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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 통신]응답하라 DDA
이승우 주제네바 대표부 공사참사관  |  aerock0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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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호] 승인 2014.03.09  11:5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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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발리 WTO 각료회의에서 WTO가 모처럼만에 활짝 웃었다. 폐회식까지 미루고 진행된 밤샘 협상 끝에 12월 7일 오전 WTO 아제베도 사무총장은 발리 패키지 타결을 공식 선언했다. DDA의 한축인 무역원활화협정을 포함한 발리 패키지가 극적 타결을 본 것이다. DDA 협상 출범 13년여 만에 처음으로 맛본 값진 성과다. 참석 회원국 모두가 얼싸안고 타결의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아제베도의 눈물은 그간의 협상과정이 얼마나 길고 험난했는지를 어렴풋이 짐작케 한다. 인도가 최종 합의를 목전에 두고 돌연 식량안보 목적의 공공비축 합의안을 거부했는가 하면, 쿠바, 베네수엘라 등 개도국들은 발리 패키지의 균형을 주장하고 나섰다. 협상은 기 합의된 발리 패키지까지도 위태롭게 하며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극한 상황으로 치달았다. 제네바 주도의 협상이 결렬된 상태로 발리에 입성한 각국 대표단은 누구도 섣불리 발리 패키지 타결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없었다.

사실 2001년 DDA 협상 개시 이후 거듭된 실패로 WTO의 위상과 신뢰는 이미 떨어질대로 떨어져 있었다. WTO가 출범한 1995년 이래 거의 20년이란 세월이 다 지나도록 단 한건의 무역규범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점은 분명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급기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2010년 유럽발 경제위기까지 겹치며 세계경제는 보호무역주의로 치달았고 다자통상체제를 규율할 수 있는 다자간 무역규범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비관론까지 확산되었다. 거대 경제권들은 DDA에 대한 기대를 접고 TPP(환태평양 동반자협정)나 TTIP(미국-EU 무역투자협정) 등 독자적인 지역무역자유화협정 쪽으로 등을 돌렸다. 결국, DDA는 날지 못하는 전설의 새 도도(DoDo)에 비유되며 세간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이렇듯 WTO는 이미 다자간 무역포럼으로서 협상 기능을 상실한 채 분쟁해결소로 전락했다는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던 터라 발리의 실패는 어쩌면 그다지 놀랄만한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궁하면 통한다고 완전히 죽으라는 법은 없는 모양이다. DDA 협상 실패가 몰고 올 충격과 이번이 WTO 신뢰 회복의 마지막 기회라는 위기의식이 회원국들을 움직였다. 밤을 꼬박 새고 발리 동녘에 해가 뜰 무렵 회원국들은 마법에 걸린 듯 한발씩 양보하며 신축성을 발휘했다. 식량안보 목적의 공공비축에서 미국과 인도가 극적 합의를 이끌어 냈고 농업과 무역원활화협정, 최빈 개도국 이슈 등 발리 성과물에서 선진국-개도국간 이익 불균형을 문제 삼았던 일부 개도국들이 주장을 굽혔다. 십수년간 실타래처럼 꼬여있던 DDA의 한쪽 매듭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발리의 성공은 타결이란 단어에 목말라 하던 WTO에 그 자체로서 큰 의미를 갖는다. 실패에 익숙해진 나머지 협상의 방법조차 잃어버렸던 WTO가 스스로의 권능을 되찾는 실험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동안 치른 값비싼 수업료를 생각하면 초라한 성적이다. 하지만 적어도 WTO 160개 회원국이 마음만 먹으면 하나의 목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했기에 우리는 일단 박수를 보낸다. 협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WTO는 발리의 성공을 발판으로 WTO 본연의 기능인 다자간 자유무역체제 구축을 위한 협상에 본격적으로 나서야 한다. 한 치의 양보도 기대할 수 없는 농산물, 비농산물(NAMA) 시장접근, 서비스 협상 등 DDA 핵심 분야가 WTO의 역할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제베도의 말처럼 “발리는 협상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2014년은 발리의 성공을 새로운 협상 모멘텀으로 삼아 남은 DDA 이슈 타결을 위한 밑그림을 그려야 할 때다. 한가로이 발리의 성공에 심취해 허비할 시간이 없다. WTO는 각료회의로부터 Post-Bali Work Program 마련에 1년의 시한을 부여받았다. 올 한해 WTO는 다자통상체제 수호자로서 남은 DDA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다시 한번 검증받게 될 것이다. 벌써부터 WTO 회의장에는 향후 DDA 협상 방향에 관해 백가쟁명(百家爭鳴)식의 기(氣) 싸움이 전개되고 있다. 일괄타결원칙(Single undertaking)을 고수할 것인지, 발리처럼 합의 가능한 패키지를 꾸려 협상에 임할 것인지, 아니면 또 다시 DDA의 종언 쪽으로 고개를 돌릴 것인지는 전적으로 WTO 회원국의 손에 달렸다. 어떤 결론에 도달하든 이제 WTO 160개 회원국은 발리의 교훈과 합의의 정신을 기초로 13년간 풀지 못한 숙제, DDA에 진정으로 응답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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