법 2007. 8. 16. 선고 2007노929 판결) 또한 “② 위 디지털 저장매체를 압수, 봉인, 봉인 해제 및 복제를 할 때 항상 해당 피고인 측에서 입회하여 그 과정을 확인한 이상, 위 디지털 저장매체를 복제할 때 해쉬값을 작성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위 디지털 저장매체에 담긴 파일의 내용이 수사과정에서 변경되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하면서 1심의 판단을 수긍하자 본건 상고에 이르렀다.

검찰 또한 형사소송법 제313조에 의해 증거능력이 부정된 디지털 증거에 대해서는 동법 제314조와 제315조에 의해 증거능력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함께 상고하였다.

Ⅱ. 대상판결의 요지
출력된 문건은 압수된 디지털 저장매체 원본에 저장되었던 내용과 동일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어 증거로 사용할 수 있고, 같은 취지의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

③ 압수된 디지털 저장매체로부터 출력된 문건이 진술증거로 사용되는 경우에는 그 기재 내용의 진실성에 관하여 전문법칙이 적용되고,

④ 형사소송법 제313조 제1항에 의하여 그 작성자 또는 진술자의 진술에 의하여 그 성립의 진정함이 증명된 때에 한하여 이를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

⑤ 이 사건 디지털 저장매체로부터 출력된 문건의 경우 형사소송법 제314조, 제315조에 의하여 증거능력이 부여되어야 한다는 검사의 상고이유 주장은, 위에서 본 법리에 배치되거나 형사소송법 제314조, 제315조의 요건을 오해한 주장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Ⅲ. 대상 판결의 평석
1. 문제제기

컴퓨터 등 특수기록매체로부터 출력한 문건에 대해 증거능력을 직접 다룬 판례는 많지 않다. 그나마 공안사건으로 가칭 ‘영남위원회’ 사건(대판 1999. 9. 3. 선고 99도2317), ‘왕재산’ 사건(대판 2013. 7. 26. 선고 2013도2511)과 본 대상판결이 그 중심을 이루고 있다.

컴퓨터 관련 증거의 증거능력을 논함에 있어서는 1) 증거능력을 인정하는 전제조건으로서 진정성은 확보되었는가, 2) 그것이 진술증거라면 전문법칙을 적용할 것인가, 3) 전문법칙이 적용된다면 어떤 예외조항을 근거로 증거능력을 부여할 것인가에 대해서 검토되어야 한다.

2. 본 대상 문건은 진정성이 인정되는가?
⑴ 대상 판결의 취지
조서이든 증거물이든 모든 증거는 기본적으로 진정성이 확보되어야 한다(형사소송법 제318조 제1항). 디지털 증거는 변조가 용이하고, 일단 변조하면 원본과 사본의 구분이 어려운 특징이 있어서 특히 문제된다. 따라서 특수기록매체로부터 출력한 문건의 증거능력에 관해서는 증거제출자가 원본매체와의 동일성, 이동과정에서의 무결성을 입증하여야 한다. 본 판결은 이러한 진정성을 입증하는 방법으로서 해쉬값을 통하거나 조사관의 증언, 법원의 감정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입증할 수 있음을 선언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⑵ 진정성의 입증방법
진술의 임의성에 관한 사실인정과 같이 소송법적 사실에 관한 것은 법관의 자유로운 증명으로 족하다. 따라서 1) 당해 하드디스켓이 피고인으로부터 압수된 것인지 여부, 2) 모든 하드디스크들의 해쉬(Hash) 값을 검증할 것인지, 비교적 용량이 작은 USB 메모리나 몇 개의 하드디스크를 샘플링하고 나머지는 조사관이나 입회인의 증언에 의할 것인지, 3) 원본을 가지고 쓰기방지장치를 하여 검증할 것인지, 이미징을 작성하여 사본으로 검증할 것인지 여부 등은 법관이 자유로운 방식에 의해 판단할 수 있는 사항이다.

나아가 진정성을 입증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1) 원본과 이미징한 사본 간의 해쉬값이 동일하다는 취지의 피처분자의 확인서면으로 증명하는 방식도 있겠지만, 2) 수사관이나 전문가, 입회인 등의 증언에 의해 양자 간의 해쉬값이 동일하다거나 정보저장매체 원본이 최초 압수 시부터 밀봉되어 증거 제출 시까지 전혀 변경되지 않았다는 등의 과정을 증명하는 방법, 3) 법원이 검증과정을 통해 그 원본에 저장된 자료와 증거로 제출된 출력 문건을 대조하거나, 4) 검찰의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 또는 한국포렌식학회 등 신뢰할 수 있는 기관으로부터 인증등본을 제출받아 서류열람의 방식으로 인정하는 등 다양한 방법이 가능하다.

⑶ 대상판결의 평가
본 대상판결은 진정성의 입증에 대해 반드시 압수·수색 전 과정을 촬영한 영상녹화물에 의하여야 하거나 모든 절차에서 해쉬값을 생성하여 대조하여야 한다는 변호인 측의 주장을 부정하고 있다. 즉, 이러한 객관적인 방법이 아니더라도 포렌식 조사관이나 입회인의 증언 및 기타 변론의 전취지 등을 종합하여 자유로운 방법으로 인정할 수 있음을 선언하면서 1심과 2심의 ①, ②와 같은 판단을 수긍한 것은 정당하다.

3. 출력문건도 전문법칙이 적용되는가?
현형 형사소송법 제310조의 2는, “제311조 내지 제316조에 규정한 것 이외에는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에서의 진술에 대신하여 진술을 기재한 ‘서류’나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 외에서의 타인의 진술을 내용으로 하는 ‘진술’은 이를 증거로 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그렇다면 디지털 증거도 여기에서 말하는 ‘서류’나 ‘진술’에 포함될 수 있는가 문제된다.

이에 대해서는 학설상 전문법칙을 적용할 수 없다는 부적용설과 서류에 준해서 전문법칙을 적용하여야 한다는 적용설이 대립하고 있다.

생각건대, 전문법칙은 법정외 ‘진술’ 그 자체를 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이지 그 진술을 법정에 전달하는 ‘매체’의 형식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제310조의2 문구를 엄격히 해석하여 ‘서류’에 기록한 것은 전문법칙이 적용되지만 ‘특수매체’에 기록한 것은 전문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는 해석은 합리적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컴퓨터 파일의 경우에도 ‘서류’에 준하여 증거능력을 판단하는 전문법칙 적용설이 타당하다. 대법원도 ③과 같은 이유로 영남위원회 사건 판결 이후 일찍부터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4. 전문법칙 예외조항 적용근거
⑴ 사적인 상황에서 작성된 문서의 증거능력
그렇다면 이러한 문서에 대해 어떤 조항을 근거로 증거능력을 인정할 것인가?

먼저, 1) 특수기록매체들은 제311조나 제312조에 말하는 조서가 아니므로 제313조를 적용해야 한다는 제313조설도 있으나, 2) 우리 현행법은 이미 작성자를 기준으로 하여 제311조부터 제313조로 나누어 적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작성자를 기준으로 하는 작성자 기준설이 제시되고 있다.

개정 현행법이 법정 외 진술이 행해진 상황 즉, 사적인 상황에서인가, 검찰·경찰 등 수사과정에서 작성된 것인가 라는 진술이 이루어진 상황에 중점을 두고 있고 기록의 형식이 조서인지 진술서인지를 문제 삼고 있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후자인 작성자 기준설이 타당하다.

이러한 견지에서 사적인 상황 하에서 작성되어 컴퓨터 내 파일형태로 보관된 증거에 대해서는 대상판결이 ④와 같이 형사소송법 제313조를 적용한 것은 타당하다.

⑵ 성립의 진정을 작성자 본인의 구두진술에만 의존할 것인가?
한편 형사소송법 제313조는 진술서의 경우 작성자의 법정진술에 의해서만 성립의 진정을 인정하고 있고, 다른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은 모두 부정하고 있다.

본 건 파일과 같이 사적인 상황 하에서 통상적인 업무의 일환으로 작성된 것이라면 형사소송법 제315조 제2호의 ‘업무상 필요로 작성한 통상서류’이거나, 제3호의 ‘기타 특히 신용할만한 정황에 의하여 작성된 문서’ 개념에 포섭하여 당연히 증거능력이 인정되는 것으로 볼 여지가 충분히 있다.
그럼에도 동 규정을 ④와 같이 엄격히 해석하는 판례의 태도는 합리적인 해석방법이라고 할 수 없다.

미국 연방 형사증거규칙 제803조⑹은 업무기록에 관하여 ‘정기적으로 행해진 업무활동의 과정에서 저장되었고 메모·보고·기록 또는 데이터 자료모음을 만드는 것이 그 업무활동의 정기적인 관례였다면 메모·보고·기록 또는 데이터 편집물에 대하여 그 형식을 불문하고 그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자가 그 당시 또는 그에 근접한 시점에서 작성하고 또는 그 사람의 전달에 근거하여 작성된 것이며 … 기타 자격을 허용하는 법률에 따른 증인의 증언에 의해 입증된 모든 것은 전문법칙의 예외로서 증거로 허용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업무기록의 정의규정에 의한다면, 본 사건의 문서들을 업무상 작성된 기록이라고 하여 당연히 증거능력이 인정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⑶ 본 판결의 평가
본 판결은 현행 형사소송법 제313조를 엄격히 해석하여 작성자의 구두 진술에 의해서만 진술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해 오던 종래의 입장을 재확인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본 사건 파일에 대해 ⑤와 같이 합리적인 이유를 제시함이 없이 제315조의 적용가능성을 배제하고 있다.

결국 사적인 상황에서의 진술서나 진술서면의 경우에도, 형사소송법 제312조 제2항, 제4항과 같은 예외조항을 신설하여, 포렌식 절차 등 객관적인 방법에 의하여 성립의 진정을 인정할 수 있도록 하거나 전문가자격증을 소지한 포렌식 조사관의 증언에 의해서도 이를 인정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의 개정을 기대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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