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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변협에서 ‘명예변호사’로 위촉되신 소감은 어떠신지요?명예변호사는 '모범적 변호사상'을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니 몹시 부담스러운데, 앞으로 그렇게 살라는 편달로 받겠습니다. 로스쿨이 도입되면서 저는 ‘법조윤리’를 매년 강의하는데, 첫 시간에 학생들과 함께 ‘변호사윤리강령’을 낭독합니다. 주어를 분명히 넣어서 “나, OOO는, 기본적 인권의 수호와 사회정의의 실현을 사명으로 하겠습니다.” 이렇게 서서 낭독하면, 가슴에 뭔가 찡하게 오지요.명예변호사로 위촉해주신 대한변협에 감사드리며, 변호사윤리장전에 있는 변호사 사명을 수임변론이
인터뷰
인터뷰어 Ι 박상흠 신문편집위원
2020.12.07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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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기자가 되신 이유, 법조인의 길을 택하신 이유, 법조전문기자로 일하시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반갑습니다. 제가 신문에 소개될 만한 장점이 있는 사람은 아닌데, 변호사로서 기자로 일하는 것이 특이해 보여서 그러셨을까요. 내세울 만한 것도 없는데, 대한변협신문이 인터뷰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부터 드립니다.저는 로스쿨 진학 전에는 파이낸셜뉴스, 경향신문 법조팀에서 일했어요. 애당초 기자가 된 것은 ‘재미있을 것 같아서’라는 대답이 제일 정직한 대답일 듯합니다. 사회적 공기로서 기능한다거나 어떤 지사적 포부를 품었다기보다는, 남보다 더 빠르게 어떤 정보를 알게 되고 또 이를 가감 없이 대중에게 전달함으로써 사회를 움직이는 기자의 역할 자체가 제겐 대단히 매력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체력이 닿는 한,
인터뷰
인터뷰어 Ι 김 철 신문편집위원
2020.05.11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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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0대 로펌 중 하나인 다청덴튼스에 유일한 한국 변호사이신데, 중국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저는 성균관대학교에서 중국 철학과 경영학(복수)을 전공했습니다. 전공 영향으로 학부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중국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북경으로 1년간 어학연수를 다녀온 경험이 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푸단대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당시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중국에 진출하던 시기였고, 저는 ‘중국통’이 되어 중국에 진출한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을 석사졸업 후 진로로 정하였습니다. 하지만 경영학 전공으로 푸단대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영어원서로 입학시험 준비를 해야 했고, 입학 후 커리큘럼도 한국에서 공부하던 경영학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서는 진지하
인터뷰
인터뷰어 Ι 이효주 신문편집위원
2020.04.13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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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변호사님께서는 사기업, 공공기관, 공무원, 교수 등 다양한 이력을 보유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다양한 직업을 가지게 된 이유와 그 중 특히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하신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 성과시스템 추구제가 대학을 입학했던 시기에는 아직 온라인 교육이 발달하기 전이라 지역마다 입시학원들이 많이 있었고, 고등학교 때 다녔던 학원 원장님이 저를 눈여겨보시고는 대학가면 꼭 찾아오라고 해서 인사드리려고 갔더니 저에게 단과학원 강사를 추천해 주셨습니다. 당시 수강료가 2-3만원 수준이라 과외비에도 못 미쳐 거절했지만 수강생 증가에 따라 강사가 50%의 이익이 생기므로 조금만 노력하면 과외비보다 나을 거라고 유혹하셨고, 호기심 많던 저는 덥썩 시작을 했습니다. 초기 10여
인터뷰
인터뷰어 Ι 신동욱 신문편집위원
2020.03.30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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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협 사상 최초 여성 사무총장으로 취임하신 지도 어느덧 1년이 되었습니다. 지난 한 해 소회가 궁금합니다.이찬희 협회장님을 보좌하면서 변협 사무를 돌본지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변협의 시계는 정말 빠르게 돌아갑니다. 제50대 집행부 임원분들과 발맞춰 전국 회원들의 권익을 돌아보고, 사무국 살림을 총괄하다 보니 눈 깜짝할 새에 임기의 반을 채웠습니다.여성 변호사로서 처음으로 변협 사무총장직을 맡게 돼 세간의 이목도 집중되고 부담감이 컸지만, 그만큼 사명감도 컸습니다. 많은 여성과 청년 등 후배 변호사들이 직장 내 스트레스와 일가정 양립, 금전적 어려움 등을 겪으며 변호사 직무 자체에 회의를 느끼는 경우를 볼 때마다 선배 변호사로서 앞장서서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변호사 대표단체인 변협의 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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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리 Ι 대한변협신문 강선민 기자
2020.03.16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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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공약 사업을 시행해오셨는데 그간 활동성과에 대해 한 말씀해주세요.올해는 정말 바쁘게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변호사 역할에 대한 사회 인식은 변했고, 법률시장의 경쟁도 날로 치열해지는 것 같습니다. 저의 첫 번째 공약사업은 회원 업무 전문화를 위한 구체적 방안 마련이었습니다.우리 회에는 지식재산권법, 의료관련법, 조세관련법 등 9개 전문분과위원회가 있습니다. 위원회 활성화를 위해 대한변호사협회로부터 위원회 연구 및 세미나 활동을 전문연수로 인정받았습니다. 그 결과 위원회들이 월 1회 이상 발표와 토론을 하며 전문화에 힘쓰고 있습니다.최근 3회에 걸쳐 가사 전문 법관들을 초청하여 가사법 전문연수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가족관계등록 비송, 후견제도 개관과 쟁점, 이혼재산분할과 상속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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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어 Ι 이효주 신문편집위원
2019.12.09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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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사업가, 변호사 등 이력이 화려한데, 이렇게 다양한 분야를 경험하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한의대를 들어가면서 제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1988년 경희대 한의대에 입학해 한방소아과 인턴 레지던트 석·박사 과정을 마친 후 1999년 사회에 나왔습니다. 어떤 분야를 할까 생각을 하다가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한 한의원을 시작해보자 생각했고, 최초의 소아 한의원인 ‘함소아한의원’을 열었습니다. 아이를 전문 대상으로 해서인지 학부모들의 인기를 끌었고, 엄마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의원을 네트워크 방식으로 전국에 70곳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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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어 Ι 허윤 신문편집위원·변협 수석대변인
2019.11.18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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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지역 변호사로선 최초로 인천회장이 되셨습니다. 출마 당시 선거 공약은 무엇이었고 현재 어떻게 추진 중이신지요?먼저 조직의 발전을 위해 회장을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회장 탄핵 규정을 신설하고, 심의기구였던 상임이사회를 의결기구로 승격시키는 등 회칙을 개정할 예정입니다.인천지방변호사회에 계신 여성변호사 130여분의 고충을 제대로 전달받고자 우선 상임이사 중 여성이사직을 신설하였고 추후 여성 부회장직을 신설할 예정이며, 장기적으로는 유치원 신설, 출산육아휴직시 회비 감면 등도 고려할 예정입니다. 그 외에 육아기금도 마련 중입니다. 현재까지 7100만원 정도 모였고, 앞으로 매년 3000만원씩 적립할 계획입니다.현재 인천회 개업회원은 578명으로
인터뷰
인터뷰어 Ι 이지은 위원
2019.10.14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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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회장으로 취임하신지 벌써 반년이 훌쩍 지났는데 소감이 어떠신지요?서울회장으로 취임하여 여러 변호사님들과 소통해보니 날이 갈수록 국내 법률시장을 둘러싼 환경이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변호사 수는 급증하는데 국내 법률시장의 매출규모는 그대로고, 오히려 사건 수는 감소하는 경향입니다.따라서 신규로 자격을 취득하여 서울회원이 되신 변호사님들의 경우 예전보다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변호사생활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이러한 환경에서 2만명의 변호사를 대표하는 변호사단체의 수장으로서 어떻게 변호사님들께 보다 많은 기회를 제공해드릴 수 있을까, 일하기도 바쁜데 변호사단체가 변호사님들께 너무 많은 부담을 드리는 것은 아닌가 고민하며 반년을 보냈습니다.전국 14개 지방
인터뷰
인터뷰어 Ι 이충윤 위원·대한변협 대변인
2019.10.07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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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해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위반이라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중국 피해자에게는 화해금을 지급했지만, 한국에는 피해금 지급을 막고 있는 상황입니다. 강제징용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지금까지 일본 정부나 일본 최고재판소도 한일 청구권협정에 의해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다고 해석해왔습니다.예를 들어, 1991년 8월 27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외무성의 야나이 슌지(柳井俊二) 조약국장(당시)은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해 한일 양국이 국가로서 가지고 있는 외교보호권은 상호 포기했으나, 개인의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라는 취지의 답변을 했습니다.또한 일본의 최고재판소는 2007년 4월 27일, 중국인 강제동원 피해자가 일본기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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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어
2019.09.30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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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간 검사로 재직, 농사일, 100일간 출가, 변호사 개업 등 다양한 이력이 있으신데요. 변호사님께서 이렇게 다양한 삶을 사시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보통 검사나 판사를 그만두면 바로 변호사 개업을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시골로, 절로 들어갔으니 좀 특이하게 보이기는 할 겁니다. 조금은 남다른 삶의 계기는 산속 고시원에서 시험 공부할 때 겪었던 경험에 있는 것 같습니다.전 가정환경 때문인지 굉장히 소심했습니다. 가난한 소작농에다 아버지 주사가 심해 집이 어두웠지요. 저도 어둡고 열등감이 많아, 스스로를 솔직히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친구가 없었고, 사회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습니다. 대학 3학년 때 절에서 운영하는 고시원에서 사법시험 공부를 했는데 어느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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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어 Ι 김영미 위원·대한변협 대변인
2019.08.19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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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만화공모전에서 수상하셨고, 대학 졸업 후에는 애니메이션 회사, 광고 회사를 다니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변호사로 진로를 바꾸게 되셨나요.법대에 가보니 고등학교 때보다 더 숨 막히는 일방적 교육이라서 조금 실망했고 자연스럽게 법대생 아닌 법대생이 되어 대학교 만화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문학과 예술에 취미를 붙이게 되었습니다.졸업할 때 마침 만화, 애니메이션 공모전에서 수상을 한 계기로 애니메이션 회사와 광고 회사를 3년 동안 다니게 되었는데 IMF가 오고 직장 상사들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서 미래도 깊이 고민을 하게 되더군요.그래서 20대 후반 뒤늦게 사법시험을 봤는데, 고시생 생활을 하면서도 창작 욕구를 버리지 못해 신림동 고시촌 고시신문에 ‘고돌이의 고시생일기’라는 4컷 만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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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어 Ι 장윤미 위원
2019.07.01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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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지방변호사회장협의회 역할은 무엇인지, 회장으로서 협의회를 어떻게 꾸려나가실 것인지 알려주십시오.전국지방변호사회장협의회는 지방변호사회 회장들의 모임이었는데 지난 1월부터 대한변협의 자문기구로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방변호사회 회장들이 변호사들의 애로사항을 함께 논의하여 대한변협에 건의하고, 대한변협에서 자문을 구하는 사안에 대하여 의견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각 지방변호사회 회장이 모여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다보니 각자 의견을 솔직하게 낼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의견을 수렴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모두 합리적이신 분들이라 운영에 어려움은 없습니다. 울산지방변호사회 회장으로서 울산회 회원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계십니까.회장으로서
인터뷰
인터뷰어 Ι 박상흠 위원
2019.06.24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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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어떤 책을 주로 읽고 계시나요. 또 가장 좋아하는 법정 소설이나 문학 작품은 무엇인가요.특별히 정해진 분야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제 저녁에, 헨리 제임스의 중편소설인 ‘정글의 짐승’을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인생의 의미에 대하여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그리고 케네디 대통령 시절의 쿠바 미사일 위기와 관련한 의사 결정을 분석한 ‘결정의 본질’이라는 책을 얼마 전에 읽었는데, 조직의 의사결정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지금은 영화 제작과 관련한 개인적인 필요가 있어서 일본제국주의 시대의 만주국에 대한 책을 살펴보고 있습니다.좋아하는 작품에 대해서는 답변하기 매우 어려운 이야기이고, 교과서적인 답변은 피하고 싶습니다. 이런 질문이 있을 때면 소설 ‘오스
인터뷰
인터뷰어 Ι 박상흠 위원
2019.02.2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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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장으로 재임하는 지난 2년 동안 대통령 탄핵심판, 현직 대법원장 테러, 전직 대법원장 구속 등 대한민국 사법역사상 초유의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임기를 마치는 소회 역시 남다른 점이 있을 것 같은데, 소회를 한 단어로 축약할 수 있을까요?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매우 심각함을 느꼈으며, 대한변협도 문제 해결에 기여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번민했습니다. 한편 대한변협이 어지러운 시국 속에서 균형을 잘 잡고 공명정대한 입장을 취하면 법조계의 혼란을 바로잡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아가 대한변협이 대한민국에 법치주의를 정착시키고, 국민을 위한 법제도 개선에 기여할 수 있으며 국민의 기대도 크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2년의 키워드는 ‘희망’이라고 하겠습니다.
인터뷰
인터뷰어 Ι 송해연 공보이사
2019.02.18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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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As a Korean lawyer, practicing in Singapore and teaching in Japan”이라는 한 문장이 현재의 저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것 같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46회 사법시험을 합격한 변호사로, 현재 싱가포르 로펌 운앤바줄(Oon & Bazul)에서 국제분쟁해결팀 파트너 변호사이자 한국팀 팀장을 맡고 있고, 동시에 일본 큐슈대학교 법과대학에서 국제중재 및 지적재산권분쟁해결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한국 변호사로는 드물게 싱가포르 로펌 파트너 변호사로 근무하고 계신데 싱가포르로 가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지요?싱가포르와의 첫 인연은 2010년 싱가포르의 한 로펌에 파견 근무를 하게 되면서 시작됐습니다. 그리
인터뷰
인터뷰어 Ι 임유정 위원
2019.02.11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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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회 회장이 되신 후 가장 보람을 느끼신 일은 무엇인가요.강원지방변호사회는 춘천권, 원주권, 영월권, 강릉권, 속초권의 5개 권역으로 나뉘는데, 권역마다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있어서 소속 변호사들이 한번에 한 장소에 모이기가 힘듭니다. 춘천에 춘천지방법원이 있어서 법원 기능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강원도 지역 중 춘천은 정보력이 앞서는 반면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은 뒤처집니다.회장이 된 후에는 춘천 외 지역이 정보에서 소외되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 강원회 소속 변호사 모두를 밴드에 가입하도록 했고, 이사회 카카오톡 단톡방에서 회원간 신속한 정보 공유와 투명한 회의가 진행되도록 했습니다. 또 청년 변호사들은 자격 취득 5년이 되기 전까지 강원회 회비를 할인받도록 했습니다. 청년변호사들이 연간 30만
인터뷰
인터뷰어 Ι 박상흠 위원
2019.01.07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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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저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고에서 태어났습니다. 미국 해군 장학금으로 UC버클리 대학교 학부과정과 로스쿨을 마쳤습니다.뛰어난 교육을 제공하는 UC버클리 대학교의 공공교육과 미국 해군의 장학금 제도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공공교육과 장학금 없이는 로스쿨을 다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캘리포니아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 다시 미국 해군의 Judge Advocate General’s Corps의 일원으로서 검사, 변호사, 미국 검찰총장의 특별 보좌관, 그리고 대테러 위원회 등에서 일했습니다. 총 23년의 현역 및 예비역 복무기간을 마치고 2002년부터 학계에서 일하게 됐습니다.위스콘신 대학교의 펠로우십 프로그램을 통해
인터뷰
인터뷰어 Ι 강지원 제2국제이사
2018.12.31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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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변협 블록체인 TF 위원장이 되신 것을 축하합니다. 블록체인 TF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현재 블록체인 관련 산업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법 제도는 전혀 존재하지 않고 있습니다. 산업은 존재하는데 이를 보호하고 규제할 법 제도가 존재하지 않아 많은 혼란이 야기되고 있습니다. 이에 정부에서도 관련 법률안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우리 TF는 이러한 법률안에 대한 의견을 제공하고 새로운 법률안에 대한 입법해석을 하는 것을 주된 업무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블록체인 산업을 발전적으로 제도화할 수 있는 법률규범이 나오게 하는 데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현재 정부에서는 ‘ICO를 규제하겠다’ 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정부의 ICO 규제 방안에 대하여 여
인터뷰
인터뷰어 Ι 김준환 위원
2018.12.10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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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변협신문 독자들에게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저는 상파울루에서 일하고 있는 브라질 변호사입니다. 1977년 대학을 졸업하고 얼마 되지 않아 독일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독일에서 약 4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일하고 영국 런던 로펌에서 일했습니다. 독일에서 변호사로서 일하면서 동시에 쾰른대학교(Universitat zu Koln)에서 LL.M. 과정과 유사한 학업을 이수했습니다.그리고 리우데자네이루에서 11년을 보냈습니다.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시작한 로펌은 성공적으로 성장했고 상파울루에도 사무실을 두게 됐습니다. 상파울루의 사무실이 커지면서 저도 상파울루로 이동했습니다. 이후에 Motta Fernandes 로펌과 합병을 하게 됐고 아직까지 이곳에서 일하고 있습니다.제 회무 경험은 세계청년변호
인터뷰
인터뷰어 Ι 강지원 제2국제이사
2018.12.03 09: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