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유중원 대표 단편선> 광화문광장
 닉네임 : 유중원 변호사  2017-12-29 14:35:44   조회: 381   
광화문광장 光化門廣場



언어가 불명케 한들, 침묵이 어둡게 하지는 않는다.
침묵은 다시 태어나게 한다.
― 에드몽 자베스




세종대로는 북쪽 경복궁 광화문에서 시작하여 남쪽 숭례문에 이른다. 숭례문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사라진 옛 중앙청 자리에 우뚝 서 있는 광화문 쪽으로 올라가면 덕수궁과 서울시청과 시청 앞 서울광장이 있고, 전국 도로의 원점인 도로원표 道路元標 가 있는 광화문 네거리를 지나면 민중의 의지가 결집하고 분출하는 민주공화국의 심장부인 광화문광장이 북악산을 향해 멀리 아득히 펼쳐지는데 오른쪽으로 교보문고와 미국 대사관,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이 있고 왼쪽으로는 세종문화회관, 정부종합청사가 있다.
광화문에서 경복궁 동쪽 담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옛날 보안사령부 터에 자리 잡은 국립현대미술관과 삼청파출소를 지나 삼청동에 이르게 되고, 경복궁 서쪽 담을 끼고 왼쪽으로 돌면 국립 고궁박물관, 통의동 파출소와 통의동 우체국을 지나 창성동, 효자동, 궁정동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그 길들은 경복궁 북쪽에서 서로 만나게 되고 경복궁 북쪽 신무문 건너편에 흉가인 청와대가 자리 잡고 있다.
광화문광장에는 세종대왕께서 옥좌에 앉아 왼손에는 훈민정음을 들고 오른손은 어색하게 반쯤 들고 있는데 얼굴에는 근엄한 미소가 흐르고 있다. 동상 앞 바닥에는 청동으로 된 실물 크기의 해시계와 측우기, 혼천의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튼튼해야만 나라가 평안하게 된다.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글자와 서로 통하지 않으니 백성들은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끝내 그 사정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다. 내가 이것을 안타깝게 생각해서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들었으니 백성들이 쉽게 읽혀서 일상생활이 편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지척에 이순신 장군이 오른손에 긴 칼을 잡고 왼손은 갑옷의 옷깃을 여미며 외롭게 서있다. 깊은 주름이 잡혔을 넓고 쭈글쭈글한 이마와 목덜미 위에서 바닷바람에 흩날렸던 반백이 다 되었을 무성한 긴 머리는 투구 속에 감춰져 있고 치켜 올라간 짙은 눈썹 아래 수심에 찬 듯 고독한 눈빛은 남해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 위대한 인물의 비장한 눈빛이 어디를 바라볼 수 있겠는가. 한산섬 바다 아니겠는가.

이순신을 털끝만치도 용서해줄 수 없다.
이순신의 죄는 용서할 수 없다. 마땅히 사형에 처할 것이로되, 이제 고문을 가하여 그 죄상을 알고자 하니 어떻게 처리함이 좋을지 대신들에게 물어보라.

1987년 6월 그 광장에서 6월 항쟁이 있었다. 그리고 그해 7월 9일 연세대 교정 백양로에서 이한열의 장례식이 있었다. 이한열의 운구 행렬은 학교를 출발해 신촌로터리를 지나 서울광장을 거쳐 80년 광주의 전남도청 앞 광장과 민족민주열사 묘역으로 갔다. 이한열의 운구 행렬이 서울광장에 이르렀을 때 그곳에 모인 추모 인파는 100만 명에 달했다.
그리고 15년이 지나 2002년 6월 한일월드컵 때 광장에는 붉은악마 응원단들이 모였으니 그들의 목쉰 함성이 하늘을 찌를 듯 울려 퍼졌다. 그리고 또 12년이 흐른 2014년 4월 광장에는 세월호 참사 분향소가 차려졌다. 2010년 천안함 순직 용사 분향소가 차려진 곳도 광장이다. 그리고 고 백남기 농민 추모제, 국정교과서 폐기, 사드 배치 철회, 성과연봉제 중단 시위, 단식 농성, 1인 시위 등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얼마 전부터 명절 즈음이면 광장에는 특산물 장터가 열린다. 전국 각지에서 특산물을 싣고 올라온 화물차들이 광장을 울타리처럼 둘러쌌다.
날씨는 따뜻하면서 화창하기도 하고 구름이 끼고 추운 날도 있었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고 있었다.
광장에 서식하는 비둘기 떼들은 사람들이 주는 먹이를 받아먹는 것에 익숙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타나면 몸을 뒤뚱거리며 종종 걸음으로 모여 들었다. 그리고 무슨 일인지, 놀란 비둘기들은 흩어지면서 회색 도시의 먼 하늘로 날아 올라갔다.

하늘에는 비둘기들 훨훨 날고 / 하늘을 날았다가 멈추었다 하더니 / 상수리나무에 모여 앉았지

* * *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의 국정 농단 의혹으로 촉발된 촛불집회가 시작된 지 벌써 몇 달이 지났다. 분노한 민중들은 매주 토요일 광장으로 몰려나오고 있다.
사람들이 손에 손에 촛불을 들고 모여들었다. 비디오 프로텍터들이 무대 뒤 흰 장막을 향해 빛줄기를 뿜어댔다. 높은 비계 위에서 대형 스피커가 울려 퍼지고 군중은 웅성거렸다. 그들은 박수를 치고 함성을 지르고 노래를 불렀다. 때론 울고 웃고 떠들었다. 경외감을 느낄 만큼 장엄한 광경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심장이 멈출 듯했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약간의 호기심 때문에 한 번쯤은 가봐야겠다고 생각해서 그날 밤 참석했던 것인데. 물론 나는 촛불을 들지 않았고 두 손을 두툼한 겨울 잠바 호주머니에 찔러 넣고 있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착잡한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나는 약간 흥분했고 낙관적으로 생각했다.
악몽은 아니다. 엄연한 현실이다. 이건 축제야. 그것도 굉장한 축제란 말이지. 하지만 이 축제도 곧 끝나겠지.
초기에는 최순실의 국정 농단 의혹에 집중되었으나 시간이 가면서 대통령을 직접 겨냥해서 하야 또는 퇴진, 탄핵과 구속 목소리까지 분출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광화문광장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촛불을 들고 쏟아져 나온 민중들은 전과는 달리 대통령 퇴진이 아닌 즉각 퇴진을 요구하고 하야가 아닌 체포를 외쳤다.

이게 나라냐?
하야 하라
내가 이러려고……
조기 탄핵
노동자의 책에 대한 국가보안법 탄압 중단
관제 데모 진짜 몸통을 구속하라
모든 양심수를 즉각 석방하라
나의 투쟁! 너의 투쟁! 우리의 투쟁!
염병하네
재벌 규탄
특검 연장하라

나는 계속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불안감을 어쩔 수가 없었다. 하야 하라. 너무 나아가고 있지 않은가. 약간 흥분했던 기분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머릿속에서는 나를 괴롭히는 갖가지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결국 실패할 것이다. 뭔가 잘못될 것이다. 최악의 겨울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비관적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두터운 장벽은 너무 단단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반격할 것이다. 물대포와 최루탄, 궁극적으로는 총과 칼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경찰과 정보기관, 군대를 거느리고 있지 않은가. 법률이 보장하고 있는 계엄령이라든가 비상명령, 위수령 등 온갖 수단을 갖고 있다. 우리는 준비도 없이 달랑 촛불 하나에 의지하고 있으니.
위선자인 정치가들을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피를 흘려야 할 것이다. 혁명은 피를 흘리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나는 4.19혁명과 5.16쿠데타, 12.12군사반란, 5.18광주항쟁, 6월 항쟁, 비상조치, 국가보안법, 형법 등을 생각했다.

* * *

2016년 10월 29일 이후 계속된 주말 집회로 시민들의 피로도가 누적되었을 뿐만 아니라 갈수록 겨울 날씨가 쌀쌀해지고 추워지기 때문에 규모가 줄어들었지만 열성적인 참가자는 여전하다.
비폭력 평화집회.
부모의 손을 잡고 나온 어린이들, 중고등학교 학생들, 할머니, 할아버지, 수녀, 스님까지 남녀노소가 다 모였다. 우리가 이렇게 형편없는 나라에서 살고 있구나 하는 배신감과 두려움 같은 감정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들이 말했다.
주술과 사교에 중독된 멍청한 대통령과 수준 낮은 무당이 이 나라를 통치했지만 망하진 않았습니다. 이들은 청와대를 미용샵과 러브호텔로 바꿔놓았지요.
그러나 집회에 참석하는 참여자의 면모를 살펴보면 겉으로는 불특정 다수가 무작위적으로 모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 내부에는 엄연한 질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시민의식이 그만큼 발전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온 국민이 분노했고 이번 촛불집회의 저변에 깔려있는 의미에 동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시민들의 촛불집회가 자발적이고 순수한 민의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래서 일부 정체불명의 단체들이 내건 정치적 선전에는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많은 국민이 모인 것은 결코 일부 좌파 세력의 힘 때문이 아니라며 그들의 구호와 현수막이 집회의 본질을 흐릴까 걱정했다.

그러나 광장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탄핵 반대 집회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그들은 손에 촛불 대신 태극기를 들고 있다. 이른바 태극기집회였다. 그들도 집회에 참석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으니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다.
그들이 말했다.
촛불집회 얘기가 너무 많이 나와서 지겹다. 대통령을 지지해서 나온 것이 아니다. 촛불 정국이 모든 것을 뒤흔드는 것이 불안하고 걱정된다.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대부분 돈 받고 나온 사람들이다. 광장의 목소리가 나라를 주도하는 현 상황이 걱정된다.
촛불을 든 젊은 세대의 마음을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 그러나 나라의 안보가 정말 걱정된다. 요즘 젊은이들은 우리가 겪은 전쟁의 경험을 아무리 이야기해도 이해하지 못한다. 군중의 흥분과 광기, 그런 게 곧 전쟁으로 이어질지 모르겠다. 민심이 광장에 쏠려 있을 때 안보를 놓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밤이면 잠이 오지 않는다. 그래서 태극기집회에 나오는 것이다.
촛불집회로 상징되는 광장 정치가 비이성적이다.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아 걱정된다. 우리의 대통령님이 무엇을 잘못했기에 북한식 인민재판, 북한식 마녀사냥을 당해야 합니까? 이 살기 좋은 나라에서 무엇이 못마땅하여 독재국가 북한을 찬양하고 추종하는 세력들하고 붙어서 대통령님을 탄핵시킵니까?
무엇인가에 쫓기듯 증인신문도 하지 않고 결판을 내려고 합니다. 이게 재판입니까 뭡니까? 헌재 거기에는 악마의 재판관 3명이 있다고 합니다. 제가 그 실명을 밝힐까요?
난 사실 박 대통령은 탄핵되어야 한다고 봐. 하지만 요즘 보면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송두리째 부정되는 느낌이 들어. 억울해서 나온 거야. 나 같은 사람도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 * *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들이 믿고 싶어 하는 내용이 진실이라고 확정하고 굳게 믿어버리는 확증 편향 confirmation bias에 사로잡히기 쉽다. 사실이 아니라는 증거가 있을 때조차 그대로 쉽게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속으로 이미 결정을 내린 다음 그 결정을 뒷받침할 수 있는 내용만 받아들인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이건 인간이 남을 속이려는 본능적 성향과 속임수에 취약하다는 특성의 또 다른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공자님은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게 앎’ 이라고 하였거늘.
그러니까 그들의 주장을 살펴보면 마치 청년과 노인 세대 간 전쟁 같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싸가지 vs 꼰대의 대결. 그러나 멍청하게도 왜 우리들끼리 싸우고 있는가. 청년과 노인들 모두 밑바닥으로 내팽겨진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약자층 아닌가. 청년들은 유례없는 청년 실업난에 시달리고 노인들은 모아 놓은 돈도 없고 연금 혜택도 없는 극빈층 아닌가.
우리 사회의 최상위 기득권층인 금수저와 다이아몬드 수저들은 뒤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 또는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좌고우면하며 우리들을 이용하고 은근히 싸움을 부추기고 있는데. 아니면 철저히 방관하고 있는데. 그들은 권력에 기생해서 권력의 보호와 그에 따른 특혜를 원한다. 그래서 눈을 가늘게 뜨고 저울의 추가 어디로 기울어지는가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 * *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가 주최하는 틀딱 (틀니 딱딱)들의 태극기집회는 덕수궁 대한문 앞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다. 주로 60세 이상 노인들인 집회 참가자들은 확성기에서 퍼져 나오는 진군가, 멸공의 횃불 같은 군가를 따라 부르고 간간이 태극기를 흔들며 목청을 돋우어 구호를 외쳤다.

촛불은 꺼져라
계엄령을 선포하라
이석기 사형
역대 대통령 중 가장 깨끗한 대통령
대통령은 무고한 희생자
탄핵 반대
탄핵 무효

그러나 촛불집회는 계속 타올랐다.
2016년 12월 3일.
광화문광장을 비롯해 전국 주요 도시에서 촛불집회가 동시 다발적으로 열렸다. 주최 측 추산에 의하면 광화문광장에만 170만 명이 집결했다. 경찰 추산으로도 전국에서 총 42만 명이 집결했으므로 역사상 가장 많은 인원이 집회에 참여한 것이다.
이번 집회는 지난 11월 29일 박근혜 대통령이 3차 대국민 담화 이후 처음 개최된 집회다. 지난 5차 집회보다 참가자들이 그렇게 많이 증가한 것은 대통령이 담화를 통해 사실상 퇴진을 거부한 것에 분노했기 때문이다.
정월 대보름날.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 주최하는 좌좀 (좌파 좀비)들의 제15차 촛불집회가 열렸다. 참가자들 일부는 광화문에서 좌회전하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까지 또는 자하문로 16길 21을 갔다가 되돌아왔고 일부는 우회전하여 청와대 앞 100미터 거리인 팔판길 16길까지 갔다가 되돌아와서 헌법재판소로 향했다.
형광색 점퍼를 입은 전경들이 중무장을 하고 차벽 앞에 촘촘하게 붙어 늘어서있다. 그들은 어떠한 감정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며 입을 꼭 다물고 무표정했다. 그러나 큰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부 몸부림에 가까운 몸싸움이 있긴 했지만 말이다.

나는 물밀듯이 밀려드는 두려움 때문에 몸을 떨었다. 차갑고 눅눅한 겨울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지나갔다.
나는 이만하면 다행이라고 안도감을 느꼈다. 하지만 배가 아프기 시작했고 편두통인 것처럼 머리가 욱신거렸다.
나는 그만 눈물을 흘렸다. 눈물이 그치고 나자 기분은 한결 나아지기는커녕 온몸에서 힘이 빠지면서 공허할 뿐이었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있던 비밀스러운 자아는 이 모든 사태를 부정하고 있었다. 나는 꼼짝할 수 없었다. 몸을 움직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도저히 움직일 수 없다. 입이 얼어붙어서 소리를 지를 수가 없었다. 지난 밤 악몽은 그것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어두운 기운이 충만한 짙은 안개가 주위를 감싸고 있었을 뿐이다.

* * *

거대한 무대장치는 인공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그러나 다시 살펴보면 인공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보였다. 무대 위 수수한 사람들 모습과 그들의 솔직하고 겸허한 말 때문이었다.
자유 발언 시간에 수줍은 모습으로 무대에 올라온 한 주부는 말했다.
저는 평생 처음으로 이런 데 나와 봤습니다. 몹시 궁금했거든요. 전문 시위꾼은 아니에요. 그저 효자동에 사는 평범한 주부일 뿐입니다. 다시는 안 나올 거예요.
대통령은 국민 행복시대를 열겠다고 공약해 놓고 실제로는 국민을 고생시키고 있습니다. 국민 불행 대통령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대통령은 추운 날씨에 국민들 고생시키지 말고 빨리 결정하십시오.

세월호 참사 발생 1000일을 이틀 앞둔 촛불집회 행사에는 참사 당시 단원고 학생이었던 생존자들이 단상에 올라왔다.
응원하고 걱정하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죄송함도 느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시민 여러분 앞에서 말씀드리기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군요. 시간이 지났고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을 위해 이제는 기회가 된 것 같아 나왔습니다.
함께 슬퍼해 주고 함께 행동해준 국민들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들과 함께 하여 주십시오. 진상 규명을 위해서 목숨 걸고 앞장서겠습니다.
국민들이 함께 소리 높여 주고 행동해줘서 감사합니다.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합니다.

어떤 머리가 짧고 청바지를 입은 단정한 차림의 젊은이가 단상에 뛰어 올라왔다.
저는 한 달 전에 제대하였습니다. 얼마 전까지 형광색 점퍼에 검은 바지를 입고 ‘이 선을 넘지 마시오’라고 적힌 노란 바리케이드 뒤에 묵묵히 서 있던 의무경찰이었습니다.
이번에는 고생이 많다며 시위대로부터 격려를 받기도 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입에 담지 못할 쌍 욕지거리를 들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입을 꾹 다물고 가만히 서 있어야 했습니다. 그 심정 오죽했겠습니까. 저희들도 혈기왕성한 젊은 청춘인데요.
우리들은 시위 진압에 투입되기 전 장비와 대오를 꼼꼼하게 점검하면서 바짝 긴장합니다. 준비를 잘해야만 돌발 상황에 대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흠 잡힐 만한 행동하지 말고 충돌은 되도록 피하라는 지시가 내려오지요. 우리들끼리 다치지 말자고 다짐합니다. 다치면 우리만 손해니까요.
밤샘 집회가 예정된 경우에는 근무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더 단단히 준비를 합니다.
이번 시위의 경우 입장만 다를 뿐이지 시위대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찰이 있을까요. 우리도 엄연히 국민입니다.
반정부 시위에서 의경들은 대부분 정부 편을 들기 쉬운데 이번 사태는 의경들조차 등 돌리게 했습니다. 마음 같아선 청와대로 가는 길을 열어주고 싶었지요.
제가 복무 중이 아니었다면 저도 당연히 진즉 시위에 참여하고 SNS에 글도 많이 썼을 것입니다. 가끔 시민들이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기도 했는데 저는 오히려 시위대에게 힘내라며 먹을 것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게 제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번 촛불집회를 보며 단 한 번도 시위를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경찰은 시위가 안전하고 합법적으로 이뤄지도록 관리했습니다.
어떤 때는 일부 시민과 경찰의 대치가 새벽까지 계속되었지요. 이때는 지루함과 육체적 피로를 견뎌야 합니다. 계속 서 있다 보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지요. 머릿수를 세면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냅니다. 무거운 장비를 들고 8시간 동안 동료와 딱 붙어 선 채 버텨야 합니다. 그때는 오늘은 언제 끝날까,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무엇보다 가장 크지요.
아! 정말 헬멧은 무겁지요. 오래 쓰고 있으면 머리가 지근지근 아프지요. 그때는 머리가 깨질 것만 같습니다.
그래도 시민들이 아무 잘못도 없는 당신들이 왜 이렇게 고생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해줬을 때는 정말 울컥했습니다.
날이 점점 추워지는데 이 촛불집회는 언제쯤 끝날까요? 제발 정치권에서 문제를 빨리 해결해 사회가 안정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날 밤이 깊었을 때 늙고 초췌한 노인이 마지막으로 엄숙한 종교적 의식이 거행되는 제단 위로 한쪽 발을 몹시 절뚝거리며 굼뜬 동작으로 올라왔다. 약간 못마땅한 눈빛으로 군중들을 곁눈질 한다.
촛불은 많이 꺼졌고 군중들은 대부분 집으로 돌아간 후였다. 그러나 오히려 차분한 분위기였다.
그의 눈에는 단순한 광기라고 할 수 없는 눈빛이 조명 속에서 빛나면서 얼마 남지 않은 군중들을 향했다.
그가 말했다.
저 같은 늙은이도 이런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이 무대에서 감히 자유 발언을 해도 되는 건지…… 저는 저 아래 태극기집회에 가야 하는데…… 엉뚱한 데로…… 이 단상은 너무 높지…… 제가 단상에 올라온 일은 평생 처음…… 창피한 생각도 들고…… 그렇네요.
몇 번이고 망설였습니다. 이해해주십시오. 전들 왜 하고 싶은 말이 없겠어요.
저는 지금 흥분되고 떨려서 머리와 가슴이 터질 것만 같지요. 저는 죽을 지도 몰라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여기서 이름을 밝힐 수는…… 해직 기자 출신이지요. 그러고 나서 쭉 역사의 방관자로 살아왔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어쩔 수 없었다고…… 말도 안 되는 치사한 변명을 늘어놓아도 될까요? 자괴감을 느끼지요.
한번 돌이켜 봅시다. 4‧19 혁명 당시 전 중학생이었지만 형님을 따라서 거리로 나섰지요. 그때 제가 뭘 알았겠습니까, 그냥…….
그러나 4‧19 혁명은 그 꽃이 피기도 전에, 열매가 맺기도 전에 5‧16 군사 쿠데타 세력에 의해 잔인하게 짓밟혔지요. 그 중심에는 절대적인 군국주의 신봉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결국 유신독재 체제를 만들어 통치한 전대미문의 독재자였습니다.
긴급조치! 군법회의! 사형! 무기징역! 비상계엄령! 공수부대! 중앙정보부! 남산 지하실!
민청학련과 인혁당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사법살인을 누가 기획하고 지시하였을까요?
1979년 10월 부마항쟁 때 부산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마산에는 위수령을 내리지 않았던 가요? 그래서 특수훈련을 받은 공수부대가 현지로 급파되지 않았던가요. 그가 불귀의 객이 전 불과 일주일 전의 일이었습니다. 인간은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다는 거지요.
그 옛날에…… 궁정동 안가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가요? 10월 26일 밤에 일어난 일이지요. 부마항쟁으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젊고 어린 여자애들을 데리고 무슨 짓을 했을까요? 성적 탐닉이 있었지요. 그 주체할 수 없는 쾌락 때문에 파멸이 뒤따랐던 거지요.
장군은 유신의 심장을 향해서 야수의 심정으로 총을 쏘았던 것입니다. 독일제 권총에서 뿜어져 나온 총알은 빨랐습니다. 왜 확인사살까지 했을까요. 인간적 환멸 때문이었다고 했습니다.
사방으로 검붉은 피가 튀었지요.
그는 배은망덕한 인간이었을까요? 탱크로 수백만 명을 깔아뭉개버리겠다고 호언장담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직접 발포명령을 내리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장군이야말로 수백만 명의 목숨을 구한 것이지요. 지금 누가 감히 장군에게 패륜의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진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피를 부르는 철권통치가 날아갔습니다. 사상누각이었던 유신독재는 맥없이 허물어졌습니다.
그러나 또다시 12‧12 군사 쿠데타 세력이 서울의 봄을 잔인하게 짓밟아버렸지요. 군인들이 탱크를 앞세우고 총칼로 위협했습니다. 금방이라도 방아쇠를 잡아당길 것처럼 말입니다.
1980년 5월 17일 계엄 확대를 통해 전국 주요 도시에 계엄군을 진주시키지 않았던가요. 그리고 그 다음 날 비극적인 5. 18 광주항쟁이 들불처럼 일어난 것이지요.
죽 써서 개 준 꼴이 되었지요.
맨 먼저 부정부패의 척결을 외쳤지만 그들은 대의를 져버리고 스스로 부정부패의 원흉이 되었지요.
그러나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은 1987년 6월혁명 때 마침내 항복했습니다. 지금부터 꼭 30년 전 일이지요.
우리는…… 그 엄혹한 체제에서 정치권력에 아부하지도 않았고 이득도 보지 않았지만…… 정상적인 삶을 살면서…… 무난히 살아남았지요. 그때 체제에 저항해서 목숨을 바친 이들을 생각하면 양심의 기준에서 볼 때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 쿠데타 세력들이 이 땅에 남긴 유산이 무엇인가요? 민주공화국을 철저히 깔아 뭉개버린 것이지요. 우리들의 자존심에 말할 수 없는 상처를 입혔지요. 우리를 능욕했습니다. 우리를 한없이 절망케 했습니다.
지금도 유신독재의 망령은 꺼지지 않은 채 그들의 가슴속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이제는 악의 유산을 깨끗하게 청산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암…… 그래야지요…… 그렇고말고요……
그런데 그들은 전임 독재자로부터 무엇을 학습하였을까요? 무고한 생사람을 잡아다가 고문하고 죽이는 폭력성을 물려받은 것이지요. 그 폭력성은 잠시 잠복되어있을 뿐이지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폭력적이에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폭력적이란 말입니다.
그리고…… 재단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의 재산을 갈취하고 강탈해서 사리사욕을 채우는 교묘한 수법을 배웠던 것입니다.
지금 대통령이 누구인가요. 누구의 딸인가요. 큰 딸! 큰 영애님! 유신독재 체제의 앞잡이가 아니었을까요? 전직 구국여성봉사단의 총재였습니다. 최태민이 누군가요. 최순실이 누군가요. 그들은 함께 공모해서 무슨 파렴치한 짓을 저질렀던가요.
그때 그 독재자 뒤에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육군 대위 출신의 제 2인자가 있었지요. 그런데 이번에도 제 2인자가 있어서 국정을 농단한 것 아닙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어쩌면 그렇게 똑같을 수가 있을까요.
유신의 망령이…… 그 망령이 계속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아다니고 있단 말입니다. 암흑 천지로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보수라는 가면을 쓰고 철저히 위장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보수적 가치라는 것은 다름 아닌 위장술에 불과한 것이지요. 그러므로 진정한 보수가 아닙니다. 그건 추악한 과거에 대한 향수일 뿐입니다.
대통령은 아버지한테서 무얼 배웠을까요. 전두환 정권에게서는 무엇을 배웠을까요. 재단의 이름으로 돈을 갈취하는 것을 배웠던 거지요. 5.16장학회는 무엇이고 정수장학회는 무엇인가요. 남의 재산을 빼앗아서 사유화했고 그걸 딸에게 물려준 것이 아닌가요.
그게 자기 몸속에 깊이 체화된 것이지요. 그리고 자신의 죄는 까마득하게 잊어버렸습니다. 그 자발적인 망각을 통해서 자기 존재의 정당성을 획득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 여자는 죄의식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속고 또 속았습니다. 그 여자의 기만 전술은 그것을 파악할 능력이 없는 국민들에게 그대로 받아들여진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지금 누구 탓을 할 수 있을까요? 누가 대통령으로 뽑았습니까. 바로 우리가 뽑았습니다.
히틀러가 가능했던 것은 그에게 동조한 수많은 국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독일 국민은 선거를 통해서 히틀러를 선출했지만 그 희대의 악마는 독일 국민을 파멸로 이끌었습니다.
여기 계신 대학생들…… 젊은 분들은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지요. 아날로그 시대였던 그때 그런 일이 있었지요. 지금은 디지털 시대이지만 말입니다. 여러분은 손에 손에 스마트폰을 쥐고 있지요.
여러분은 젊습니다. 쓸데없이 관념과 추상의 세계에 빠져들어서는 안 되지요. 감각과 욕망이 살아있는 삶을 꿈꿔야 하지요. 새처럼 자유로워져야 하고 날아서 올라가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늙어갈수록 중력의 힘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되지요.
우리는 자유를 외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자유를 향유하므로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판단에 따라서 행동합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릅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것이지요. 우리 모두 책임을 통감해야 합니다. 우리가 바로 공범이고 장본인인 것이지요.

겨울 밤은 추웠다. 바람이 불다가 멈췄다. 그래도 노인의 이마 위에는 작은 땀방울이 맺혀있다. 그가 힘이 드는 듯 고개를 저었다.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마이크를 잡은 손의 뼈마디가 앙상하게 드러났다. 노인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훨씬 힘찼다.
그의 말이 공기 중에 무겁게 감돌았다.
나는 무대에 가까운 쪽에 그대로 서있었다. 허리가 뻐근하고 무릎에서 가벼운 통증이 느껴졌다. 나는 인내심이 점점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지만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어차피 오늘 밤은 불면의 밤이 될 것이다. 설핏 선잠이 들면 깼다 잠 들었다를 반복하면서 잠을 설칠 게 뻔했다. 나는 한껏 기지개를 켰다.

그가 숨을 고르고 나서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다시 시작했다.

시간이 그렇게 흘러가버렸는지 모르겠네요. 저는 이제 너무 늙었지요. 저는 지금 무신론자입니다…… 한때는 열심히 교회에 나갔었지요. 그러나 아무런 죄 없이 해직이 된 후에는 독실한 무신론자가 되었지요. 신이 날 구해줄 거라는 믿음은 그때 사라졌습니다. 목사님은 설교할 때마다, ‘원수를 사랑하라.’, ‘누가 너의 오른뺨을 때리거든 왼뺨을 내밀어라.’ 고 말했습니다만…… 저는 지금도 저기 회사 근처에만 가도 가슴이 죄어드는 것만 같습니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등에서는 식은 땀이 나지요.
아무튼 하늘에 신이 계신다면 벌을 내리소서, 천벌을 내리소서.
여러분…… 혹시…… 박종철을 기억하시나요?
그러면…… 이한열은?
그들의 이름을 지금 부르기가 부끄럽군요.
우리가 벌써 그들을 잊으면 안 되겠지요.
87년 체제는 바로 박종철 열사와 이한열 열사의 거룩한 죽음에 의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6월혁명은 박종철이 죽어서 시작되었고 이한열이 죽어서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박종철은 누굴 가장 존경했을까요?
전태일을…… 그들은 운명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요. 그들의 영혼은 숭고해요.
우리가 어떻게 그들의 절규, 깊은 한숨, 처절한 신음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얼마나 무섭고 참담했겠습니까. 그들은 이 황량한 사막에서 민주주의라는 꽃이 피어나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말할 수 없는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유신 잔당들 때문에 30년 동안 6공화국을 지탱해온 체제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는 몇십 년 전으로 후퇴하고 있는 것이지요.
박근혜가 누구인가요? 독재자의 큰 영애.
그 형편없는 여자는 아버지의 후광 때문에 너무 과대평가되었지요. 이건 국민들이 어리석었거나 그 여자가 광대 연기를 잘했거나……
최순실인가…… 최서원인가…… 그 여자가 누구인가요? 최태민의 딸이 아닌가요. 그런 여자가 어떻게 국정농단을 했단 말인가요. 기가 막힐 노릇이지요.
저주! 저주! 저주!
또다시 죽 써서 미친개에게 준 꼴이 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 우리가 이 나라의 주인이란 말이지요. 국민은 저항할 권리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광장! 광장으로! 과감하게 광장으로 뛰쳐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민중의 의지를 결집하고 저 더러운 위정자들, 위선자들에게 우리의 의지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우리 민주공화국은 우리가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혁명에는 순교자가 필요합니다. 4.19 혁명에는 김주열 열사가 있었지요. 6월혁명에는 박종철과 이한열이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혁명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누군가 피를 흘려야 할 것입니다.
타협…… 절대, 절대, 절대 있을 수 없습니다.
투쟁…… 투쟁…… 투쟁이 있을 뿐입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무슨 자격으로…… 용서…… 용서하십시오. 이만……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가 말을 마쳤을 때 잠시 온 세상이 침묵의 장막 속에 갇혀버린 것처럼 숙연한 분위기였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잠시 동안 서로를 쳐다보았고 손을 흔들며 손뼉을 쳤다. 그리고 ‘옳소’라고 외쳤다.
나는 얼어붙어 버렸다. 마침내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으니. 모두가 속이 후련했던 것이다.
나 역시 그의 말을 끝까지 경청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혼란, 분노를 느꼈다. 나는 3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서 그 과정을 나름대로 추적하기로 했다. 그게 지금 나에게 부과된 엄숙한 과제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태껏 역사의 방관자로서 비켜서서 눈 감고, 귀 닫고, 입 막은 채 아무 일 없는 듯 살아왔지만…… 이제는 진실을 알아야만 했다.

* * *

나는 2월의 마지막 주말에 다시 광화문광장으로 갔다.
나는 자석에 이끌리 듯 추운 한 겨울에도 몇 번씩이나 토요일 저녁에 개최되는 촛불집회에 밤 늦게까지 참석했었다. 우리는 여태껏 주말 부부이다. 아내는 토요일 오후에 올라와서 월요일 첫 차로 내려간다. 그러니 불문율처럼 토요일 오후에는 아내와 함께 지내야 했다.
그러나 마지막 탄핵심판 결정을 앞두고 온 나라 구석구석까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인터넷은 가짜 뉴스와 온갖 음모론의 온상지였다. 블로그에는 몽상가들이 마구잡이로 근거 없는 소설을 쏟아내고 있었다.
나는 불면의 밤이 계속되면서 광장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광장의 상쾌한 밤 공기로 허파를 가득 채웠다.

이제 군중들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진짜 골수분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만 한 겨울의 추위에도 상관하지 않고 나온다.
물론 촛불집회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도 많다.
그들은 말한다.
“…… 촛불이 타오른다고 해서 내 앞에 놓인 문제들이 결코 해결될 것 같지 않다. 나에게는 이미 일상이 식민지다.
…… 많은 사람이 정의와 대의를 말한다.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문제에 대해 무척 쉽게 대답한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의 영역에서는 얼마나 그러한 인간으로 살고 있는지 의문이다.
…… 먼 곳에서 벌어지는 악에는 쉽게 공감하지만 주변의 악에는 눈을 감고 마는 인간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광장에 바람이 불었다. 겨울은 미련이 남아있는 듯 아직 새 풀이 돋지 않은 누런 잔디밭에는 마지막 겨울이 머뭇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세월은 빠르다.
봄이 멀지 않았다.
봄은 마술처럼 찾아오리라.
언제 보아도, 광장 주변에 현대식 건물이 즐비하게 늘어서있기는 하지만 광장에서 이국적인 정서는 느껴지지 않는다. 600여 년 전 태조 4년에 창건되어 혁명가 정도전에 의해 처음에는 사정문 四正門 으로 명명되었던 광화문과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서있으니 말이다.
그 광장은 언제든지 우리 민중의 의지가 결집하고 분출하는 민주공화국의 심장부이고 (나의 경우에는) 내 빈곤한 상상력이 끝없이 추락하는 곳이다.
봄은 늑장을 부리지 않는다.
광장에 늦은 밤 어둠이 깔린다. 모두 떠났다. 광장은 텅 비었다. 겨울의 차가운 바람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다. 나는 한 바퀴를 돈다. 그리고 몇 번이고 떠돌며 배회한다.

달은 이지러지고, 일그러지고, 형태를 잃어갔다.

나는 1호선과 2호선 지하철이 교차하는 시청역 1번 출구를 빠져나왔다. 익명의 흥분한 군중들. 그들은 원래 집단시위에 익숙하지 않다. 익숙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규모 집회가 낯설어서 거부감을 갖고 있던 꼰대 세대였다. 옛날 옛날에 늙은이는 밥이나 축내는 천덕꾸러기였다. 그래서 늙은이를 등에 업고 깊은 산으로 가서 버렸는데. 그런데 서울광장에 태극기집회의 태극기들이 무수히 나부낀다. 하지만 간절히 호소하는 깃발이나 현수막은 보이지 않는다. 강력한 확성기에서 목쉰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는 쉼 없이 터져 나오는 말들을 들었다.

드러나는 탄핵농단의 배후. 시간 지날수록 탄핵소추 배경에 역모와 반란의 증거 속속 등장. 최순실이 아니라 고영태 일당의 국정농단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배후는 북한이다!!! 깨어나라 국민이여! 가자 대한문으로! 2017년 드디어 대한민국이 바로 서다. 무엇이 태극기 민심을 일으켜 세웠나. 촛불의 광장 선동, 언론의 조작, 편파보도가 보수 결집을 촉발한 것입니다. 헌법재판소의 낯선 풍경, 정의는 있는가. 태극기 군중세력이 정치세력화 되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영화 ‘놈놈놈’들을 현실에서 보아야 하는 시대입니다. 당리당략에 따라 국가안보를 흔들지 말라. 편파 왜곡 보도로 나라를 혼란케 하지 말라. 탄핵사태는 오직 법리적 판단과 합법적 절차에 따라 종결되어야 한다. 종북좌익 세력을 척결하여야 한다. 군은 국방에만 전념하라. 퍼져라, 동해물과 백두산이.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김진태와 나라 구하자. 충격적인 고영태 녹취록!!! 고영태 게이트를 즉각 구속수사하라. 불공정한 탄핵심판 헌정질서 중단된다. 헌법재판소는 탄핵소추를 각하하라. 헌법재판소는 헌법재판소법과 형사소송법을 준수하여 피소추자의 방어권 행사를 보장하고, 재판절차를 공정하게 진행하라. 김수남 검찰총장과 이영렬 서울중앙지검검장은 부실 편파 수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즉각 사퇴하라. 탄핵을 탄핵한다. 인민재판식 대통령 탄핵은 한국의 법치민주주의에 대한 도발이다. 언론이 수사도 하고 재판도 하는가. 특검인가 혁명인가? 박 대통령 뇌물죄는 관습적으로나 법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 세계 역사에 유례가 없는 임기 말 단임제 대통령 쫓아내기가 부끄럽지 않은가? 애국일보. 조갑제닷컴. 미래한국. 친박, 비박, 원박, 진박, 진진박, 반박, 멀박, 낀박, 쪽박, 탈박.

더렵혀진 감상주의. 설득력을 상실한 논리. 훼손된 윤리의식. 도덕적 마비상태. 닳고 닳은 주제. 보수적 가치라는 미명 속에 감춰진 야만과 망령. 그러므로 순수성은 없다. 그들은 까닭 없는 두려움에 몸을 떤다.
그들에게 언어는 너무 무거워서 소화조차 할 수 없었다. 위선과 아첨, 거짓말, 몰염치, 소심함, 상실감, 적대감, 무책임성, 소통 불능, 오해, 어설프고 값싼 동정심, 불신의 눈초리, 공화국의 시민으로서 시민의식의 결핍, 가면을 쓴 상투적 애국심만이 도처에 넘쳐난다.
대통령은 임금님인데 임금님에 대한 인습적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미련하게도 공화국 시대에도 기존의 권위적 사고방식을 탈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은 언제나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이 지겹다. 궁핍, 결핍, 박탈, 충족할 수 없는 마지막 남은 욕망들. 이 무미건조하고 비루한 일상에서 벗어날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상실감을 느끼고 분노한다.
이 세상은 모두 젊은이들이 차지하고 있고 젊음을 절대적으로 우대하는 일종의 인종차별주의가 만연하고 있다. 그들은 늙은이들을 벌레 보듯 싫어하고 괄시한다. 심지어 젊은 게이를 만나기 위해서 낙원동을 어슬렁어슬렁 배회하는 늙은 게이들조차 서럽다.
젊은 게이들은 늙은 게이를 몹시 싫어하고 기피한다. 그러므로 늙은 게이는 절망감 같은 것이 와락 밀려들고 울고 싶다. 그리고 이제는 젊은 남자를 단념해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된다. 그들은 늙은이에 대한 욕망이 전혀 없다. 그러므로 늙은 게이는 너무 소심하거나 아니면 너무 서툴러서 그들에게 다가갈 수 없다.
태극기 집회에 나온 사람들은 대부분 나와는 동년배이다. 65세 이상이어서 지하철을 공짜로 탄다는 노인들을 지칭하는 지공거사들이다. 내가 그들과 공유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이 듦에 대한 두려움, 늙음의 무의미함, 무의미함에 대한 두려움. 덧없는 삶. 과거로 회귀하기. 정신적 퇴행. 백내장. 퇴행성 관절염. 근육 감소.
우리들은 함께 그 엄혹한 시절을 견디며 살아왔다. 지금 그때를 수치심을 느끼지 않으면서 기억할 수 있을까? 시간은 소멸한다. 희미한, 반투명한, 모호한, 흘러가는 기억에 대해 그렇게 예민할 필요가 있을까? 그래서 그 시절을 추억하며 향수를 느낄 순 없을까?
나는 왜 의기투합해서 그들 속에 뒤섞이고 함께 호흡할 수 없을까? 나는 아직 구제불능은 아니다.
하지만 이 글 어디에선가 거명된 나의 동년배들인 조영래 변호사, 전태일 열사, 김근태 전 의원, 김상진 열사는 이미 고인이 되었다.
우리들도 젊은 시절 한 때는 진보적이고 혁명적이었다. 우리는 4·19 혁명 세대이지 않은가. 그러나 인간은 보통 나이가 50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안정을 희구하면서 보수적으로 바뀐다. 우리는 늙어가면서 점점 아둔해지고 점점 하찮은 일에 더 예민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급격한 비약적 변화를 두려워한다. 모든 면에서 굳어져 있다. 한때는 서정적이었고 과도한 모습을 보였지만 지금은 자기를 보존해야 한다는 뿌리 깊은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수동적이고 소심하고 더욱더 비겁하게 되었지 않은가.
누가 우리를 탓하랴?

우리는, 너무 오래되어 끝나지 않는, 사라지기엔 너무 오래되고, 끝나지 않은 것 같은 존재인데.

높은 단상에서 과도하게 흥분하여 열변을 토하고, 누굴 비난하고, 자기만족감을 과시하면서 추종하는 어리석은 청중의 외침에 의기양양해하는 광경을 보며 나는 몸서리를 친다. 나는 그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자가 어떻게 그렇게 변할 수 있을까?
나는 소화불량이 되었고 감정이 메말라지면서 온몸이 답답했다. 가벼운 마음이 아니다. 왠지 꺼림칙하고 몸이 무거웠다. 속이 메스껍고 머릿속이 어지럽고 빙빙 돈다.

* * *

나는 천천히 북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덕수궁 돌담길을 지나면서부터 동아일보사가 있는 광화문 네거리까지 300여 미터는 태극기집회와 촛불집회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비무장지대이다. 나는 서울시 의회 건물을 지나고 조선일보사 앞에서 잠시 멈췄다. 경찰 버스들이 차벽을 두르고 형광색 점퍼를 입은 경찰들이 한가한 표정으로 하품을 하면서 늘어서 있다.
돌연 눈앞에 깊은 신음소리를 토해내는 망망대해가 펼쳐진다. 문득 내 고향 남쪽 바다가 생각났다. 푸른 하늘 아래 거친 파도는 무섭게 흰 물거품을 일으키며 모래톱으로 밀려와서 부서졌다. 낯선 목소리들. 탄식과 침묵. 갈매기들이 아우성을 치며 끼익끼익 울었다. 나는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 속으로 들어간다.
지금 광장은 촛불혁명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늦은 오후 엷은 태양은 아직 밝게 빛났다. 공기 중에 파고드는 뜨거운 열기가 느껴진다. 내 가슴을 짓누르던 것들이 명쾌해지기 시작했다.
겨울바람에 힘차게 나부끼는 하얀색, 붉은색, 파란색, 녹색, 노란색의 무수한 깃발들, 노란 풍선들, 노란 리본들, 피켓들, 플래카드들, 현수막들, 천막들, 경찰버스들.

나는 이순신 장군 앞의 동상 앞에 섰다.
忠 武 公 李 舜 臣 將 軍 像.

얼마 전에 분신 자살한 민주‧정의 평화의 수행자 비구 정원 큰스님을 기리기 위한 작은 제단이 설치되어 있다.

기도 끝에 불을 당기리라. 정원스님의 가르침은 우리 시대의 죽비입니다.

혈서, 낙서, 유인물, 풍물소리, 외침, 고함소리, 플래카드를 앞세운 스님들의 행진, 어떤 중년 남자의 밑도 끝도 없는 장황한 독백, 핸드마이크에서 나오는 소리, 귀청을 찢는 확성기의 말들.

나는 감격하고 당황하고 혼란스러워서 그들의 목소리, 어조, 억양, 높이, 유머, 기분, 은밀한 욕망, 절망, 언술을 정확하게 묘사할 수 없다. 다만 생생한 소리를 들을 뿐이다. 귀는 예민해지기 시작했고 몸 전체가 긴장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 독재자의 딸 박근혜, 독재자의 딸의 무당 최순실. 누가 감옥에 갈 타임인가. 최순실과의 소중한 인연 구치소에서 이어 가세요. 박근혜 4년, 너희들의 세상은 끝났다. 박근혜 구속, 재벌도 처벌. 내 삶을 바꾸는 박근혜 즉각 퇴진! 적폐 청산 투쟁. 이제 시작입니다. 헌정농단 박근혜 일당 지금 바로 감옥으로! 시가전 운운하며 협박하는 박근혜의 대리인들. 특검연장 가로막는 황교안과 법꾸라지 우병우도 단죄해야. 이제 박근혜 일당의 국민우롱은 헌정에 대한 반역 수준입니다. 조기탄핵, 즉각구속만이 답입니다. 박근혜 게이트 5대 주범 처벌, 청와대, 새누리당, 재벌, 정치검찰, 보수언론. 김기춘 구속처벌로 공작정치 뿌리 뽑아야. 조윤선 고발. 99%의 희망 민중연합당. 최순실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기자를 째려본 것이 아니라 놀라서 그랬습니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서 했습니다. 저는 저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진상을 규명하는 자리니까 전 진실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검찰에서 팔짱끼고 웃었던 건 휴식 중이었기 때문입니다. 특검거부, 헌재기각 염병하네. 황교안 내각 즉각 총 사퇴. 범죄온상 청와대 시민공원 개방하자. 환수복지당. 도로친박당 자유한국당 해체! 북풍사건 공안탄압 분쇄! 헌재기각은 민중항쟁으로! 헬조선 5대 악의 축 해체, 정치검찰 해체, 국정원 해체, 수구언론 해체. 닭 잡을 때까지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 마당을 나온 암탉. 닭쳐! 광화문 투계. 촛불은 타오르고 병신년은 꺼졌다. 국민들의 어이 상실, 박근혜는 그만 퇴실. 숨는 자가 범인이다, 박근혜를 구속하라. 국민이 승리합니다. 촛불이 횃불이 됩니다. 양심이 승리하는 세상.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다 모여라. 우리 모두가 블랙리스트다. 연극인들이 예술 검열과 블랙리스트 관련 백서기록을 시작합니다. 기록하지 않으면 잊혀지고 반복됩니다. 표현의 자유와 예술의 자유는 그저 종이 위에 쓰여진 글자가 아닙니다. 헌법을 유린한 자들의 이름을 역사에 남겨야 합니다. 촛불 시민 여러분의 관심과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빼앗긴 극장, 여기 다시 세우다. 특검은 국정원을 수사하라. 대선, 그들은 또 움직인다. 정의를 세워라. 일터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노동자의 책> 대표 이진영을 당장 석방하라! 학문/사상/표현/출판의 자유 탄압 중단하라! 수구적폐 공안검찰을 철저히 청산하자! 반민주, 반민중 악법 국가보안법을 철폐하자! 사드반대 전쟁반대 주한 미군 철수 평화협정 체결. 재벌체제 해체 없는 재벌정책, 대권주자들은 촛불민심 대변할 자격 있나? 삼성왕국 해체, 지금이 타이밍이다! 법원은 이재용을 구속하라. 손배가압류와 노란봉투법. 여러분의 손으로 노란봉투의 변화를 이끌어주세요. 우리에겐 노란봉투가 필요합니다. 한화그룹 규탄 금속노동자 규탄 결의대회. 택배기사도 노동자입니다. 대리점 피 빨아먹는 KT 황찬규 회장 퇴진,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습니다. 부정축재 재산몰수. 현대차가 지시한 노조 파괴로 유성기업 노동자 한광호가 죽었다. 노조 파괴 범죄자, 유성기업 유시영이 1년 6월을 선고받고 구속되었습니다, 여러분 덕분입니다. 기타 노동자. 콜트 기타를 아시나요. 서울복지시민연대, 사회진보연대, 전국노점상총연합. 비정규직 철폐해라. 빈민해방실천연대. 여성건강기본법 제정. 반민주 악법철폐.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 평화의 길, 통일의 길, 평화협정 체결하라. 전태일노동대학. 사드배치 철회 성주투쟁위원회. 희망사진관. 모두행복실천단. 박근혜체포단. 진실실천연대. 장준하 부활 시민연대. 청년문화 포럼. 평화어머니회. 민주실현주권자회의. 서울의소리. 아이건강경기연대. 노동자연대. 노동자 해고하는 구조조정 저지 파업은 정당하다. 최저임금 1만원 비정규직 없는 세상 함께해요.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응급구조협회. 국민의당 녹색깃발. 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철도노동조합. 금융노동조합. 민족문제연구소.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한국작가회의. 서울연극연합.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이석기 석방하라. 최순실, 간첩 만들어서 통진당 해산. 청년당 추진 위원회. 백병찬, 대통령 출마선언 기자회견. 양심이 승리하는 세상! 홍익당이 꿈꾸는 세상입니다. 인양은 사람을 찾는 일입니다. 인양, 진상규명의 시작입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및 미수습자 광화문 분양소. 노란엽서 보내기. 진실마중대, 잊지 않겠다는 약속 서명으로 지켜주세요. 광화문 천막카페. 박근혜 퇴진 없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없다. 선체인양 진상규명. 대한민국 국회의원은 세월호 선체조사 관련 법, 세월호 특별법 통과시켜라! 가습기 살균제 철저한 재조사. 잘가라 핵 발전소. 100만 서명운동. 개성공단. 어느 나라 외교부인가. 윤병세 해임촉구 국민서명운동 참여하세요. 종편 재승인 심사, 방통위는 이 점을 제대로 심사해야 합니다. 과연 종합편성채널인가? 정책목표를 달성했는가? 막말 편파 방송 근절. 양평군은 즉시 몽양기념사업회와 위탁협약 체결하라! 조상을 모르니 얼마나 비극인가! 다산 정약용 선생을 알고 배우자. 흙수저도 공부하고 싶습니다, 사법시험 존치 법안 통과시켜 주십시오. 금수저는 로스쿨 흙수저는 사법시험. 이번에는 공정사회다 사법시험 존치하라. 광장에서. 삼성백혈병. 작가는 지금의 기록이다. 피었으므로 진다. 유신정권 오호통제. 인왕산 촛불바위. 새벽이 올때까지. 삼위일체. 변화의 빛. 해원. 평화를 품은 새. 흩어진 나날을 채색. 촛불과 까마귀. 내 지역구는 내가 지킨다. 시민이 직접 선거 과정을 감시해야 합니다. 7만 명의 시민이 모여야 대선을 감시할 수 있습니다. 20대 총선에서 큰 성과와 교훈을 얻었습니다. 국가 기관 선거 개입 막아야 합니다. 모두가 결과에 승복할 수 있도록 공직선거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박근혜 없는 3월, 그제야 봄이 온다.
일곱 빛깔 투쟁!
신영복 선생님 작품 글 써드립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대통령도 여잔데 화장도 하고 목걸이도 하고 꾸며야지.
나 같은 늙은이도 집 나올 땐 꾸미는데 말이오.

세상에는 부끄러워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사람들과
자기를 불살라 세상을 밝히는 사람들이 있다

촛불이여! 아름다운 촛불이여! 찬란한 촛불이여!
전 세계를 놀래 키고 감동시킨 위대한 촛불이여!
지난날의 무지몽매한 세월을 환희와 희망으로 바꾼 숭고한 촛불이여!

고맙습니다. 복 열려있는 손이 있고 주의 깊은 눈이 있고 나누어야 할 삶이 살아 있다.

직선은 신의 부재이다. 혼자 꿈꾸면 영원히 꿈이지만 함께 꿈꾸면 현실이 된다.

제 몸을 태우는 빛.
역사의 길라잡이.
촛불이여 거침없이 타올라라. 남김없이 타올라라.

촛불은 울분과 한탄으로 타올랐지만
상한 마음을 서로 다독이고 어루만지며
간절한 평화의 염원으로 번져나갔다

그들은 훨씬 더 진지했고 진실했다. 말들이 심장으로부터 힘차게 솟아올랐다. 피를 토하는 알몸의 절규가 있었다. 영혼이 깃든 소리가 공명 속에 울려 퍼진다. 영혼의 열정적인 율동. 원초적인 힘과 감정의 분출과 정신적 긴장의 이완이 있었다. 그들은 값싼 감상에 사로잡히거나 쓸데없는 걱정과 두려움 때문에 그들의 목표를 간과하지 않았다. 서로 끈질긴 연대감으로 묶여있다. 그들은 증오했고 부정했고 해체를 요구했다. 변화를, 촛불혁명을 갈망했다. 그러나 냉철하고 엄격하고 준엄하고 가혹했다. 그렇긴 하지만 잔인한 폭력은 부정했다.
그들은 지금 (카뮈식으로 말한다면) 아주 비참하고 초라한 모순투성이인 인간의 조건에 대해 반항하고 있다. 그들은 인간의 존재 의미를 재발견하기 위해서 허무와 고독과 절망과 공포와 전율과 어렵고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

나는 광장 북쪽 끝 연단 쪽으로 갔다. 그때 텔레파시가 통한 것처럼 뒤를 돌아보았다.
술렁대는 사람들 틈에서 갑자기 솟아올라온 그녀를 보았을 때 경이와 놀라움이란. 여전히 탐스러운 검은 머리카락. 우리는 눈빛이 서로 스쳤다. 나는 그녀를 쳐다보았고 그녀 역시 나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이 순간 진홍빛으로 물들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는 실망했다. 나는 옆에 동행자가 있기라도 한 듯 말했다.
“별 일이 다 있습니다.”
자세히 훑어보니 몹시 닮긴 했지만 그녀는 아니다. 그러면 그렇지. 그녀가 여길 왜 오겠는가. 그녀가 지나칠 때 아련한 향수 냄새가 코끝에 남았다.

자유 발언 시간에 수줍은 모습으로 올라온 한 주부, 참사 당시 단원고 학생이었던 생존자, 몇 달 전에 제대한 의무경찰, 해직 기자 출신의, 목소리에 범접할 수 없는 힘이 들어가 있던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혁명의 속성은 배신과 타락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지적했다.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은 나폴레옹이, 1918년의 볼셰비키 혁명은 구소련의 스탈린 체제가 그랬던 것처럼) 4.19혁명은 5.16쿠데타 세력이, 1980년 서울의 봄은 12.12군사반란 세력이 짓밟았고, 1987년 6월혁명은 9차 헌법 개정을 통해 6공화국을 탄생시켰지만 박근혜 정권이 끝내 배신하였다.
다시 말하지만…… 6월혁명은 박근혜와 그녀의 경제적 이익공동체의 동업자인 최서원이 배신했다. 그 여자들은 철저히 타락했고 몰락했다. 지금 시커먼 감옥 속에 들어가 있다.
배신자들은 타락한다. 그리고 그들은 어김없이 몰락했다.
역사적 평가는 냉혹하였다.
돌이켜보면, 타락한 자들이기 때문에 배신한 것인지 배신자들이기 때문에 타락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배신과 타락.
몰락. 죽음과 감옥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면 최후의 승리는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나는, 국민소득 3만 불을 이미 넘어선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에 노동자와 도시 빈민을 의미하면서 너무 좌파적 냄새가 풍기는 (기층) ‘민중’이라는 말을 피하고 싶다. ‘대중’은 우매하다고 하니까 그 단어도 피하고 싶다. ‘국민’은 국수주의 또는 군국주의 냄새가 난다.
우리는 시민이다. (중산층) 시민들이 광장으로 모였다. 언제나 시민이 궁극적으로 승리한다.
그러나 우리 중에서 누군가가 피를 흘리며 싸운 대가로 우리는 인간 삶의 본질적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데 그것을 터무니없이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자유민주주의와 공화국 체제는 영원해서 불멸의 존재라고 믿어도 되는 걸까. 그러나 인류의 역사는 그게 결코 불가역적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피땀 흘려 지켜내지 않으면 언제 다시 도루아미타불이 될지 모르는 것이다.

배신과 타락.
몰락 ― 죽음과 감옥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면 최후의 승리는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나는 너무 좌파적 냄새가 풍기는 ‘민중’이라는 말을 피하고 싶다. ‘대중’은 우매하다고 하니까 그 단어도 피하고 싶다. ‘국민’은 국수주의 또는 군국주의 냄새가 난다.
우리는 ‘시민’이다. 시민은 광장으로 모인다. 언제나 시민이 궁극적으로 승리한다.
그러나 우리 중에서 누군가가 피를 흘리며 싸운 대가로 우리는 인간 삶의 본질적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데 그것을 터무니없이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 *

30년이 지났다.
2017년 3월 10일 11시 21분.
헌법재판소 대법정.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 * *

3월 11일 (토요일). 정오의 광장.
3월 들어 가장 기온이 올라간 따뜻한 날이었다. 날씨는 화창했다. 봄이 거의 다가와 있었다. 곧 꽃들이 피기 시작할 것이다.
광화문 광장은 한가했다.
짙은 안개처럼 광장을 뒤덮고 있던 의심스러운 기운은 말끔히 사라졌다. 정오의 빛나는 태양 때문인지 모든 것들이 낯설고 신비롭게 보였다. 사람들이 이리저리 모였다가 흩어졌다. 어디서 본 듯한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들은 화사하게 웃고 있었다.
오늘 밤에는 별이 반짝반짝 빛나리라.
오늘 밤에는 승리의 환호성이 폭죽처럼 터질 거야. 함성이 불꽃이 되어 번쩍이며 폭발할 때마다 불덩이들이 광장을 뒤덮으며 승리를 자축하겠지.
촛불혁명에 검붉은 피는 없었다. 물대포도 최루가스도 없었다. 그 대신 촛불이 타올랐다. 불은 정화제다. 처음부터 끝까지 평화적이었다. 영국식으로 말하면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명예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광장의 남쪽 끝 이순신 장군의 동상에서부터 시작해서 세종대왕의 동상을 지나서 광장의 북쪽 끝에 있는 무대 쪽으로 갔다. 두 분 할아버지는 의미가 담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고 말씀하셨다.

일이란 순서대로 진행되는 거란다.

나는 환한 햇빛 속에서 가뿐한 마음으로 천천히 음미하며 한산한 광장 거리를 거닐었다. 설치 미술가가 설치 작업을 했고 유커들은 동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으며 간혹 사복 형사들로 보이는 건장한 사내들이 어슬렁거리며 지나갔다. 그리고 고학년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해맑은 얼굴의 소년들이 사방치기를 하고 딱지놀이를 했다. 그들이야말로 우리들의 희망이고 미래가 아니겠는가.
지난 밤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이제 표어가 바뀌어 있었다. 그들은 아직도 목 말랐다. 배고프다. 용서란 없었다.

박근혜 탄핵, 촛불의 승리입니다. 박근혜 구속. 방 빼 당장. 근혜야 감옥가자. 봄이 온다. 광장은 봄이다. 촛불과 함께 한 모든 날이 좋았다. 촛불승리! 이제 박근혜 구속!

오늘 저녁 마지막 촛불집회가 있을 터였다. 그들은 환호하고 폭죽을 터뜨리며 승리를 자축할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더럽고 치사하고 지독했던 독재자와 그 DNA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또 다른 독재자의 시대가 끝났으니.
지하에 있는 박종철과 이한열은 이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리라.
나는 민주공화국의 정의, 대한민국의 정의, 헌법정신을 생각한다.
8인 재판관들의 용기와 선의와 굳센 의지를 찬양한다.
2017-12-29 14:3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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