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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가 사건만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았거든요. 로펌의 전체적인 방향, 미래를 총체적으로 고민해야 하더라고요. 모든 게 새롭고 흥미진진합니다.”이번 ‘변협이 만난 사람’은 인터뷰 대상자 중 가장 변호사 연차가 낮은 사람이다. 변호사로 새 출발한 지 막 100일이 돼가는 윤재윤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를 만났다.“법원장을 하시다 바로 변호사가 된 소감은 어떠세요?”“춘천지법 법원장 시절은 참 행복했어요. 작은 법원이지만 사법행정적 측면에서 재판을 어떻게 하면 잘할까 고민도 많이 했고 할 일도 많았습니다. 특히나 감사한 점은 지법원장이 고등법원 재판장이 돼서 계속 재판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에요. 2010년 8월에 부임해선 고등법원 원외재판부로 민·형사재판을 전부 처리해서 무척 바빴어요. 지난해
인터뷰
대한변협신문
2012.06.25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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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이디가 독립군이잖아요. 아내한테 매번 그래요. 독립운동 하시던 분들은 36년 동안 죽을 각오로 일하셨고 실제로 고문과 투옥을 겪고, 생명을 잃으셨잖아요. 이거 가지고 힘들다고 하면 천벌 받는다, 그럽니다.”대한변협 일제피해자지원특별위원회 회의 참석차 대구에서 올라온 최봉태 변호사를 붙잡고 인터뷰하며 20년 가까이 돈 안 되는 일 하는 거, 집에서 뭐라 그러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다.최봉태 변호사(51).2012년 5월 24일 역사적인 대법원 판결이 선고된 이후 언론에 많이 등장한 변호사다. 독립운동을 한다는 각오로 일제피해자들의 권리회복을 위해 일한 지 20여년. 하나씩 결실을 맺어가고 있다.“어떻게 일제피해자 권리회복 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제가 1994년부터
인터뷰
대한변협신문
2012.06.19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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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원 변호사와 처음 만난 곳은 서울 종로구 창전동 ‘타고난 적성찾기 국민운동본부’ 회의실이었다. 계속 사람들이 드나들어 인터뷰 진행이 어렵자 버스 한정류장 정도 거리의 ‘푸르메재단’으로 갔다. 장애인을 위한 각종 시설이 있는 ‘푸르메재단’의 푸르메치과 진료소 앞에서 인터뷰를 이어서 진행했다.“저 이렇게 살아요. 각 사회단체들 순례하면서. 아시다시피 제가 청소년보호운동을 해왔잖아요. 청소년들이 불행한 이유가 자기의 적성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적성찾기’ 운동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청소년의 10분의 1이 장애인이고, 이들이 더 힘들게 살고 있어서 장애인 운동을 하게 됐어요.”그의 관심, 그의 사회참여는 그렇게 계속 진화하고 있었다.강지원 변호사(63).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변호사
인터뷰
대한변협신문
2012.06.11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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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 변호사들이 그야말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면서 변호사 취업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그렇게 동토의 땅이 돼 버리면 가장 힘든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여성변호사들이다.41기 미취업자의 70~80%가 여성이라는 이야기부터 출근 전날 “남자 변호사 구했으니 나오지 말라”는 전화를 받았다는 여성변호사 이야기까지 황량한 소문이 돌고 있는 상황에서 위기의 대책을 강구 중인 여성변호사회 회장 김삼화 변호사를 만났다.“최근 여성변호사들의 상황이 너무 어렵습니다.”“사법연수원은 그래도 정량 평가가 가능했는데 로스쿨 체제에선 보이지 않는 차별이 가능한 기조가 아닌가 걱정스럽습니다. 41기 연수원생 중 62명이 검찰로 갔는데 59%가 여성이에요. 로스쿨 1기생은 42명이 검사가 됐는데 여성이 13명, 30%에
인터뷰
박신애 편집장
2012.06.05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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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함께 경쟁해 주신 민주통합당 정범구 후보님과 선거캠프 여러분께 감사하다는 말씀과 아울러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번 선거에서의 승리는 저 개인의 승리가 결코 아닙니다. 정체된 지역현안의 변화를 꿈꾸고, 새로운 발전을 희망하시는 중부4군 군민 여러분의 열망이 승리한 것이고, 저와 제 아내에게 지난 4년이 넘는 기간 동안 군민 여러분께서 주신 사랑과 가르침의 승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번 선거에서 “달라진 게 없습니다. 요번에는 바꿉시다”라는 슬로건을 걸고 선거에 임했습니다. 제가 내걸었던 슬로건은 제가 임의대로 만든 슬로건이 아니라 지난 4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제가 군민 여러분들로부터 들었던 말씀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군민 여러분의 이러한 간절한 명령을 신성한 책무로
인터뷰
대한변협신문
2012.05.30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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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지역민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저를 선택해 주신데 대해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40년 가까이 이 지역 출신 국회의원이 배출되지 않았던 만큼 실망시켜드리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제가 당선된 부산 북구강서구을 지역은 現 국회의원이신 허태열 의원께서 내리 3선을 해온 곳이라서 정치에 첫 발을 내디딘 제가 공천을 받아 당선될 것을 예상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새누리당 공천을 받은 다음에도 도전의 연속이었습니다. 상대 후보인 민주통합당 문성근 최고위원은 故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이자 영화배우로서 전국적인 인지도를 지닌 반면, 저는 지역 주민에게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정치 신인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문성근 후보가
인터뷰
대한변협신문
2012.05.30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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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성공한 것처럼, 이제 갓 쉰살인 변호사가 너무 다 이룬 것으로 보일 때 무엇을 물어봐야 할까? 오히려 그게 걱정이었다. 김갑유 변호사. 국제중재 부분에 있어 자타공인 국내 최고임을 넘어 미국중재협회(AAA)의 상임위원, 런던국제중재법원(LCIA), 국제상업회의소(ICC) 국제중재법원 상임위원 등 세계 3대 국제중재기구 상임위원으로 모두 선임되는 세계 최초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청년변호사들이 가장 배우고 싶어 하는 롤모델, 김 변호사를 만나면 그의 성공 이유를 캐내야겠다고 다짐하며 법무법인 태평양의 접견실에서 만났다.“대구 태생이시죠?”“아, 네. 뭘 그런 걸. 고조 때부터 본적인 대구 종로 약령시 부근에서 살았습니다. 2남2녀의 막내로 사랑을 많이 받고 컸죠. 형님은 한의사를 하
인터뷰
대한변협신문
2012.05.30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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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대신 인물을 기준으로 투표한 시민들의 결단에 감사드립니다저 민홍철을 당선시켜주신 데 대해, 먼저 김해시민 여러분께 큰절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의 당선은 민홍철 개인의 영예가 아니라 김해시민의 승리입니다. 새누리당의 텃밭으로 다져진 지역에서 공고한 ‘정당정서’의 거대한 벽을 무너뜨린 데 큰 보람을 느낍니다. 정당 대신 인물을 투표의 기준으로 선택하신 우리 시민들의 결단을, 그래서 더욱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김해의 변화와 새로운 미래에 대한 갈망을 저 민홍철을 통해 표출하신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선거를 치른 지 이미 한 달 이상 지났습니다. 선거 과정의 앙금을 털고, 다시 한마음이 되어 지역발전에 힘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다른 후보를 지지하신 시민들의 뜻도 겸허히 수렴해 서민경제 회생
인터뷰
대한변협신문
2012.05.22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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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 여러분께서 보내주신 사랑에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정말 과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유권자 여러분께서 주신 사랑에 감사와 함께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광명을 국회의원선거는 밖으로는 무능·불통의 MB정권과 새누리당을 심판하고, 안으로는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구태정치를 심판하는 선거였습니다. 저의 진정성과 참신함 그리고 변화의 필요성을 광명시민들께서 공감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이명박 정권심판, 민생경제 회복, 광명의 새로운 발전을 위한 새로운 정치인으로서 저를 선택해주신 것입니다. 선거운동기간 내내 유권자 여러분께서 보내주신 응원·열정을 보면서, 그리고 당선이 확정되었을 때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시는 것을 보면서 큰 사랑에 반드시 보답해야겠다는 책임을 느꼈습니다.해야 할 일이 너
인터뷰
대한변협신문
2012.05.22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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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겸손하고 더 낮은 자세로 국민 목소리에 귀기울일 것야권 단일후보인 저와 민주통합당, 그리고 야권연대에 보내주신 성원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치열했던 당내 국민참여경선 과정과 선거운동 기간 내내 자신의 일처럼 걱정해 주시고, 도와주신 모든 분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이번 총선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 실패를 심판하고, 국민적·시대적 요청인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 실현 등 시민 여러분께 진정 도움이 되는 정치를 해야 한다는 열망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선거기간 동안 지역 곳곳의 많은 분을 만나 이야기를 충분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지역 주민의 뜻과 바람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고,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 깊이 생각하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인터뷰
대한변협신문
2012.05.22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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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먼저, 저를 압도적으로 지지해주신 서초구민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서초구민들께서 저를 지지해주신 것은 단순히 국회의원후보 김회선 개인을 지지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새누리당과 저를 선택한 것이라고 봅니다. 대한민국과 서초구의 발전을 위해 현명한 선택을 해주신 구민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또한, 그동안 제가 살아오면서 국가와 사회로부터 받은 많은 혜택을 이제 나라와 서초구민들께 되돌려드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은 하늘이 내린 축복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앞으로 초심을 잃지 않고 오로지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겠다는 약속을 드립니다. 소신있는 정치인 되겠다저는 공직 경험은 많지만 정치권에서는 신인입니
인터뷰
대한변협신문
2012.05.22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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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군법무관으로 걸어온 최초의 길, 보람있었다그녀를 만난 것은 10년도 더 전의 일이었다.최초의 여성 군법무관으로 임관하여 10년간 유일한 여성 군법무관으로서 중령으로 일하고 있을 무렵, 용산의 국방부 법무관리관실에서 만났었다.이은수 여성 법무실장. 별을 단 첫 여성 법조인인 셈이다. 인터뷰를 가기 위해 대전 계룡대를 향한 기차에 올랐지만 그가 10여년 전 그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그 춥고 길었던 겨울이 언제였냐는 투로 새침하게 말하는 아가씨처럼 봄날의 햇살이 화사한 5월 어느 날, 서초동을 벗어난다는 것만 좋아하고 마감에 쫓겨 제대로 인터뷰 준비를 못해 걱정이 태산이었다.만나자마자 10여년 전 그녀임을 알 수 있었고 친밀감 속에 대화를 시작했다. 인터뷰라는 것이 식사 한번 하는 것과는
인터뷰
대한변협신문
2012.05.22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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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을 흔히 ‘민변’이라고 약칭한다. 과거 독재정권 당시 온몸을 던져 투쟁한 변호사들의 뜻과 사상을 잇고 있다. 많은 선배변호사들이 후배들에게 감동을 줬다. ‘법과 인간의 항변’이라는 책을 쓰고 감옥에 간 한승헌 변호사를 존경했다. 변론을 하면서 바른말을 하다 구속이 된 강신옥 변호사도 우러러보고 있다. 청계천에서 분신을 한 전태일을 가슴에 담고 평전을 쓴 조영래 변호사도 우상 같은 존재다. 재벌과 돈을 위해 뛰는 변호사도 있지만 소수자와 약자를 위해 자신을 던지는 변호사도 있다. 그런데 어떤 이는 민변을 철저한 좌파라고 매도하기도 한다. 회장 출신에게 접촉했지만 경계하고 말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이번에 다시 시도했다. 민변 회장인 김선수 변호사에 대해 알아보았다. 서울대학교 법
인터뷰
엄상익 공보이사
2012.05.15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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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전부를 투자해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 ‘어렵게 얻은 이 자격증으로 어떻게 하면 나를 위해, 남을 위해 보람되게 살 것인가’ 하는 의문에 빠져들었다. 황금 같은 젊은 시절과 노력을 바쳐 얻은 자격을 통해 남을 도우며 즐겁게 앞으로의 인생을 살고 싶다는 것, 이것이 법조인 초년생으로서 나의 이상이었다. 합격 직후 그런 고민을 하던 중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를 읽고, 헬렌 니어링의 소박하고 자유로운 정신과 자연에 가까운 삶의 방식에 큰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변호사로서 내 모습도 헬렌 니어링의 정신에 가까울 수 있다면 좋겠다 싶었다.1999년 당시 변호사 초년생이었던 나는 ‘호주제 위헌소송’이라는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큰 사건의 일원이 되어, 2005년 마침내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아냈다
인터뷰
대한변협신문
2012.05.15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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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저를 믿고 끝까지 지지해준 춘천 시민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아마도 정치 신인으로 불리한 것을 요리조리 피해가지 않고 모든 사안에 솔직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좋게 봐주신 것 같습니다. 또 문제가 있을 때 이를 회피하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정면돌파하는 모습이나, 검사 출신에 엘리트라는 이미지를 벗어나 서민들에게 진정으로 다가서고자 했던 모습이 막판에 선거결과를 뒤집게 한 동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실 당선된 후 정말 기쁠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선거 때 내세웠던 공약실천과 춘천 시민들을 위해 할 일들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하지만 변화의 여망으로 저를 믿고 뽑아주신 춘천 시민들에게 또다시 실망을 끼치는 정치인이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인터뷰
대한변협신문
2012.05.15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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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총선이 끝난 지 벌써 한 달여가 지났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지난 두 달처럼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집약적으로 만나본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 시간, 종종 걸음으로 지하철 입구를 들어서는 시민들에게 일일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내일을 보장 받지 못하는 불안한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환경 미화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소박하나마 이웃이라는 끈끈한 공감대 속에서 아이들을 함께 키우고 있는 대안학교 학부모들과의 미팅을 통해, 서로 다른 얼굴만큼이나 다른 삶의 조건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만났던 모든 이들이 전부 나를 지지한 건 아니었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나에게 보냈던 무언의 응원이 있었다면 그것
인터뷰
대한변협신문
2012.05.15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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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적 이념과 가치 실현되는 사회를 꿈꾸다이석연 변호사의 인생행로는 특이하다. 그는 법제처 사무관으로 있다가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법제처는 그 시절 인기 없는 부서였다. 대부분이 어떻게 하면 다른 부처로 자리를 옮길까 하는 곳이었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그는 법제처의 사무관 자리로 원대복귀했다. 성적이 좋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렇다면 신분을 세탁해서 판사가 됐어야 맞다. 아니라면 적어도 인기 정부부처의 서기관쯤 가야 맞다. 그게 당시 보통사람들의 생각이다. 그런 욕구가 없었다면 그가 왜 사법시험에 합격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그의 다음 행보 역시 보통사람의 궤도와 다르다. 그는 헌법연구관이 됐다. 그 자리도 사람들이 선호하는 자리가 아니다. 변호사로서 돈 버는 데 도움이 될 직책도 아니다. 그의
인터뷰
대한변협신문
2012.05.10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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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연수원에서 독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공익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생기고 그를 돕겠다고 수많은 연수생과 교수들이 일정액의 기부를 약정했다는 것이다. 출세욕이 가득한 이기적인 엘리트 집단 속에서 이변이 발생한 것이다. 그 중심에 배의철 변호사가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열정에 불타는 에너지 가득한 30대 중반의 청년변호사라고 했다. 성경을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효모가 빵 전체를 부풀린다. 배 변호사가 바로 그런 사람 같았다. 나도 그 나이에 변호사를 시작했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바늘구멍 같았고 사회의식도 없었다. 어떻게 하면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까만 궁리했었다. 당시 내가 일하던 서소문 건물의 도로 건너편 명지빌딩에는 조영래 변호사의 사무실이 있었다. 내가 있는 건물
인터뷰
엄상익 공보이사
2012.04.24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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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의 이순신 동상이 허리에 손을 짚고 지그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선 끝에 1인시위를 하는 사십대 중반의 남자가 보인다. 녹색당을 창당한 하승수 변호사다. 그가 손에 든 피켓에는 ‘4·11총선을 탈핵과 4대강을 살리는 선거로’라는 글이 적혀있다. 녹색당 당수인 그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순신 장군과 마주보면서 지낸다. 그의 1인시위는 반쯤 직업화된 것 같았다. 지난해도 백일동안 원자력발전에 반대하면서 그 자리에서 1인 시위를 했었다.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 앞이 거의 그의 사무실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의 얼굴빛은 동상의 구릿빛과 거의 흡사했다. 각진 턱에 검게 탄 하 변호사의 얼굴에서 그 앞에 있는 장군보다 더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봄답지 않게 아직 심술을 부리는 찬바람 속에 그는 혼자 서 있었다.
인터뷰
엄상익 공보이사
2012.04.17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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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총선을 보름쯤 앞둔 2012년 3월 26일이다. 꽃샘추위의 서늘한 공기가 합정동 골목을 채우고 있었다. 그러나 골목 끝 자그마한 빌딩 5층의 사무실은 청년들의 열기로 달아올라 있었다. 새로 탄생한 청년당의 선거사무소 겸 본부였다. 사무실 한쪽에는 작은북을 치는 음악패도 있었고 또 다른 쪽에는 몇 명이 둘러서서 늦은 점심으로 피자를 나눠 먹고 있었다. 유리로 된 벽에 ‘1만 명이 모이면 현실이 됩니다’라는 글씨가 보였다. 청년당의 표어는 ‘가진 것도 없지만 못할 것도 없습니다’였다. 안철수 교수의 청춘콘서트에 참여했던 청년들이 만든 당이다. 청년당을 이끌어 가고 있는 주축의 한 인물이 여성변호사 강연재다. 대변인이자 비례대표 1번인 강 변호사를 만났다.“청년들의 문제를 압축시킨다면 뭘까요?”요
인터뷰
엄상익 공보이사
2012.04.13 15: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