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밀라노 공국의 공주님 초상으로 밝혀진 그림이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싼 값에 팔린 것이 문제였다. 양피지에 색 분필과 잉크로 그려진 그림인데 1490년대 밀라노 스타일의 의상과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는 젊은 여성의 초상화였다. 이 그림은 1998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19세기 초경 독일 작품으로 감정되어 2만2000달러 정도로 낙찰되었다. 그런데 옥스퍼드 대학교의 미술사학자 마틴 캠프가 2010년 발표한 다빈치 그림 연구서 ‘아름다운 공주(La Bella Principessa)’에 따르면 이 그림은 놀랍게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으로 유명한 밀라노 공국의 지배자 루도비코 스포르자의 딸 비앙카 스포르자의 초상이라는 것이었다. 캠프 교수가 제시한 감정증거들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는데, 그림에서 발견된 희미한 다빈치의 지문이라든지, 바탕 재질의 탄소측정연대가 1440년 내지 1650년 사이라는 것 등이었다. 캠프 교수의 주장에 반대하는 다른 미술사학자의 주장도 있었지만, 어찌 되었든 이 공주님 그림의 가치는 자그마치 1억 5000만 달러에 이른다.

▲ 아름다운 페로니에 부인
▲ 아름다운 공주
공주님의 그림을 헐값에 넘긴 원소유자로서는 통탄할 일이 되었다. 원소유자는 이 그림을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 기를란다이오의 작품이라고 추정하고 있었으나, 판매를 위탁 받을 당시 크리스티측의 전문가는 단정적으로 19세기 독일작품이라고 판단하였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19세기 독일작품이라는 제목 하에 이 그림은 2만2000달러 정도에 경락된 것이고… 경매 후 11년이 지난 시점에 원소유자는 크리스티를 상대로 과실 감정, 충실의무 위반 및 보증 위반 등을 원인으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였으나 법원은 제소기간 도과를 이유로 청구를 기각하였다(Marchig v. Christie’s, 2011). 미술경매 위탁자와 경매회사간의 관계는 위탁관계(consignment)인데 경매회사는 위탁인에 대하여 대리인으로서 충실의무를 부담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충실의무의 범위와 성질을 둘러싸고 경매회사와 위탁자 사이에 많은 분쟁이 발생한다. 작품을 경매에 올리면서 크리스티가 그 작품의 연대나 작가를 잘못 추정하는 것(misattribution)에 대한 책임이 과연 어디까지 있는가라는 실체적인 판단을 받아보지 못하고 아쉽게 끝난 사건이었다.

다빈치의 작품 중 진품여부 문제로 소송의 대상이 된 그림이 또 있다. 이 그림 또한 아름다운 여인의 초상이다. 그림 이름은 ‘아름다운 페로니에를 착용한 여인’쯤 되겠다. 페로니에란 르네상스 시대 여인들에게 유행한 헤드밴드라고 하니, 이 그림의 모델이 누구인지 논란이 있지만 이 역시 밀라노 공국의 루도비코 스포르자의 아내인 베아트리체 데스테라는 설이 유력하다.

해리 한(Harry Hahn)은 1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에서 이 다빈치의 여인 초상을 얻게 된다. 한이 미국 캔자스에 돌아와 이 그림을 전시하자 다빈치 진품 그림을 처음 보게 된 미국 전역에 화제가 되었다. 한이 이 그림을 캔자스 미술관에 거액을 받고 팔 예정이라는 소문이 돌자, 이 소문을 취재한 뉴욕잡지사 기자가 거물급 화상 조셉 두빈(Joseph Duveen)에게 코멘트를 요청한다. 두빈은 무슨 자신감에서인지 캔자스시에 있는 그 그림을 한번도 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은 복사본일 뿐이고 원본은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다빈치는 결코 자신의 작품 복제본을 만들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 의견이 기사화되자 캔자스 미술관은 바로 이 그림 구매에 흥미를 잃고 만다. 한은 두빈을 상대로 곧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였다(Hahn v. Duveen, 1929). 소송과정에서 두빈은 세계적으로 쟁쟁한 미술감정가들의 감정, 즉 한의 그림이 진품이 아니라는 감정서를 증거로 제출하지만, 그 감정의 신뢰성이 문제가 있다는 근거 있는 반론이 제기되면서 소송은 오리무중이 된다. 미술작품에 대한 재산권과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며 당사자가 대립하였으나, 결국 아무리 유명한 화상이나 전문감정가라 하더라도 그 작품을 실제로 보지도 않고 진품이 아니라는 의견을 밝히는 것은 표현의 자유 영역을 벗어난 것이라는 법원의 견해가 나온다. 이에 따라 두빈은 1929년 당시로서는 거금인 6만 달러 및 변호사비용을 물어주는 것으로 한과 화해를 하게 된다. 다빈치가 그린 아름다운 스포르자의 여인들은 수백 년이 흐른 뒤에도 뉴욕법정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