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26일 오후 6시, 대한변협이 입주한 역삼동 풍림빌딩 18층은 밀려드는 청년변호사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친선행사로 개최한 ‘청년변호사의 밤’참가자들이었다. 취지는 사법연수원 35~42기까지의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동기들끼리의 우애를 다지기 위한 것이었지만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중요한 미팅도, 급한 서면작성도 미루고 동료까지 데리고 몰려온 이들은 고통스런 현실을 호소하며 청년변호사를 위한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주축은 사법연수원 41기, 42기 변호사들이었다.

그 주역들을 몇 개월이 지난 후 다시 만났다. 과연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힘들게 했을까. 인터뷰에 응한 변호사들은 41기 개업변호사(남성. A변호사로 지칭함), 42기 고용변호사 2명(여성. B, C변호사로 지칭함)이었다. 당시 행사에 이들이 모두 참석한 것은 아니었지만 기수상 행사의 주축이었다는 점에서 청년변호사의 현실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을 듯 했다.

버는 것 없는 시간투자 언제까지 가능할진 몰라
먼저 A변호사에게 상황이 얼마나 힘든지 물었다. 30대 중반인 A변호사는 연수원 수료 후 여러 방면으로 진로를 모색하다 6개월 전부터 별산 법인의 구성원 변호사로 개업한 상태였다.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직은 견딜만 하다고 했다. 겨우 비용을 충당하고 용돈 수준의 돈을 약간 남기는 정도지만 할 만하다고 했다.

A변호사는 한때 해외진출을 꿈꾸었고 현재도 그와 관련된 일을 하려는 비전을 가지고 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러한 일들은 거대 로펌의 몫이다. 지인들을 통한 소소한 사건이 아직까지는 A변호사의 주된 수입원이다. 그는 개업 초기인 만큼 큰 수익을 기대하지 않고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일한다고 했다. 다행히 그는 아직까지 부양해야 할 가족이 없지만,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면 언젠가는 ‘고정수입’이 절실해질 날이 올 것이다.

그는 그것이 가장 큰 두려움이라고 했다. 친하게 지냈던 조장 형의 경우, ‘어떻게든 되겠지’하는 생각으로 옆반 반장님들과 야심차게 개업을 했다가 결국 다섯 달도 못 버티고 비용부담을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고 말았다. 지금은 전관 출신인 학교 선배의 사무실에서 일을 도와 주고 있다고 했다. 이미 처자식이 있는 그로서는 버는 것 없이 버텨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딸린 식구가 없는 A변호사는 일 년은 버틸 생각으로 나름 부지런히 뛰어다니고 있다. 본격적인 영업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그렇지만 동창회나 각종 동호회에 열심히 얼굴을 내밀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다. 신참 개업변호사의 눈에 일부 선배 변호사들은 전관이니 뭐니 하는 불합리한 이유를 내세워 서면 한 건에 몇 천만원을 챙기는 것처럼 보여 못마땅할 때가 많다. 그렇지만 그것은 이미 자신의 몫이 아닌 만큼 더 이상 욕심내지 않고 장기적으로 전문변호사의 길을 가기로 했다. 하지만 전문화를 위해서는 소위 버는 것 없는 시간투자가 필수적이라는데, 그것이 언제까지 가능할지는 솔직히 자신이 없다.

5주가 5년 같았던 첫직장 퇴근시간은 아예 없어
30대 초반 여성인 B변호사는 서울동부지방법원 근처에서 고용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42기지만 이미 직장을 한 차례 옮겼다. 그녀는 명문대를 심지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재원이다. 하지만 여성에다, 일단 나이 앞자리가 ‘3’이라는 것만 해도 취업시장에서 악조건 중의 악조건이었다. 수도 없이 면접을 보고 어렵사리 취직했는데, 5주를 일했던 서초동의 첫 직장은 그 5주가 5년 같았던 곳이었다. “출근시간은 9시지만 퇴근시간은 아예 없다시피 했어요. 차도 없는데 새벽 두세 시는 보통이고, 네댓 시를 넘기는 날도 많았습니다. 대중교통 이용은 아예 꿈도 못꿨어요.”

B변호사가 당시 맡고 있던 사건은 100건이 넘었다. 평균적으로 고용변호사가 맡고 있는 사건이 30건, 많으면 40건임을 감안할 때(적어도 당시 B변호사가 주변에 설문을 돌려 본 결과로는 그러했다) 그것은 인간의 한계를 넘는 수치였다. B변호사의 하루를 예로 들면 이렇다. 그날은 금요일인데 아침은 중앙지방법원, 오후는 인천지방법원에, 서부지방법원까지 돌고 오면 일곱 시가 다 되어서야 사무실로 들어온다. 그러면 대표변호사는 ‘월요일까지 서면을 작성하라’며 서너 건의 신건 기록을 던져 준다.

B변호사는 “고용변호사 두 명이 해야 할 일을 한 명으로 충당하려니 무리수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한다. 처음에는 ‘내가 너무 참을성이 없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하루하루가 지나갈수록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굳어졌다. 주변 동료들도 그런 부당한 노동조건은 감내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B변호사는 결국 사무실을 나갔는데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이후에도 서너 명의 변호사들이 B변호사의 전철을 밟았고, 결국 그 대표변호사는 두 명의 로스쿨 출신 변호사를 고용하였다고 한다.

선배들에 대한 환멸 “우리는 상품이 아니예요”
B변호사는 이후 재취업을 모색하면서 자신이 ‘가격비교’를 당하는 ‘상품’에 불과함을 깨닫고 절망했다. 그는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며 분노했다. 전에 일했던 사무실에서의 급여 수준을 말하면 대뜸 “로스쿨보다 얼마(50만원, 100만원)가 비싸니 쓸 수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기업이 아닌 일반 로펌인데도 로스쿨 출신을 비롯한 여러 면접자들을 한데 모아놓고 면접을 보는 곳도 있었다. 수치스러웠지만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서로의 ‘스펙’과 ‘수준’을 가늠하게 되었다. 자신은 나름 잘 했다고 자부했는데 결과는 로스쿨 출신 여성 변호사, 그 중에서도 전혀 뽑힐 것 같지 않았던 사람이 뽑혔다. ‘다른 이유 다 필요 없고, 싸게 불러서’그랬다는 후일담이 들려 왔다.

그녀는 “선배들이 로스쿨에 대한 적대감을 부추긴다”고 한다. 연수과정과 시간이 엄연히 다른데도 마치 신상품 가격비교하듯 로스쿨 출신과 사법시험 출신을 비교하고 ‘어떻게 하면 한푼이라도 더 싸게 쓸까’하는 데만 눈이 멀어 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법시험 출신 변호사들은 엄청난 분노와 박탈감을 느낀다. 이런 지적에는 A변호사, C변호사도 심히 공감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로스쿨을 이유 없이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취업시장에서 부당한 대접을 받다 보면 자연스레 로스쿨 출신에 대한 감정이 좋을 수는 없다고 항변했다. 법원, 검찰의 임관도 결국 파이를 키우지 않은 채 자리를 나누다 보니 결국 한쪽의 몫을 빼앗아 다른 한쪽에 주는 식이 되어 적대감만 커진다는 것이었다. 변호사들은 이런 배려 없는 정책들은 제쳐둔 채 단지 청년변호사들의 감정상 문제로 치부하는 선배들의 태도를 원망했다.

한 변호사는 “오히려 원로나 전관들보다도 사법연수원 30대 중반 기수의 변호사들이 착취가 더 심하다. 그 사람들은 신규 진입자에 대한 착취가 아니면 수익구조가 안 나오는 것 같다. 솔직히 선배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사람 아닌 일이 괴롭혀 고용변이라도 마음 안 편해
다행히 B변호사의 지금 직장은 이전에 비하면 정말 양호한 곳이다. B변호사의 평균 퇴근시간은 7시 30분인데 이 시간에 퇴근을 하기 위해 아침 7시까지 출근한다. 근무시간으로는 결코 적은 것이 아니지만 어쨌든 새벽에 퇴근하는 일은 없으니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다. 순전히 대표변호사의 인품이 무난한 덕이다. 하지만 여전히 퇴근하려면 눈치는 보인다. 분명 할 일을 다 끝내 놓고 집에 가는데도 다시 한변 대표변호사의 심기를 살피게 된다. 경험상 똑같은 시간을 근무하더라도 늦게 출근해 늦게 퇴근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적어도 윗사람의 인정을 받는 데는 그렇다.

C변호사의 경우 그나마 초반 취업운이 좋은 편이다. 어쩌면, 자신에 대한 기대치를 한껏 낮추었기 때문에 불만이 덜한 것인지도 모른다. C변호사는 “나이도 많고(그녀 역시 30대 초반이다) 성적도 안 좋아(그녀 역시 명문대 출신이다) 고생할 각오를 했다”고 했다. 그녀는 12월부터 수도 없이 면접을 본 끝에 4월에야 취직을 했다.

C변호사 역시 대표변호사의 인품 덕에 그럭저럭 무난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C변호사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밤 10시에, 금요일은 그보다 조금 일찍 퇴근하고 다행히 주말은 별 일 없으면 쉴 수 있다. 대표변호사도 그녀를 인정해 준다.

C변호사를 골치아프게 하는 것은 사람이 아닌 일이다. 사무장이 가져 온 사건 중에는 질 것이, 혹은 실형선고가 불 보듯 뻔한 사건들이 있다. 하지만 의뢰인들에게는 절대 그런 내색을 할 수 없다. 자신이 개업했다면 절대 맡지 않았을 사건인데 들어온 사건이니 어쩔 수 없이 처리해야 한다. 대표변호사도 ‘좋은 분’이지만 가급적 마무리까지 그녀가 해 주길 바란다. 의뢰인이 사무장의 마케팅에 속아넘어갔을 것이 뻔히 보이는 사건이지만, 어쨌든 뒷감당은 모두 그녀가 해야 하니 보통 일이 아니다. 그녀는 “사건 결과가 맘에 안든다며 착수금을 내놓으라고 떼쓰는 것은 기본이고, 거의 멱살을 잡을 뻔한 의뢰인도 있었다”며 “고용변으로 있으면 몸은 바빠도 마음은 편하다는데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착취에서는 열정이 나올 수 없어 일과 삶의 조화 원해
성공한 변호사들은 ‘일을 즐기라’고 말한다. 이른바 열악한 노동조건도 생각하기에 따라 사람을 단련시키는 기회가 아니냐고도 말한다. 하지만 세 변호사는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B변호사는 “한계치를 넘다보면 머리가 멍해진다. 손은 움직이고 있는데 머릿속으로는 아무 생각이 없다. 사무실을 옮기고 여유가 생겨서야 비로소 사건을 돌아보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단련의 기회는 커녕 착취에 불과하는 것이다. C변호사는 세대간의 인식차이를 지적했다. “선배세대에서는 일 때문에 모든 것을 희생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세대는 그렇게 살 수 없다. 일도, 가정도, 사람들과의 관계도 모두 중요하다.”

B, C변호사에게 미래 계획을 물었다. 둘 다 고용변호사의 특성상 오래 머무를 계획은 아니라고 했다. 특히 여성변호사들인 만큼 최소한 출산휴가라도 받을 수 있는 안정된 직장, 예를 들어서 공기업이나 사내 변호사로서의 이직을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취업시장에서 쓴맛을 다 본 만큼 그 길이 얼마나 바늘구멍인가를 알기에 ‘이것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은 없다. 게다가 상당수의 공기업의 경우 이미 지방으로 이전하여 선택의 폭이 한층 좁아진 상태다.

변호사들은 “큰 돈을 버는 것은 이미 남의 일”이라며 “적어도 일과 삶을 조화할 수 있는 곳이라면 개업변호사든, 직장 취업이든 다 좋다”며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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