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에 있는 바이오산업 및 제약업체 관련 민간기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활발하게 물밑 활동을 통하여, 오는 2월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가 개최하는 ‘지식재산과 유전자원, 전통지식 및 전통문화표현물에 관한 정부간위원회(IGC)’의 논의 동향 파악에 주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상황도 범상치는 않은 듯하다. 올해 10월 평창에서는 ‘제12차 UN 생물다양성협약(CBD) 당사국 총회’가 개최될 예정이고, 그 즈음에 ‘유전자원의 접근 및 이익 공유에 관한 나고야 의정서’가 발효될 전망이다. 이에 대비하여 환경부는 최근 ‘유전자원 접근 및 이익 공유에 관한 제정 법률(안)’을 입법 예고하였다.

나고야 의정서가 발효되면, 식물, 동물, 미생물 등 생물 유전자원을 이용하는 국가는 유전자원 제공국가에 사전 통보하여 승인을 받아야 하고, 유전자원을 이용해서 얻는 이익은 상호 합의된 계약조건에 따라 배분해야 한다. 이를 엄격하게 시행한다면 제약업계 등 국가 경제활동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을 것이다. 유전
자원의 보호와 이용에 있어서 전환기적인 변화가 다가오고 있는 분위기다.

WIPO가 지재권적인 측면에서 유전자원에 대한 보호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IGC를 구성한 것은 2001년 4월이다. 이후 13년간 유전자원 보호를 위한 국제규범의 제정을 위해 논의하고 있으나, 유전자원 제공국과 이용국간의 입장 차이가 커서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WIPO는 지난 9월 총회에서 IGC의 협상 기한을 2014년 9월까지로 1년 연장하면서 올해 안에 세 차례의 IGC 회의를 개최하도록 하였다. 그 첫 번째 회의가 2월 3일에 예정되어 있다.

사실 유전자원 자체는 지식재산권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유형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유전자원을 이용한 지식재산권의 하나인 특허에 대한 보호가 강조되면서 특허권자인 유전자원 ‘이용국’의 경제적 이익은 증가하고 있는데 반하여, 특허를 가지지 못한 유전자원 ‘제공국’의 부담과 상대적 박탈감은 해결되지 못한 것이 문제의 근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유전자원 제공국은 유전자원을 이용한 특허를 신청할 때에는 발명(연구)에 사용된 유전자원의 출처를 밝히도록 함과 동시에 유전자원 제공자로부터 사전에 동의를 받도록 하는 것을 제도화하자고 주장한다. 나고야 의정서가 발효되면 유전자원 제공국의 입지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이에 반하여, 유전자원 이용국은 유전자원을 이용한 특허는 신규성, 진보성 등의 요건을 갖춘 지식재산권이라고 주장한다. 어떠한 유전자원이 발명에 이용되었는지, 관련 유전자원이 누구의 소유인지를 미리 알아내어 특허신청시 제출하도록 하거나 사전 동의를 받도록 하는 것은 특허 출원인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게 되며 결과적으로 발명(연구) 동기를 저하시킨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들 국가도 유전자원의 약탈은 잘못된 것이며, 이익 공유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따라서 유전자원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여 각국 특허청이 정보를 공유하도록 함으로써 약탈적인 성격의 특허 허여를 사전에 방지하고, 유전자원 소유권자와의 사적 계약을 통해 이익을 공유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의 특허제도로부터 이익을 받고 있는 나라가 상대적으로 적고, 유전자원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나라 또한 일부 선진국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유전자원 이용국의 입장에 선 국가는 많지 않다. 우리나라는 국내 유전자원 보유 및 이용 현황과 제약업계 등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하여 미국, 캐나다 일본 등과 함께 유전자원 이용국의 입장에서 IGC 논의에 대응해 오고 있다.

금년 들어 유전자원 ‘제공국’은 제12차 CBD 당사국 총회 개최, 나고야 의정서 발효 및 IGC 협상 기한을 근거로 협상 관철을 한층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유전자원 ‘이용국’은 수세(守勢)적인 입장에서 유전자원을 둘러싼 국제 논의의 향방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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