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담 부장판사로서 조정 활성화 선봉장 역할 ‘톡톡’
조기조정제도 정착·법원연계형 외부기관 확대 앞장

 


우리는 매일 직·간접적인 갈등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갈등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갈등을 해결할 수 효과적인 대안 중 하나가 ‘조정’이다.
이를 반영하듯 미국의 경우 민사분쟁의 약 98%가 당사자나 대리인간 협상과 조정으로 해결되고 있으며, 일본의 경우에도 조정회부된 사건의 조정성립률이 60~70%에 이른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전국에 접수된 제1심 본안 사건(약 100만건 내외) 중 조정에 의해 처리되는 사건 수(조정신청과 조정회부된 사건 합계)는 8%를 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최근 몇 년간 서울중앙지방법원을 중심으로 조정 활성화를 위한 노력이 확대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2009년 서울법원조정센터가 설치된 것을 기화로 2010년 조기조정제도를 도입했으며, 2013년에는 조정담당재판부 부장판사직을 겸임직에서 전담직으로 전환시키고 조기조정사건처리에 관한 내규도 제정했다. 그 결과 매년 조기조정제도에 회부되는 사건 수가 대폭 증가해 2013년에는 1만건 이상에 대해 조정을 진행했으며, 그 중 약 30%가 조정에 성공했다.
본지에서는 우리나라 법원 최초로 조정 전담직을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법 이영진 부장판사를 만나 조정의 중요성과 활성화 방안에 대해 들어봤다.


“어느 사회건 갈등은 존재합니다. 이를 어떻게 빨리 해결하느냐가 관건이죠. 싸우고 투쟁하고 소송을 진행한다고 갈등이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독일 격언에 ‘조정은 판결보다 낫다(Schlichten ist besser als Richten)’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소송보다는 조정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할 것입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이영진 부장판사는 조정이야말로 지리한 분쟁갈등에서 벗어나 국민의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이라는 말로 운을 떼었다.
1990년 제32회 사법시험에서 수석합격한 이후 각급 법원에서 민사재판을 담당하면서 남달리 조정사건에 관심이 있었다는 이 부장판사는 일본 연수시절 조정기법 등에 대한 연구를 본격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정이 그다지 활성화되지 않았던 2002년 일본 동경대학으로 법관연수를 가게 됐습니다. 동경지방재판소 연수도 함께 하게 됐는데, 일본에서는 이미 본안 사건의 50% 정도가 조정으로 처리되고 있었습니다. 이는 1980년대 이후 화해적극주의가 확산된 결과라고 합니다. 그래서 연수기간 동안 조정에 관한 연구를 많이 하게 됐습니다.”


이후 한국에 돌아온 그는 사법연수원, 광주지법, 춘천지법, 서울지방변호사회, 로스쿨 등에서 조정 특강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조정제도 활성화에 앞장서게 됐다고.

법원의 조정제도는 법적인 쟁점에 국한하지 않고 분쟁의 원인과 전모를 파악해 관련 분쟁을 일괄·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으며, 심급의 재판비용이나 상소에 따른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본인의 의사가 반영된 결과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자발적인 의무이행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소송에 비해 원·피고 양측 모두에게 만족할만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개인이나 단체간 분쟁이 발생할 경우 화해나 타협이 어렵다. 이는 ‘갈 데까지 가보자’, ‘모 아니면 도’라는 우리나라의 국민정서에서 그 이유를 찾아 볼 수 있다.
이에 이 부장판사는 조정제도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분쟁을 감정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생각보다는 합리적이고 실리적으로 풀어나가겠다는 당사자들의 인식전환과 함께 당사자들이 궁극적으로 만족할 수 있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도록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유도할 수 있는 조정담당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피력했다.
이를 위해 법원도 많은 변화를 하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2009년 서울과 부산에 법원조정센터가 생겨나면서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서울법원조정센터는 조정신청사건을 직접 진행하고, 합의사건 등 난이도가 높은 사건을 배정받아 사건을 처리할 수 있어 당사자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서울조정센터 도입 이후 조정신청 및 회부사건의 수가 증가하고 있으며, 비법관(조정위원)에 의한 조정이 확대돼 수소법원 조정위주의 기존 조정제도가 안고 있었던 문제도 크게 개선됐다고 한다. 이에 지난해에는 서울서부지법, 남부지법, 북부지법, 의정부지법 등에도 조정센터가 문을 열었으며, 조만간 인천지법에도 생길 예정이다.
아울러 지난 2010년 3월 전국 법원 최초로 서울중앙지법에서 도입한 조기조정제도는 조정제도 활성화의 촉진제가 되고 있다고 이 부장판사는 설명했다.

조기조정제도는 본안재판부가 변론기일을 지정하기 전 또는 본격적으로 재판을 시작하기 전에 사건을 조정에 회부하고 재판부의 관여 없이 조정위원 주도형으로 짧은 기간 동안 진행하는 조정을 말한다.
이 외에도 서울중앙지법은 조정위원회 조정 활성화, 외부연계형 조정 확대, 상근조정위원제도 확대, 소액사건 즉일조정 및 소액사건 상근조정위원제도의 정착 등 다양한 제도를 도입해 조정제도 활성화의 파일럿(pilot) 법원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이 부장판사는 설명했다. 이 중에서도 외부의 분쟁해결기관과 연계해 조정을 실시하는 외부연계형 조정에 대한 평가가 좋다고.

“외부 분쟁해결기관의 적임자를 법원 총괄조정위원으로 위촉하고 그 책임 하에 소속 조정위원들을 활용해 조정을 실시한 후 조정담당판사에게 사무수행보고를 하는 외부연계형 조정제도는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새로운 조정제도로서 당사자들의 만족도가 높습니다.”

그 결과 2009년 796건이던 서울중앙지법의 조기조정회부 사건 수는 지난해 1만277건으로 증가했으며, 이는 전국법원의 조기조정회부 사건 수 3만925건의 33.2%에 해당하는 비율이다.
하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것이 이 부장판사의 판단이다.

“서울중앙지법이 조정에 적극적으로 나선 2009년 이후 조정신청건수나 회부건수가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전국 제1심 민사본안 처리사건의 조정화해 비율은 아직 10%에 못 미치고, 수소법원조정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상황입니다.”

이에 이 부장판사는 조정 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몇 가지 제안했다.
우선은 앞에서 언급했듯 조정을 중시하는 국민과 소송대리인들의 인식 전환과 함께 조기조정제도가 확산돼야 한다고. 아울러 비법관에 의한 조정을 활성화해 법관은 꼭 판결이 필요한 사건에 역량을 집중하도록 하고 분쟁해결방식에도 ‘선택과 집중’의 원리가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변호사나 송무담당 검사 등 조정 관계자들도 조정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조정은 장점이 많은 제도이고 전국적으로 조정이 활성화되는 추세이므로 변호사들이 우선적으로 사건을 ‘소장’ 형식이 아닌 ‘조정’으로 신청하도록 당사자에게 설명을 하거나, 조정에 의한 분쟁해결방식에 적극 협조하면서 선임료 약정 등에서 탄력을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 부장판사는 장기적으로는 변협 내에 자체적으로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 사건이 법원에 가기 전에 일정한 비용을 받고 분쟁을 해결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방안에 대해서도 제안했다.

끝으로 조정에 대한 열정과 식견이 뛰어난 변호사분들이 조정위원으로 적극 참여해 달라는 당부의 말을 들으며 필자는 장차 조정이 더욱 활성화되고, 민간 조정위원의 참여로 인한 분쟁의 조기 해결로 당사자의 행복지수가 더욱 높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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