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세! 만세! 만세!” 勝利判決(승리판결)이라는 큼지막한 붓글씨가 선명한 광주지방변호사회 대회의실에 만세 삼창이 울려 퍼지고,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유족의 미쓰비시 중공업에 대한 승소판결로 흥분과 감동의 도가니였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이를 지원하는 시민모임은 노란색 상의를 입고 있었는데, 이 분들의 가슴에 적힌 ‘오늘, 우리가 역사다’란 문구는 오늘 내가 역사적인 장소에 와 있다는 사실을 심장에 각인시켜 주었다.

2013년 11월 1일 금요일은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광주지방법원에 일제 전범기업인 미쓰비시를 상대로 제기한 불법행위 손해배상 청구사건의 판결이 있는 날. 대한변협 대변인인 나는 이른 아침부터 위철환 협회장님과 민경한 인권이사님을 모시고, 광주지방법원 판결에 대한 공동기자회견을 위해 광주로 향했다. 광주에 도착하기까지 내 마음 속이 복잡했다. 승소판결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혹시나 패소하면 어쩌나’하는 일말의 불안감이 뒤섞인 미묘한 감정 때문이었다. ‘내 마음이 이럴진대, 정작 14년간 소송을 해 온 당사자의 속마음은 도대체 어땠을까?’하는 생각에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당일 오후 2시. 광주지방법원은 근로정신대 피해자 측의 손을 들어주면서 피해 당사자 4명에게는 1억5000만원씩, 유족 한명에게는 8000만원을 배상하도록 판결했다. 일제 전범기업으로 하여금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에게 손해를 배상하게 하는 최초의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선고에 앞서 “대한민국이 해방된 지 68년이 지나고 원고들의 나이가 80세를 넘은 시점에서 뒤늦게 선고를 하게 돼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며 “이번 판결로 억울함을 씻고 고통에서 벗어나 여생을 보내기 바란다”고 말했다.

근로정신대 피해자란 일제 강점기 당시 초등학교 6학년 정도 나이인 13~14세 전후의 어린 소녀 학생들로서 “일본에 가면 상급학교에 갈 수 있다”는 등 감언이설에 속아 일본 내 노동현장에 동원된 뒤 강제노역에 종사한 피해여성을 의미한다. 미쓰비시는 어린 소녀들을 근로정신대로 동원한 후 열악한 노동 환경 속에 가혹한 강제노동을 시켰고, 패전 후에는 임금도 주지 않은 채 현재까지 사죄 한번 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피해자들은 귀국 후 일본군 성노예에 해당하는 종군 위안부로 오인되면서 가정이 파탄 나는 등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모진 삶을 강요받는 이중고를 겪어 왔다.

판결 선고 직후 공동기자회견 장소인 광주지방변호사회관은 국내외 신문·방송 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변협과 시민모임의 공동기자회견이지만, 일본 측 참가자들에 대한 통역 문제가 있어서 사회는 시민모임 측이 주로 맡았고, 법률적인 부분에 대한 설명과 그간 변협의 활동 등에 대해서는 변협을 대표해서 내가 진행했다.

기자회견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변협과 시민모임의 승소판결에 대한 성명서 발표 순서였다. 위철환 협회장님은 ‘일제피해자 승소 판결, 법치주의의 승리이자 역사 바로 세우기의 초석이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낭독했다. 성명서 중 “일제 전범 기업들로 하여금 일제피해자에게 배상을 명하는 이번 판결은 한·일 간의 불행한 역사 속에서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당한 피해자들의 권리를 되찾아 주고, 이 땅에 정의를 바로 세우는 초석이며, 대한변호사협회는 왜곡된 역사를 바로 세우고 실질적 법치주의를 구현하는 이와 같은 법원의 판결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는 부분에서 많은 박수와 갈채가 쏟아 졌다. 이어진 시민단체의 성명(제목 : 일제 전범기업에 안락은 없다)도 명문장이었다. “어린 나이에 강제동원된 것도 모자라, 고국 땅에서 위안부라는 오인으로 가정 파탄까지 겪어야 했던 통한의 세월을 어떻게 한 두 마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점에서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에게 해방 68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비로소 ‘봄’을 맞았다”는 말씀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기자회견 당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 있었다면, 그것은 단연코 일본에서 판결을 보기 위해 직접 한국을 방문한‘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의 변호사 등 임원들의 모습이었다. 이 분들은 지난 14년 동안 피해자 할머니들의 일본 내 법정투쟁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 이 분들이 손에 태극기를 들고, 피해자들과 진심으로 기쁨과 위로를 나누는 모습에 진한 감동을 받았다. 이 분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승소판결도 있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난 11월 18일. 미쓰비시가 항소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실망감이 컸지만, 일본 내에 여전히 살아있는 양심이 존재하고 있기에 나는 피해회복을 위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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