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정보 침해신고, 분쟁조정신청 통한 자발적 구제 나서야 -

또 털렸단다, 개인정보가. 듣자하니 은행직원이 대출자 명단을 빼돌렸단다. 어쩐지 갑자기 전화가 많이도 오더라. 돈 없어 서럽던 차에 이자 낮춰준다며 내 정보를 소상히도 알고 전화들을 해오더라니…. 대부업체도 아니고 은행이며 캐피탈이라고 전화를 하니, 하마터면 혹 할 뻔 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무엇보다 믿음직해야 할 은행이 개인정보를 유출했는데도, 세상은 매우 조용하다. 아이들 이용하는 게임회사가 털렸을 때도 이보다는 시끄러웠다. 무뎌진 것일까.

애용하던 인터넷쇼핑몰이 털리고, 인기 있다는 게임회사도, 대한민국 사람 누구나 가입한 통신사도, 공부하는 학생들 가입한 교육방송공사도…돌이켜보니 그동안 털려도 너무 많이 털렸다. 진작 개인정보 보호법이 만들어졌다고 하던데, 그러면 무얼 하나. 해도 해도 너무한다. 다 가져가라, 내 정보. 이제는 아예 체념이다.
자고 나면 또 터지는 개인정보 유출사건이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닌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당장 목전에서 돈을 잃거나 가시적인 큰 피해를 입기 전에는 이 문제를 강 건너 불구경 하는 것이 지금의 우리 모습이라는 것도 모두가 알고 있다.

업무상 다양한 기관 및 사업체에 개인정보보호 교육을 나가게 되면, 꼭 첫머리에 청중에게 묻는 것이 있다. “개인정보 침해를 겪어보신 분?” 이 질문에 손드는 사람이 예상 외로 매우 적다. 질문을 바꾸어 “개인정보 유출경험이 없으신 분?”이라고 물으면 아까보다도 더 손드는 사람이 없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무뎌졌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은 아닌가.

사실 믿을 만한 회사나 공공기관에서조차도 대량 유출사고가 하도 많다보니, 보이스피싱 같은 2차 피해를 당하지 않은 것만으로 감지덕지 할 지경이다. 용케 당하지 않은 스스로가 대견하여 가슴을 쓸어내릴 뿐, 스스로는 어찌할 방법도 없어 보이기에 기분 나쁜 찝찝함만 몰려올 뿐이다.

안전조치를 소홀히 해도, 무단조회도 내가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겨우 할 수 있는 것은 ‘동의 거부’에 체크하는 것 정도라고.

2005년 헌법재판소는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기본권의 하나로 결정했는데, 나에 관한 정보가 언제 누구에게 어느 범위까지 알려지고 또 이용되도록 할 것인지를 다른 누구 아닌 나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기본적 권리를 우리 누구나 향유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내 정보가 나의 통제권을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자신에 관한 정보를 어디에 어떻게 뿌려놓았는지 명확하게 모르고 있다. IT강국의 국민답게 오랜 기간 인터넷을 많이도 이용해 왔기에 스스로 제공한 정보도 일일이 기억할 수 없고, 하물며 이미 쉴 새 없이 털려서 떠돌아다닐 내 정보에 대해서는 무기력할 뿐이다.

이럴 때 일단 한국인터넷진흥원에서 운영하는 주민번호클린센터를 이용해 보면, 엉킨 실타래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지난 십수년 간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통해 실명확인한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데다가, ID와 비밀번호를 몰라도 회원탈퇴 대행까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에 관한 정보가 부당하게 수집·이용되고 있거나 안전하지 못하게 처리되고 있다면, 개인정보침해신고센터에 신고하거나 분쟁조정위원회에 신청을 통하여 내 권리 구제를 꾀하고 잘못된 개인정보처리 관행 개선도 도모해 볼 수 있다. 작년 한 해 개인정보침해신고센터에 접수된 신고 및 상담 총 16만6801건 중 13만9724건이 주민번호와 관련된 경우였는데, 이러한 적극적인 자기정보 지킴이 정신이 8월 7일에 시행될 개정 개인정보보호법상 ‘주민번호 처리금지 원칙’을 도출해 낸 원동력이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물론 기업 등이 개인정보 처리에 있어 스스로 관련 법령을 모두 준수하여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진정 옳다. 하지만 아무리 법과 제도가 강화되어도, 우리의 개인정보처리 관행이 충분히 변화하지 못한 것이 아직은 사실이라면, 내 정보 지킴이는 다른 곳에 있지 않다. 스스로 내 권리를 지키고 구제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우리가 개인정보 문제에 체념하다시피 행동한다면, 기업이나 기관도 과태료나 벌금을 물거나 손해배상을 하기 전까지는 구태여 돈 들이고 힘 들여가며 관행을 바꾸어서 남의 정보를 법대로 다루려고 노력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옳건 그르건 역지사지를 해봄직 하다.

그러니 이제 한 사람 한 사람이 행동하는 자기정보 지킴이가 되어 자발적 구제에 나서는 것이 어쩌면 잘못 된 개인정보 처리 관행을 가장 빠르게 개선할 수 있는, 법보다 강력하고 효율적인 수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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