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르타는 망한 것이 아니었다. 깍두기 머리를 한 원장은 자신이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군대식 규율만이 외고, 과고, 특목고 합격을 보장한다는 교육관을 가지고 있었다.

“일단 애들은 틈을 주면 안 됩니다. 이놈들은 조금만 방심하면 딴 짓을 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저희 학원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저희한테 맡겨만 주십시오. 죽이든 살리든 합격시켜 놓겠습니다.”

원장의 말에 엄마는 귀가 솔깃했다. 이 학원은 특목고 입학생들을 많이 배출했다. 이곳이 우리 아들의 미래를 보장하는 보험증권이다. 엄마는 엄청난 학원비를 선뜻 결재했다.

외고대비 우수 A반. 내가 소속된 수강반이다. 소수정예로 구성된 우리는 외국어 고등학교의 엄청난 성벽을 함락시키고 성안으로 진입해야 한다. 낙오자가 있으면 안 된다. 소수정예 특공대인 우리들은 살인적인 숙제를 짊어지고 돌격해야 했다. 엄청난 두께의 토익책이 우리를 짓눌렀다.

“토익 900점을 넘지 못하면 외고 입학은 꿈도 꾸지 마라. 특목고에 들어가지 못하는 놈은 쓰레기 인생이 된다. 상위 1%를 꿈꾼다면 인간적인 삶은 포기해라.”

원장은 끊임없이 우리를 감시했다. 숙제검사, 단어시험, 단어재시험, 리스닝 확인. 주말에도 특강수업을 위해 학원으로 향했다. 군인들이 밤낮으로 나라를 지키듯, 우리는 학원을 사수해야했다. 체력이나 의지가 약한 학생들은 중도탈락 했다. 한 달이 지날 무렵 3분의 1 정도의 학생들이 포기했다. 모두가 패배자처럼 고개를 숙였다. 마치 인생의 실패자나 죄인인 것처럼.

그 무렵 경태가 우리 반에 들어왔다. 임경태. 녀석은 무엇인가 독특한 친구였다. 영어나 수학책보다 철학책을 더 좋아했다. 특별히 공부를 많이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데 성적은 항상 전교에서 손가락 안에 들었다.우리는 모두 ‘게으른 천재’라고 놀렸지만, 경태는 스스로를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했다. 자유를 찾는 보헤미안이 스파르타 학원에 들어오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녀석도 특목고에 들어가고 싶었나 보다.

어쨌든 새로운 경쟁자가 한 명 더 들어와서 스트레스는 더 심해졌다. 원장의 칼칼한 목소리는 계속되었다.

“너희는 입시라는 전쟁을 하고 있다. 전쟁에서 지는 자는 멸망한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 한다’라고 말했지. 경쟁에서는 이겨야 해. 왜 아테네가 스파르타에게 망했는지 알겠냐?”

평소에 친했던 사이는 아니었지만 같은 학원에 다니다 보니 경태와 조금씩 가까워졌다. 조용한 성격인줄 알았는데 경태는 의외로 다혈질이기도 했다. 2주일이 지났을 무렵 작은 소란이 발생했다. 학원 주간테스트 결과가 게시판에 발표되었다.

8등 임경태 애향중 2학년
총점 : 830 듣기 : 450 독해 : 380
9등 강우림 애향중 2학년
총점 : 760 듣기 : 430 독해 : 330

게시판을 쳐다보던 경태의 얼굴이 붉어졌다. 인상이 잔뜩 찌푸려졌다. 수업이 시작되자 경태는 손을 번쩍 들었다.

“원장님,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성적을 공개하면 안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다가 우리들 몸무게나 키도 모두 공개하는 거 아닙니까? 남학생인 나도 창피한데 여학생들은 얼마나 창피하겠습니까? 학생도 인권이 있는데….”

느닷없는 기습에 원장도 당황한 듯 했다.그러나 곧 얼굴에 잔뜩 비웃음을 띠고 말했다.

“인권? 인권은 무슨 얼어 죽을 놈의 인권,개뿔 같은 소리하고 있네. 창피한 줄 알면 더 열심히 공부해서 점수 따야지! 경태 네가 공부 좀 한다고 깝죽대는데 네 일이나 잘하셔. 너희 녀석들은 저렇게라도 해야 공부하는 시늉이라도 하지.”

원장의 입에서는 모욕적인 단어가 쏟아졌다. 그 단어는 독화살이 되어 경태의 온 몸에 박혔다. 나는 경태가 아무도 모르게 신음하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날 자정 무렵이었다. 경태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생선 사진 한 장과 함께 경태의 글이 적혀 있었다.

‘이키주쿠리라는 일본 요리야. 물고기를 살아있는 채로 회를 한 점씩 떠서 먹어. 생선은 자기 살이 뜯겨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지. 사람들은 신선한 회를 먹으려고 물고기에게 잔인한 일을 하는 것이야. 뼈, 지느러미, 내장만 남은 물고기를 다시 수조에 넣어. 그러면 물고기는 헤엄을 치지만 서서히 바닥으로 가라앉아. 그리고 죽어. 우리가 이키주쿠리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왜 이런 문자를 나에게 보냈을까? 느낌이 이상했다. 한동안 경태를 볼 수 없었다.

경태는 회복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깁스한 발을 끈으로 천장에 매달아 놓았다. 나를 보고 씩 웃었다. 책에다 무엇인가를 메모하다가 얼른 감추었다.

“뭐 해?”

“어? 아니,그냥 뭐 좀 읽고 있어.”

침대 모서리에 경태가 읽고 있던 책이 놓여 있었다. 책이 아니라 프린트였다. ‘학생인권조례’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제목 아래에 경태가 휘갈긴 낙서가 있었다.

‘스파르타도 결국은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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