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지방변호사회 제32대 회장 유길종 변호사

지난해 김영 제31대 전북지방변호사회 회장이 전북 정무부시장으로 임명돼 갑작스레 중도사퇴를 하는 바람에 그 후임으로 유길종 변호사가 신임회장으로 선출됐다. 대한변협의 경우 협회장이 보선되면 새로운 회차의 협회장이 아니라 보선회장이 된다. 예컨대, 1971년 20대 배정현 협회장이 사퇴하면서 새로운 회장으로 양윤식 협회장이 선임됐는데 양 협회장은 21대 협회장이 아니라 20대 보선 협회장으로 기록돼 있다. 전북회의 경우는 어떻게 되는지 즉, 31대 회장님이 되는 것인지 아니면 32대 회장이 되는 것인지 물었더니 웃으면서 자신은 32대 회장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답해 주었다. 유길종 신임 회장 취임을 기념해 제69회 여수 변호사연수회에서 앞으로의 포부에 대해 물었다.

유 회장은 취임인터뷰를 하지 않아도 되는데 찾아주어 고맙다는 덕담으로 말문을 열었다. 유 회장과는 지난번 대한변협이 최초로 여의도 63빌딩에서 개최한 신년하례식에서 처음 인사를 나눴는데 미남형의 선한 웃음으로 질문자를 무장해제 시키는 부드러운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미 지방회장들에 대한 인터뷰를 마친 상태고, 이 인터뷰는 어쩌면 덤으로 이루어진 것이라서 의뢰적인 질문이 아닌, 조금은 공격적인 파워인터뷰를 해보려고 마음을 먹고 내려온 길이었다. 사실은 전주를 방문하여 인터뷰를 하여야 하지만 인터뷰 즈음에 여수에서 제69회 변호사연수회가 개최되어 그 자리에서 인터뷰를 하였다. 여수엠블호텔 VIP라운지 뒷창으로 남해바다와 오동도가 눈부셨고, 서로 일정이 바빠 민사판례 수업을 일부 빼먹고 이루어진 인터뷰는 한편에서는 인터뷰가 아니라 법조선후배간에(물론 내가 후배다) 즐거운 대화시간이기도 하였다.

파워인터뷰라고 이름 붙었으니 첫 질문부터 부담스러운 질문을 날렸다. 전북회 회원들이 2년간 회장으로 선임했는데 장관이나 도지사도 아니고, 정무부지사를 하겠다고 회장직을 사퇴한 것이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후임회장으로서 그런 전임회장의 결단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다른 전북회원들의 반응은 어떠한 지에 대해 도저히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분의 마음을 존중하고, 이해합니다. 정무부지사 제안이 왔을 때 나름대로 고민하였겠지요. 회장의 임기를 마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지방정부에 들어가 정무부지사로서 새로운 일을 해보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다가 나름의 최선의 선택을 하셨을 것이라 믿기에 그 결정을 존중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제 개인적인 견해이고, 회원 중에는 심히 불쾌하게 생각하시는 분이 적지 않습니다. 아마 정무부지사보다 훨씬 권위 있는 자리, 존중받아야할 자리인 전북회 회장 자리를 정무부지사를 하기 위해 그만둔 것이 화가 나고, 자존심도 상한 것 같습니다.”

유 회장은 전 회장 집행부에서 부회장으로 작년 9월부터 직무대행을 해오다가 이번 보선에서 신임투표를 통하여(유효투표수 128표 가운데 117표를 받았다) 전임 회장의 나머지 임기인 내년 2월까지 전북회의 제32대 회장을 맡기로 했다. 사실 1년은 업무를 파악하고 회장으로 활동을 하기에는 너무 짧은 기간이다. 물론 전임 집행부의 부회장이었고, 지난해부터 직무대행을 해왔지만 말이다. 그래서 다시 직설적으로 물었다. 전임 회장의 나머지 기간만 회장을 할 것인가, 아니면 내년 다시 회장선거에 나갈 것인가? 나는 당연히 33대 회장에 도전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유 회장의 대답은 간결했다.

“남은 임기만 마치고 그만할 생각입니다. 저도 원로 선배들에 비하면 젊은 편이지만 젊은 변호사들 중에 회장직에 도전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 이번 임기만 마치고 본업으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지금까지는 전북회에서 경선이 드물었고(아마 3번정도의 경선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주로 한분이 추대되는 형식이었는데 앞으로는 회장 경선이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유 회장이 임시총회에서 단독 입후보하여 추대된 것이 아니라 신임투표를 실시한 것이 특이하고, 약간은 의외였다. 그래서 신임투표제가 뭐냐고 물었더니 28대 심병현 회장(2009~2010) 때부터 단일 입후보자의 경우에도 신임투표를 하기로 규정을 변경했기 때문에 전북회에서는 회장 단독입후보의 경우에도 신임투표를 실시한다고 했다.

얼핏 보면 아무 의미 없는 제도 같지만, 신임투표 때문에 회원들에게 인사를 다니고 하면서 회원들의 생각과 사정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참 좋은 제도라는 것을 실감했다는 것이 유 회장의 설명이었다.

유 회장은 경력이 다채롭다. 27회 사법시법시험에 합격(연수원 17기)하여, 판사, 검사, 변호사, 로스쿨 교수를 모두 해보았다. 물론 가장 오랜 기간을 한 것은 판사생활이다. 판사를 하다가 로스쿨 교수를 하기 위해 사임했고, 전북대 로스쿨 교수를 하다가 그만두고 다시 변호사로 복귀하였다가 이번에 전북회 회장까지 된 것이다. 이제 자주 쓰지 않는 용어가 되어 버렸지만 법조3륜에 법대교수까지 하였으니 법조4륜을 모두 섭렵한 것이다. 평생 변호사만 하고 있는 나로서는, 다양한 경험을 선망하는 나로서는 부러운 인생이다. 그래서 어느 직업이 가장 자신과 맞는지, 로스쿨 교수가 되기 위해 법원을 나온 것인데 왜 중도하차를 하였는지 물었다. 얼마 전 신평교수가 대한변협신문에 기고한 글처럼 로스쿨에 실무교수와 이론교수의 갈등이 실재하는 것인지도 궁금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판사, 검사, 변호사, 교수를 다 해봤다는 것은 제대로 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도 됩니다. 그래서 그런 공보이사님의 칭찬은 제 자신에게 반성하라는 의미로 들립니다. (웃음). 변호사니까 변호사회 회장이 제일 좋은 직업이라고 해야겠지만(그래서 다른 직업을 대는 것이 조금은 조심스럽지만) 저랑 제일 맞는 직업은 판사였던 것 같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로스쿨로 갔는데 오래 하지 못해서 저도 사실 좀 아쉽습니다. 로스쿨에 원래 법과대학 교수였던 이론교수님들과 저처럼 변호사 출신으로 교수가 된 실무교수 사이에 약간의 긴장관계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로스쿨이라는 것 자체가 실무교수가 주류가 되어야 하는데 이론교수 중심으로 대학이 돌아가는 것도 앞으로 시정되어야하는 문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그만둔 것은 순수하게 개인적인 이유입니다. 판사로 있을 때 보다 월급이 거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는데 예상하고 간 것이지만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변호사로 돌아왔습니다. 로스쿨에 적응을 못한 것은 아닙니다.(웃음)”

로스쿨 교수 출신의 회장이니 요즘 로스쿨이냐 예비시험이나 사법시험이냐 하는 논쟁에서 어느 정도 로스쿨을 이해하고, 응원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전북회에서 로스쿨 출신과 연수원 출신 청년변호사들의 갈등이 존재하는지 그 해결책은 무엇인지, 로스쿨 제도에 대한 견해를 물어보았다. 그는 전북회 회장 취임을 기념해 지역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모두가 하나되는 전북회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힌 적이 있는데, 그것이 청년변호사간 갈등이 심화되는 현실에서, 선배로서 회장으로서 어느정도 해결책을 제시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것이라고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그의 분석과 해법은 이랬다. 상당히 공감히 가는 말이었다. 청년변호사들 사이에 갈등이 현존하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사실 기성세대의 변호사들과 비교해 청년변호사들이 먹고살기가 힘들어져서, 그 불만이 우선적으로 새롭게 마련된 변호사진출제도인 로스쿨 출신 변호사에게로 표출된 것일뿐 그들 사이의 갈등이 실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그의 견해였다. 따라서 선배들이 청년변호사들의 어려움에 귀기울여주고, 취업난이나 변호사로서의 정착을 잘 지원해주면서 법조생태계에 잘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면 그것이 바로 갈등해소책이요, 소통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로스쿨의 교육이나 학생들의 자질을 문제 삼곤 하는데 그래도 문과 쪽에서 우수학생들은 로스쿨에 가서 좋은 변호사로 키워지고 있다는 것이 그의 견해였다.

유 회장은 로스쿨, 연수원 가르지 않고 변호사회 차원에서, 법원이나 검찰과 협의해 재판진행이나 변호사 업무에 편의나 이해를 많이 해주는 선배로서의 배려를 늘려갈 생각이라고 했다. 이번에 새로 부임한 박형남 신임법원장을 만나 어려운 변호사 업계 특히 청년변호사들의 어려움을 설명하고 법원과의 소통, 재판절차에 있어서의 배려 등을 부탁하자 흔쾌히 공감했다는 것이다. 그와 대화하면서 그의 업무스타일은 이념형이나 정치형이 아닌 실무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는 것에 관심이 있어보였다.

그의 취임 인터뷰 중에 “법조삼성기념관 건립사업에도 힘을 보태겠다"는 내용이 있어 전북회에 삼성에서 기념관이라도 지어주냐고 우문을 하였더니, 현답을 해주신다. 전북 법조계의 삼성은 삼성전자가 아니라 전북이 배출한 세분의 훌륭한 법조인 즉, 초대 대법원장을 역임한 김병로 선생(순창)과 서울 고검검사장을 역임하고 청렴하고 강직한 검사로 유명한 최대교 선생(익산), 사도법관으로 불리는 대법관 출신 김홍섭 선생(김제)을 말한단다. 원래는 전라북도에서 세분을 기념하는 법조삼성기념관 건립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변호사회에서는 당연히 앞장서서 이 사업에 힘을 보탤 수밖에 없는데 엄격하게 보면 세분은 같은 반열이라기보다는 김병로 선생과 나머지 두분으로 차별화 할 수도 있어 우선 가인기념관 건립사업에 집중하기로 수정이 되는 분위기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전북회 회장 임기를 마친 후 그 다음의 꿈은 무엇인지가 궁금했다. 정치에도 관심이 없고, 재선도 도전하지 않을 것이라면 다양한 법조계의 직업을 섭렵해온 그가 마지막 꾸는 꿈이 무엇인지 말이다. 그의 대답은 담백했다. “지금 로스쿨 1기, 2기 변호사 4명과 함께 법무법인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회장임기를 마치면 대형 로펌을 키울 것은 아니지만 나름 의미있는 전북지역의 모범적인 좋은 로펌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변호사가 변호사생활을 열심히 잘하는 것이 제일 보기 좋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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