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해로 인한 장해 후 사망에 이른 경우에 대한 규범적 평가
(대상판결 : 대법원 2013. 5. 23. 선고 2011다45736 판결)

I. 개요
대상판결은 이론적으로는 물론 실무상으로도 매우 흥미로운 사안을 다루고 있다. 보험에 가입한 사람이 재해로 인하여 식물인간이 되어 투병하다가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을 하였는데, 장해보험금과 사망보험금의 경합관계가 문제된 사안이다. 즉, 이 사안에서 장해보험금(본건 보험상품의 경우,‘재해장해연금’)과 사망보험금(본건 보험상품의 경우,‘재해사망보험금’) 중 어느 것을 수령할 수 있는지, 만일 재해사망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다면, 그 경우 기지급 재해장해연금을 공제할 것인지 또는 공제 없이 양자를 모두 수령할 수 있는지 등에 관한 것이다.

II. 사안의 개요 및 판결 요지
1. 사안의 개요

소외 망 A는 피고와‘재해안심보험계약’을 체결하였다. 이 보험계약의 약관상으로는 보험기간중 재해로 인하여 소정의 장해상태가 된 경우에는 재해장해연금을, 소정의 재해로 인하여 사망한 경우는 재해사망보험금을 각 지급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소외 망 A는 보험기간중인 2008. 9. 15. 작업을 하던 중 의자에 앉아서 휴식을 취한 후 일어서다가 갑자기 넘어지면서 두부외상을 입는 사고를 당하여 외상성 경막 밑 출혈을 진단받았고, 사지마비 증세로 입원치료를 받다가 2009. 4. 22. 장해1급 진단을 받았다. 그 후 소외 망인은 사지마비로 거동과 운동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여러 병원을 전원하다가 2010. 1. 18. 폐렴으로 사망하였다.
망인은 사망하기 전 피고로부터 합계 4194만5730원의 재해장해연금을 지급받았는데, 사망 후 소외망인의 상속인들인 원고들은 약관에 따른 재해사망보험금 5000만원의 지급을 청구하였다. 피고가 이를 거절하자 원고들이 보험금의 지급을 청구한 사안이다.

이 사건에서 피고의 항변으로는 재해의 외래성 부인, 소외 망인의 당뇨병 등 기왕증을 이유로 한 외상성 경막 밑 출혈과 사망간의 인과관계의 단절 등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장해보험금과 사망보험금간의 경합관계에 관한 피고의 항변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이에 관한 피고의 항변은, 설사 피고에게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인정된다 하더라도 기지급 재해장해연금는 대등액에서 상계하고 남은 금원의 범위 내에서만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2. 판결 요지
(1) 원심(서울중앙지방법원 2011. 5. 13. 선고 2010나54305 판결)
원심에서는 재해사망보험금 지급의무를 인정하였다. 소외 망인이 이 사건 사고로 인하여 입은 사지마비의 후유증에 의하여 폐렴에 걸리고 그로 인하여 사망하였다고 봄이 상당하고, 망인의 사망과 이 사건 사고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있으며, 나아가 외상성 경막 밑 출혈이 경미한 요인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하여, 사고와 사망간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한 것이다.

다만, 기지급한 재해장해연금의 상계를 인정하였다. 망인의 장해는 그 증상이 고정되어 신체에 남아 있는 영구적인 정신 또는 육체의 훼손상태라 보기 어렵고, 사망으로의 진행단계에서 거치게 되는 일시적 장해상태라 보았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사망으로의 진행단계에서 거치게 되는 일시적 장해상태는 위와 같은 보험약관상의‘장해’에는 해당하지 않으므로(대법원 2007. 7. 26. 선고 2007다17086 판결 등 참조), 피고가 망인에게 기지급한 재해장해연금은 법률상 원인이 없는 것으로 부당이득이 된다고 보아, 그 상계항변을 받아들인 것이다.

결국 재해사망보험금과 기지급 재해장해연금간의 차액에 해당하는 부분 원고들의 청구만울 인용하고 나머지 청구는 기각한다는 취지로 판시하였다. 이에 원고들만이 상고하였다.

(2) 대법원 2013. 5. 23. 선고 2011다45736 판결
대법원에서는 이 사건에 관하여 피고에게 재해상해연금의 지급의무만을 인정하고, 재해사망보험금의 지급의무를 부정하는 취지로 판시하였다.

우선 대법원은“하나의 보험계약에서 장해보험금과 사망보험금을 함께 규정하고 있는 경우, 사망보험금은 사망을 지급사유로 하는 반면 장해보험금은 생존을 전제로 한 장해를 지급사유로 하는 것이므로, 동일한 재해로 인한 보험금은 당해 보험계약에서 중복지급을 인정하는 별도의 규정을 두고 있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중 하나만을 지급받을 수 있을 뿐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다음으로 양자 중 어느 것을 지급받을 수 있는지에 관한 판단기준으로 ‘재해로 인한 장해상태가 회복 또는 호전을 기대하기 어렵거나 또는 호전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지만 기간이 매우 불확정적인 상태에 있어 증상이 고정된 경우’에는 장해보험금의 지급을 청구할 수 있고, 반면 그 증상이 고정되지 아니하여 ‘사망으로의 진행단계에서 거치게 되는 일시적 장해상태에서 치료를 받던 중 재해와 인과관계가 있는 원인으로 사망한 경우’에는 그 사이에 장해진단을 받았더라도 장해보험금이 아닌 사망보험금을 지급받을 수 있을 뿐이라고 설시하였다.

이때 재해 이후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상태가 증상이 고정된 장해상태인지 사망으로의 진행단계에서 거치게 되는 일시적 상태인지의 판단기준으로는 ①장해진단으로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기간, ②재해로 인한 상해의 종류와 정도, ③장해부위와 장해율, ④직접사인과 장해의 연관성 등 관련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설시하였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 관하여 망인의 장해상태가 사망으로의 진행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시적인 증상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장해상태로 고정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재해장해연금을 지급받은 것은 정당하고, 그 후 이 사건 사고로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고 하여 추가로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받을 권리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판시한 것이다. 따라서 원심이 사망보험금에서 기지급 재해장해연금을 공제한 차액의 추가 지급을 명한 부분은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지만, 원고들만이 상고하였으므로 불이익변경금지의 원칙상 원심판결을 파기할 수는 없고, 결국 원고들의 상고를 기각하는 데 그친 것이다.

III. 평석
대상판결은 장해보험금과 생명보험금간의 경합관계에 관한 판례로서 여러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대상판결은 하나의 보험계약에서 장해보험금과 사망보험금을 함께 규정하고 있는 경우, 동일한 재해로 인한 보험금의 지급 방법에 관하여, 약관에 달리 정함이 없는 한 이 중 하나만을 지급받을 수 있음을 원칙으로 하였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다음으로 대상판결은 장해보험금과 사망보험금 중 어느 것을 지급받을 수 있는지에 관하여, 고정된 장해상태와 사망으로의 진행단계에서 거치게 되는 일시적 상태로 나누어 기준을 제시하는 한편, 그 구체적인 기준까지 제시하였다는 데에도 의미가 있다. 나아가 이와 같은 기준을 대상사안에 직접 적용하여, 원심의 법리오해를 지적하기도 하였다.

이에 대한 평석에 갈음하여 필자가 언급하고자 하는 점은 다음과 같다.
우선, 첫 번째 쟁점에 관하여, 대상판결에서 대법원이 동일한 재해로 인한 보험금의 지급 방법에 관하여, 약관에 달리 정함이 없는 한 이 중 하나만을 지급받을 수 있음을 원칙으로 하여야 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이와 반대로 약관에 달리 정함이 없는 한 장해보험금과 사망보험금을 모두 지급받되, 사안에 따라 일부를 공제하는 방법을 원칙으로 하는 것은 왜 부당한지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된다. 장해보험금과 사망보험금이 그 성격과 내용상 양립할 수 없어 이 중 하나만을 지급받는 것이 당연한 경우도 있을 것이지만, 현대사회에서 보험상품의 종류가 다양해짐에 따라 장해가 발생하면 장해보험금을 지급하고 그 후 사망하면 상해보험금을 다시 지급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굳이 어느 하나를 원칙으로 선언하지 않고 개별 보험상품의 약관 및 그 해석에 맡겨두는 방법도 있는데, 대상판결에서 원칙(default rule)을 선언할 때에는 좀 더 구체적 논거가 제시되었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다.

대상판결에서‘사망보험금은 사망을 지급사유로 하는 반면 장해보험금은 생존을 전제로 한 장해를 지급사유로 하는 것이므로’라고 설시하고 있지만, 논거로는 불충분하다고 생각된다. 더구나 이 원칙은 보험회사에게는 유리하고 보험소비자에게는 불리한 내용인데, 그렇다면 약관해석의 일반원칙에 따라 작성자인 보험회사에게 불리하게 중복지급을 원칙으로 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하는 의문도 제기할 수 있다.

둘째 쟁점에 관하여, 대상판결과 같이 두 가지만으로 유형화한 것이 충분한가 하는 점이다. 예컨대, 장해상태가 일시적이라고 평가하기 어려울 정도이지만, 회복은 기대하기 어렵고 결과적으로 사망에 이를 가능성이 큰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는 특히 장기간 장해로 고생으로 하다가 결국 사망한 경우, 또는 회복불가능한 채 연명을 위한 치료만이 장기간 계속되고 있는 이른바 코마 상태에 빠진 경우 등에 문제될 수 있다. 대상판결은 하나의 원인에서 장해 또는 사망 중 하나의 결과만 발생한다는 도그마에 서 있는 것은 아닐까?

장해보험금과 사망보험금의 경합문제는 결국 개별적 약관해석이 우선되어야 하며, 이 점은 대상판결도 부정하지 않다. 따라서 대상판결의 논지는 그 사안에 한정하여 타당성을 가지며, 이를 함부로 일반화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대상 사안과 다른 법 영역에는 대상판결의 법리가 함부로 적용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해 두고자 한다. 예컨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문제나 연금 및 근로ㆍ복지관계 법, 나아가 형사법 등 영역에서도‘장해상태에 있다가 장해를 일으킨 그 원인으로 인하여 결과적으로 사망한 경우’에 대한 규범적 평가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경우에는 대상판결의 법리가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는 것이며, 각각의 규범목적을 고려하여 합리적인 법리가 개별적으로 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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