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사흘째에요. 창가 쪽 끝 분단 맨 뒷자리에는 아무도 앉지 않아요. 하지만 신기한 것은 아무도 결석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매 시간 출석부에 싸인하는 선생님들도요. 어쩌면 이상한 게 아닐지 몰라요. 중간고사가 얼마 남지 않았거든요. 선생님들은 시험범위까지 진도 나가는 데에 바쁘고, 학생들은 학원 숙제하랴 수행평가 챙기랴 정신이 없어요. 나는 교실 뒤편 사물함에 누워 잠을 자거나 굳게 닫힌 틈으로 밖을 구경해요. 반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 쉽게 볼 수 있거든요.

저번 수요일이었던가요?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잠에서 깼어요. 문틈을 내다보니 남자애들 네댓 명이 책상 하나를 둘러싸고 있었어요. 자세히 보니 둘러싼 가운데엔 조그만 남자애가 하나 앉아 있더군요.

아, 익숙한 일이에요. 네댓 명은 앉아 있던 아이의 머리를 밀치거나 어깨를 치고 책상을 흔들었어요.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교실에 제법 크게 울렸지만 아무도 그 쪽을 쳐다보질 않았죠. 대부분은 무시하고 수다를 떨거나 문제집을 풀었어요. 그 아인 하지 말라고 기어들어가듯 말했지만 그들은 그저 가소롭다는 듯 비웃을 뿐이었어요.
 
나는 그 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었어요. 점점 그들은 거세졌어요. 교탁에서 칠판 지우개를 가져와 아이의 머리 위에 세차게 털었어요. 허연 분필가루가 풀썩이며 뿌옇게 날리자 아이가 기침을 뱉었어요. 마치 울음을 울듯 한참이나 애처롭게요. 그러자 그들은 더욱 거칠게 지우개를 털었어요. 기침 소리와 웃음소리, 지우개 두 개가 부딪치는 소리가 전보다 훨씬 더 큰 소음을 만들어냈지만 여전히 누구도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어요. 역시 모두 바쁜 걸까요? 그 아이를 응시하는 사람은 그들과 나뿐인 듯해요. 하지만 어쩌면 교실의 전부는 그 상황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오늘은 괴롭힘의 정도가 더 심한 것 같아요.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그저 지켜보는 것 밖에요. 어어, 순간 누군가가 이쪽으로 다가와요. 무슨 일인가 싶을 찰나 눈부신 형광등 빛이 가득 들이닥쳐요. 내 옆에 세워져 있던 과학 교과서가 문을 연 학생의 손에 들려 사물함을 빠져나가요. 활짝 열린 문 너머로 과학 교과서를 든 이가 그 아이의 머리를 내리치는 모습이 보여요. 과학 교과서는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지만 나는 아무런 말도 해 주지 못했어요. 날카로운 욕설이 퍽, 하는 소리 뒤로 들려와요. 옆의 무리는 킬킬거리고, 그 아이는 고개를 숙이고 있어요. 앗, 수업 종이 울렸어요. 머지않아 선생님이 들어오실 거예요. 네댓 명의 무리는 순식간에 흩어져 자기 자리에 앉아요. 그 아이는 머리를 털고 책상 주변을 정리해요. 좁은 어깨는 떨리고 있지만 울고 있진 않을 거예요. 눈물을 흘리면 더 큰 응징이 돌아올 것임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거든요.

나는 한숨을 내쉬어요. 그 아이 대신 소리치고 싶어요. 제발 그만 하라고,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거냐고. 하지만 달싹이는 입술에선 아무런 소리도 나오질 않아요. 나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어요. 그리곤 눈을 감아 버렸어요.

그리고 지금은 월요일. 지난 수요일 삼 교시 쉬는 시간에 이 교실에서 있었던 일은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입에 올리지 않아요. 비슷한 일은 거의 매일 일어났었지만 그 아이는 매일 학교에 나왔어요. 사흘이나 결석한 적은 처음이에요. 그렇지만 여전히 아무도, 아무도, 아무도 그것에 관해 아는 체조차 하지 않아요. 사실은 모두 알고 있는 것이 확실해요. 그러면 다들 자기 일에 너무나 바쁜 걸까요? 얼마나 중요한 일에 몰두하고 있는 걸까요? 어쩌면 모르는 척 하는 것이 훨씬 쉽고 편리하니까 그런 건 아닐까요? 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당신, 당신도 혹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타인의 불행을 지나친 적은 없나요? 바쁘니까, 나도 힘드니까,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니까. 얄팍한 보호막 아래에 숨어 문을 두드리는 양심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지는 않나요? 당장 나오라고는 하지 않을게요. 다만 똑바로만 바라봐줬으면 좋겠어요. 그 아이를 향한 무수한 발길질, 폭력, 그리고 그것보다 훨씬 더 아플 당신의 뒷모습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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