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유중원 대표 중편선> 무진기행, 그 후 (下)
 닉네임 : 유중원 변호사  2018-03-30 11:52:07   조회: 75   
9. 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며 창문을 때리더니 그것을 신호로 해서 뒤늦게 장맛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바다로부터 세찬 비바람이 불어왔다. 마지막 장마는 열흘쯤 지나서야 끝났다. 그리고 티끌 한 점 없는 청명한 초가을 하늘이 수평선까지 아득히 펼쳐졌다.

경전선 기차 소리가 밤의 적막을 뚫고 지나갔다.

그날, 우리는 날씨가 선선해졌으므로 모처럼 신시가지로 나가 광양 불고기 집에서 몇 병의 소주를 반주로 해서 점심식사를 했고 근처 카페로 옮겼다. 평일 오후 카페는 한산했다. 우리는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셨다.

순전히 가벼운 술기운 때문에 의기투합해서 택시를 잡아타고 구시가지 쪽으로 갔고 가곡동에서부터 시작해서 아래쪽으로 옛날 거리 여기저기를 느긋하게 산책하는 것처럼 몇 시간을 걸었다. 순천대학교를 지났고, 순천남초교, 순천여고를 지나쳐 마침내 순천고 정문에 이르렀다. 그가 순천중을 다닌 것은 65년 전 일이었다. 우리는 학교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옛날 추억에 잠기지도 않았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대대동의 옛날 다방으로 돌아왔다.


이야기는 다시 시작되었다.

그가 말했다.

「다시, 소설 속으로 들어가서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세.

왜 광주역에서 기차를 내렸을까? 그 당시 순천역이라면 기차역을 중심지로 서울에서 내려오는 기차가 광주보다 오히려 많았을 텐데. 다시 말하면, 서울에서 순천으로 바로 내려오면 되는데 구태여 빙 돌아서 광주를 거쳐 내려오느냐 그 말일세.」

「그게 우스워요. 실제와 다르고 부자연스럽거든요. 그렇지만 소설의 도입부인 ‘무진으로 가는 버스’부분을 쓰기 위해서는 광주역으로 설정하는 것이 불가피했을 것입니다. 그런 정도는 눈 감고 넘어가야겠지요.」

「안개도 말일세…… 밤새 멀리 남쪽 바다에서부터 밀려오는 순천만 일대의 아침 안개는 너무나 유명해서 나도 잘 알고 있지. 손에 잡힐 듯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안개 말일세. 그런데 그는 그 아름답고 신비한 안개를 밤 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라고 비유했단 말일세. 또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가 뿜어 놓은 입김 과도 같다고 했는데 그 장엄한 안개를 여귀의 입김에 비유하다니……」

「그게 어린 작가의 어설픈 치기가 아니었겠어요?

안개는 안개 속이에요. 그 소설처럼 말입니다. 안개는 혼돈이거나 혼동일 거예요. 현실과 허구를, 진실과 거짓을, 꿈과 현실을 혼동시키는 거지요.」

「그리고 말이야…… 순천이야말로 전남 동남부 지역의 중심도시로서 아주 옛날부터 역사와 전통이 있었는데…… 제멋대로 인구 오륙만의 읍으로 격하시키는 게 옳은 일이라고 할 수 있겠나? 아무리 작가가 제멋대로 쓴다고 하더라도……」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리 소설이라고 하더라도 그건 옳지 않다고 봅니다. 소설인 경우에도 정확할 것은 정확해야겠지요. 그게 작가의 직업윤리 아니겠어요.

헤밍웨이든가 누군가 인물이건 장소이건 모델을 묘사할 때는 그 모델을 아주 정확히 묘사해야만 된다고 했습니다. 그게 독자를 기만하지 않는 거지요.

작가 스스로 무진읍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순천시를 모델로 하였다고 밝혔다는데요. 읍이라고 한 것은…… 결국 독자를 기만한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무명작가이긴 합니다만 소설을 쓰는 입장에서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읍이라고 하면 인구 1만이나 2만 정도를 기준으로 하거든요. 그 당시, 그러니까 50년 전 일이네요. 인구 5,6만의 읍이 전국 어디에 있었겠습니까.

백 번 양보해서 그렇다고 칩시다. 작가가 자신 만의 상상의 도시를 창조했다면 말입니다, 그 후 그 도시를 배경으로 한 후속 작품이 여러 편 나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만 그 가상의 공간이 문학적 배경으로 정착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후 뭐가 나왔어요? 아무 것도 없어요. 그런데도 무진, 무진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당신은 그들 비평가들을 어떻게 생각하나?」

「뭐…… 그렇지요. 우리나라에는 지금까지 비평다운 비평이 없었어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요. 우선 문단의 패거리들이 얼마 되지 않고 바닥이 좁아요. 작가들, 소위 평론가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는 교수들, 출판사의 편집 책임자들 등등 해봤자 뻔하지요. 그러니 모두가 지연이나 학연, 기타 등등으로 이리저리 연결되어 있어요.

학연은 고등학교와 대학이 중심이지요. 선배가 후배를 이끌어주어야 하는데 어떻게 날카롭게 후배를 비평할 수 있고 후배는 하늘 같은 선배를 어떻게 비평해요. 그랬다가는 싸가지 없는 놈이라고 바가지로 욕을 얻어먹고 매장되겠지요.

지연도 그래요.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이예요. 그러니 좋은 게 좋다고 비평다운 비평을 못하고 주례사 비평만 하는 거예요. 그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죠.」

「참으로…… 인정이 철철 넘쳐흘러서 좋구먼.」

「그런데 아닌 구석이 있어요. 그러니까 지연이나 학연으로 얽혀 있지 않고…… 게다가 자폐아가 중얼거리는 듯한 그 흔해빠진 1인칭 사소설만 보다가 새로운 소재와 지식, 배경으로 무장한 깊이 있는 소설이 어쩌다 등장하면 그 낯선 세계에 대해 놀라움과 지적 호기심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공포심을 느껴요.

평론가는 지식이 엷으니까 그런 걸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요. 그러면 자신의 무식이 탄로 날까 봐 전전긍긍하지요. 그래서 비평한답시고 그럴듯한 언사로 마구 깔아뭉개는 거죠. 비평이란 제멋대로 하는 게 가능하니까요. 그때는 무척 잔인해지지요.

평론가는 검열관도 아니고 심판자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들의 역할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가이드일 뿐이에요.

그거 알고 계신가요? 신경숙 작가의 표절 사건 말이에요. 그게 가령 표절이라고 가정하는 경우에도 20년 전 일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20년 동안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표절 운운한 거예요. 왜 그랬을까요? 요즘 신경숙 작가가 한창 뜨면서 잘 나가니까 배가 아픈 거예요.

그런데 어이없는 일이 일어나지요. 어떤 원로 작가는 그 작가더러 공개적으로 표절했으니 절필하라고 요구했어요. 자기가 무슨 자격으로 절필을 운운하는 거죠? 자기가 작가에게 사형선고를 내릴 수 있는 입법가인가요 판사인가요?

전업 작가에게는 글을 쓰는 게 밥줄이고 생명줄인데…… 그건 밟을 굶고 죽으라는 이야기와 똑같죠. 작가에게 글쓰기는 어떤 것에서도 얻을 수 없는 생의 강렬함을 선사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작가는 글을 쓸 때 살아있음을 생생하게 느낍니다. 글이 잘 써지지 않는 순간조차도요 라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나 역시 그가 작가로서 완전히 실패했다는 걸 알고 있다네.

그는 1964년 무진기행 이후 이를 영화로 만들기 위해 시나리오 세 편을 직접 썼으니 무진기행을 총 네 번 우려먹은 셈이라네.

영화에서 제목은 ‘안개’…… ‘황홀’…… ‘무진 흐린 뒤 안개’…… 등으로 매번 바뀌었네. 특히 마지막 영화는 무진의 하인숙이 서울로 올라와서 윤희중과 밀회를 즐기지만 결국 그 사랑의 한계를 깨닫고 허무하게 헤어지게 된다는 마무리로 끝났지.

그는 시나리오 작가로 그렇게 활동을 하여 대종상 각본상까지 받기도 하였네. 그러니 무슨 소설을 더 이상 쓸 수 있었겠나.

무엇이 그의 글쓰기를 억압했고 상상력을 갉아먹었는지 도대체 짐작도 할 수 없다네. 위대한 작가라면 꾸준히 계속 많이 써야 하거든. 작가로서 게을러터졌고 불성실했어.

도저히 실체가 있는 작가…… 심각하거나 진지한 작가로 성장할 수 없었네. 너무 일찍 겉멋이 든 거지.

그랬으니 후배 작가들에게 모범은커녕……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구동성으로 칭찬 일색이니…… 뭐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거지.

그 얄팍한 짧은 소설이 처음부터 요란스럽게 성공하니까 그게 독이 된 거야.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더라고. 그의 몇몇 작품을 나도 어쩔 수 없이 자세히 읽어보았다네. 왜 아니겠는가.」

「옳으신 말씀입니다. 과대포장이 된 거죠.

짧은 단편 소설 하나로 대표작을 삼을 수는 없다구요. 우리 문학 풍토가 저변이 빈약하고 아무리 단편소설 위주라고 하더라도 말이죠. 안톤 체홉처럼 단편소설을 600여 편 넘게 썼다면 모를까…….

그를 대표할 만한 장편소설은 없어요. 뭐니뭐니 해도 소설은 장편소설이지요. 그것은 복합적인 주제를 가지고 반복, 변주하면서 깊이 있게 다뤄야 하니까 마라톤처럼 긴 호흡이 필요하지요. 그래서 작가의 문학성과 진면목이 그대로 반영되는 거예요.

그 국어 선생님은 그 무렵 독서를 많이 하고 피츠제럴드를 좋아 한다고 했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피츠제럴드의 팬답지 않게 아주 얌전하고 매사에 엄숙했고 그리고 가난했다 고 했습니다.」


「박치순 말이군.」

「스콧의 ‘위대한 개츠비’ 말입니다. 1920년대 재즈 시대를 배경으로 한 뉴욕 이야기이죠. 180쪽밖에 안 되는 작은 장편이지만 무궁무진하게 해석이 가능해요. 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 유복한 상류 사회와 하류층의 계급 문제, 사회적 신분의 상승과 몰락, 세속적 욕망, 사회적 자아와 심리적 자아의 분열이라는 이중의식, 사라진 꿈을 되찾으려는 시도, 백인 남성 우월주의, 그 소설은 결국 잃어버린 환상에 관한 작품이다. 소설의 힘이 플롯이나 캐릭터가 아니라 언어에 의존한다. 플롯과 타당성이 가장 큰 약점이다. 신파적인 별난 책, 싸구려 소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엄청난 부자가 된다는 너무나 미국적인 이야기, 작가는 사상가는 아니고 그저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 하드보일드이고 누와르적이다.

물론 미국 쪽 비평가의 견해입니다.

이에 대해 작가는 불평을 합니다. 이 책이 무엇에 관한 내용인지 알아차린 비평가는 없다고 말이죠.

그러면 그 소설은 지고지순한 위대한 사랑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게 가장 기본적인 해석이지요. 그렇지만 제 생각으로는 그건 블랙 유머에 불과해요. 엄청나게 허세를 부리는 사람의 이야기일 뿐이죠.

어쨌거나 장편소설이어야 해요. 그 단편은 유치한 하룻밤 풋사랑 이야기일 뿐이지요. 그 작가는 일찍부터 장편에 코를 박고 정진했어야 했는데…… 장편을 제대로 쓸 능력이 없었던 거죠.」

「자네의 말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네.

우리는 지금 이심전심으로 공모를 하고 있으니까.

내가 그 소설의 주인공이었는데.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의 소설들을 읽어보면 아주 감각적이더라고. 그러니까 깊이가 없지. 깊이가 없고 지극히 피상적인 거지. 그런 속물로 옛날 어수룩한 시절에 반짝한 거야.」

「형님의 말씀에는 정당한 비평이 아니라 멸시와 조롱의 느낌이 들어있네요. 무슨 억하심정이라도……. 편집병적 피해의식을 느끼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진정하십시오. 그저 얄팍한 짧은 소설일 뿐이에요.

아시다시피…… 그 작가가 명문 대학을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 패거리들이 이구동성으로 한껏 치켜세웠어요. 누가 감히 반기를 들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앞서 나온 글들을 교묘하게 짜깁기하고 말을 빙빙 돌려서 논지를 펼치지요. 아무도 비평하지 않아요. 이제껏 오직 환호와 찬양만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전설이 되어버렸지요.

그래서 한심한 화가도 작가도 대대 마을에 잠깐 갔다 와서는 제2, 제3의 무진기행을 썼지요.

그들이 정말로 그 작가를 연구한다면 그가 누구이고, 무엇에 몰두했으며, 무슨 책을 읽었고, 취미가 무엇이며, 그에게 중요했던 사람이 누구인지, 형제들이 있었는지, 어린 시절이나 학창 시절은 어떠하였는지,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갔다 오는 군대를 갔다 왔는지, 생계는 어떻게 유지하였는지, 수입과 지출 내역서, 헌신적인 사랑을 한 적이 있고 실패했었는지, 그의 내면의 의식과 감정, 사유를 반추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의 숭고한(?) 삶을 추적하는데 필요한 단서라면 연인과 교환한 짤막한 편지 하나, 메모, 낙서, 일기장 등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수집해서 분석하고 평가를 했어야죠. 그런데 아무도 그런 중요한 일은 하지 않고 있죠.

물론 그렇게 수집한 것들이 그 작가의 삶의 궤적을 복원할 수 있는 것인지, 그의 삶의 진실을 보여주고 그것이 작품에 미친 지대한 영향을 분석하게 해줄지는 의문이긴 합니다. 더욱이 그 작품들이 그렇게 치밀하고 정교한 지적 탐구의 대상이 될 만큼 가치가 있는지도 여전히 의심이 가지요.

다시 말씀드리면…… 이런 건 보통 유명 작가의 사후에 하는 일이지만 만약 작가가 어떤 사정으로 더 이상 쓸 수 없어서 살아생전에 완전히 절필하여 작가로서의 생명이 끝났다면…… 그의 영혼의 비밀을 찾아내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죠.」

「내가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네……」


「그렇다면……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도대체 윤희중은 누구인가요?」

「나는 그를 잘 모른다네. 그가 제멋대로 썼으니까. 내가 나라고 자신할 수 없게 되었네. 물론 그게 내 본명은 아니라네. 그러나 나는 내 이름 석자를 잊어버린지가 오래되었지.

나중에 보니까 영화에서는 윤희중이 윤기준으로 바뀌어버렸더라고. 왜 멀쩡한 이름을 바꿔 버렸는지 도대체 그 속사정을 알 길이 없었다네. 그 이름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거나 영화를 만들면서 그 이름에 무슨 징크스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네.」

「왜? 이름을 바꿨을까요? 이름은 자존감과 인격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되는 겁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특별한 사정없이 함부로 바꾸는 게 아니지요. 그러니까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그의 운명이 확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 자네 말대로라면. 이름은 바뀌었지만 영화 속에서 운명이 크게 바뀐 건 없었다네. 아! 그렇지! 우리를 완전히 섹스에 미친 사람으로 만들었더군.」

「어쨌거나 소설에서 공간적 배경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지요.

윌리엄 포크너는 미국 남부 태생으로 독특한 역사적, 문화적 특징을 지닌 남부를 배경으로 한 많은 소설들을 썼지요. 그의 작품들은 포크너 소설의 주요 무대인 가상의 공간 요크나파토바 Yokna patawpha에서 펼쳐지지요.

그리고 현대 미국 여류작가인 애니 프루의 이야기를 빼 놓을 수가 없네요. 유명한 영화로 나온 ‘브로크백 마운틴’을 썼단 말입니다. 그녀는 와이오밍을 배경으로 너무나 아름다운 많은 소설들을 썼었죠. 그러니까 Wyoming Stories 라는 부제를 단 단편집을 세 권이나 발표했지요.」

「나는 전문가가 아니니까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네만…… 그 후 무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 나오지 않는 것만은 틀림없다네.」

「소설에 보면 제약회사의 직급에 간사가 나오고 그 간사가 전무로 승진한다고 나오는데…… 어떻게 된 거예요? 그게 말이 되나요? 회사 직급에 간사가……?」

「내가 1964년 여름에 을지로 술집에서 만났을 때 분명히 경리부장이라고 찍힌 명함을 그들 일행에 나누어주었지. 나는 그때 틀림없이 경리부장이었지. 도대체가 우리나라 회사에서 간사란 직급은 없지 않은가? 자네도 변호사니까 잘 알고 있겠지.

거의 예외 없이 사원, 계장, 대리, 과장, 차장, 부장, 상무, 전무 등의 순서로 올라가게 되어있지. 거기서 왜 간사가 나오는지 아연실색했다네.

그리고 말일세…… 간사가 있다고 치더라도 거기서 어떻게 하여 곧바로 전무로 치고 올라갈 수 있단 말인가? 제멋대로 중간 단계를 생략할 수 있는 것인가?

가령, 간사가 전무로 올라갈 수 있다고 치더라도 말일세…… 왜, 쓸데없이 주주총회까지 열어야 하지? 그건 도대체 주주총회의 안건이 될 수 없어.

영화를 만들면서 그제서야 깨달은 거지. 주위에서 그걸 심각하게 지적했겠지. 그래서 영화에서는 내가 상무로 나오더라고. 주주총회 이야기는 쏙 빼고 말이야.」


「소설 속에서 보면 6.25.사변이 났을 때 말입니다. 그때 형님은 서울에서 대학에 다닌 걸로 되어 있는데요.

서울을 떠나는 마지막 기차를 놓친 나는 서울에서 무진까지의 천여 리 길을 발가락이 몇 번이고 불어터지도록 걸어서 내려왔고 어머니에 의해서 골방에 처박혀졌다. 라고 되어 있거든요.」

「입에 풀칠하기도 바빴는데 대학은 무슨…… 그건 작가가 마음대로 쓴 것이라네.」

「그때, 1964년 6월인가, 왜 순천에 내려오셨지요? 어머니 산소에 가기 위해서……? 어머닌 언제 돌아가셨어요?」

「그게 완전히 사실을 왜곡한 거라네. 그때 어머니는 멀쩡하게 살아 계셨거든. 어머니는 죽을 나이가 아니었어. 나는 모처럼 짬을 내서 산소가 아니라 어머닐 뵈려고 내려온 거라네. 어머니가 돌아가신 건 그 후 10년쯤 지나서였어.」

「서울에서 동거했던 희라는 여자가 있었던 가요? 소설에서 그 여자 이야기가 잠깐 나오죠.」

「그날 술자리가 문제였던 거야. 내가 술이 몹시 취하니까 혀가 풀리면서 별 걸 다 까발리고 나불거렸다네. 채신머리도 없이 선배가 후배들 앞에서 말이야. 내가 회사 초년병 시절에 잠깐 만났던 여자야. 그때 여상을 나와서 거래 은행 창구에서 입출금 업무를 보고 있었으니까 서로 업무상 알게 된 거지. 그날 내가 그 여자와 몇 번 관계한 이야기를 하였을 거야. 그게 전부일 거야. 그런데 그걸 가지고 동거 운운한 거지.」

「그러면 중학교 출신 중에서 형님이 출세했다는 것은 무슨 말씀인가요? 조가 고등고시에 합격해서 세무서장이 된 것은 그렇다고 치고 말이지요.」

「부끄러운 일이네. 그 당시가…… 전쟁에 후유증이 남아 있었고. 지금부터 50년 전 일이니까 어수룩할 때가 아닌가. 내가 고향에 내려가서 말하자면 뻥을 친 거라네. 물론 전혀 터무니없는 말은 아니었다네. 곧 대 제약회사의 전무로 승진할 거라고 떠벌리고 다녔지. 그렇게 된 거라네. 사실은 몇 년쯤 지나야 겨우 상무가 될까 말까 했는데 말일세.」


「지금부터 하인숙이라는 여자 주인공에 대해 말해보죠.」

「미리 밝혀두자면…… 당연히 하인숙은 그 여자 이름이 아니야. 작가인들 무슨 배짱으로 본명을 밝힐 수 있었겠나. 그런데 나 역시 그 이름을 밝힐 수는 없다네. 내가 무덤 속까지 안고 가야 할 이름이야. 혹은 말일세, 내가 그 이름을 진즉 까먹었는지 모르겠네.」

「그럼 할 수 없죠. 그런데 소설에는 이런 대목이 나오지요.

“참, 엊그제 하선생이란 여자는 네 색싯감이냐?” 내가 물었다. “색싯감?” 그는 높은 소리로 웃었다. “내 색싯감이 그 정도로밖에 안 보이냐?” 그가 말했다. “그 정도가 뭐 어때서?” “야, 이 약아빠진 놈아. 넌 빽 좋고 돈 많은 과부를 물어놓고 기껏 내가 어디서 굴러온 줄도 모르는 말라빠진 음악선생이나 차지하고 있으면 맘이 시원하겠다는 거냐?” 말하고 나서 그는 유쾌해 죽겠다는 듯이 웃어대었다.

그러니까 하인숙의 정체가 무엇인가요? 집안 배경을 말한 것입니다.」

「그 여자는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고 졸업하자마자 서울의 여고에서 음악 선생으로 있었지. 어떻게 그게 가능했겠나. 그 여자 집안은 명문가였고 아주 부자였다네. 그러니까 영등포에서 사립 중, 고교를 가지고 있었고 아버지는 그 재단의 이사장이었어. 아버지의 동생들은 어떻고. 그러니까 작은 아버지 중에 한 사람은 법원장을 지낸 법원 고위직 출신이었고 그 당시 잘 나가는 현직 부장검사도 있었어. 어머니 쪽은 그저 평범한 가문이었다고 하더구만.」

「아주 대단했군요. 그런데 조는 왜 ‘퍽 똑똑한 여자일 것 같던데.’ ‘똑똑하기야 하지. 그렇지만 뒷조사를 해보았더니 집안이 너무 허술해. 그 여자가 여기서 죽는다고 해도 고향에서 그 여자를 데리러 올 사람 하나 변변하게 없거든.’ 라고 말했을까요?」

「그게…… 그런 말을 한 건 사실이네. 소설에 보면 조가 ‘그래도 그게 아닙니다. 내 편에 나를 끌어줄 사람이 없으면 처가 편에서라도 누가 있어야 하는 거야.’ 라고 말했는데. 그러니까 조의 입장에서는 집안 배경이 탄탄한 하인숙이 절실했겠지.

그렇지만 조에게도 고시를 합격했다는 자존심은 있으니까…… 나에게는 그 여자에게 관심이 없는 척 위장하기 위해서 해본 쓸데없는 소리였다네.」

「그렇긴 합니다만…… 도대체 궁금증이 풀리지 않는데요? 그런 하인숙이 왜 그 좋은 서울에서 시골 구석으로 내려오게 되었냐는 거죠?」

「나도 그 점이 궁금하였다네. 자네는 ‘보스턴 식 결혼’이라는 걸 알고 있나?」

「처음 들어보는데요.」

「그런 결혼은 인류 역사상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네. 헨리 제임스라는 소설가가 쓴 소설 ‘보스턴 사람들’ 속에 처음으로 사용한 용어라고 알고 있네만.

그러니까 독신인 두 여성이 결혼한 남녀와 다름없이 한 집에서 정신적인 의지를 하며 사는 것을 말하지.

깊고 널찍한 안락의자에 두 팔을 걸친 채 남성처럼 편안히 앉아있는 그 여자와 그냥 맨 바닥에 두 손을 다소곳이 무릎 위에 모아서 앉아있는 그 여자의 여자를 보았다네…… 그때 어쩔 수 없이 목격하고 말았지.」

「형님 지금 울고 있는가요? 제가 남자의 눈물을 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글쎄……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때를 생각하니 잠깐 울컥한 거라네.」


그녀는 윤희중를 끌어당겼고 마치 빨아들일 듯 했다. 하인숙이 입술을 너무 격렬하게 물어뜯어 그는 소리를 지르며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를 침대로 끌어당겼고 바지를 벗겼다. 그를 애무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입술과 커다란 검은 눈동자는 무언가를 묻고 싶어 했다. 그녀가 몹시 당황한 윤희중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속삭였다.

「이건 제가 생각한건데요…… 미안하지만…… 당신과 저와의 첫날밤의 특권이 여자에게 있지 않을까요? 저는 그 특권을 누리고 싶어요.

왜?! 여자들은 남자들처럼 행동할 수 없는 거죠? 도대체 이유를 모르겠어요. 시대가 변하겠지요. 그들은 세상으로 고개를 쳐들고 나올 겁니다. 다만 시간이 필요하지요.」

그녀는 윤희중이 그녀 아래쪽에 눕도록 했다. 그리고 속옷을 벗어던지고 그를 올라탔다. 침대가 부스럭대다가 삐걱거렸다. 그는 그날 저녁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녀가 가볍게 코를 골았던가…… 그때 그는 창문을 통해 별빛이 내리는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어느 순간 잠이 들었다.

그날 밤 모든 걸 그녀가 주도했고 그는 완전히 수동적이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양성애자이면서 동성애자라는 말씀이군요. 그래도 그만하면 다행이네요. 하인숙이 사디스트이거나 사도 마조히즘적 취향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렇다네. 날 유린한 건 아니었어. 그러니까 완전히 가학적이거나 피학적이지는 않았지. 다시 말하면…… 그런 변태는 아니었다네. 날 침대에 묶어놓고 채찍을 휘두르거나 칼로 몸 여기저기를 긁어서 피를 흘리게 하지는 않았어. 자신을 그렇게 해달라고 애원하지도 않았고.

그러나 순천으로 내려온 절박한 이유가 있었다네.

순전히 내 추측이네만…… 자기의 여자를 찾아서 스스로 가족의 간섭이 없는 곳으로 도피를 한 거겠지. 아니면 가족들로부터 집안 망신이라고 파문을 당하고 쫓겨났을 수도 있어.

그리고 다시 순천에서 진주나 마산, 부산 쪽으로 계속 이동을 했을 것이네. 그 여자는 낭만적인 면이 있고 바다를 좋아했으니까. 살아있건 죽어있건 간에 부산이 마지막 피난처이었을 거야.」

「역시 지금도 못 잊고 계시군요.」

「그렇지. 그러나 연락이 끊긴 지는 오래 되었어. 그때 만나고 나서 몇 년 후부터는.」

「소설에서는, 그 여자는 개성 있는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윤곽은 갸름했고 눈이 컸고 얼굴색은 노리끼리했다. 전체로 보아서 병약한 느낌을 주고 있었지만 그러나 좀 높은 콧날과 두터운 입술이 병약하다는 인상을 버리도록 요구하고 있었다. 라고 했거든요.」

「그건 작가가 제대로 묘사했다고 할 수 없네. 그때 술을 마시면서 그 여자의 인상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이야기 했었거든. 그러니까 묘사하는 과정에서 그가 알고 있던 다른 여자 혹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어떤 배우의 이미지가 끼어들어서 뒤섞여 버린 거지. 아무튼 그건 아닐세.

눈이 크고 높은 콧날은 맞는데 병약하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네. 예쁘지는 않지만 매력적인 여자였지. 오히려 당당하고 자신감에 차있었네. 우리 촌놈들을 약간 멸시하고 조롱하는 눈치였지.」

「그때 방바닥 비단 방석에 화투짝이 흩어져 있었나요?」

「그날 밤에 하인숙이 거길 무슨 이유로 오게 되었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네. 그러나 화투를 치거나 술을 마실 만큼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아니었네. 그건 분명하지. 왜냐하면 그 여자가 그 자릴 어색해하는 눈치가 역력했고 계속 무슨 할 일이 있어서 빨리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거든.」

「그러면 손가락으로 술상을 두드리고 하인숙이 ‘목포의 눈물’을 부른 것은 아니군요.」

「그렇지. 그가 재주껏 지어낸 거지. 그게 신파조 멜로드라마를 쓰는 작가의 작업 방식 아닌가. 내가 나중에 비평가들의 글들을 모아서 다 읽어보았지. 그런데 그렇게 그런 말을 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태도를 돌변하여 온갖 찬양의 소리를 늘어놓았다네. 근거가 없는데 찬양 일색이야. 역겨워서 토할 것만 같았네.

그가 뭘 대단한 걸 썼다고……

다 나와 있더라고. 어떤 잡지사로부터 청탁을 받았는데 마감에 맞추지 못해서 쩔쩔 매었다고 하더군. 그래서 급하게 쓴 게 그 소설이었는데 겨우 완성하고 나서도 자신이 없어서…… 그 무렵 글깨나 쓴다는 동인들에게 보여주었더니 ‘이게 무슨 소설이냐, 차라리 찢어버려라’ 라고 하면서 한결같이 지나치게 신파 같다고 혹평하였다네.

그래서 자신을 잃은 작가는 쓰레기통에 던져 넣을까까지 생각했는데 작품이 좋지 않으면 싣지 말라며 다음에 더 좋은 작품을 보내겠다는 추신을 덧붙여 편집장에게 보냈다는 거지.

그런데 무슨 조화인지 그 잡지에 게재 후 작가는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고 하더군. 너무 심하게 많이 받았어.」



10. 여러분은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끼리끼리 주고받은 민망할 정도로 구태의연한 찬양 일색을. 그러니 단 한 마디 날카로운 비평의 말은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 멜로드라마 같으니 찢어 던져버리라고 했었는데 말이다.

일찍이 헤밍웨이가 지적했다. 칭찬이 가득한 서평은 작가의 정신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그렇게 찬사를 받으면 앞으로 글쓰기에 대한 기대가 너무 높아진다고.


6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한국문학사에 자리매김한 김승옥은 기존의 작가들과는 뚜렷하게 다른 변별점을 가지고 있었다. 4.19 혁명세대의 새로운 의식구조, 식민통치 시대의 교육과는 구별되는 완전한 한글세대의 출현, 문학에 있어서의 감각과 감수성 있는 문체의 구사 등의 특징을 내세우며 그는 한국소설사에 뚜렷한 위치를 차지했다.

김승옥은 새로운 문학의 지평이 뚜렷하게 예견되지 않는 시점에서, 아무도 시도해보지 않았고 또 성공의 보장도 없는 미지의 영역 속으로 헤쳐들어간 당돌한 모험가였다.

그는 우리의 모국어에 새로운 활기와 가능성에의 신화를 불어넣었다. 그는 우리의 모국어에 대한 혹종의 미신 - 근거가 있기는 하나 너무 과장된 - 을 구호로써가 아니라 실천으로써 타파하였다.

김승옥은 감수성의 혁명을 우리의 황량한 문학 풍토 속에서 일으켰으며 우리는 그의 눈을 통해 모든 사물을 기성 세대와 다른 감각과 의미로 바라보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그의 창작은 내적 자아의 형성 또는 개인주의 문학에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이며 우리 정신사에서 처음으로 의식의 주체화에 전망을 비춰 준 것이다


비평가들이 한 술 더 떠서…… 무진이라는 공간은 서울과 대비된다는 등, 그곳은 질서보다는 무질서, 인공성보다는 자연성으로 상징되는 곳이라는 등, 무진은 질서와 체계가 잡히기 전의 혼란과 퇴폐를 보여주지만 그 자체가 삶의 원형과도 같이 어떤 구체성을 띠기 전의 모습이라고 하는 등 별의 별 소리를 다했다.

순천은 역사와 전통이 있는 전남 동남부 지방의 중심을 이루는 도시인데 그게 말이 되냐구요. 퇴폐는 무슨…… 서울이야말로 온갖 퇴폐의 중심지이지.


하인숙이라는 인물의 성격, 그리고 그녀와 나의 관계에 집중되어 있다. 하인숙이라는 인물을 내가 사랑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녀는 그저그런 평범한 여인 중 한 사람인가, 아니면 모든 남성들의 환상을 구성하는 이상적 타자로서의 바로 ‘그 여인’인가? 하인숙 뿐만 아니라 이 소설의 주인공인 윤희중 역시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문학청년으로서의 면모와 닳고 닳은 방식으로 자신의 출세를 위해 노력하는 중년의 노회한 속물로서의 면모를 동시에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렇다면 과연 ‘나의 분신’으로 간주되는 그녀는 순수하고 솔직하게 고뇌했던 ‘과거의 나’의 분신인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 지위를 보장해주는 배경을 손에 넣거나 유지하기 위해 비열한 타협안을 작성하는 ‘현재의 나’의 분신인 것인가?

영화의 각색자는 원작을 쓴 소설가 자신이었다. 원작자인 만큼 그 작가는 소설을 고스란히 영상화하기 위해 애를 썼던 것인가.

원작의 각색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어떤 점을 충실히 옮겼느냐가 아니라 어떤 부분이 필연적으로 변모할 수밖에 없는가, 그리고 어떤 부분이 어떤 방식으로 변이되었느냐에 대한 추적이다.


* * *


결국 작품이란 유동적인 텍스트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예술 작품은 결코 완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폴 세잔은 ‘그림은 절대로 완성되지 않으며 어느 순간 그리기를 멈출 뿐이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좋은 작품일수록 스테레오 타입의 고정된 또는 한정된 의미에 갇히는 것보다는 유동적이고 역동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게 내 생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문학 작품이 해석과 재해석, 재생의 과정에서 가변적이라는 관점은 이미 오래 전부터 널리 인정된 해석 이론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경우 자주 다른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기도 하고 각색을 거쳐서 연극, 영화나 TV 드라마로, 만화로, 뮤지컬이나 오페라 등 새로운 버전으로 전환한다. (트랜스 미디어 스토리텔링 시대에 컴퓨터 게임, 소셜웹, 가상현실 게임, 테마파크 같은 엔터테인먼트 분야로의 전환은 제외하고서도 말이다.)

그 과정에서 각색자는 원천 작품을 재해석하여 시간과 공간을 변화시키고 캐릭터를 다른 관점에서 정체성을 변형하고 플롯을 변경해서 디테일을 생략하고 주제를 변주하면서 개작하고 재조합한다. 그래서 그들 각각의 버전은 상호 텍스트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야기에는 옹기 그릇에 도공의 손자국이 남아있듯이 이야기꾼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이다. 이제 각색자는 창작자가 되어 그 작품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고정된 텍스트는 없다. 항상 유동적이다. 이야기는 숙명처럼 끊임없이 조금씩 일탈하면서 또는 증보되면서 반복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소설이 영화로 각색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변용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걸 탓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작가와 독자는 독립된 개인이지만 작품 때문에 연결은 불가피하다. 작가와 작품을 매개로 한 독자의 관계는 어떠한가? 이 소설에서 말이다. 작가가 죽으면 또는 죽어야만 독자가 탄생한다고 해야 할 것인가.

독자가 왜 이 소설의 의미와 관련해서 작가의 원래 의도 혹은 작품의 (숨은) 배경, 인물의 모델 등등에 관하여 신경을 써야만 하는가. 작가와 독자는 더 이상 비대칭적인 관계가 아니다.

작가의 내면 세계와 그의 어두운 영혼이 작품에 미친 영향과 상호 관련성을 파악하고 싶다면 왜 그의 삶과 생애에 관한 모든 사항들에 대한 진지한 연구가 그렇게 소홀할 수 있는가. 작품이 작가를 아는 하나의 계기이고 반대로 작가의 삶이 작품을 깊이 이해하는 계기라면 말이다. 그런데 고작 피상적인 관찰만 있을 뿐이다.

문학의 지고한 가치란 독자들이 작가의 영혼에 내밀하게 접근하게 해 주는데 있다고 하는 주장을 부정해야만 할 것인가? 작품은 작가의 손을 이미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논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오직 텍스트에만 집중해야 한다. 그들은 작가의 의도를 당해 예술 작품의 의미와 가치를 평가하는데 유일한 척도로 간주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독자는 더 이상 텍스트의 내용과 의미의 수동적인 수신인이 아니라 작품을 자기 나름대로 해체해서 해독하고 의미를 재창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독자는 이제부터 능동적으로 텍스트의 새로운 의미 형성에 참여하게 된다. 독자는 텍스트의 일부인 서사의 틈새를 메우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처럼 말이다. 결국 독자는 작가와 더불어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간다.

그런데 독자들은 제각기 독자적으로 해석하고 의미를 재창조할 뿐만 아니라 같은 독자의 경우에도 나이 들어감에 따라, 시대적, 공간적, 문화적, 개인적 등등 환경의 변화에 따라 해석과 재해석이 유동적이 되면서 작품에 대한 태도가 변화할 수 있다.

내가 60년대 그 무렵에 그걸 읽었었다. 반세기가 지나서, 나도 60대 후반으로 세상을 알 만큼 알고 있는데 어떻게 그때처럼 읽을 수 있겠는가. 세상이 변했고 나도 변했다.

그때도 그 소설은 지나친 감상주의 때문에 신파조 멜로드라마 같았는데 5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성경을 제외한다면) 정전 취급을 받는 어떤 고전인들 지금 그때만큼 읽을 수 있겠는가. 생각보다 훨씬 재미없고 정말 지루할 뿐이다. 두서없이 긴 문장에는 쓸데없는 상투적 사설과 훈계가 그렇게도 많다.

그는 진지한 작가는 아니다. 여기서 진지하다는 것은 진지한 주제로 소설을 쓴다는 걸 말한다. 나는 그걸 산산조각을 내서 해체하고 다시 이어 붙였다.



11. 김규현의 고향 마을은 벌교읍에서 여자만 바다 쪽으로 30리쯤 내려가 천마산 아래 바다가 초승달처럼 휘어져 육지와 맞닿은 만에 자리 잡은 작은 어촌이었다. 그 산이 넌지시 마을을 굽어보고 있었고, 마을은 바다를 향하여 가슴을 열고 있었다. 초승달처럼 휘어진 긴 해안이 바다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그 마을에는 옛날 임경업 장군의 신위를 모시고 있는 사당이 있었으나 그 사당은 사라진지 오래되었고 마을에서 지금 사당 내력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옛날에는 마을의 50여 호 남짓한 가구들은 대부분 바다에 삶을 의지하고 살았다. (지금은 반 이상이 비어있지만 말이다.)

언제나 밤안개가 짙은 곳이다. 아침이면 해안가를 뒤덮고 있던 옅어진 안개가 여전히 뭉그적거리다 햇빛에 쫓겨 사라졌다. 이따금 바다 쪽에서 강한 바람이 불어왔고 파도는 으르렁거리며 밀려와 해변의 모래톱에서 부서지며 사라졌다.

그때 경전선 완행열차는 바다에 대한 향수를 안고 검은 석탄 연기를 내뿜으며 길게 기적 소릴 울리고 산기슭을 돌아 남쪽으로 달려갔다.

그들은 뻘배를 타고 참꼬막을 잡았다. (‘나백이’나 ‘썹써구’ 같은 조개들은 이미 오래 전에 종적을 감췄다.) 채취 작업 중에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면 연신 신세타령과 장탄식을 늘어놓았다.

평생을 갯벌에 기대어 살아온 갯사람들은 자신들의 삶 전부를 빠짐없이 깊은 뻘 속에 켜켜이 쌓아놓았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순천시 별량면 마산리 順天市 別良面 馬山里

장편소설 사하라에 나오는 유명한 건축가 김규현은 이 마을에서 태어나 벌교중학교를 졸업했고, 그 해 아버지와 쌍둥이 동생이 바다에서 죽자 어머니와 함께 외삼촌이 있는 부산으로 이사를 갔다. 그 후 부산공업고등학교, 서울공대 건축과를 나와서 주식회사 공간에 들어갔고 대표이사의 주선으로 프랑스에 유학까지 다녀왔다. 그러나 그는 사하라 사막 남쪽에서 이른 나이에 죽었다.


* * *


나는 지난 해 (2013년) 가을쯤에 내려왔다. 도사동 일대가 많이 변했을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이렇게 많이 변할 줄은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었다. 30년 전 서울로 올라간 후 처음으로 다시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사동 남쪽으로 한참이나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별량면 마산리 거차 방조제가 보이는 근처의 비어있는 농가를 임시 거처로 삼았고 그 할아버지는 건너편 황룡사가 있는 구룡리에 15년 넘게 자리를 잡고 혼자 외롭게 살고 있었다. 그의 집 근처 해안가에는 호동 방조제가 있고 지금은 폐교가 되어 흉물스럽게 텅 비어있는 별교초등학교가 있다.

내가 내려와서 (제가 순천 출신이고 우리 산소가 여기 별량면에 있어요 라고 말하면서) 동네 사람들과 의식적으로 어울리며 자리를 잡고 난 후, 한겨울 바닷가에서 자주 긴 산책을 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때 몇 번 마주쳤는데 그러고 나서 처음에는 가벼운 눈인사를 나누게 되었고 점점 자주 만나게 되니까 인사말이 길어지면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건 인간들의 관계에서 흔히 있는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만의 미스터리를 간직한 사람으로 보였고 처음부터 먼저 마음을 열고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지는 않았다. 그가 훨씬 연장자였으므로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이 순서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는 몇 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처음으로 자신이 그 소설에 나오는 실제 윤희중이라고 소개했다.

그때는 4월이었다.

달콤한 4월! 숱한 상념이 그대와 결합했구나, 마음이 합친 것처럼.

엹은 자주색 라일락꽃이 벌써 피었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은 자라나고 기억과 욕망은 뒤섞인다.

그러나 우리가 본격적으로 그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여름이 시작되면서부터였다.

「엉뚱한 소리가 아닐세…… 믿거나 말거나 상관없다네.
내가 현실 속에서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허구적인 인물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가? 다시 말하면 허구적으로만 느낄 뿐이고 실제적으로 느끼지 않는다는 건가?

사실이 허구일 수 있고 허구가 사실일 수 있지 않겠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나는 진정한 불가지론자는 아닐세. 나는 그 작가가 진실한지 아닌지, 그 작가가 그걸 주장할 자격이 있는지 아닌지, 그 소설의 내용의 진실성을 보장할 만한 위치에 있지 않네. 다만 뼈와 살과 피로 만들어진 살아있는 피조물로서 그 소설에 대해 여러 가지 의문을 제기할 뿐이라네.」


12. 그날, 거차 방조제에서 바라본 하늘은 잿빛이었고 파도가 거센 물결을 일으켜 조수의 방향을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내 흰 머리카락이 바다에서 불어 닥친 바람에 휘날리며 얼굴을 가렸다. 늦은 오후가 되면서 깊은 정적 속에 하늘이 칠흑같이 변했고 잠시 후 천둥이 쳤다. 마을의 똥개들이 미친 듯이 짖어댔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바다 갈매기들은 비가 오지 않는다는 듯 꼼짝하지 않고 방조제 바닥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녀가 첫사랑이었을까? 왜 사랑의 감정에 첫 번째가 있고 마지막이 있어야 되는가? 그렇다면 중간도 있어야 하고 아니면 아라비아 숫자로 번호를 매겨야 할 것이 아닌가?

오스카 와일드는 남자는 항상 여자의 첫사랑이 되려고 한다. 여자는 남자의 마지막 사랑이 되려고 한다. 라고 말했지만, 파스칼은 사랑에는 연령이 없다. 그것은 어느 때든지 생길 수 있다. 고 하였다. 폼페이 유적지의 낙서, 많은 여성과 사랑을 나누었다multas puellas futuisse. 희대의 바람둥이 돈 후안은 한 여자를 두 번 다시 보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들에게 첫사랑이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을 것인가.


지금…… 30년이 지났는데…… 그 잊혀져가는 상처를 새삼스럽게 들춰내야만 할까? 옛 기억들이 순서대로 부드럽게 풀려나올 수 있을까? 나는 인생에서 실패했다고, 겸허하게 인정해야만 할까? 나는 행복했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그때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후회하고 있을까?

어쨌거나 내 생애에는 오직 두 사람만이 있다. 첫사랑 여자하고 결혼을 해서 살았던 아내하고.

그녀의 이름이? 가물가물하다. 그럴 수밖에 없을까. 아무리 30년 전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건 자기보존의 본능에 따라 그녀를 잊기 위해서 노력했기 때문에 그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녀에 관한 일이라면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을 막고 살았던 것이다. 그래서 내 마음속에서 그녀를 깔끔하게 몰아냈는가?

그녀와 미련 없이 완전히 헤어진 것은 80년 막바지 겨울이었고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그보다 훨씬 빠른 70년대 중반 무렵이었다. 그러니까 유신정권이 한창 맹위를 떨치던 시절에 만나 그 정권이 붕괴되고 나서 다시 신군부가 득세하고 80년 5월이 일어나기 직전에 끝난 것이다.

그 모든 게 불확실했던 엄혹한 시절에 우리는 아무런 충격도 받지 않고 시대 상황과는 무관하게 사랑에 빠졌던 것이다. 그 시절에 사랑놀이는 특별한 사치품이 아니었겠는가.

나를 먼저 사로잡은 것은 그녀의 내적 영혼이 아니라 아름다운 외모였다. 뚜렷한 이목구비의 얼굴, 우유 빛의 깨끗한 피부, 여자로서 아담한 체격, 말을 할 때마다 드러나는 고른 치아, 그녀의 아름답고 미묘한 미소.

그녀는, 그 시절에는 인조 속눈썹은 대유행이었지만 색조 화장품이나 부분 화장품이 유행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얼굴에 파운데이션을 아주 얇게 발랐고 단정하게 깎은 손톱에는 복숭아 색 매니큐어를 칠했다. 그녀에게서는 늘 옅은 라벤더 향수 냄새가 났다.

그때는 호경기 시절이었고 시대가 변하고 있었기 때문에 옷이나 헤어스타일도 금기가 풀리면서 점점 야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찬바람이 쌩쌩 부는 겨울공화국에서 퇴폐적이기까지 가지는 않았다. 정권은 거기까지 허용하지 않았다.

그녀는 나를 자극하기 위해서였는지 자주 아주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나타났고 구두는 당시 유행했던 앞바닥에 두꺼운 창이 달린 굽이 아주 높은 하이힐을 신었었다.

우리가 처음 어떻게 만났더라? 내가 고시 공부한다고 미팅을 해본 일이 없었기 때문에 미팅에서 만난 건 아니었고 친구들 중에서 누군가 소개를 했을 것이다.


내가 몇 달 후 그녀의 어머니를 처음 만났을 때 고시 합격을 눈앞에 둔 명문 법대 출신을 아주 노골적으로 얼마나 흡족하게 반겨주었던가.

그때 어머니가 말했다.

「내가 곧 판검사 사위를 보게 되었다네. 집안의 경사이지. 그렇고말고.」

김민정은 그러고 보니 어머니를 쏙 빼다 닮았다. 어머니가 그렇게 아름다우니 딸 역시 아름다웠던 것이다. 우리는 만나자마자 너무 쉽게 재빨리 연인이 되었다. 나는 횡재를 하였으나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나는 지금 내 인생이 저물어가고 있음을 알고 있고 바닷가 시골에서 혼자 살고 있으니 자주 자기연민과 망상에 시달린다. 그녀 역시 지금 살아있다면 정신적으로 불안정하여 자기 방어적 입장에서 자신을 속이고 여전히 날 원망하고 있을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지금 이렇게 세월이 흘렀으니 가슴 속에 채 꺼지지 않은 불꽃이 남아있을 리 없다. 늦가을이었던가, 초겨울쯤이었던가. 그날 하루 종일 비가 오락가락하였다. 그날 동승동 다방은 날씨 탓인지 한산했고 분위기는 죽은 듯 가라앉아 있었다.

그녀는 나와 헤어지기 위해서, 결별을 선언하기 위해서 그렇게 입을 꼭 다물고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가. 왜 얼굴 표정이 의젓하고 의기양양했었는가. 희미한 미소가 그녀의 차가운 얼굴을 스쳐지나가지 않았던가. 그녀는 아무런 고통도 내비치지 않고 그렇게 천연덕스럽게 선언할 수 있었던가. 나는 왜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심장이 망치질을 하고 격렬하게 고동을 쳤던 것인가. 왜 나는 굵은 눈물방울을 하염없이 흘렸던 것인가.

나는 지금도 그 싸늘한 눈초리를 떠올리면 등에서 소름이 끼친다. 그 순간을 어찌 잊어버릴 수 있겠는가. 한때는 친구들이 우리를 두고 그림처럼 매우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들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분명히 우리는 결코 떨어질 수 없는 한 쌍이었다.

나는 그때 한창 사랑에 미쳐있었으니까 그녀의 환심을 사려는 본능적인 욕구에 따라 행동했다. 변덕이 심한 여자의 비위를 맞추려고 말과 행동을 조심스럽게 조절했으니 나는 그때 꼭두각시나 다름없었다.

내가 그녀에 대해 뭐든지 다 알고 있었던가.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도 모르고 있었던 것인가. 무언가 오해하고 착각했던 것인가. 기억은 질서정연하지 않다. 까마득한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세월이 그렇게 많이 흘렀다고 해도 어찌 잊어버릴 수 있겠는가. 세월도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이어서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그때는 아직 풋내기 젊은 시절이었으니 민감했고 그만큼 상처도 많이 받았다. 그때 나는 자존심에 심한 상처를 받았음에도 노발대발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언제나 그 모양이었다. 철딱서니 없고 비현실적이었다. 자기연민은 없었고 오직 자기혐오의 감정만 있었다. 삶의 본질을 직시하고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이 없었으니. 그리고 그 후에는 삶이 닥쳐오는 대로 받아들이며 더욱 삶의 현실에 안주하였고 운명의 불가항력에 항복하였다.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도맡아 놓고 전체 수석이었으니 수재니 천재 소리를 들었고, 아버지의 간절한 소망대로 법대로 진학했고, 법대에 갔으니까 당연히 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다음 순서는 금방 고시에 합격하고 나서 권위주의 체제를 앞장서서 수호해야 하는 판검사를 할 차례였다. 그것이 내 젊은 시절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인생 항로였다. 그러므로 거창하게 사회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 고시 공부를 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말하는 녀석들을 가끔 보게 되지만 그건 치사한 자기기만이었고 그들은 위선자임에 틀림없었다.

나는 지금 돌이켜보면 공부하는 동안 매너리즘에 빠져있었던 게 틀림없다. 나는 왜 시험을 칠 때마다 그렇게 허둥대고 노심초사 했던가. 나는 시험을 볼 때면 어김없이 논점을 벗어나는 해묵은 실수를 저질렀고 너무 서두르는 나머지 새로운 실수를 했다.

그 여자의 입술, 가슴, 허벅지, 다리는 어떻게 생겨 먹었던가. 지금 도저히 기억할 수가 없다. 나는 지금 그녀의 몸 위에서 헐떡거리며 환희에 찼던 밤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인가. 그때는 아직 진한 페팅을 할 줄 몰랐었지만 섹스가 끝나면 기분 좋은 피로감을 느끼며 가벼운 잠에 빠져들었다. 그 전에 우리는 그때 한창 유행했던 냉 막걸리를 꽤 많이 마셨다. 그녀는 술을 잘 마셨지만 가끔 담배를 피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야간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었으니 서둘러 여관을 빠져 나와야 했다. 그때는 늘 임신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지금 젊은 독자들은 야간 통행금지를 잘 모를 것이다. 밤 12시만 되면 인적이 완전히 끊긴 거리 모습은 마치 유령의 도시 같았다.)

그녀가 나를 위해서 아니면 우리를 위해서 언제 눈물을 흘렸던 일이 있었던가. 목이 메일 정도로 눈물을 쏟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쬐끔 흘러내리는 정도라도 말이다. 그녀는 말싸움을 할 때 처음에는 입을 꽉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끝날 때쯤에는 강한 자기만의 목소리로 할 말을 모두 내뱉었다.

나는 그때부터 그녀의 강한 일면을, 다시 말하면 고집 센 독한 일면을 눈치 챘어야 했다. 그녀는 끝판이 다가오자 내 쪽에서 연락을 하지 않으면 먼저 연락을 하지도 않았고 겨우 만나면 합격이나 결혼 같은 어떤 기대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인지 어떤 열의도 보여주지 않았다.


* * *


나는 지금 30년 전에 헤어진 첫사랑 애인과 정식 이혼을 한 것은 아니지만 서울에 내팽겨쳐 둔 아내에게 동시에 어설픈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내가 받은 모욕과 상처는 놔두고 말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같은 집에 살면서도 서로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기로 하여 다른 방을 쓰고, 밥을 각자 알아서 먹었다. 아내는 무엇 때문에 나를 의심한 것일까? 내가 그녀를 속인 적이 있었던가? 그럴 거야. 무수히 속였을 거야. 지금도 속이고 있고. 여자들은 그렇게 생각한다니까. 아내는, 「30년 가까이 매일 밥을 차려줬는데 이젠 그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는 사실상 이혼 상태 혹은 별거 상태였다. 그렇지만 사회적 이목과 체면 때문에 가정법원에 이혼 조정을 신청하거나 이혼 소송을 제기하지 않기로 암묵적으로 합의를 하고 지냈다.

나는 서울에서 사라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가출을 꿈꿔왔다. 아내에게 어떻게든 양해를 구하고 아니면 쪽지라도 남겨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주 필요한 것만 챙기고 나머지는 버렸다.

어느 날 아침 출근하는 것처럼 하면서 집을 나섰다. 아내와는 그게 마지막이었다.

은행에 있는 잔고를 전부 인출한 다음 은행계좌를 폐쇄했다. 그러고 나서 정처 없이 여기저기를 여행했다. 어차피 아내는 내가 집을 나가도 찾을 생각이 없었겠지만…… 그래도 아니다 싶어서 나는 집을 완전히 나왔으니까 찾을 생각을 하지 말라고 문자를 보냈다.

그러므로 서울에서 가져온 게 거의 없었다. 서울에서 보낸 내 삶을 떠올리게 하는 어떤 것도 가져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짐은 여행가방 한 개에 다 꾸려 넣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날 망년회에는 왜 쓸데없이 참석했던가. 도중에 적당한 핑계를 대고 빠져나올 순 없었던가. 그 자식은 술이 많이 취했고 그녀의 자살 소식을 전했다. 나는 그때부터 정신없이 연거푸 폭탄주를 목구멍 속으로 털어 넣었다. 내가 그때 느낀 감정은 무엇이었던가. 그녀에 대한 슬픈, 애틋한 감정이었던가. 사필귀정의 감정이었던가.

우리는 그때 인내심이 바닥이 났던 것인가. 긴 연애 기간이 우리를 지치게 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려 5년이나 넘게 기다리지 않았는가. 그리고 2년인가 3년 후에는 천신만고 끝에 결국 합격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결혼하여 분명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었다. 지금 우리가 처한 불행한 현실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김민정! 너는 인생에서 불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첫사랑은 깨지기 십상이라고 했다.

나는 오늘 밤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다. 그때 일어났던 사건들이 온갖 억울한 감정, 분노, 불안을 야기하였던 것이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고 용서할 수 없었다.



13. 그는 손에 나무토막 한 조각과 칼날이 예리한 접이칼을 들고 있었다. 손바닥과 손가락 마디에는 찢어진 흉터와 작은 흉터들이 나 있다. 요즘 손에 상처를 입으면서까지 소목장 목공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

목공방에는 나무 냄새가 났다. 작업을 위해 쌓아둔 건조된 목재들, 작업하는 과정에서 잘려나간 나무토막들, 수북이 쌓인 대팻밥, 톱밥 먼지가 널려있다. 그러나 작업대 뒤 연장 선반에는 공구 수백 개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그리고 가끔 낚시를 하며 계절에 따라 고기를 잡았다.

거실에 달린 달력에는 밀물과 썰물 시간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은 낚시를 하러 나갈 수 있는 날을 알기 위해서였다.

그가 말했다.

「목이 좋은 곳에 가면 고기들이 많이 달려든다네. 내가 잘 잡지는 못하지만 녀석들이 딱 물고 늘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지. 그런데 그것들이 영리해서 낚시의 갈고리가 느껴지면 바로 뱉어버리지. 아주 영리하다니까.」

「낙지 잡는 기술을 저에게 전수해줄 수 없나요? 낚시보다는 그게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아직 초가을이니까 낙지가 제대로 클 때가 아니라네. 얼둥이라고 하는 중낙지 정도가 많을 거야. 곧 11월이니 알이 굵어지겠지만.

큰 놈은 4~5자 정도 될 거야. 그것들은 진흙탕 구멍 속에 들어가 겨울에는 틀어박혀 있으면서 구멍 속에 새끼를 낳지. 그런데 새끼가 어미를 잡아먹는다네.

낙지는 고작 1년생이야. 부화한 새끼들은 어미를 먹으면서 대를 잇는 거지. 어차피 죽을 목숨, 새끼에게 주는 셈이라네.

그런데 암낙지는 교미 후에 수컷 낙지를 먹기도 한다네. 혹은 교미에 실패해도 힘이 센 놈 쪽에서 약한 놈을 잡아먹지. 특이한 종족 보존 본능을 가진 녀석들이라고 할 수 있겠네. 그러니 낙지 맛의 엄숙함을 다시 생각해보게나.」

「70~80년대에는 낙지가 지천이었다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지금도 낙지가 많이…… 낙지 잡는 기술을 말씀해주세요.」

「낙지잡이 선수들은 우선 부럿이라고 부르는 숨구멍을 찾지. 부럿을 찾으면 발로 슬슬 주변의 뻘을 밟아 주는 거야. 낙지가 숨을 죽이고 있는 자리는 공간이 생겨서 물이 차게 되거든. 그러면 낙지의 은신처를 파악한 후 삽질을 하기 시작하지. 낙지잡이 전용 삽도 있고. 보통 삽과 비슷한데 날이 훨씬 작아. 빠르게 찐득찐득한 뻘을 파기에 적합하다네.」

「그렇군요?」

「낙지가 욕심이 많고 힘이 세지. 그렇게 힘이 좋으니까 게와 새우, 조개를 잡아먹는다고. 그리고 낙지는 물고기치고는 머리가 좋고 꾀가 아주 많아.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빠른 시일 내에 직접 시범을 보여주겠네. 장도리에 한 번 가자고. 그곳 뻘밭은 여전하니까.」

「괜찮으시겠어요? 무릎과 허리 말입니다. 깊은 뻘밭에 들어가시기에는……」

「책상물림 샌님보다는 내가……」

낙지는 봄가을 두 번 부화한다. 봄에 낳은 녀석들이 더위를 피해 바다에 나갔다가 가을에 갯벌로 돌아온다. 엄청나게 먹어서 몸을 불린다. 그리고 짝짓기를 하고 새끼를 낳는다. 보통 세발낙지란 것도 이른 봄과 이른 가을에 있다.

그런데 잔 낙지가 세발낙지이고, 그게 중낙지가 되었다가 가을이 더욱 깊어지면 대낙지가 된다.


「나에게 갈망이라든가 절박감은 없다 해도 시간을 허비한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든다네. 그러니 소일거리라고 생각하지 말게.

내가 원하는 물건을 내 손으로 만들어내면서 희열을 느꼈다네. 그러나 꼭 생활필수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네. 오브제로서 소품을 직접 만드는 것이지. 그렇게 만든 게 수천 점이나 되지. 그걸 내다 팔 생각은 없어. 그걸 누가 사겠나? 그냥 손에 상처를 입어가면서까지 정성껏 만드는 거야.

그래서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대신 목공일을 하고 있는데.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는 힘들고 거친 목공일을 하는 게 훨씬 좋다네. 정신적으로 편안하거든.」

「왜, 하필 나무여야만 할까요?」

「요즘 매일 작업실에서 나무를 만지고 있지.

돌이나 흙보다는 나무 촉감이 좋거든. 나무가 가진 오묘한 멋을 자연스럽게 담아야 한다네. 나는 느티나무나 오동나무, 돌배나무, 은행나무를 주로 많이 쓰지.

원하는 크기로 나무를 잘라 두텁고 거친 나무판에 대패로 몇 차례 밀어붙이면 예상치 못한 나무의 고운 속살이 드러나지. 유일한 작업 원칙은 나무의 질감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라네. 그 순간부터 나무의 세상에 빠져버리지.」

「수공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다 해야 하니까 너무 힘들지 않겠어요?」

「그거야말로 독특한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네.」

「연장이 너무 많더군요. 언제 그렇게 장만하셨어요?」

「목공일에는 연장이 필수 아니겠나. 작업도구로는 여러 가지 종류의 대패, 강철 톱, 망치와 끌 등 수많은 공구가 있지.

솜씨 없는 놈이 연장 욕심만 많다고 했다네.」

「그렇게 열심히 만들었는데…… 전승공예대전 같은 데 출품해서 평가를 받아보지 그랬어요?」

「그럴 필요는 없었네…… 그런 정도는 아니니까.」

「요즘에는 목공일에 빠져 있으니까 소설 같은 건 전혀 읽지 않겠네요?」

「지금 형편에 글을 읽기에는 눈이 너무 침침하지. 그 소설은…… 처음 들어본다네. 당연히 읽지 못했다네. 앞으로도 내가 읽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말게.」

「그렇습니다. 다들 재미없다고 하더군요.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맥이 풀리긴 합니다만……」


우리는 마당에 쌓여있는 오래된 톱밥과 폐목재를 모아서 불을 지폈다. 불이 바싹 마른 목재를 먹어치우면서 눈부시게 타올랐다. 불길이 뱀의 혀처럼 날름거렸다.

그가 말했다.

「불길을 단순하게 화학작용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네. 그 속에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감춰져 있단 말일세.」

「무슨……」

「불은 신비한 거지. 정화제 이상인 거야. 모든 걸 사라지게 하고 모든 걸 새로 탄생시키니까. 미안하네만…… 나는 자네의 첫사랑과 이별에 대해 관심이 많다네.」

「형님께서…… 첫사랑 이야기를 다했으니까 이제는 제 차례라는 말씀이군요.」

「그렇다고 해두지. 나는 여자와 남자의 이별의 순간에 대해 특히 관심이 많다네. 여자들의 속성이 그 순간 잘 나타나지 않겠나. 그리고 그때 남자들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말이야.

그래서인지 누군가 말했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이 너무 희미한 불빛 아래서 여자를 보고 사랑에 빠졌다. 좀 더 밝은 곳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네.」

「그 순간을 잊어버리지 않고 있죠.

…… 여자는 헤어질 때 냉정하더라구요. 남자보다는 훨씬 독하지요. 제가 그때 느꼈던 분노…… 상실감…… 나를 압도했던 배신감만은 어떻게 잊어버릴 수 있겠습니까?

부질없는 이야기입니다. 부끄럽네요. 그 여자는 이미 죽었는데……」

그가 말했다.

「벌써…… 죽었다고?」

「그렇답니다. 하인숙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사람이 갑자기 그리워지는 군. 너무 자주 들먹여서 그런지 어느 순간 불쑥 나타날 것만 같다니까. 때로는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도 일어나는 법이라네.」

「여태 미련을 버리지 못 하셨군요. 잊어버릴 때도 됐지 않습니까? 지금 살아있다면 쭈글쭈글한 할머니가 되어 있겠죠. 젖가슴은 늘어지고 허연 머리숱은 얼마 남지 않았겠지요.

늙은 할머니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요. 늙는다는 것은 특히 여자에게는 지옥이나 다름없지요.」

「그러게 말이야…… 남자는 그런대로 늙어갈 수 있지만…… 여자는 늙으면 너무 추해지지. 그러나 하인숙은 아닐 거야.」

「형님이 잘못한 게 있을까요? 혹시 그때 남자로서 잘했다면 그녀의 성향을 바꿀 수 있었을 거라고…… 자책하고 계신 건 아니겠죠.」

「그럴 수도……」

「마지막으로…… 하인숙에 대해서는 이렇게 정리할 수도 있겠네요. 만약 말입니다만…… 하인숙이 지금 그때 나이라면 어땠을까요? 아마 화장기 없는 맨 얼굴에다 양쪽 귓불과 배꼽에는 피어싱을 했고 헐렁한 셔츠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강남 거리를 활보하며 걸어 다니겠죠. 그러나 실용적이어서 10센티미터가 넘는 킬힐을 신었을 리는 만무하고 당연히 싸구려 운동화를 신었겠군요.

혹시 몸에 동물 문신을 했을 수도 있어요. 네일 케어를 받으면서 매일 손톱에 영양제를 바르고 외출할 때마다 손톱에 각기 다른 형형색색의 매니큐어를 칠하겠지요. 가끔 트랜스젠더 바에 가서 위스키를 마시고 성적으로는 펠라티오를 즐겼을 거예요.

참 불쌍하지요. 그때 혼자서 사회적 위선을 뚫고 나올 순 없었다구요. 시대가 한참 변한 지금쯤 20대 후반이거나 30대 초반이어야 하는데요. 그러면 레인보우의 기수가 되어 성 소수자 단체나 페미니스트 단체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겠지요. 그렇게밖에 상상할 수 없어요.」

「그래, 그렇다고. 여자는 정말 알 수 없는 거야.

그렇지만 말일세…… 지금이라고 해도 레인보우의 기수가 될 만큼은 아닐 거야. 여성다운 면도 있었거든. 노골적으로 커밍아웃은 못 하고 꼭꼭 숨어서 했을 거라고. 집안 체면 때문에 말이야.」

「그건 어쩔 수 없어요. 선천적으로 타고 났다고 할 수 있겠지요. 동성애자 말입니다. 그런데 성 소수자들은 심한 차별을 받으니까 분노했고…… 사회적 편견에 맞서기 위해서 페미니스트가 됐을 거라고요. 시대가 한참 변했어요. 지금은 21세기에요.」


「그렇다면……시대가 그렇게 변했다면……

이제 얼추 1년이 다 된 것 같은데…… 자네가 여길 온 게 말이야. 벌써 가을이라네…… 또 그때처럼 서울로 올라갈 텐가? 그럴 수밖에 없겠지?」

「그때…… 할아버지처럼 말씀하시는 군요.

오랫동안 바다에서 노련한 낚시꾼으로 살아온 늙은 어부가 말했지요. 서울로 하루빨리 올라가야만 된다고 했어요. 사람의 새끼는 서울로 보내고 마소 새끼는 촌구석으로 보내라는 속담을 맨날 들먹였어요. 바다 사람이 될 팔자는 아니니까 여기서 괜히 시간을 죽이지 말라고 했지요.」

「그래서, 어쩌겠다는 거야?」

「서울로 다시 올라가지는 않을 겁니다. 그건 불가능해요.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할 일은 있어야겠지요. 구시가지 쪽에 집을 얻어 살면서 계속해서 무언가를 써야겠지요. 쓰는 게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여기…… 우리에 대해서 쓰고 싶습니다. 언제나 글을 쓰기 전에 작은 의식을 치러야 합니다. 쓰디 쓴 커피를 끓여서 마시고 나서 시작하지요. 제가 쓴 글 속에 뜨거운 피가 흘러야 할 겁니다.」

「왜? 바닷가를 떠날려고?」

「바다가 늘 유혹을 하지요. 그래서 바다가 안 보이는 구시가지 쪽으로 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소설을 쓰겠다고?」

「소설은 쓰기도 어렵고 출판하기도 어렵죠. 어떤 면에서는 출판이 더 어려워요. 자비 출판을 할 돈도 없지만…… 그건 자존심이 상해서 하고 싶지 않네요. 그러나 끝까지 쓸 거예요.」

「누가 알아봐주지도 않고…… 팔리지도 않을 글을 계속 쓰겠단 말이지? 그게 어쩔 수 없는 무명작가의 운명이겠지. 그러나 자포자기해서 그걸 태워 없애지는 말게. 카프카를 보더라도 유언대로 그의 작품을 모두 소각해버렸다면 그는 진즉 땅속으로 묻혀버렸겠지.

누가 믿거나 말거나 스스로 글재주가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니까…… 혹시 자네가 죽은 후에라도 빛을 보지 않겠나?

그런데 소설의 마지막 부분 말일세……」

「‘당신은 무진을 떠나고 있습니다’, 그 부분 말씀인가요?」

「그렇다네. 거기에 ‘27일 회의 참석 필요. 급상경 바람 영.’ 이라는 아내가 친 전보가 나오지 않는가. 그러니까 윤희중이는 휴가를 얻어서 어머니 산소에 간다는 핑계로 대대동으로 내려왔지 않은가. 그 일주일 사이에 주주총회가 개최될 거고. 그렇다면 말일세…… 왜 구태여 전보를 칠 필요가 있었냐는 거지. 일이 진행될 순서가 뻔하게 정해져 있었는데. 왜 급상경이 필요했을까?

그리고 자네도 회사법 전문 변호사였다니까…… 주주총회에 왜 윤희중이 참석할 필요가 있었을까? 주주도 아니고 회의 진행을 맡은 대표이사도 아닌데……. 도대체 말이 안 되는 거야.」

「형님도…… 지나치게 꼼꼼히 따지는 거 아닌가요? 소설이란 게 대충…… 그럴 필요가 없지요. 아마…… 그게…… 제 생각에는…… 이야기를 계속 이어서 쓰려면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생각해야 되지요.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아요. 글은 어떻게 해서든지 마무리를 해야 했습니다. 그것도 멋지게 마무리 하고자 하는데 어떤 계기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때 필요한 것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 아니겠습니까?」

「나는 그런 어려운 말은 모른다네. 라틴어 같기도 하네만……」

「저도 딱히 설명할 자신은 없어요.」

「조만간 망령이 날 거야. 그 전에 준비를 해야겠지.」



14. 그날, 아침 안개가 중의 까까머리를 깬다는 속담이 들어맞을 듯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짙은 농무가 해안가를 휘감고 있었다. 나는 오후 2시경 경찰서에 출두했다. 어제 파출소 순경이 뜻밖에 집으로 찾아왔고 본서에서 연락이 왔는데 날 찾아내서 강력계로 출두시키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역시 이유는 모르고 있었다.

나는 몹시 당황했다. 강력계라고? 무슨 일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강력계에 출두할 만큼 무슨 짓을 저지른 것 같지는 않은데. 혹시 그일 때문에? 아내가 마음이 변해서 가출 신고라도 한 것일까?

내가 경찰서에 가면 하지 말아야 할 말은 한 마디도 해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다. 나는 수사기관에 출두하는 피의자들에게 매번 강조했던 대로 내가 그렇게 해야 한다. 즉각 대답하지 않고 머릿속으로 다섯까지 세고 나서 대답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불리하게 작용하는 성급한 답변을 제지할 수 있다.

정년을 코앞에 둔 것처럼 보이는 늙은 형사가 느릿느릿 말했다.

「이렇게 나오시게 해서…… 윤희중씨 잘 아시지요…… 그쪽 동네에서는 그렇게 부르더라구요.」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주민등록은 진즉 말소됐습니다. 도사동 출신이고 1934년 생이더라구요. 그러면 금년에 나이가 만 80세가 되지요. 실제는 한두 살 위일 겁니다. 본명은 윤기준이구요.

함께 술도 마시고 늘 어울렸다고 합디다만…… 동네 사람들한테 그렇게 들었어요.」

「한두 달 간 만나지 못했습니다만…… 무슨 일이……?」

「자살했습니다. 틀림없습니다.」

「틀림없다고요……?」

「그렇지요. 유서도 있고, 통화내역도 있고, 단서도 있습니다. 부검을 하였는데 수면제 과용인 것 같습디다.」

나는 그의 자살 소식을 처음 들었지만 그 순간 어떤 격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죽어서 안 됐다는 느낌, 어차피 잘 됐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우리가 가까운 사이 혹은 특별한 관계였을까?

그는 수면제를 한 움큼 먹고 깊이 잠이 들어서 자신이 죽어가고 있는 줄조차 모르고 죽었을 것이다.

「무슨 통화내역인가요?」

「윤희중씨가 죽기 전에 이분하고 통화를 했습니다. 자살은 범죄는 아니니까 무슨 조사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독교 교인들을 제외하면…… 그렇겠지요.」

「…… 이렇게 말씀드려서 죄송합니다만, 그렇게 함께 지내면서 어떤 낌새를 느끼지 않으셨나요?」


그때 그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몇 년 전인가, 아주 옛날 어머니가 다녔던 교회의 목사가 나를 찾아와서 하느님에 관한 얘기를 좀 해보자고 하더라고. 나 정도로 늙었으면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께 귀의해서 기도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어. 목사가 힘주어 말했어. 어르신이 누구신지 하느님 말고 누가 기억하겠습니까. 목사님도 아시다시피 내겐 남은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니 하느님 때문에 시간을 허비하고 싶진 않다고 말해주었어. 그런데 그 젊은 목사는 뻔뻔하게도 계속 물고 늘어지면서 끈질겼다네.

아닙니다. 할아버지. 저는 당신 편입니다. 그런데 당신이 귀신에 씌여서 앞을 내다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을 알 수가 없는 거지요. 제가 할아버지를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하느님이 지옥이 아니라 천당으로 인도하시게 말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자원 봉사를 하는 사람들이 도와줄 수도 있어요. 불편한 점이 계시면 언제든지 연락을 해주세요. 돌아가시면 끝까지 다 정리해드릴 것입니다. 재산이나 법적인 문제까지도 모두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 순간 왜 그런지 몰라도 내 안에서 마침내 분노가 마구 폭발하더군. 그래서 내가 말했어. 당신들의 신 그리스도는 오직 믿음 말고는 아무것도 필요없다는 거 아닙니까. 믿음보다는 진실이 우선이지요. 목사가 말했다네. 요즈음 인간들은 신을 믿기에는 너무 영리하지요. 그래도 진실은 신만이 알고 있겠지요.

무슨 수작인지? 하느님은 어머니의 지극 정성스러운 기도도 들은 체 만 체 했었는데…… 그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 그리고 무슨 법적…… 재산…… 운운하는 바람에 분통이 터졌다네.

그때 무심결에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네. 목사에게 어머니처럼 상소리로 욕을 퍼붓고 나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라고 몇 번씩이나 말했지.

나는 지금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으니 숨을 쉬고 살고 있다는 것조차도 확신할 수 없네. 그러나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다네. 그러니까 곧 닥쳐올 죽음에 대한 확신이지.


내가 말했다.

「글쎄요. 혹시 자살이라면 제가 먼저였겠지요. 그런데…… 저는 자살할 생각을 접었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자살하면…… 경찰만 뒤치다꺼리하면서 고생한다는 것을 알아주십시오.」

일반적으로 유물정리업이라고 하는 특수청소업체의 대표가 설명했다. 그는 이미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저는 불행하게 죽은 사람들의 삶의 마지막 흔적을 정리하는 사람입니다. 특히 고독사나 자살한 현장에서 유물과 유품을 정리하는 거지요. 쉽게 말해서 옛날에는 폐품 수집상 또는 고물상이 했던 일입니다.

열흘 전쯤이었어요. 어떤 할아버지가 전화를 했습니다. 희미한 목소리를 들으니 분명히 할아버지였어요. 사망 현장을 깨끗이 정리하는데 드는 비용이 얼마인지 묻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주소와 위치를 자세히 가르쳐주더군요. 바로 약속 날짜를 잡았습니다.

현장에 내려와서…… 알고 보니까…… 그 할아버지가 혼자 살면서 전화를 했고 제가 도착했을 때는 침대에서 자는 것처럼 죽어있었어요. 이미 시체가 굳어있더라고요. 그래서 경찰에 먼저 신고부터 했습니다.

그런데 집안을 살펴보니 그림이라든가 목공예품 같은 것이 수천 점이나 있었던 거 같은데 전부 불에 태워버려서 재만 남아있었지요. 그리고 나머지 살림살이는 너무나 깨끗이 정리되어 있어서 치우는데 별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경찰조사가 끝났으니까 곧 처리해야겠죠. 비용은 두 배로 계산해서 탁자 위에 놓아두었습니다.」

형사가 말했다.

「그쪽은 가셔도 좋습니다. 조사에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때 그 형사가 자판기 커피를 꺼내서 들고 왔다. 나는 종이컵에 담긴 뜨거운 커피를 조심조심 마시기 시작했다. 커피가 금방 미적지근하게 식었고 종이컵 밑바닥에 설탕 찌꺼기만 남았을 때 종이컵을 구겨서 쓰레기통으로 던졌다.

내가 말했다.

「저는요?」

「전해줄 게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뭘 말씀인가요?」

「뭐…… 별 것은 아니지요. 그저 이야기나 더 나누고 싶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건 조사하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 안심하십시오. 마을 이장한테서 원래 순천 출신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이장은 그 이상 자세한 것은 모릅디다. 혹시 순천중고를 졸업했습니까?」

「저는 순천이 고향이긴 합니다. 몇 대 선조 때부터 대대로 살았지요. 지금은 산소만 남아있어요. 이곳에서 초등학교까지 다녔습니다.」

「요즘은 귀농과 귀촌이 유행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직장을 은퇴하고 나서…… 고향으로 내려오신 거겠군요. 자녀분들은 다 결혼을 하고나서 말이지요. 혼자 오신 거 보니까 혹시 부인이 돌아가신 거 아닌가요?」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살한…… 그 할아버지 말입니다. 그렇게 자주 어울렸다면…… 뭘 잘 알고 계실 것 같은데요? 그렇지 않습니까?」

「자주 어울린 건 아닙니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결벽증이 있으니까 사적인 부분은 원체 말씀이 없으셔서……」

「제가 처음 시체를 봤을 때 아주 깔끔하고 품위 있게 죽었단 말입니다. 시체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이곳 농부나 어부 같지도 않고. 많이 배운 지식인처럼 보였어요. 지금 농촌에선 가끔 자살 사건이 일어납니다만 대부분 농약을 먹고 비참한 모습으로 죽으니까 수면제 자살은 아주 드문 일이거든요. 이제까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특이했습니다.

제가 순천 출신이고 순천중고를 나왔습니다. 그분이 까마득한 선배가 되지요.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좀 알아봤지요. 이건 수사와는 관계없이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전혀 쓸데없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어쨌거나 사람이 죽었지 않았습니까.

순중 동창생 몇 분을 만나서 자세히 들었지요. 그 할아버지는 본명이 분명히 윤기준이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 키가 크고 잘생겼고 공부도 잘했다고 하더군요. 항상 전체 수석이었고 책은 닥치는 대로 얼마나 많이 읽었던지 글도 아주 잘 썼답니다. 자기는 장차 유명한 작가가 되겠다고 장담했답니다. 그래서 친구들의 연애 편지는 도맡아서 대신 써주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홀어머니 밑에서 가정 형편이 안 좋았습니다. 그 시절에도 순중에서 공부를 잘하고 집안 형편이 웬만하면 서울이나 광주로 가는데. 그래도 대부분 순고로 진학했거든요. 그분은 도저히 형편이 어려워서 3년 장학금을 받기로 하고 벌교상고로 갔다고 하더군요. 벌교상고를 졸업하고 나서 한국은행에 들어갔답니다. 한국은행은 수재가 아니면 못 들어가지요. 그때나 지금이나 하늘의 별따기지요. 그러고 나서 스카웃되어 제약회사로 옮겨갔다고 했습니다.

동창생들의 말을 들어보면…… 윤기준 할아버지는 40대 초반 무렵까지 가끔 만났다고 하더라구요.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는 순천에 자주 내려오셨답니다. 아주 효자였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부터 발길이 뜸하다가 아주 끊겼다고 했습니다. 어머니 장례식 때는 동창생들이 아주 많이 모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더 조사해놓은 게 있으신가요? 가령 전과 기록 같은 거 말입니다.」

「말씀드려도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간통으로 한 번 고소되었다가 합의가 되어 취소된 사건이 있었고 마약으로 집행유예를 받은 게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게 전부 부산에서 있었던 사건입니다. 혹시 부산에서 살았을까요?」

「저는 잘 모르지요. 그런데 시체는 어떻게 처리할 겁니까?」

「그게 약간 골치 아파요. 무연고자 처리를 해야겠지요. 보통 시청 복지과로 넘깁니다.」

「제게 넘겨주시면 화장을 해서 바다에 재를 뿌리겠습니다. 그분의 희망사항이 아닐까요?」

「그렇게 해도 되는지 검토를 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러면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탁자 위에 노란 봉투가 있었는데 그 속에 두툼한 노트 몇 권과 메모지와 두 통의 유서가 있었어요.

하나는 친절하게도 경찰에게 남긴 거고…… 또 하나는 선생님에게 남긴 거였습니다.」

윤희중은 경찰에 대해서는 번거롭게 해서 미안하다고 양해를 구하면서 자신은 틀림없이 수면제를 먹고 자살한 것이라고 했고, 가족이나 연고자가 아무도 없다고 했으며, 집과 기타 재산은 옛날 어머니가 다녔던 교회에 기증하겠다고 하였다. 은행에는 상당히 큰 금액의 예금 잔고가 남아있었다.


* * *


나는 더 늦기 전에 결정을 내렸다네. 자유로운 한 개인의 권리에 근거해서 내 생명을 처분한 거라고는 생각하지 말게. 자살에 이를 만큼 절망적이지도 않았고 죽음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그런 상황도 아니었네. 다만 자살을 감행할 만큼 정신적으로 강한 의지와 용기는 가지고 있었다네. 죽을 마음의 준비가 된 거지.

내가 깊은 밤 어느 순간 발작을 하고 충동적으로 이런 결정을 내렸고 그 결정을 정당화할 충분한 논거를 내세우고 있는 것은 아닐세.

나는 충분히 오래 살아남았네. 어쨌거나 일찍 죽는 것보다는 오래 사는 것이 더 좋은 거지. 그 이후 일어난 내 이야기를 두서없이 자네에게 모두 털어 놓았고 더욱 자세한 것은 내가 일기장이나 메모, 비망록을 남겨놓았으니 그걸 참고하게나. 그 일기장에는 金惠淑의 사진이 여러 장 들어있다네. 그러나 몇 가지 비밀은 비밀로 그냥 남겨두었지.

내가 당신에게 두서없이 이야기했던 그 후…… 내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써서 발표하는 것에 동의한다네. 당신이 그럴 생각이 있다면 말일세. 쓸데없는 간섭을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네만 가급적 또는 꼭 정확히 사실 그대로 쓰는 게 어떨까. 더 이상 내 이야기가 가감하고 윤색되어 과장되거나 미화되는 것을 피하고 싶다네.

어쨌거나 책을 출판하게. ‘모든 책은 제각기 자신의 운명을 가지고 있다’고 했어. 안개처럼 깔려있는 어둠을 헤쳐 나가게. 자네도 잘 알다시피 안개는 결국 햇빛에 사라지게 돼있어. ‘어둠이 깔려야 비로소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비상을 시작한다’고 했다네.
2018-03-30 11:52:07
14.xxx.xxx.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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