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벌써 하버드 로스쿨에서의 첫 가을학기를 마치고 짧은 겨울방학을 거쳐 두 번째 겨울학기를 맞이했습니다. 참고로 하버드 로스쿨은 12주의 가을학기와 3주의 겨울학기, 그리고 다시 12주의 봄학기로 구성되는 3학기제인데 이로 인하여 2학기제를 채택한 다른 로스쿨에 비해 겨울방학이 짧은 편입니다.

그동안 수업이나 시험, 학교행사 등 구체적인 학교생활에 관한 내용보다는 유학준비과정과 같은 부수적인 정보로 지면을 채운 것은 연재시기가 로스쿨 지원시기와 인접하여 시의성있는 정보를 제공해 드려야겠다는 고려도 있었고, 적어도 한 학기는 지내봐야 학교생활에 관해서 더욱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드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은 조심스럽게나마 지난 학기를 뒤돌아 보고 하버드 로스쿨에서의 수업과 생활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미국 유학을 계획하는 법조인이라면 누구나 현지 로스쿨에서 관심분야의 법률전문지식을 습득하고 부수적으로 변호사 자격(특히 뉴욕주 변호사 자격)도 함께 취득하고자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저 역시도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그동안 관심이 있었던 미국의 금융규제, M&A, 반부패, 통상, 안보제재(sanction) 등 다양한 전문분야의 수업을 듣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뉴욕주 변호사시험 규정이 개정되어 LL.M. 과정 수료자의 경우에는 로스쿨 과정 중 미국 기본법 분야(헌법, 계약법, 법조윤리, 형법, 회사법 등)의 수업을 일정 학점 이상 수강하여야 뉴욕주 변호사 시험에 응시할 수 있게 되었고, 하버드 로스쿨의 경우에는 법학 관련 수업 총 24학점 중 12학점을 지정된 미국 기본법 분야의 수업으로 채워야 했습니다(참고로 로스쿨마다 학사구조에 따라 구체적인 학점 수는 달라집니다).

이미 실무를 상당 기간 경험한 한국 법조인들에게 미국 기본법 분야의 수업은 큰 효용도 없고 현지 로스쿨 1년차들과 같이 수업을 들어야 하는 부담때문에 종래 한국 법조인들은 더욱 전문적인 분야의 수업을 집중하여 듣거나 하버드 비지니스스쿨, 케네디 스쿨, MIT 등 인접 학교에서의 다양한 수업을 듣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만약 뉴욕주 변호사 자격 취득을 목표로 한다면, 이러한 수강전략이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학교에 따라서는 뉴욕주 변호사 시험에 응시할지를 진지하게 고려해 보고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다른 주 변호사시험에 응시하거나 아예 현지 변호사 자격 취득 포기를 권고하기도 하는 것 같고, 개인에 따라서는 이러한 결정을 내리는 분들도 몇 분 보았습니다.

이러한 제약 외에도 기술적으로 수업시간이 충돌된다거나 사전에 다른 수업을 들어야 하는 요건이 있다거나 별도 허가를 받아야 한다거나 수강인원에 제한이 있다거나 아예 관련 수업이 개설되어 있지 않는 등의 이유로 원하는 수업을 다 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과거 선배들은 관심은 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수강하지 못하는 수업들을 자유롭게 청강했던 것 같은데, 현재는 청강도 사전 허가를 거쳐야 하고 실제 다른 수업의 부담 때문에 청강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런 저런 제약 때문에 대부분 관심분야의 전공수업은 한 두 개 정도만 들을 수 있고, 저는 지난 가을 학기 Foreign Corrupt Practices Act 등 반부패법 및 White Collar Criminal Law에 집중하여 수업을 들었습니다. 최근 미국에서 가장 뜨고 있는 분야 중 하나이기도 하고 국내에서 실무를 하면서 관련 이슈가 많이 발생해서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학자출신 교수와 실무가 출신 교수가 이끄는 세미나와 강의수업이 각각 1개씩 개설되어 있어 이들을 모두 수강하였습니다. 매주 리딩(reading)이라고 하여 수업 전에 읽어가야 하는 자료가 수백 페이지에 달했고 response paper라는 짧은 쓰기 과제도 내야 했으며 수업시간에는 무작위 지명(cold calling)이 난무하기도 해서 무척 고생을 했지만 관련 분야를 처음부터 끝까지 일별 한 셈이라 무척 뿌듯한 경험이었습니다.

저의 제한적인 경험으로 모든 로스쿨 수업을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한국의 효율적인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저로서는 어떤 주제에 대해서 지식을 습득한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과도한 리딩과 주제를 일탈한 토론이 상당히 비효율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이 자유롭게 발언하고 토론하며 생각을 발전시키는 모습이 진정한 학문의 전당, 대학(大學)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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