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유중원 대표 단편선>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닉네임 : 유중원 변호사  2018-08-27 14:30:09   조회: 79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사랑은 가장 달고 가장 쓴 것.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로 되돌아간다.
나는 1969년 그때 육군 일등병이었는데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순전히 국가의 명령에 의해 전쟁터에 끌려갔고 얼마 후 작전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열대병에 걸려서 야전병원에 40여 일간 입원하여 생사의 기로를 헤맨 일이 있었다.
그러니까 밀림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저격수가 날려 보낸 총알이 몸에 박혀 부상을 입어서가 아니라 뜻밖에 정체불명의 열대병에 걸렸기 때문에 연대 의무실에 입원한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너무나 건강했는데 말이다. 글쎄, 왜 하필 나였을까. 그러니 나는 지금까지도 그 영문을 모르겠다. 모질고 억센 운명 (누가 운명을 관장하는지는 몰라도) 이외에는 그걸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지난 매복 작전에서 있었던 치명적인 전투에서도 온전하게 살아남았는데 말이다.
연대 의무대 군의관은 증상이 너무 심했으므로 자신이 손쓸 방법이 없음을 알고 신속하게 야전병원으로 후송했다.
나트랑. 십자성부대. 102 야전병원.
그 병의 증상은 이렇다. 처음에는 온몸이 불덩어리가 되었다가 열이 조금 식으면 다시 열병인 것처럼 발작적으로 오한이 엄습하여 전신경련을 일으켰다. 그때 무의식중에 까무러치며 마구 헛소릴 내뱉는 것이고 무언가를 한참 동안 웅얼거렸다. 악령에 들린 자가 전혀 알지 못하는 방언을 지껄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 헛소리는, 그 애절한 웅얼거림은 나의 무의식 속에 깊숙이 잠재되어 있던 영혼의 알아들을 수 없는 외침이, 혹은 중얼거림이 아니었을까.
내 몸은 계속해서 번갈아 찾아오는 불덩어리와 발작적 오한 때문에 근 보름 동안이나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오직 수액에 의지하고 있었으므로 몹시 피폐해졌다. 그러나 의식은 가끔 돌아왔다. 그리고 그때마다 환청, 환각, 착란, 망상에 시달렸다.
그 당시, 감수성이 극도로 예민했던 20대 초반 그 시절에 남몰래 흘린 눈물, 고통, 혼란, 체념 등에 대한 희미한 기억들이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지금까지 나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주 일찍부터 단념할 줄 알았다. 그리고 바보처럼 단순한 운명론자가 되어 버렸다.
나는 그때 담당 의사와 간호 장교의 암묵적인 대화와 중환자실의 환자에 대한 죽음의 은유를 의미하는 행동에서 짐작하건대, 내가 지금 죽어가고 있음을 놀랄 만큼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나는 틀림없이 죽을 것이고, 그것도 아주 빠른 시일 내에 죽을 것이고, 죽은 뒤에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자아의 부재에 대해 단념한 것이다.
나는 죽음의 문턱에서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육체는 거의 죽어 있었는데 의식은 희미하게나마 살아있어서 그들의 대화를 다 듣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의사가 말했다.
“호프리스야. 뇌가 완전히 망가진 거지. 약이 들어먹어야 말이지. 이미 죽은 거야. 끝장이 난 거지.” 간호 장교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게 느껴졌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모르지만 계속 깊은 잠에 빠져있다, 어쩌면 지금 꿈을 꾸고 있을 뿐이다, 아니면 일시적으로 착란을 일으키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깨어나고 싶었다. 나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비명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때 나는 살려달라고 외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병상에서 잠시 의식이 깨어날 때는 하염없이 누워서, 길고, 의식적이고, 자의적인 꿈과 환상 속을 헤매었다. 그러면 죽음의 공포가 사라졌었다. 하지만 그때는 독실한 무신론자여서 톨스토이의 소설 속 인물인 이반 일리치처럼 죽어가는 그 순간 위대한 신과의 대화를 시도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 순간 내가 죽어도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는 살아있을 것이라는 생각, 내가 죽어도 영혼만은 절대 죽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었다.

길쭉한 반원형의 간이 건물은 지붕이 주위 환경과, 특히 푸른 하늘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검은 색으로 칠해져 있다. 실내는 천장에 천천히 돌아가는 대형 선풍기가 매달려있긴 했지만 항상 무더웠다. 침대에 누워있으면 작은 창을 통해서 간신히 푸른 하늘 귀퉁이를 볼 수 있었다.
하늘에는 옅은 구름만 높이 떠 있다. 우기의 장마는 진즉 지나갔다. 더위는 지금 숨이 막힐 지경이다. 달빛 탓에 주위가 온통 짙은 잿빛으로 덮이는 밤이 되어야만 거의 느낄 수도 없는 부드러운 미풍이 불어왔다.
나는 잠깐씩 의식이 회복되기도 하고 몸을 움직일 수도 가끔 밖으로 걸어 나갈 수도 있었지만 여전히 그 증세가 나를 억누르고 있었다. 숲 속의 미지근한 바람은 잠깐이기는 하지만 정신을 맑게 해주었다. 하지만 증세는 오히려 악화되고 있었다. 간헐적으로 온몸이 불덩어리처럼 뜨거워지며 머리가 깨질 듯한 통증이 오고, 그때는 헛소리를 마구 지르고 고함을 외치며 내장 속에 들어있는 걸 몽땅 토해내야 했다.
김 대위는 언제나 냉담했고 단 한 번도 웃음을 보인 적이 없었다. 그는 친절한 의사가 아니었다. 맨날 뚱해서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그랬으니 병명이 무엇인지, 매일 수십 알씩 삼켜야 하는 알약의 효능이나 부작용, 치료 경과에 대해서 말해 준 적도 없고, 의사로서 ‘이제 위험한 고비는 지나갔어. 안심해도 될 것 같애.’라든가, ‘깊은 잠에서 마침내 깨어났다고……. 몸이 스스로 회복하고 있는 거야.’라든가, 빈말이거나 거짓말이거나 할 것 없이 위로의 말 한마디 말해준 적이 없었다.
그때쯤에는 가망이 없었으므로 나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여겼고 이왕 죽을 거라면 차라리 빨리 죽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밤 돌발적인 기습 사격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았으니까 이번에야말로 내가 죽을 차례였다.
그러므로 죽음의 일시적 지연이 지금 이 순간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말이다. 그건 치욕이고 회한이며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형벌일 뿐이었다. 어차피 죽음은 아주 가까이 다가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 죽어가고 있는 중이다. 매일같이 삶과 죽음의 순환이라는 인류 공통의 운명을 직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죽음은 고통과 번민으로부터 해방이었기에 가장 순전한 상태의 죽음의 세계는 나를 매혹하였고 나는 그때 자기 파괴적인 충동과 함께 죽음을 간절히 소망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명료한 의식 속에서 나는 이런 식으로 죽어서는 안 된다는 강렬한 의지가 되살아났다. 나는 격렬한 분노에 휩싸였다. 누가 무엇 때문에 나에게 사형 선고를 내릴 수 있단 말인가. 누가 사형을 집행할 것인가. 그러나 내 의지는 계속 비틀거리며 허우적거렸다. 끊임없이 삶의 희망과 죽음의 운명에 대한 생각들이 반복되었다. 그때 한창 철없는 나이였는데 벌써 심각하게 삶과 죽음의 의미를 곱씹고 있었으니.
그건 돌이켜 보면 자신의 운명에 저항하려는 처절한 몸부림이었고 긴박하게 닥쳐오는 운명을 늦추기 위한 안간힘이었다.
그날 늦은 오후에 나는 잠깐 의식이 회복되었을 때 병상에 누워 곧게 하늘로 올라가는 그 흰 연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조만간, 며칠 내로 흰 연기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생각하자 눈물이 두 뺨으로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내렸다.
화장터를 담당하는 영현병인 김 하사가 쇠꼬챙이로 불이 활활 타오르는 소각로 깊숙이 나를 밀어 넣을 것이다. 그러면 신체의 어느 부위인지 알아볼 수조차 없게 흩어져 있는 뼛조각 몇 점과 회색 재 한 줌만 소각로 바닥에 남을 것이다.
하지만 나를 옭아매고 있던 뿌리 깊은 냉혹한 공포감과 고통스러운 자아로부터 해방감을 맛보았다. 그리고 안도감을 느꼈다. 그 눈물이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흘린 것이었다. 그 후로 눈물 같은 것은 흘린 일이 없었다.
나는 그때서야, 눈물을 쏟은 후에서야 우리에게 지옥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황불이 활활 불타고 있는 지옥은 땅속 수백 미터, 수천 미터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을 터인데 영혼의 하얀 연기는 하늘나라로, 천국으로 올라가고 있었으니까. 그런 거야. 우리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무슨 흉측한 죄악을 지을 틈도 없었는데, 아직도 얼굴에 솜털이 보송보송하고 변성기이거나 막 지났는데, 동정이고 새벽이면 몽정을 하고, 젊은 여자애만 보아도 미칠 듯이 가슴이 울렁거렸는데, 어떻게 무슨 이유로 심판을 받고 지옥으로 떨어질 수 있겠는가. 나는 무신론자이지만 어떻든 천국으로 올라가는 거였다. 나는 희열을 느꼈다.
석양이 되어 선명한 저녁 햇살이 열대의 푸른 숲속으로 사라졌다. 그때 숲은 무언가 중얼거리고 휘파람을 불고 노래를 부르고 손짓을 하였다.

그러나 천신만고 끝에 살아나서 회복기에 있을 그때는 가벼운 죽으로 연명하였지만 여전히 계속되는 두통 증세로 신경이 예민해져 심한 불면증 때문에 고통을 받았다. 의식이 상당히 회복된 후에도 한동안 여전히 흐느적거리고, 중얼중얼거리고. 잠을 자지 못해서 눈알이 빠질 것 같았으니 내 시선은 초점을 잃고 나른해 보였다.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를 분간할 수 없었다. 좀비, 아니면 약간 미쳐버렸을까.
나는 그때 간호 장교에게 하소연하였다.
“김 중위님, 제발 독한 수면제 좀 줄 수 없어요? 잠을 못 자서 눈알이 빠질 것 같습니다. 절 좀 죽음처럼 깊은 잠 속으로 재워주세요.” 하지만 그녀는 애매하게 살짝 웃었다. 그녀는 수면제를 주는 대신 특유의 숙련된 손놀림으로 또다시 엉덩이에 무슨 주사를 놓아주었다. 내 엉덩이는 너무 많은 주사바늘 자국 때문에 온통 푸른 멍이 들어있었다.
그녀는 자주 맥박을 쟀고 청진기로 심장과 폐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었으며 차트에다 뭔가를 재빠르게 휘갈겨 썼다. 남자는 몸이 아프면 여자의 간호를 받는 게 최고다. 그러면 저절로 나을 것 같다.
그녀가 말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그 지경이 되게……. 그건 분명히 정신착란과 비슷했어.”
내가 말했다. “저는 기억이 없어요.”
“기억이 안 나겠지. 이런저런 온갖 검사를 다 해 보았지만 뚜렷한 게 없는 거야. 그래도 얼마나 다행이야. 더 이상 악화는 안 되었으니까. 중환자실에서는 하도 몸부림을 치니까 못 움직이게 몸을 단단히 고정시켜 놨다니까.”
나는 죽음과 같은 혼수상태에서 보름여를 보냈는데 이제는 겨우 깨어나서는 반대로 고도의 불면증 때문에 계속적으로 깨어있어야만 했다. 잠은 생리적으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데 잠을 못 자서 죽게 된다면 이 얼마나 끔찍한 죽음일 것인가. 나는 그 때문에 또다시 죽음의 고통 속에서 그 공포를 잊기 위해 끊임없이 비현실적이고 모호한 성격의 상상과 망상, 꿈과 환영 속을 헤맸다.
하지만, 하얀 무명 시트가 깔린 병상에서 눈을 감고 가만히 누워 있으면 아주 편안했고 그때는 즐거운 감각들이 들뜨면서 나를 둘러싼 현실 세계를 아름답게 채색하였다. 감정과잉 상태를 벗어나서 아름답고 기이한 환상 속으로 빠져들었던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때 환상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희미한 형상들을 보았고 그 형상들에서 신비한 기운을 느꼈다.
(물론 그때 죽어가면서 명료한 의식 또는 오락가락하는 흐릿한 의식 속에서 끊임없이 꿈꿨던 꿈의 내용을 지금은 거의 기억해낼 수 없다. 온통 꿈속이었다. 꿈속에서 또 하나의 꿈을 꾸고, 또 그 꿈이 또 다른 꿈을 꾸었다. 꿈의 연속. 그리고 너무 오랜, 까마득한 세월이 흘렀다. 내가 애써 기억해낸 기억의 파편과 부풀려 지어낸 것, 제멋대로 상상한 것들은 한 덩어리로 얽혀있어 분리하기가 불가능했고 함께 망각 속에 묻혀 있었다. 40여 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40년의 시간. 과거. 침묵. 망각. 그것은 시커먼 구멍이다. 그 속으로 사라진다.)
그렇긴 하지만 희미하고 파편적이긴 해도 모든 기억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세월이 그렇게 많이 흘렀다고 해도 어찌 사람들을 잊어버릴 수 있겠는가. 사람들의 기억. 장면들의 기억. 그것들은 세월도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이어서 마치 어제 일처럼 너무 생생하다. 그러나 과거의 삶은 안개 속에 가려져 있다. 그러므로 순수한, 단순한 문자 그대로 기억은 있을 수 없다. 기억은 질서정연하지 않다. 기억의 단속. 그런 의미에서 모든 기억은 이미 해석에 불과한 것이다. 이것은 기억의 변형이고 변주일 뿐이다.

나의 주치의였던 김현수 대위는 그 당시에는 작은 키에 여윈 체구로, 그러나 깨끗하고 흰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서울의대 출신이었다. 나는 지금 그의 소식을 까맣게 모른다. 아마 1970년대 의사들이 미국쪽으로 많이 떠났으니까 그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대학병원이나 대형 종합병원에서 내과 과장을 하고 정년퇴직을 하였거나, 또는 내과 의원을 바로 개업해서 돈을 많이 벌고 빌딩을 올렸을 수도 있다.
하여간에 지금쯤은 몸은 살이 쪄서 배가 툭 튀어나왔을 것이고, 주말마다 골프를 많이 쳐서 흰 얼굴은 알맞게 그을렸을 것이고, 머리는 틀림없이 대머리 혹은 반쯤 대머리일 것이다. 나도 늙었지만 그는 훨씬 많이 늙었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녀의 아름다움을 상상한다. 정말 예뻤다. 장담할 수 있는데 내가 지금껏 살면서 본 여자 중에서 제일 예뻤다. 나는 그녀의 얼굴이나 몸매를, 하얀 피부를, 슬픔과 기쁨을 동시에 보여주는 그 눈길을 더 이상 어떻게 묘사할 길이 없다. 불가사의한 매력으로 사람의 마음을 끌고 사로잡았다. 내가 그때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는 건 인간의 육체를 지닌 진짜 사람이 아니라 여신, 에로스의 얼굴과 몸을 가진 여신이었다.
하지만 나는 매번 그녀의 시선에 그대로 노출되면서 자존감을 잃고 더욱 쪼그라든다는 피해의식 때문에 그녀와 마주치는 것을 두려워했다.
내가 감히 여신을 사랑할 수 있을까. 그때 우리들 중환자실 환자들은 그녀가 출현할 때마다 숨을 죽인 채 넋을 놓았다. 그리고 몰래 그녀의 얼굴을 훔쳐봤을 뿐이다. 우리들은 감히 노골적으로 쳐다볼 수 없었다. 우리는 졸병이었고 그녀는 엄연히 장교. 그러나 그녀는 극히 사무적이었으니 아주 상냥했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깐 폴로렌스 나이팅게일 같은 백의의 천사 타입은 아니었다.
김혜진 중위.
나는 거의 회복되어서 원대복귀를 앞두고 있었다. 그날 저녁 김 중위가 있는 당직실로 갔다. 거기에 간 것은 처음이었다. 그곳의 풍경은 역시 군대식이어서 단순했기 때문에 친숙했고 긴장된 분위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는 좁은 실내에서 숨소리가 들릴 만큼 붙어앉았다.
하지만 그때는 연대작전이 끝나고 부상병들이 호송되면서 연이은 야간 근무로 그녀의 눈빛에는 긴장과 피로가 배어있었다.
나는 그녀가 말을 꺼내기를 기다렸다.
그녀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원대복귀한다고? …… 네가 원한다면 복귀를 늦춰줄 수도 있는데. 내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은혜를…… 그러나 빨리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내과 과장은 죽은 목숨이라고 처음부터 너무 쉽게 포기해 버렸다고. 항상 주머니에 작은 성경책을 넣고 다니는 독실한 신자이면서 말이야. 다시 생각하면 이해할 수는 있지. 도무지 손쓸 방법이 없었으니까. 여기는 인간의 목숨을 우습게 아는 전쟁터이거든. 내가 태연한 척 가장하며 무미건조한 어조로 말했다. 그럴 만했겠지요. 저 역시 미련을 버렸으니까요. 그녀는 마음에 상처를 입은 게 분명했다. 그녀가 말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함부로……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어린 네가 세상을 채 살아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억울하게 죽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 너에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뭔가가 느껴지거든. 때로는 간호사의 역할이 중요할 때가 있지. 김 대위가 효과를 인정했으니까 계속 그 약을 처방한 거야.
나는 화제를 돌리기 위해서 무심결에 말했다.
언제 귀국할 거예요?
그날 늦은 밤 눈썹처럼 가는 조각달이 하늘에 떴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녀의 표정이 너무나 쓸쓸하고 절망스러워 보였다. 그녀는 지쳐 있었다. 긴장과 피로 때문이라기보다는 야전병원의 고달픈 삶 자체에 지친 듯이 보였다. 아니면 사람을 한없이 늘어지게 만드는 더위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복잡한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잠깐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녀의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그녀는 눈물을 닦으면서 말했다.
왜? 연장 근무도 고려해 봤지만…… 과장의 응큼한 눈길도 꼴보기 싫고…… 간호과장의 등쌀도 지겨워서, 아무도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는 게 문제인 거지. 곧 귀국할 거야. 이 젊은 청춘에게 군대는 숨이 막히지. 제대 신청을 해야겠어. 우리 서울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내가 술을 살 거니까. 날 기억해 주었으면? 문은 닫혀 있지 않고 언제나 열려 있다고.
그 말은 나를 몹시 당황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 긴장된 상태를 완화시켜 줄 것 같은 뭔가 할 말이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간신히 말했다.
전 바보가 아니에요.
우리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천천히 일어섰고 미세하게 몸을 떨었다. 나도 덩달아 일어섰고 그녀가 강렬한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다고 느꼈다.
그녀의 뺨에 홍조가 더욱 짙어졌다. 모든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지고 있었다. 그녀가 밤의 불빛 속에서 갑자기 아름답고 생생하게 보였다. 그 순간 내 속에 납작 엎드려 있던 짐승의 욕망이 꿈틀거렸다. 나는 그녀의 매력적인 나체를 상상하며 성욕을 느꼈고 스스로 무안해서 움찔했다.
그리고 재빨리 문을 열고 나왔다.
그녀는 지금도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곱게 늙어가거나 또는 완전히 쭈그렁 할머니가 되어 살아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머리는 서리를 인 것처럼 하얗게 변했고 뱃살은 축 늘어져서 몸무게는 20킬로 정도 늘었을 것이 아닌가. 비슷한 나이의 다른 여자들과 전혀 다를 바 없이 그녀는 오래 전부터 외모에 대해서는 완전히 신경을 끊었을 것이다. 아니면 미인박명이라고 일찍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한동안 간호사를 계속한 걸로 가정한다면 그때 만난 노총각 의사와 결혼해서 2남 1녀쯤 자식을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상상해 본다. (하지만 그녀가 김 대위와 결혼했을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다. 그 당시 내가 보기에는 그들은 서로 간에 극히 사무적인 관계였지 사랑이나 애증이 얽힌 관계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찌 알겠는가?)

나는 원대복귀하기 전 날, 김 대위의 허락을 받고 나트랑 시내로 나갔다. 그는 그때쯤 날 동생으로 여겼는지 술을 마시면 안 된다고 심하게 잔소리를 하였다.
그가 말했다. “바깥 공기가 쐬고 싶겠지. 그럴 거야. 병동이 감옥처럼 얼마나 답답했겠어. 나트랑 비치에 가서 바닷바람을 실컷 들이마시라고. 그리고 시내에 가면 한국 식당이 있어. 오랜만에 진짜 한국 음식 맛을 보면 기분이 괜찮을 거야.
술 생각이 간절하겠지. 참으라고. 술을 마시면 도로아미타불이야. 네 몸이 술을 견딜 수 없다니까. 그러면 네가 다시 살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어…….”
나트랑에서 처음 나온 외출이었다.
나는 월남 인력거를 타고 야자수가 하늘거리는 바닷가 긴 백사장을 지나서 한가하게 시내를 한 바퀴 돌았다. 가끔 람부레타와 햇빛을 가리는 둥근 모자를 쓰고 아오자이 자락을 펄럭이는 꽁까이가 운전하는 오토바이가 앞질러 갔다. 그리고 노란 가사적삼을 입은 몇몇 승려들이 앞장서고 검은 만장을 든 행렬을 앞세운 상여와 마주쳤다. 그러고 나서 무작정 시내 중심가를 걸었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지은 유럽식 3층 건물인 작은 백화점으로 들어갔다. 백화점 안은 초라했고 진열대는 대부분 비어 있었다. 미군 PX에서 흘러나온 카메라와 가전제품이 진열되어 있기는 했다. 여자 점원은 그저 무심한 얼굴로 말없이 쳐다볼 뿐이다.
그리고 맥주홀에 갔다. 홀 안은 10개 남짓 둥근 테이블이 놓여 있고 대부분 월남 군인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나는 혼자 앉아서 생선 소스에 데친 나팔꽃채를 찍어 먹으며 캔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얼큰하게 취했다. 딱 한 잔만 마실 작정이었지만 다섯 캔까지 마셨다. 나는 군의관의 엄중한 지시사항을 어기고 말았다.
그러고 나서 김재수 하사가 가르쳐준 대로 2층집을 찾아서 한참 헤맸다. 건물은 무척 낡고 지저분했다. 1층 홀에서 늙은 포주에게 말했다. “붕붕, 오케이.” 그녀가 말없이 두툼한 손을 내밀었다. 나는 미리 준비한 5불을 건넸다. 미군은 8불, 한국군은 5불, 월남 군인은 3불로 무슨 규칙처럼 정해져 있었다.
포주의 안내로 2층 방으로 올라갔다. 꽁까이는 푸른 꽃을 수놓은 흰색 아오자이를 벗었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육체가 드러났다. 나는 그때 김혜진을 잠깐 떠올렸다.
나는 여자에게 이별 인사로 “꽁까이 감온옹(아가씨 고맙습니다)”이라고 말했다. 다시 잡화점 상점에 들려 그림 엽서들과 부처님을 본뜬 나무 인형을 산 다음 오후 늦게 귀대했다.

나는 퇴원하던 날 후련한 마음으로 환자복을 벗고 상병 계급장이 달린 군복으로 갈아입었다. 정글화를 신고 철모를 썼다. 그리고 김현수 대위에게 거수경례를 하였다. 충성!
김 대위가 말했다.
“유 상병은 오랫동안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했어, 그래서 깨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죽는 줄만 알았지. 도대체 병의 정체를 알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포기하려고 하였는데. 조직검사 결과 뇌종양이거나 무슨 암 덩어리가 머릿속에 들어 있었던 건 아니었던 거야.”
“그러니까 의학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 병이야, 그냥 열대지방의 지랄병이라고 할까, 또는 염병이라고 할까. 완쾌될 확률은 일 퍼센트도 안 되었지.”
“그래서 말이야, 필사적으로 약을 이것저것 처방하였는데 역시 섬망증에는 새로 나온 강력한 진정제 주사가 효과가 있었던 거지. 그때마다 정신이 아주 몽롱했을 거야. 그 약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 경로를 알 수는 없었지만 약효가 확실했지. 네가 차츰 반응을 보였으니까.”
“나는 그 약이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 나오는 ‘소마’라는 알약, 그러니까 진정제 역할을 하면서 행복감을 높여주고, 환각 상태에 빠뜨리는 그런 종류의 신비한 약이길 바랐던 거야.”
“유 상병이 살아난 게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거지. 기적 같은 것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믿을 수 없을 만큼 회복이 되었거든. 어쨌거나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도왔을 거야. 군목 장교가 두 번씩이나 병자성사를 했었거든.”
“네가 살아나서 내가 기쁘다구. 지난달에는 중환자실에서 많이 죽어 나갔거든. 얼마나 우울하던지…….”
“그때는 의사로서 한계를 절감하고 자포자기했으니까. 네가 한없이 불쌍했으니까……. 지금이니까 말할 수 있는 거야. 김 중위의 아이디어였던 거야. 정신과에서 간호사를 했으니까. 알고 있을 거야. 야전병원에는 정신과가 없기 때문에 내과에서 대충 보는 거지.”
“그녀가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고 있을 때 엉뚱하게, 화장실 변기 위에 있을 때, 거울을 보며 화장을 하는 동안에, 혼자서 몰래 술을 홀짝거리다가 떠올랐을 수도 있어. 술을 좋아했으니까. 아이디어는 그렇게 떠오르거든.”
“솔직히 말해서…… 이것도 저것도 아니었으니까. 네가 죽었어도 문제될 것은 하나도 없었지. 여긴 군대니까. 그리고 전쟁터이지. 병사들은 파리 목숨이거든. 아무도 신경 안 써.”
내가 말했다.
“그랬었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전 죽어도 상관없는데…… 자신의 존재 자체가 여분이라고…… 잉여라고…… 느끼고 있었거든요. 전 그럴만한 이유가 없는데 살아남은 거죠. 전 그 유일무이한 신을 믿지 않으니까요. 지금 생각으로는 제가 죽을 때까지도 인정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순전히 우연 때문이겠지요. 도저히 알 수 없는 이유 때문에…… 하여튼 다시 살아나서 원대복귀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네가 잉여적 인간이라고 고백하는 거야. 벌써…… 사르트르를 읽은 거군. 로캉탱을 흉내 내는 거겠지. 어리석은…… 정말 어리석은. 모든 인간은 언제나 잉여인 거지.
그런데 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너무 일찍 결론을 내릴 필요는 없을 거야. 인간은 나이가 먹을수록 정체성이 변하니까.”
“하지만 후유증이, 정신적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겠지. 어두운 불안감 때문에 평생을 시달릴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의사의 처방이나 약물의 작용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스스로…… 의지의 힘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을 거야.”
내가 말했다.
“목사님은 그때 병자성사를 한 게 아니고 예수가 한 소년의 몸에서 마귀를 쫓아낸 것처럼, 제 몸에 깃든 악령을 쫓아내기 위해 퇴마 의식을 치렀던 게 아닐까요?
이제 보니 제 병은 정신적인 거였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더위를 너무 먹어서 그만 미쳐버렸다고 하면 설명이 가능하겠군요. 그래서 김 중위님이 정신과 약을 생각해 냈을 겁니다.
제가 귀신이 들려서 또다시 미쳐버릴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영험한 아프리카의 퇴마사를 만나야겠지요. 그러려면 사막으로 떠나야 할 겁니다.”
“그 진단은 모호할 수밖에 없었어. 전투의 트라우마 때문에 나타난 심신의 반응일 수도 있었겠지. 때때로 의사보다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더 잘 알 수 있으니까.”
“그 나이면 문학청년이라고 가정하자고. ……그럴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사춘기를 지나면서 겪는 통과의례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가혹했어. 죽음의 문턱에까지 갔으니까.
아니면…… 청소년들이 성장기에 어김없이 겪게 되는 기성 세대와 낡은 제도, 고루한 관습과의 싸움에서…… 전쟁은 어른들이 하는 관습적인 행위니까…… 영혼의 투쟁이었다고 할 수도 있겠네. 그런데 승리했단 말이지. 축하해야 할까.”
내가 말했다.
“이겨냈다고요……? 논리가 너무 비약한 게 아닐까요?”
“사랑을 해 본 적이 있었던가? 사랑은 변덕스럽지만 위대한 거야. 사랑은 당신을 치유할 수 있어. 간호사가 당신을 사랑했을까? 그러니까 그렇게 안타까워했겠지. 그리고 그 치료약을 찾아낸 거지.”

나는 그날 밤을, 그녀가 눈물을 흘렸던 깊고 푸른 밤을 돌이켜서 생각해 본다. 우리가 함께 있었을 때 그녀가 감정이 고조되어 뺨이 붉게 타올랐던 그 순간을, 그녀의 몸에서 나오는 짙은 향수 냄새가 코를 간질이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그때 내가 그녀에게 키스를 하려고 시도했다면 그녀도 열렬히 응했을까.
그런데 나는 어땠는가. 아주 무책임하게도 귀국한 후에는 세 살인가 네 살인가 연상녀였던 그녀를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다. 물론 그녀도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피장파장이다. 우리는 인생의 어느 순간 우연히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이에 불과했던 것일까.
오직 빛바랜 흑백사진 한 장만 남아 있다. 그 사진 속에 나는 없다. 그 병동의 출입문 기둥에 기댄 채 중위 계급장 군복을 입은 그녀가 팔짱을 낀 채 희미하게 웃고 있다. 나는 그 사진의 입수 경위를 자세히 기억할 수 없다. 아마 그녀가 나에게 선물했던, 아니면 그냥 주었던, 여태 읽지도 않은 채 가지고 있는 그 책의 책갈피 속에 끼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18-08-27 14:3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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