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적 은행보증은 주채무 관계에서 부종성 지니는 통상의 보증 아니어서 채무불이행책임
부담 여부를 불문하고 수익자의 청구만으로 보증서에 기재된 금액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

1. 들어가며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들은 중소기업들에게 대출을 취급하면서 신용보증기금, 기술신용보증기금 등 보증기관으로부터 보증서를 담보로 취득하곤 한다. 경우에 따라서 은행 등도 차주의 대주에 대한 대출금 채무를 지급보증하기도 하는데, 특이하게도 보증의 대상이 되는 주채무가 보증의뢰인의 제3자에 대한 제작 채무 등이 되는 경우도 있는데 흔히 독립적 보증의 경우가 그러하다.
이들 독립적 보증은 보통 만기 및 지급보증 청구 가능시기에 제한을 두고 있는데, 문제는 지급보증 청구 가능시기가 불분명하게 기재되는 경우이다. 위 지급보증 청구 가능시기에 관한 접근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2. 분쟁사례의 개요

국내 중소 조선업체는 국내 대기업의 해외 선박 수주에 따른 일부 선박 기자재의 제작을 의뢰받았고, 모 은행은 국내 중소 조선업체의 국내 대기업에 대한 위 기자재 제작 의무의 이행을 보증하는 보증서를 발급하여 주었다. 위 보증서에 기재된 바에 따르면, 보증서는 2012년 8월 10일 이후에는 효력이 없다고 되어 있으며, 보증서 원본이 보증수혜자인 국내 대기업으로부터 보증인인 모 은행에 반환되었는지 여부와 무관하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보증수혜자인 국내 대기업은 위 보증서 상 만기일 이후인 2012년 9월 6일 모 은행에게 위 보증서에 따른 보증채무의 이행을 청구하였고, 2012년 10월 29일 재차 위 보증채무의 이행을 촉구해 왔다. 위 보증수혜자가 보증채무의 이행을 구하면서 내세운 논리는 ‘보증기간만 명시되어 있고 청구기간에 대하여 언급이 없는 경우, 보증기간 내에 보증사고가 발생한 사실만 있다면 보증기간이 지난 후라고 하여도 이행청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3. 보증서 상 만기 및 지급청구 가능시기

⑴ 독립적 보증의 특성
논의의 범위를 한정하기 위하여 위 2.분쟁사례를 위주로 살펴본다면, 위 기자재 제작 의무의 이행을 보증하는 보증서의 법적 성격부터 따져봐야 하는데, 이는 ‘독립적 보증’의 일종이다. 독립적 보증은 보증의뢰인인 주채무자가 채권자와의 계약조건 중 어느 하나라도 이행하지 아니하였다고 보증수혜자가 절대적으로 판단·결정하여 청구를 하면 보증인은 즉시 수익자가 청구하는 보증금을 지급할 것을 약속하는 내용의 특수한 보증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민법의 보증에 관한 법리가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는다.

대법원 역시 보증의뢰인의 보증인을 상대로 한 지급보증금지 가처분 신청이 가능한지가 문제된 사안에서 독립적 보증의 위와 같은 성격을 언급한 바 있다. 즉, “보증의뢰인이 수익자와의 계약조건의 어느 것이라도 불이행하였다고 수익자가 그 절대적 판단에 따라 결정한 때에는 보증인은 수익자의 서면에 의한 청구가 있으면 보증의뢰인의 어떤 반대에도 불구하고 즉시 수익자가 청구하는 보증금을 지급하겠다는 것이라면, … 이는 주채무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 부종성을 지니는 통상의 보증이 아니라, …이른바 독립적 은행보증(first demand bank guarantee)이라고 할 것이고, 따라서 이러한 은행보증의 보증인으로서는 수익자의 청구가 있기만 하면 보증의뢰인이 수익자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 채무불이행책임을 부담하게 되는지의 여부를 불문하고 그 보증서에 기재된 금액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할 것이며, 이 점에서 이 은행보증은 수익자와 보증의뢰인과의 원인관계와는 단절된 추상성 내지 무인성을 가진다”는 것이다(대법원 1994.12. 9. 선고 93다43873 가처분이의 등 다수).

위와 같은 독립적 보증에 있어서의 만기는 i) 보증인에게는 보증수혜자의 보증금 지급청구에 따라 보증채무를 이행하고 이를 위해 준비금(대손충당금)을 적립해야 하는 기간으로서, ii) 보증수혜자에게는 보증서를 이용하여 자신이 입은 손해를 보전받는 기간으로서, iii) 보증의뢰인에게는 보증채무 이행에 따른 구상권 행사에 대비하여야 함과 동시에 보증인에게 보증료를 지급하여야 하는 기간으로서의 각 의미를 가지고 있다.

⑵ 독립적 보증에서 만기 및 지급보증 청구 가능시기
독립적 보증은 주채무 상의 항변, 유효성 등과 절연되어 있기 때문에, 별도의 보증 만기를 반드시 정하고 있는데, 보통은 확정일(예, OOOO년 OO월 OO일) 또는 특정한 사건(수입자가 수출자의 납품을 확인하는 날) 발생일로 정하고 있다. 또한 보증서에 따라서는 위 만기와는 별도로 지급보증 청구 가능시기를 정하는 경우가 있는데, 보통은 만기일에 30일을 더한 날짜로 정하곤 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보증금 지급 사유가 보증 만기 시까지 발생하였으되, 청구에 소요되는 시간을 감안하여 30일 등의 여유를 둔다는 정도의 의미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만일 보증서에 지급보증 청구 가능시기가 기재되어 있지 않다면 우선 보증서 전체의 문구를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할 것인데, 이는 계약의 해석 문제로 풀어야 된다고 본다.

4. 지급보증 청구 가능시기를 둘러싼 보증서의 해석

위 2.분쟁사례에서 해당 보증서의 만기는 2012년 8월 10일까지로 기재되어 있고 지급보증 청구 가능시기가 별도로 명시되어 있지는 않았다. 따라서 이를 계약 해석의 문제로 접근한다면 보증서 문안의 기재 및 상법, 상관습, 민법, 조리 등에 따라 해석하여야 할 것인데, 이때 URDG, ISP98, UCP600 등의 국제규범 또한 상관습의 한 내용으로서 보증서의 지급보증 청구 가능시기를 해석함에 있어서 참고가 될 수 있겠다.

그런데, 위 2.분쟁사례의 보증서 상 보증만기가 기재된 부분에 ‘보증만기 도래시 보증서 원본이 반환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보증서의 효력이 소멸한다’는 문구가 있고, 국제상업회의소의 이행성 보증 관련 규범인 URDG, ISP98(청구보증통일규칙), 신용장 일반에 관한 국제규범인 UCP600에서도 보증 또는 신용장 대금 지급청구가 만기 이내에 이루어져야 함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URDG Article 19 참조1), ISP98 Article 14. a.2), UCP600 Article 6. e.3)). 따라서 필자는 위 2.분쟁사례에서의 지급보증 청구 가능시기는 보증만기와 일치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4).

특히 본 보증서의 보증수혜자인 국내 대기업은 위 2.분쟁사례에서의 보증인인 모 은행으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보증서의 수혜자가 되어 왔고, 해당 보증서 외에서는 지급보증 청구 가능시기가 보증 만기와 일치하는 것으로 명시된 문구가 상당히 기재되어 있었다. 본 보증서의 보증의뢰인인 국내 중소 조선업체 역시 보증만기 이후 보증인에게 보증료를 더 이상 지급하지 않았고, 보증인 역시 만기 이후 대손충당금 적립 기타 대지급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5. 계약의 해석 외의 접근 방법으로서의 시효 등의 문제

위 4. 계약의 해석 방식과는 반대로 이를 보증금 지급 청구권의 소멸시효의 문제로 접근하는 시각도 있다. 위 2.분쟁사례에서 보증수혜자의 입장이 그러했다. 소멸시효는 일정한 기간이 경과한 경우 사실 상태를 존중하여 권리의 소멸을 일으키는 법률요건이다. 채권의 소멸시효는 10년 또는 5년(상사시효)이므로, 보증만기로부터 5년이 도과할 때까지 지급보증의 청구가 가능하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독립적 보증의 유효기간은 3~5년에 불과하고, 보증만기가 되면 보증의뢰인은 더 이상 보증료를 납부하지 않으며, 보증인도 보증만기 후 지급보증 청구를 대비한 충당금 적립을 종결하며, 보증수혜자도 더 이상 문제 삼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데, 보증만기에 더하여 5~10년의 소멸시효 기간까지 더하여 관리해야 한다는 것은 거래관행에 맞지 않는 언급이라 생각된다.

제척기간 역시 법률에서 정한 취소권, 추인권 등의 행사기간을 말하는 것으로 지급보증 청구 가능시기의 문제와 별반 관련성이 없어 보인다.

6. 결론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위 2.분쟁사례의 보증서는 전체적인 계약의 해석상 당사자인 보증인이나 보증수혜자 모두 보증만기가 지급보증 청구 가능시기와 일치하는 것으로 의도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며, 지급보증 청구 가능시기가 별도로 기재되어 있지 않다고 하여 달리 볼 것은 아니다. 또한 이와 같이 해석하는 것이 계약해석의 한 요소인 상관습 또는 조리의 한 요소로서 URDG, ISP98, UCP600 등의 국제규범과도 부합된다 할 것이다.

이처럼 보증서의 지급보증 청구 가능시기는 각 분쟁사례마다 계약 해석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달리 보증만기가 도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보증사고가 보증만기 전에 발생하였다면 소멸시효가 도과하지 않는 한 지급보증 청구가 가능하다는 주장은 독립적 보증의 특성을 별반 고려하지 않은 주장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각주 1) Article 19 A demand shall be made in accordance with the terms of the Guarantee before its expiry, that is, on or before its Expiry Date and before any Expiry Event as defined in Article 22. In particular, all documents specified in the Guarantee for the prupose of the demand, and any statement required by Article 20, shall be presented to the Guarantor before its expiry at its place of issue, otherwise the demand shall be refused by the Guarantor.
각주 2) A presentation shall be made to the Guarantor: ... ii. on or before expiry.
각주 3)Except as provided in sub-article 29 (a), a presentation by or on behalf of the beneficiary must be made on or before the expiry date.
각주 4) 위 2.분쟁사례에서의 보증서 상 보증만기 등 해당 기재 부분 : This Guarantee shall be valid from the date of issuance and become null and void after August 10th, 2012(“Expiry Date”) whether or not the original Guarantee will be returned to us.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