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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협이 만난 사람_제30대(1981. 5. ~ 1982. 5.) 대한변협 협회장 김두현 변호사]갑오년 새해, 원로 대선배 변호사에게 길을 묻다능력 지혜 가진 청년변호사, 창의성 발휘해 새로운 분야 개척해 나가라
종근당 장학재단 이사장직 맡아…건강 허락하는 한 봉사활동 매진할 터
대한변협, 젊은 변호사 진로 진지하게 고민해 활로 찾아달라 당&
인터뷰 박형연 공보이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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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7호] 승인 2014.01.06  11:4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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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아 우리 신문의 첫 인터뷰를 누구로 할 것인지 신문편집위원회에서 논의했다. ‘보통변호사시대’를 열고 나온 위철환 집행부의 정신에 맞게 유명한 분이 아니라 보통변호사 중에서 적절한 인터뷰 대상을 찾으려는 노력도 해 보았지만 역시 새해 첫 인터뷰는 시대를 앞서 살아간 선배들에게 덕담을 듣는 것이 제일 좋겠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져 대한변협 역대 협회장 중에서 가장 연장자이면서 미수(88세)의 연세에도 건강하게 한국합동법률사무소의 대표변호사로서 활동하는 김두현 변호사(제30대 협회장)를 만났다.

우선 미수의 연세라고 도저히 짐작할 수 없는 건강한 모습에 놀랐다. 새해 첫 인터뷰를 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 우선 전체 법조인들, 대한변협신문의 독자들을 위하여 덕담 한마디 해달라고 부탁했다.

“현재 법조계는 전례없는 수난의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법조인의 수가 너무 많아져서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요. 수가 늘면 법조계나 변협 차원에서는 맨파워가 늘어나고, 힘이 세지는 면도 있지만 변호사의 지위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법조인에게는 격변의 시대라고 할 수 있겠죠. 물론 이러한 시대와 환경의 변화를 예측하지 못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우리 법조인들이 자성하고 반성해야 할 일도 많을 것입니다. 요즘 법조인들이 세간의 구설수에 오르내리면서 더욱 우리를 어렵게 하고 있는데 우리들이 불평만 할 것이 아니라 갑오년 새해를 맞아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고, 상응하여 법조인이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추상적인 덕담은 어려운 청년변호사들에게는 와 닿을 것 같지 않아서 청년변호사들의 어려움을 설명 하면서 그들을 위한 덕담을 다시 부탁했다.

“준비도 없이 변호사 수가 갑자기 늘어나는 바람에, 청년변호사들이 어렵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에는 법조인이 되기 힘들긴 했지만 지금의 청년변호사들과 같은 고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청년변호사들은 생존권까지 위협을 받고 있다고 하고, 자신이 법조인이 된 것에 대하여 자긍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변호사란 직업에 대해 실망감과 비하감을 느끼기도 한다는 얘기를 들으니 솔직히 선배로서 미안하고 안타깝습니다. 그렇지만 어쩌겠어요…세상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 것을. 그런 어려운 시기에도 틈새시장은 있고, 아무리 수가 많다고 하더라도 변호사가 된 청년들은 능력과 지혜를 가진 친구들일테니 창의성을 발휘하여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면 분명 법조계의 외연은 크게 넓어지고, 개별 변호사들도 자리를 잡아 나갈 것입니다. 어려움을 몸소 겪고 있는 청년들에게는 허망한 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이 순간에도 실망할 것이 아니라 희망을 가지라고 말해주고 싶군요.”

젊은 법조인 중에는 김두현 변호사를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의 경력을 보면 다양하고, 화려하다. 1926년 충남 당진 출신, 고려대학교 2학년 때인 1948년 조선변호사시험 2회에 합격, 6·25사변으로 피난 중 법무관으로 임관해 육군 중령으로 예편한 후 판사생활(서울지방법원 판사, 서울·대구고등법원 부장판사), 정계에 투신하여 당진에서 7대국회의원, 8대에 낙선하자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1971년 서울에서 변호사로 개업해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대한변협 협회장, 한국법학원 원장, 언론중재위 위원장 등을 거쳤으며 지금도 현역으로 거의 매일 사무실에 나간다. 1953년에 결혼해 4명의 자녀를 잘 키웠고, 작년에 본인의 미수와 회혼을 맞았다. 아쉬울 것도 부러울 것도 없는 삶같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출근하는데 변호사 활동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름만 걸어놓고 여생을 소일하는 것인지 궁금하여 요즘의 근황을 물었다.

“법률사무소의 대표를 맡고 있지만 후배들이 주로 일을 하고 저는 종근당의 창업자 이종근 회장이 사재를 출연하여 만든 장학재단 종근당 고천재단의 이사장직을 1992년부터 맡아 요즘은 주로 장학재단을 관리하고, 사회 봉사 활동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건강이 허락되는 범위 내에서 사회봉사활동을 많이 하려고 합니다. 봉사활동은 기회와 여유가 되면 권장할만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많은 기관장 자리 중에 어느곳에서 활동할 때가 가장 보람있었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더니 내 예상과 달리 의외의 답변을 했다. 그 당시는 서울회 회장이나 협회장 임기가 1년이었는데 서울회 회장 때에 가장 보람있는 일을 해냈다고. 그 당시 서울회는 자체 건물이 없었고, 서울변호사회와 제일변호사회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가 서울변호사회 회장으로 있을 때 제소전화해사건의 운영과 관련해 비리 변호사들을 검찰에서 조사해 처벌하겠다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김 전협회장이 나서서 검찰, 법원, 변호사들과 협의해 제소전화해사건을 서울회 차원에서 공동관리하고, 그 수수료의 일정부분을 적립하여 당주동 서울회 건물을 매수하는데 사용토록 했다. 많은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텐데 그 성공이 보람스러웠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시대가 바뀌어 서울회가 제소전화해를 관리하는 것이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그 제도가 없어졌는데 그런 숨은 역사가 있었다. 또 어떤 활동이 가장 보람있었는지 물었더니 판사로 있을 때 법전편찬위원으로 선임되어 민중서관에서 나온 최초의 법전을 만든 일, 법학원 원장시절 영문법전을 만든 일을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런 부분에서 학자의 냄새가 난다고 했더니, 웃으면서 법무관 시절 고대에서 교수가 부족하여 유진오 총장이 교수로 오라고 했는데 국방부에서 반대해서 결국은 불발이 되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법학원장 시절 하버드에 6개월간 객원연구원으로 간 것도, 고대와 이대 등에서 강의를 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제3자 입장에서 김 전협회장님의 인생을 살펴보면 후회와 아쉬움이 없는 인생 같은데 자신의 인생에서 되돌려서 다시 살아보고 싶은 시점이 언제인지, 다른 길을 갔으면 어땠을지 물었다.

“대구고등법원 부장판사의 자리를 그만두고 정치를 할 때였습니다. 그때 대법원장이 1년만 대구고등에 있으면 서울고등으로 불러주겠다고 했는데 여러 가지 여건상 고향인 당진에서의 출마를 뿌리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법원에 양해를 구하고 정치를 시작한 것이지요. 만일 그때 계속 법원에 있었으면 대법원의 수장자리에 오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실제 제 후임으로 대구고등에 온 유태흥 전대법원장이 1년만에 서울고등으로 가고, 결국 대법원장까지 올랐으니 더욱 그런 마음이 들지요(웃음). 사실 나중에 이일규 대법원장 후임으로 제 이름이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는데 안 된 이유를 좀 알아보니 짧지만 국회의원 생활을 한 것이 결정적인 흠이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참 인생만사가 다 새옹지마라는 생각이 듭니다. 8대에 낙선하지 않고 계속 정치를 했더라면 유신헌법 등으로 더 혼란스러운 삶을 살았을 것 같단 생각을 할 때도 그런 생각을 하지요. 그러니 우리 청년변호사들도 지금의 어려움이 나중에 보면 다 새옹지마처럼 기회가 될 수 있음을 명심했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을 좀더 일찍 살아본 선배의 지혜입니다.”

지면상 협회장에게 마지막으로 현재의 대한변협 집행부에 대한 조언을 부탁했다. 젊은이들, 젊은 변호사들의 진로를 협회가 진지하고, 실질적으로 고민해주고, 활로를 찾아주는 활동을 제일의 과제로 삼고 열심히 해달라고 했다. 모든 할아버지들이 손자를 걱정하듯이 선배들은 후배들, 청년변호사들을 걱정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선배들의 걱정이 정말로 기우가 되고, 새옹지마가 되는 그런 날을 꿈꾸며 새해 첫 인터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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