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유중원 대표 단편선> 자백
 닉네임 : 유중원 변호사  2017-05-09 14:00:21   조회: 100   
자백自白


자백만큼 뿌리 깊은 편견을 불러일으키는 증거는 없다. 사실관계를 판단하는 사람들이 자백에 너무 큰 비중을 부여하기 때문에 자백이 증거로 제출되면 재판은 더 해볼 것도 없게 되어 버리고 실질적인 의미에서 진짜 재판은 자백을 얻어낼 때 이루어진다.
― 미국 연방대법관 윌리엄 브레넌

……물론 재심 절차는 늘 매우 까다로우며 받아들여지는 일이 드물다. 이처럼 재심이 어려운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래도 오심이 너무 많아 차라리 덮어두려는 게 아닐까. 정말이지 오심은 너무나 많다.……
― 마르크 베네케 · 리디아 베네케


2016년 2월 초순경. 재판이 시작되기 전 수원지방법원 3호 법정 에는 (기자들로 보이는) 몇 명의 사람들만 앉아있다. 이들은 1996년 강도살인, 강도강간, 특수감금, 사체유기 등의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바 있는 김영남의 재심재판을 취재하기 위하여 온 것으로 보인다. 재심재판은 오후 2시에 시작될 예정이다.
수원지방법원은 지난 달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수감 생활을 하고 있는 김영남의 청구를 받아들여 재심 개시를 결정한 것이다. 법원은 그 사건을 다시 재판해 유죄인지 무죄인지를 가리게 된다. 물론 재심청구 당시 검찰은 수사절차상 사소한 하자는 이미 치유되었을 뿐만 아니라 형사소송법이 규정한 재심이유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청구기각의 결정을 내려다 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보내긴 했었다.
대한변협 인권위원회 법률구조단은 그의 탄원서를 접수해서 검토한 다음 지난 해 여름 재심청구를 하였다.
재심청구 이유로 피의자를 임의동행이라는 명목으로 연행하여 불법 감금하는 등 수사 절차상 하자가 있었다는 점과 지문이나 손수건, 몽둥이 등 기타 물증이 하나도 없었다는 점, 재심 청구인의 진술이 애매모호하고 자꾸 번복된 점, 사건 당시 유일한 목격자 겸 피해자가 진술을 번복하고 있다는 점, DNA 감정 결과를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점을 들어 재심을 청구한 것이다.
그 수십 장에 이르는 장문의 탄원서 내용을 요악하자면 다음과 같다.
저는 제 자신이 무죄라고 확신하는 바입니다. 수사기관에서는 DNA가 일치한다고 하나 저는 그 감정 결과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DNA 감정에 오류가 있음을 이유로 재심청구를 하고자 합니다.
교화위원이 늘 똑같은 충고를 했습니다. ‘참회를 하세요. 그러고 나서 돌아가신 분에게 용서를 구해야 하늘나라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지요. 저는 그때마다 ‘그 여자의 얼굴도 모르는데 어떻게 용서를 빌 수 있나요’라고 되물었지요.
저는 철조망으로 몇 겹이나 둘러싸인 담장 속 감옥에서 18년간이나 살았답니다. 18년 동안 누구하나 면회 오지 않았지요. 딸이 최근에서야 몇 번 보낸 편지가 전부였지요. 그리고 저는 특별한 이유 없이 두 번이나 가석방 심사에서 신청이 기각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계획적인 범죄로 죄질이 너무 나쁘고 성폭행의 재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감방 사람들이 빽이 없어서 그런다고 그러더라고요. 법무부에서 누가 밀어줘야 한다고 그랬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때도 돈이 있어서 국선변호사가 아니라 전관예우를 받는 변호사를 샀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저도 알고 있지요. 유전무죄 무전유죄 말입니다.
자유가 그리워요. 벌써 50살이 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인생을 사람답게 살고 싶습니다.
제가 목포에서 어떤 여자와 몇 년간 동거한 적이 있었는데 딸이 하나 있었고 그 여자가 혼자서 잘 키웠지요. 올해 25살인데 목포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했답니다. 그런데 그 아이도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도 해야 될 것 아닙니까. 상대방이 아이의 아빠가 강도 살인자로서 무기 징역수라고 한다면 그래도 그 아이를 선뜻 받아들일까요. 제가 가령 석방이 되더라도 세상은 전과자를 받아들여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낙인은 아이들까지, 그 아이의 아이들까지 대대로 찍히게 될 것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18년 동안이나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는데 무죄로 나가게 된다면 정부를 상대로 형사보상 청구소송을 제기해야 될 것입니다. 징역 18년에 해당하는 기간에 대해서 국가로부터 형사보상금을 받아야만 됩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아멘.

첫 번째 증인은 이 사건의 피해자인 정태수 (52세) 였다. 사건의 피해자가 피의자로 지목됐던 사람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증인석에 선 것이다. 사건이 발생한 후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정태수는 여전히 20년 전 과거에 갇혀있었다. 그는 증인석에서 20년 전의 일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변호사가 증인신문을 시작했다.
「지금부터 증인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증인은 대략 20년 전의 일인데 지금 자세히 기억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해서 그걸 잊어버릴 수 있겠어요? 도저히 말이 안 되지요. 그러나 잊어버리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잊을 건 잊은 것 같기도 합니다.」
「그때가, 그러니까 사건이 발생한 시점이 기억나십니까?」
「1996년 가을경이었습니다. 그때 벌써 바닷가는 바람이 불면서 많이 추웠거든요.」
「그 장소가 어디였습니까?」
「화성시 서신면 궁평항 근처 바닷가였습니다. 그리고 해안가로 갈대밭이 쭉 이어져 있었지요.」
「그때 궁평항에 가게 된 이유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저희는 주말에 제부도로 내려갔는데 거기서 점심을 먹고 나서 다시 궁평항까지 간 것이지요.」
「그러니까 궁평항에 갈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그냥 간 거죠. 바닷가가 한적하고 황혼녘이 아름답다고 해서요. 그리고 언젠가 화옹방조제 공사가 시작되면 그쪽 바다는 볼 수 없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리는 궁평항에서 하룻밤을 묵을 예정이었습니다.」
「그때 희생된 여자 분과는 어떤 관계였나요?」
「연인 사이였지요. 오랫동안…… 근 5년이나 깊게 사귀었지만 결혼 문제로 티격태격하고 있었지요.」
「그게, 그러니까 결혼 문제가 어쨌단 말씀인가요? 그 당시 증인의 나이와 그 여자 분의 나이는 얼마였지요?」
「저는 33살이고 여자 쪽은 36살이어서 연상이었습니다. 여자 집에서 결혼을 서두르고 우리 집은 여자가 나이가 많다고 꺼려하는 편이었지요. 그래서 집안을 설득하느라 애를 먹고 있었습니다.
오래된 일이고…… 쓸데없는 이야기…… 여자한테는 미안했지요. 두 번이나 임신중절 수술을 했었거든요.」
「기억하기가 괴로운 일이겠지요. 그러나 여기는 엄숙한 법정입니다. 그때 일을 상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때 여자와는 무슨 대화를 나누었나요?」
「우리는 자동차 안에서 결혼 문제로 또다시 옥신각신 하고 있었지요. 제가 시간을 좀 더 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난데없이 차문이 열리더니 두 사람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어떻게 되었나요?」
「나는 끌려 나와서 야구 방망이인지 몽둥이인지 맞아서 정신을 잃었고…… 나중에 정신을 차려보니 제 자동차의 트렁크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때 차는 영흥도 십리포 해수욕장의 골목길에 주차되어 있었습니다.
내가 계속 주먹과 발로 두드리고 악을 쓰니까 지나가던 사람이 경찰에 신고해서 구출된 것입니다. 그리고 여자는 차 안에서 성폭행을 당한 뒤 목이 졸려 숨졌다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증인이 먼저 얻어맞고 정신을 잃었기 때문에 여자가 당한 장면 등은 보지 못했겠네요.」
「그렇습니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고 해야겠지요.」
「여기 피고인이 보이지요? 그 얼굴이 기억나는가요?」
「아니요. 전혀 모르겠습니다.」
「그날 범인을 목격하지 않았던가요? 어떻습니까?」
「그 당시 겨울의 초저녁이어서 어두웠습니다. 우리는 차 안에 불을 켜지 않고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닥친 일이라 범인의 얼굴을 자세히 쳐다볼 수 없었습니다.」
「범인들은 두 사람이었거든요. 그들의 목소리는 기억하시겠습니까? 혹시 사투리를 사용하던가요?」
「둘 다 경상도 악센트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목소리가 여자처럼 가늘고 차분했습니다.」
「그때 그들이 했던 말 중에서 기억이 나는 게 있나요?」
「한 남자가 차문을 열면서 ‘이 자식을 내가…… 여자는 네가 차지……’라고 말했던 게 기억납니다. 그리고 뭐라고 자기들끼리 씨부렁거렸는지, 외쳤는지 도대체 기억할 수가 없지요.」
「그래도 그 당시 수사 과정에서 범인의 인상착의와 그들이 말한 내용을 상세히 진술을 했는데요, 어떤가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그렇지요…… 그때는 사건이 일어난 지 1년이나 지나있었지요. 경찰은 그때까지 범인을 잡지 못한 것입니다.
저는 범인을 하루빨리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상세히 말했겠지요. 범인이 안 잡히자 여자 집에서는 저를 무척 원망하고 있었거든요.」
검사가 반대신문을 했다.
「증인은 경찰조사에서 범인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한다고 하지 않았는가요? 그때, ‘어두운 밤에 본 얼굴을 어떻게 기억하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습니다. 얼굴을 기억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지요.」
「처음에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어서 ‘범인의 얼굴은 알아볼 수 없었다’고 진술했는데 그건 조서에 적지 않았습니다.」
「그 사건 이후 증인은 어떻게 되었나요? 증인의 인생이 어떻게 되었냐는 말입니다.」
「전 그 충격으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고 지금까지 혼자서……」
「그러면 결혼도 하지 않았단 말인가요?」
「그렇지요. 어떻게 결혼을……」
「그러니까 저 피고인이 증인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쳐버렸네요.」

그 당시 강력계장이었던 김중권이 증인으로 나왔지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재심 청구인에게 조사 과정에서 강압적으로 대하거나 폭력을 행사한 적은 전혀 없었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변호사가 신문했다.
「증인은 당시 화성경찰서의 강력계장이였고 이 사건으로 특진까지 하셨지요. 그리고 몇 년 전에 정년 퇴직하셨네요.」
「……」
「이 사건 당시 당초 용의자는 물론이고 범행 도구, 지문 등 별다른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지요. 초등 수사에서 실수한 거 아닌가요?」
「기억나지 않습니다.」
「왜? 기억나지……」
「오래된 일입니다. 벌써 20년이 지났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그렇지요. 엊그제 일도 까마득한데요.」
「나는 수사관 경력이 20년이 넘었어. 쭉 계속해서 이쪽에만 있었단 말이지. 나를 가지고 놀 생각일랑 꿈에도 하지 말어. 나는 네 놈이 범인인지 이미 알고 있다고. 그렇지 않아? 라고 말한 적이 있었지요.」
「기억나지 않습니다.」
「피의자의 임시 거처인 빈 농가 주택을 압수 수색했지만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었지요. 압수 수색을 할 때는 다른 경찰관 1명이 입회해야 하지만 증인은 그때 혼자서 한 게 아닙니까?」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말입니다. 피의자는 그 당시 사체유기 장소도 모르는데 억지로 그곳에 데리고 가서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현장검증을 했었지요.」
「아닙니다.」
변호사는 무력하고 비참한 기분에 휩싸였다. 매서운 눈초리로 전직 형사의 양심을 꿰뚫을 듯 노려보았다.
「아니다,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게만 말하는 게 아니지요. 왜? 무슨 일로 증인으로 나오셨습니까?」
「증인이란 게 기억나는 범위 내에서 진술하는 거 아닙니까? 왜 진술을 강요하나요?」
「그렇겠지요. 다시 질문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 수사의 단서가 되었던 것들이 있었다면 아직 경찰서에 보관되어 있는가요?」
「사건이 종결되면 돌려줄 것은 돌려주고 전부 바로 폐기합니다.」
「폐기한 목록을 기록한 문서는 있는가요?」
「지금은 어쩐지 모르지만 그때는 없었습니다.」
「그러면 DNA자료는 어떻게 되었나요? 손수건도?」
「그런 자료는 국과수에 영구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검찰에 송치되기 전까지 3차례에 걸쳐 진술서를 작성했네요. 그러니까 진술서와 4차례에 걸친 피의자신문조서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고 뒤죽박죽이란 말이지요.
구체적으로 말씀드려 볼까요?
첫째, 범행 전후 상황과 시간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피해자는 황혼녘이어서 아직 어둡지는 않았다고 하면서 범인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한다고 했는데 나중에는 어두운 밤이었고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둘째, 범행 수법과 사용한 도구가 일치하지 않지요. 피의자가 여자를 죽일 때 처음에는 둔기를 사용했다고 하다가 나중에는 목 졸라 죽인 것으로 되어 있거든요. 이는 국과수에서 뒤늦게 피해자가 목졸려 죽었다는 회신을 보내온 이후 바뀐 거란 말입니다. 그리고 그 둔기 역시 야구방망이라고 했다가 팔뚝만한 각목이라고 했다가 돌멩이라고 하였지요. 목을 조를 때도 장갑을 끼었다고 했는데 그 장갑을 갈대밭에 던져버렸다고 했는데 그 장갑은 결국 찾지 못했거든요.
셋째, 여자의 사체를 유기한 장소 역시 오락가락했거든요. 결국 사체를 찾아내서 국과수에서 부검을 하긴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체는 바닷가 갈대밭에 묻혀 있는 것을 예민한 코로 시체의 냄새를 맡도록 훈련받은 수색견의 도움을 받아 6개월 만에 겨우 발견한 것이거든요. 전에 몇 차례 수색을 했을 때 지나친 곳이었지요.」
「죄송합니다. 기억나지 않습니다.」
「수사 당시 각본을 써놓고 그 각본에 따라서…… 다시 말씀드리면 DNA검사 결과에 맞춰 피의자의 진술을 짜 맞춘 것이 아닌가요?」
「그럴 리가…… 어떻게 변호사가 그런 황당한 말을 할 수가……」
「피고인에게 강압적으로 또는 폭압적으로 하여서 조사한 것이 아닌가요?」
「그런 일 없습니다. 절대로 없습니다.」
그 당시 범인의 자백 외에 경찰이 제시한 유일한 증거는 현장에서 발견된 범인의 정액이 묻은 하얀 손수건이었다. 국과수는 손수건에서 나온 DNA와 피고인의 DNA를 비교 분석해서 일치한다고 했다.
그 당시 유홍준 경사가 사건 수사를 직접 담당했는데 그가 증인으로 나왔다.
「지금 인천 부평경찰서 수사과장으로 있지요.」
「세월이 무척 빠릅니다. 정년이 3년 남았습니다.」
「증인은 피고인을 기억하고 있지요? 그가 그때 제대로 자백을 했는가요?」
「피고인이 그때 너무 자연스럽게 자백을 했는데 무엇 때문에 지금에 와서 부인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유일한 물증은 정액을 닦고 버린 손수건 하나뿐이었는데 국과수 조사 결과 DNA가 일치했습니다. 그래서 피의자가 범인이 틀림없구나 하는 확신을 가지고 수사에 임하게 됐습니다. 피고인은 진범이 틀림없습니다. DNA가 말해주고 있지요.」
「그러니까 이 사건에서는 DNA가 있으니까 증거가 충분했다는 말인가요?」
「그렇지요. DNA검사 결과 일치한다고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DNA가 유일한 증거인데 그게 그렇게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까?」
「국과수 결과는 믿을 수밖에 없지요.」
「증인은 정의감이 투철한 경찰로서 그 열성적인 태도는 칭찬받아야만 마땅하겠지요. 그러나 증인은 피의자가 범인이 틀림없다는 확신에 사로잡혀서 피의자가 범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걷어 차버린 것이 아닌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진술할 때 피의자의 얼굴과 눈을 살펴보았지요. 안면은 창백했고 눈의 초점이 몇 번씩이나 바뀌어 눈이 마치 헤엄이라도 치는 것처럼 흔들려서 안정되지가 않았습니다.
입술이 마르는지 자꾸 혀를 내밀어 입술을 닦았고 손끝이 가늘게 떨리기도 했습니다. 이런 것은 피의자들이 거짓말을 할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그 반대로 생각할 수는 없을까요? 자신이 한없이 억울하니까 말입니다.」
「아닙니다. 아니지요. 그러고 나서 눈물을 흘렸지요. 아! 남자의 눈물은 진실한 것입니다. 여자의 눈물과는 다르지요.」
「피의자는 당시 진술이 논리정연하지 않고 일관성이 없었지요. 그건 자신이 실제 안 했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요?
증인은 어떻게 해서든지 DNA에 맞춘 자백을 받아내려고 한 것이 아닌가요? 그 과정에서 무죄추정이라는 대원칙을 넘어서버린 것 아니겠습니까?」
「그건 이론에 불과한 것입니다. 무죄추정이 아니라 흉악한 범인을 잡는 것이 더 중요한 일입니다. 피해자의 인권은 어떻게 해야지요? 제가 수사했지만 고문 같은 짓은 하지 않았다는 것을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증인은 ‘거짓 자백’을 ‘슬픈 거짓말’이라고 하는 것을 아시나요? 슬픈 거짓말을 하기로 마음먹은 피의자는 자신이 알게 된 사건의 일부 내용에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범인인 척 연기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실제 범행을 저지르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상상력에는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진술이 자꾸 어긋나는 것이지요. 그때는 수사관이 나서서 힌트를 주고 암시를 주면서 ‘이렇지 않은가?’, ‘그때 그랬었지’ 추임새를 집어넣는 것이 아닌가요?」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이 사건의 피의자는 그때 상상력까지 발휘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최대한 인간적 대우를 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형사로서 실체적 진실을 알고 싶은 거지 피의자가 소설을 작문하는 것을 원치는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고한 사람이라면 하지도 않은 사건의 죄를 인정하는 자백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지요. 더욱이 무고한 사람이 재판에서 유죄가 되는 경우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단 말이지요. 증인의 생각은 어떤가요?」
「글쎄 말입니다. 저도 자신 있게 말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피의자가 자백을 하고 나서 기뻐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안도감을 느낀 것이지요.
다시 말씀드리면 자백할 기회를 얻어서 마음의 짐을 내려놓게 된 것에 대하여 마음 편안하게 생각한 것이지요.」
「사람들은 고문이 없는 한 무고한 사람이 거짓자백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지요. 그리고 고문당하지 않고 자백했다면 당연히 그 사람이 범인일 것이라고 믿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신체적인 위해를 가하는 것보다 심리적으로 고통스러운 상황에 놓였을 때 더 쉽게 거짓자백을 하는 게 아닌가요?」
「그 당시 피의자는 심리적으로 고통스러운 상황에 있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건 증인의 생각에 불과하겠지요. 물론 증인은 허위자백에 빠뜨리려는 악의로 가득 찬 형사라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결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증인은 증거에 충실하려고 했고 어떻게 해서든지 피의자를 정직한 인간으로 갱생시키고 싶다는 열의에 가득 차 있었겠지요.」
「저는 형사 생활을 하면서 범인을 검거해서 처벌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종종 되새겨봅니다. 어차피 범인이 그 죄를 깨닫고 반성하고 회개하지 않는 한 피해자도 고이 잠들지 못할 것이고 그렇다면 범인이 갱생한다고 볼 수도 없을 것입니다.
저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자백하지 않은 범인이 반성할 리가 없습니다. 자백은 반성과 뉘우침의 출발점입니다. 그래서 자백이 중요한 것입니다. 성경에도 뉘우치거든 용서해주라고 했습니다. 자백하고 반성하고 그러면 피해자가 눈을 감을 수 있겠지요.」
「일반적으로 피해자는 범인을 타인과 착각하는 경우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겠지요. 그러나 원래 인간의 기억은 틀리기 쉽고 바뀌기 쉬운 것입니다.
특히 피해자는 공포 때문에 또는 범인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은 기억 때문에 범인을 침착하게 바라보는 경우가 별로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도망갈 수 있는 길이나 자신의 안전 확보와 관련된 물건에 주의를 두는 경향이 있다고 하지요.
그런데 이 사건의 경우에는 밤이었고 피해자는 순간적으로 뒤통수를 맞고 기절했기 때문에 범인을 기억하기가 곤란하지 않았을까요?」
「그건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1년 만에 시체를 찾았는데 어떻게 목을 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나요?」
「국과수는 여자의 목뼈가 압박으로 휘어졌고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여자가 소리를 지르니까 실수로 목을 조른 것인가요? 또는 끝나고 나서 조른 것인가요? 아니면 처음부터 목을 졸라서 죽은 후 시간을 한 것인가요?」
「그건 알 수 없었습니다.」
「피고인에게 그 부분 진술을 받지 않았는가요?」
「그 부분은 피고인이 명백히 진술하지 않고 얼버무린 것으로 기억합니다.」
「30년 간 수사를 하셨는데 과연 진실이 존재하던가요? 형사소송에서는 흔히 실체적 진실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진실에 이르는 길은 엄정하고 험하겠지요. 하지만 누구는 반쪽의 진실은 허위보다 무섭다고 했습니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아니기도 하다고요? 그렇다면 이 사건의 온전한 진실은 무엇인가요?」
「그건 변호인이 이미 알고 있잖아요. 나도 그만큼만 알고 있지요. 시험하지 마세요. 자신이 판단하지 않고 남에게 떠넘기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지요. 직무유기란 말입니다.」
「변호인으로서 정당한 질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렇지요. 때론 진실과 허위의 경계선은 구분하기가 매우 어렵지요. 가끔 절망적인 경우가 있지요. 그건 신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는 데 30년이 걸린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그때 화성에서 일어난 2건의 살인사건에 대해서도 피의자에게 추궁을 한 사실이 있지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때 피고인이 그 2건에 대해서도 자백하지 않았던가요?」
「자백했습니다.」
「그런데 왜 2건은 기소하지 않았는가요?」
「검찰에서 증거가 충분치 않다고 해서…… 그렇게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은 다른 사건에서는 알리바이가 있어서 피의자의 범행은 불가능했지요. 저는 당초부터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그게 없었습니다.」
「증인은 조서에 있는 것 말고 참고가 될 만한 것이 생각나는 게 있습니까?」
「글쎄요…… 없는 것 같습니다…… 세월이 그렇게 흘러 버리지 않았습니까? 제가 20년 만에 저 사람의 얼굴을 다시 보게 되었군요. 죄가 무엇인지? 이미 충분히 처벌을 받은 게 아닐까요.」

이 사건 핵심 증거인 DNA 검사와 관련하여 변호인이 신청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선임 연구원이 증인으로 출석하였다.
「증인은 현재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이 사건 분석을 직접 담당했던 분들은 이미 정년퇴직을 했고, 증인은 현재 보관되어 있는 DNA 관련 자료들을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DNA 감식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습니까?」
「DNA 감식을 1985년 처음 개발되었을 당시에는 유전자 지문 감식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주인이 누구인지를 확실하게 밝혀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닙니다. 유전자 감식은 언제나 그 주인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성별까지는 구별해 주지만 그 사람의 인격이나 심리 상태 또는 신체적인 특징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밝혀주지 않습니다.」
「이 사건의 경우 DNA 감식의 과정을 짧게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남자의 정자는 DNA 보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라붙거나 강한 자외선 빛을 쐬어도 정자의 머리 안에 들어 있는 유전형질은 오랫동안 조금도 손상되지 않고 보존됩니다.
근 2년이 지나서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의 청색 외투에 묻은 극히 작은 얼룩에 ‘크리스마스트리’라는 시액을 바르자 바로 그 얼룩은 정액이 틀림없는 것으로 확인 되었습니다. 거기서 클린턴 대통령의 DNA가 나왔지요.
이 사건에서는 손수건에 남아있는 정액의 DNA와 용의자의 머리카락에서 나온 DNA를 컴퓨터에 입력해서 일치하는지 여부를 분석한 것입니다.」
「증인은 DNA 감식 과정에서 실수 또는 오류는 있을 수 없다고 보십니까? 다시 말씀드리면 정확하지 않은 수학적 전제에서 출발했거나 실험과 분석에 있어서도 부실한 실수가 있을 수도 있고 더욱이 무슨 선입견이 작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검사자가 혐의를 받고 있는 용의자라면 확률이 떨어질 지라도 범인일 수밖에 없다는 그릇된 신념을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게 DNA를 맹신해도 상관없는 것인가요? 결국 확률의 문제가 아닐까요?」
「인간들은 누구나 가끔 실수를 하지요. 그러나 검사자에게 그런 편견은 있을 수 없습니다. 검사자는 냉정해야 되고 객관적이어야 합니다.
이론상으로 보면 확률의 문제이긴 하지만 DNA 감식에 있어서는 그 확률은 의미가 없다고 보아야겠지요. 그게 99.99999퍼센트 확률이니까요.」
「2015년 4월의 일인데요. 미국 워싱턴 DC 범죄연구소에서는 DNA 분석이 10개월간 중지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기간 중에 100여 건의 사건이 재검토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한 검증위원회가 그곳 분석가들의 자질이 매우 떨어지고 절차가 부적절하게 진행되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지요.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그 당시를 기준으로 하면 말입니다.」
「글쎄요…… 그 당시 상황은 잘 모르겠습니다.」
「형사 사건에서 확실한 증거를 찾아야 하는 일은 난제 중의 난제이겠지요. 특히 어려운 살인사건에서는 말입니다. TV 드라마에 나오는 모든 과학수사 기법들을 믿어도 될까요?」
「드라마는 원래 과장이 심하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아직도 많은 과제가 남아있습니다. 확실하게 검증이 안 된 과학수사의 증거가 실제 사실보다 더 확실한 증거로 인정되어 버린다면 무고한 사람들이 감방에 가거나 더 심한 형벌을 받는 경우가 있을 수 있겠지요.」
「그러니까 요즘 막 개발되기 시작한 DNA 표현형 분석이라는 기술을 이 사건에 적용할 수 있을까요?」
「그건 아직은 불가능합니다. DNA 표현형 분석이라는 것은 유전적 증거를 가지고 복잡한 수학 알고리즘을 거쳐 3D 스캐너를 이용해서 DNA 주인의 얼굴과 신체적 특징을 예측한다는 것인데요…….
그러니까 머리카락이나 눈동자의 색깔, 주근깨 발생 확률, 귓불의 유무, 광대뼈의 각도나 턱선, 코의 모양과 같은 얼굴의 형상을 만들어낸다는 것인데요…… 아직은 아니지요. 여전히 해결해야할 과제가 많이 남아있지요.」
「증인으로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이번 기회에 많이 배웠거든요.」

그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검사는 그 사건이 있은 지 몇 년 후 검찰을 떠나 지금은 서울의 대형 법무법인에서 파트너로 일하고 있다. 내가 그에게 수차례 전화를 걸고 문자 메시지를 남겨 놓았지만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날 사무실로 무작정 찾아간 것이다. 나는 그에게 그 당시 DNA검사가 정말 과학적으로 하나의 오차도 없이 확실한 것인지에 대해 알고 싶었고, 피의자의 자백이 계속 오락가락하였는데 그 과정과 이유를 알고 싶었던 것이고, 혹시나 재심재판에서 참고가 될 만한 사항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했던 것이다. 이미 옛날 일이니까. 같은 변호사로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초면이긴 했지만 그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내가 30년이나 변호사 생활을 했건만 턱없이 순진했던가. 그가 말했다. ‘재심 좋아하네. DNA가 말해준다고. 다 잊고 있었는데…… 꺼지라고. 당장 꺼져.’ 그는 계속 버럭 화를 내더니 먼저 사무실을 박차고 나가 버렸다. 그리고 증인 출석 요청에도 해외출장을 이유로 불응하고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사건기록에 의하면 피의자 김영남은 그 당시 수원지방검찰청 408호 검사실에서 이준보 검사로부터 4회에 걸쳐 피의자 신문을 받았다. 그 젊은 검사는 항상 거만하고 흥분해 있었으며 자주 호통을 치고 가끔 노려보면서 뺨을 때리고 욕설을 내뱉었다. 당연히 반말로 지껄였다.
피의자신문조서 중에서 일부 발췌한 부분과 그 검사가 한 말 중에서 조서에는 기재되어 있지 않지만 김영남이 분명히 기억하고 있는 부분을 문답 형식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문 피의자는 경찰에서 자백을 하였는가요?
답 그게…… 그러니까……
문 국과수에서 한 그 감정에 대해 알고 있지요?
답 경찰이…… 그러나 저는 이해가 안 가는데요. 무슨 감정이라고 하였지요?
문 DNA감정 말이야.
답 그렇다고 하더군요. 뭐가 뭔지? 전 모르겠습니다.
문 다시 한 번 확실하게 알려주지. 네놈의 DNA와 하얀 손수건에 묻은 DNA가 정확하게 일치한 거지. 그러니까 그날 저녁…… 바보처럼…… 하고 나서 손수건으로 닦고 무심결에 자동차 바닥에 버린 거지. 아! 이런! 그건 멍청한 짓이었어. 그 손수건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범인을 잡을 수 없었겠지. 지문은 잘 지웠는데 손수건은 왜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느냐 말이야. 그게 시트 밑에서 발견되었거든. 왜 손수건으로 닦았어? 흘러내려서 찝찝했던 거야? (이건 조서에는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피고인은 이 말을 지금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답 잘 모르는…… 그럴 리가요. 아니지요. 절대로……
문 DNA는 하느님도 어쩔 수 없어. 다 인정하라고. 속 시원히 말이야. 날 짜증나게 해봤자 이로울 게 하나도 없어.
너 바보 멍텅구리 아니야? 내가 사형을 구형할 수도 있다고. 강도강간에 강도살인, 특수감금, 사체유기까지 했으니…… (이 부분도 조서에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솔직히 말해서 반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거든. 속 시원하게 자백을 하지도 않고. 아무것도 스스로 대답 하려고 하지 않아. 시종일관 눈을 맞추지도 않는단 말이야.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며 사죄를 하는 것처럼 했지만 어쩐지 진지한 태도는 아니라고 느껴진단 말이야.
침묵. 흐느껴 움.
답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문 지난번에 거짓말 한 거지? 그런 것 같지?
답 용서해주십시오. 용서를……
문 나는 얼마든지 용서해 줄 수 있어. 그러니까 실체적 진실
을 사실대로 말하라고. 나는 진실을 듣고 싶다고.
답 네. 그렇지요. 제가 모르는 부분이 잔뜩 있으니까요.
문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어. 나하고 지금 동문서답 하고 있는 거야.
답 그랬습니다. 그렇다면 그렇다고 해야겠지요.
문 DNA가 있으니까 끝까지 부인해도 아무 소용이 없어. 그렇다니까. 그런데 말이야. 내가 듣고 싶은 것은 사람을 죽였으니 진심으로 반성했으면 하는 거야. 그 여자가 무슨 잘못이 있어. 네가 죽이지 않았다면 지금쯤 결혼하고 애낳고 행복하게 살텐데.
답 그렇지요. 그 여자가 불쌍하지요. 그건 못된 짓이었어요. 어떻게 인간의 탈을 쓰고……
문 그래. 인정한 거야. 다시 부인하지 마. 특히 법정에서 부인하면 판사한테 찍혀. 판사한테 찍혀서 좋을 게 하나도 없지. 그러니까 순순히 네, 네. 하라고. (이 부분도 조서에는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
답 제가 뭘 알겠습니까?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문 공범과는 잘 아는 사이인 건 맞지?
답 그렇습니다. 함께 어선에서 일했으니께.
문 그날 어떻게 했었지?
답 그날 저녁 배에서 내려 함께 술을 마셨습니다.
문 술은 가끔 사람을 미치게 하지. 그게 문제인거야.

마지막으로 변호사가 피고인 신문을 하였다.
작은 키에 다소 헐렁한 푸른 수의를 입은 피고인은 단정하게 머리를 깎았고 푸르스름하게 면도를 한 턱이 가끔 씰룩거렸다. 머리는 벌써 완전한 백발이다. 그러나 실제보다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잔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피고인은 수사 과정에서 계속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라고 말했는데 그게 무슨 뜻이었는가요? 다시 말해서 범행을 시인한 것인가요? 아니면 그냥……」
「그냥…… 나 때문에 고생고생하는 거 보니까 미안했지요.」
「그래도 그렇지?」
「저에겐 알리바인가 뭔가가 없다고 했고, DNA가 있다고 하니까 어쩔 수 없었……」
「그런데 왜 울고 하였는가요?」
「제 처지가 한심해서 그냥 눈물이 쏟아지더라구요.」
「계속 구속된 상태에서 네가 한 게 맞아, 틀림없다니까, 빼도박도 못하는 거야, 어서 자백하라고, 그러고 나서 편히 쉬라고 하니까 기분이 어땠어요?」
「정말이지 말입니다. 계속 내가 했다고 하니까, 꼼짝할 수 없는 증거가 있다고 하니까 정말 제가 한 것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그때 수사 받으면서 경찰로부터 가혹행위를 당하지는 않았나요? 때리고 발로 짓밟고 말이지요.」
「그런 건 없었습니다.」
「수사 받을 때마다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가요?」
「아침 9시부터 밤늦게까지 받았지요.」
「그래도 견딜만 했는가요?」
「계속 머릿속이 뜨거워졌지요. 머리가 멍해지고 새하얗게 되었는데 한 번은 그만 바닥에 쓰러져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자포자기 했단 말인가요?」
「그렇지요. 일종의…… 지금 생각해 보면 후회되지요. 끝까지 버틸 것을 하고. 자백하지 않으면 수사가 지겹게 수없이 반복되고 하니까 얼른 끝내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배에서 내린 다음 그 친구와 저녁식사를 하면서 술을 마신 것은 사실이지요? 그런데 술을 얼마나 마셨나요?」
「둘이서 소주 3병쯤 마신 것 같습니다.」
「그러고 나서?」
「우린 헤어졌지요. 하루 종일 바다에 있었으니 온몸이 뻐근해서 잠이 쏟아졌지요.」
「피의자신문조서에 의하면 그날 저녁 궁평항에서 술을 마신 다음 매항리가 바라다 보이는 남양만 쪽 바다의 해안가로 가서 범행을 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요?」
「그날 저녁 거기까지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진술하였는가요?」
「경찰이 그렇다고 했습니다. 거길 갔으니까 DNA가 남아있는 거라고 하면서.」
「공범인 죽은 친구가…… 그러니까 힘이 센 김상만이 남자를 끌어내서 방망이로 뒤통수를 치니까 기절해버렸고 그러고 난후 피고인이 여자를……」
「저는 모르는 일이지요.」
「피고인이 궁평항으로 온 게 언제였는가요? 그 사건 당시를 기준으로 말입니다.」
「전 원래 전남 신안에서 태어났고 고향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후부터 목포에서 계속 뱃일을 했습니다. 군산과 장항에서 몇 년간 어선을 탔고 가두리 양식장에서도 일했습니다.
궁평항에 온 것은 그 1년 전이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궁평항에서 중국 쪽으로 밀항할 수 있다고 해서 그 기회를 엿보려고 온 것이지요.」
「그래서 기회를 잡았나요?」
「기회는 없었습니다. 중국 쪽에서 돈을 엄청나게 부른다고 하더라구요.」
「공범인 그 친구는 누구인가요?」
「그는 화성시 마도면 출신이지요. 저보다 3살 위여서 친구가 아니라 형님 동생하고 지냈지요. 한때는 집에서 김양식장을 크게 했는데 잘못되어서 망했다고 하더라구요. 저하고 그때 석 달째 함께 배를 탔습니다. 해병대 출신이라고 했습니다.」
「그에게 절도와 강도 때문에 소년원에 갔다 온 전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까?」
「전혀 몰랐지요. 그걸 제게 자랑할 일이 못 되지요.」
「피고인은 이 사건 이전에 전과가 있었는가요?」
「목포에서 술먹고 패싸움을 하다가 폭력으로 입건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재판받을 때 국선변호인이 있었지요. 그때 국선변호인이 뭐라고 하던가요?」「국선변호인은 제가 하지 않았다고 하니까 난감한 표정을 짓더라고요. 범행을 인정해야 형이 줄어든다고 하면서 만약 잘못되었다가는 사형이 선고될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지요.」
「법정에서 처음에는 시인했다가 나중에는 번복했고 다시 시인했습니다. 왜 그랬나요?」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번복하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법정에 그 형사가 나와서 들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사받을 때 형님처럼 대해주었거든요. 그리고 변호사한테 야단맞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변호사가 재판이 시작되고 나서 두 번째 면회를 왔었는데 그때 시인하라고 했고 그러면 자기가 잘 처리하겠다고 했었습니다.」
「형사들이 검찰에 가서도 범행을 인정하지 않으면 다시 똑같은 수사를 받을 거라고 했나요?」
「그렇긴 합니다.」

그 사건이 발생한 지 일 년이 지나서 해안가 갈대밭에서 여자의 사체가 발견되자 수사는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그때 화성경찰서 강력계 형사가 다 쓰러져 가는 농가 빈집이었던 김영남의 집으로 찾아왔다. 할 이야기가 있으니 잠깐만 경찰서에 가자는 것이었다. 이유인즉, 죽은 김상만에 관해서 몇 마디 물어볼 것이 있다는 것이다. 강력계 형사들은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궁평항의 불량배, 전과자를 중심으로 조사를 벌였다. 그는 절도와 강도로 두 번이나 소년원을 다녀온 적이 있고 폭력전과가 세 번이나 있었는데 한 번 결혼했다가 이혼한 후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사건이 있은 지 몇 달 지나서 바다에 낚시를 갔다가 사고로 죽었던 것이다. 그런데 강력계 형사들은 그가 죽었기 때문에 용의선상에서 배제했다가 뒤늦게 이 사건의 범인이 두 명이고 김영남이 그와 함께 배를 타는 친구 사이라는 것을 알고 그를 경찰서로 데려간 것이다. 그리고 DNA 검사 결과가 나오자마자 정식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

원심 재판이 시작되고 나서 1회 공판기일에서 피고인은 기소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3회 공판기일에서는 범행을 부인했고 연이은 공판기일에서 부인을 취소했다. 그러니까 피고인의 진술은 자백과 부인과 다시 자백으로 변했던 것이다. 수원지방법원은 그 당시 피고인에게 무기징역의 판결을 선고했는데 DNA 감정에 대해 과학적 증거로서 높은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고 피고인의 자백의 경우 전후사정을 종합해서 판단하면 피고인의 진술 번복은 매우 불합리한 변명으로 볼 수밖에 없고, 특히 피고인의 자백이 사건 발생으로부터 대략 1년이나 지난 후 비로소 이루어진 것이어서 세세한 부분까지 객관적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며 미미한 부분에서 자백이 어긋난다고 해서 자백의 신빙성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피고인은 그 후 일관되게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항소, 상고했으나 전부 기각되어 유죄판결이 확정되었다.
재심재판에서도 수원지방법원 제11형사부는 역시 DNA 감정은 신뢰할 수 있고 피고인이 자백과 번복을 반복하긴 했지만 피고인의 자백을 믿을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DNA 재감정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기각하였다. 그러자 피고인은 다시 서울고등법원에 항소 하였고 서울고등법원은 제1회 공판기일에서 DNA 재감정을 실시하기로 하면서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 다음 공판기일을 추정하였다. DNA재감정은 대검찰청 과학수사부에서 맡기로 하였다.

객관적‧과학적인 증거를 제시한다는 DNA 감정이라는 새로운 수사방법은 1990년대 중반 쯤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당시의 DNA 감정은 타인과 일치할 확률이 불과 약 1000명에 1.2명일 확률로, 다시 말하면 833명에 1명에 해당할 정도로 정밀도가 낮았다. (가령 예를 들자면 그 당시 화성시의 인구가 168,217명이고 남성이 82,839명일 경우 화성시에서 이에 해당할 남성은 약 100명일 확률이었다.) 그러나 2003년에 개발되었고 나아가 2006년에 개량된 새로운 DNA 감정은 DNA형이 일치할 확률은 4조 7000만 명에 1명의 확률일 만큼 그 정밀도가 탁월하게 향상되었다. 다시 말하면 지구 상 인구가 약 70억 명으로 추산되고 있으므로 적어도 지구상에서 DNA형이 일치할 확률은 없게 되는 것이다.
항소심은 이러한 항소이유를 받아들여서 재감정을 실시하기로 한 것이다. (나는 일본 판례를 검토했고 도치기현 아시카가 사건을 인용했던 것이다.)

겨울이 성큼 다가오고 있어서 날씨는 추웠다.
바람이 차가워지는 만큼 겨울은 가까이 오네요.
전남 순천시 서면 선평리 430 순천교도소
호남 고속국도 서순천 나들목에서 시내로 접어들면 4차선 도로는 순천지방산업단지까지 이어지고 고물 SUV는 골골거리며 달리다가 교도소 정문 공용주차장에서 멈췄다. 서울에서 여기까지 꼭 4시간 이 걸렸다. 네비게이션 덕분에. 요즘 우스개 소리가 있지 않은가. 남자는 세 사람의 여자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하는데 어렸을 적에는 엄마의 말을 잘 듣고 결혼해서는 아내의 말을 잘 듣고 운전할 때는 네비게이션에 나오는 여자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차에서 바로 내리지 않았다. 뭔가 나를 가로막고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자동차에 망연히 앉은 채로 오락가락하는 이런저런 생각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옛날에, 그러니까 1970년대만 해도 나는 서울에서 밤늦게 보통급행열차를 타면 아침에 순천역에 닿게 되고 다시 터덜거리는 고물 버스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따라 몇 시간씩이나 달려 고흥읍에 갈 수 있었다. 버스가 벌교읍 시외버스터미널을 경유해서 보성군과 고흥군의 경계인 깔딱 고개를 힘겹게 돌고 돌아서 겨우 올라가면 ‘고흥 25km’라는 사각형 시멘트 기둥으로 된 이정표가 서 있다. 그것은 옛날과 똑같은 모습으로 길가의 잡초 속에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외롭게 서 있다. 나는 한 숨을 쉰다. 고흥읍에 내려서도 남쪽 바다 쪽으로 삼십 리를 더 들어가야만 한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 왜 고향이 남쪽 끝 바닷가란 말인가.
버스는 자갈길에서 몹시 덜컹거렸다. 그때마다 온몸이 무작정 들썩거리며 토할 것 같았다. 그러나 열린 버스 창문으로 벌써부터 바다 내음이 바람에 실려 들어왔다. 나는 억지로 잠을 청했었다.
서울에서 순천을 거쳐 고흥까지의 짧은 여행은 언제나 흥겨운 여행길이 아니었다. 낯선 느낌이 드는 오래된 길과 시골의 풍경, 정다운 고향 사람들의 익숙한 사투리와 질척한 삶의 맛을 음미할 여유는 없었다. 그러므로 좋았던 옛 시절을 회고할 일도 없었다. 내게 그런 시절이 있기는 했겠는가. 삶의 표류. 균열된 자아. (지금쯤 까마득하게 잊어버렸으면 더 좋았을) 우울한 기억들.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업무상 내려왔다. 그것도 도저히 가망이 없게 보이는 재심 사건을 맡게 될 모양이었다. 그래서 순천교도소에 수감 중인 재심 청구인을 접견하러 온 것이다. 살인범의 기결수가 20년이 지나서 새삼스럽게 재심재판을 하겠다고. 그게 도대체 말이 되는가. 세월이 그렇게 흘러 버렸는데. 20년 동안이나 케케묵은 소송기록을 아무리 뒤져봐도 가능성은…… 한 번 만나볼 수밖에. 20년을 갇혀 있었던 인간. 얼굴을 보고 몸짓을 보면, 숨결을 느끼고 눈빛을 바라보면 그의 고결한 영혼과 접촉할 수 있을 것인가. 그의 간절한 언어 속에서 한줌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 그의 말을 듣고 음미하고 느끼고 맛볼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그가 수줍어하고 겸손한 사람이라는 것을 소송기록을 살펴보고 나서 이미 알고 있다. 그가 품고 있는 끔찍한 기억과 분노에도 불구하고 편안히 앉아서 끝까지 다 말하도록 내버려 둬야할 것이다. 나는 섣불리 중간에 끼어들어 말을 중단시켜서는 안 된다. 우리 사이에 무거운 정적이 흐르면 안 될 것이다. 그가 말을 계속하도록 격려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가 ‘내가 하늘을 우러러보고 주님이 아래를 내려다보실 때 머지않은 날 나는 왕관을 쓰리라.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아멘!’이라고 말하면…… 내가 그때 무신론자인 것처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요. 하느님이 도와주시겠지요.’라고 맞장구를 쳐야만 하리라. 그리고 패배주의적 편견과 몰이해와 오해 같은 것을 내 속에서부터 몰아내야 한다. 그를 의심하면 안 된다. ‘그 여자의 얼굴도 모르는데 어떻게 용서를 빌 수 있나요’라고 말했지 않은가. 기록을 잊어버려라. 그를 완전히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조금도 안 믿는 그런 모순적인 상황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진실이란 무엇인가? 진실이 있다고? 그러니 진실을 알려고 애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내가 그때 김 변호사에게 불면증과 자기 살해의 충동을 차마 말하지 않은 것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잘한 일이다. 그걸 어떻게…… 나의 우울과 불안 때문에 비관주의 혹은 패배주의적 시각을 드러내는 것을 경계해야 되리라. 그에게도 나에게도 지금은 절대적으로 낙관주의가 필요하다. 그는 20년을 기다렸는데. 그에게 쓸데없이 냉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바깥 사람의 온기가 얼마나 그리웠겠는가. 20년 동안 단 한 번도 면회가 없었다고 하지 않은가. 그렇게 접견을 끝마쳐야 하리라.

열흘 전쯤이었다. 대한변협 인권위원회 위원장으로 있는 김연수 변호사가 전화를 했던 것이다. “형! 오랜만이야! 정말이지! 그동안 통 연락을 못해서 죄송하지요. 그런데 소설은 잘 돼가고 있나요? 그런데 말이지요, 변호사가 본업에 충실해야지 무슨 소설을 쓴다고 끙끙 거리세요. 그게 돈 되는 게 아니잖아요.”, “뭐, 그렇지. 내가 미쳤다고 하면 너무 심하니까 어리석다고 해야겠지. 그런데 용건은……”, “무기징역을 받은 인간이 재심청구를 해달라고 탄원서를 보냈어요. 뭐, 아무리 생각해 봐도 DNA가 잘못됐다고 하면서 말이에요. 탄원서를 냈으니까 무작정 무시할 수도 없어요. 위원회에서 토의 결과 한 번 청구를 해보기로 했지요. 이미 여름에 재심청구는 했고 곧 결과가 나올 모양입니다. 법원에 알아봤더니 그러더라고요. 만약 재심 결정이 나오면 검찰에서 항고는 안 할 거라고 봐요.”, “그렇지만 DNA가 있다면 그게 되겠나?”, “그러게 말입니다. 재심 심리에서 뒤집어엎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형님이 잘 해보세요. 청구인은 뭘 믿고 있는지……”, “그런데, 하필 날…… 법률구조단 소속 변호사가 있을 거 아닌가. 젊은 변호사를 시키지 그래.”, “형님, 사건도 없이 놀고 계시잖아요. 다들 바쁘다네요. 소설은 시간 날 때 쓰시면 될 거고…… 그리고 좋은 경험이 될 거예요. 소설의 재료가 될 수도 있겠지요.”, “흐흐흐…… 소설의 재료가 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그저 그렇게 있으니까 맡아도 무방하겠지. 그러나 내가 중증 우울증인건 알고 있겠지?”, “갑자기 우울증이 왜 나오죠?”, “항우울제 약을 먹고 있거든. 혹시 내 우울증과 불안증이 그 사람에게 전파되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 마지막 남은 희망마저 꺼져버릴 것 아닌가. 자포자기 할 수도 있다는 말이지.”, “20년간을 철창에 갇혀 있었으니 그쪽이 오히려 심한 우울증 아니겠어요? 우울증 환자끼리 잘 해보지 그래요.”, “잘해보라고……?”, “그런데, 죄송하지만 실비 외에 보수는 없어요. 우리 사정 잘 아시잖아요. 그 대신 관련 사건의 기록 일체는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 사람 돈도 없고 빽도 없다잖아요. 오직 하느님만 믿는 모양이에요.”, “엄청나게 선심 쓰시네. 그런데 하느님이……”, “죄송해요, 죄송…… 그러나 신경 쓸 건 하나도 없어요. 어차피 잘 안 될 거예요. 청구인에게는 그 점을 이미 못 박아 두었습니다.”, “알았다고. 그렇게 해보지. 내가 무신론자인 게 후회되네. 이럴 때는 하느님에게 기도하는 수밖에 없는데……”
이제 계절의 여왕인 5월이다.
온갖 꽃이 만발하고 따스한 햇빛은 눈길이 닿는 곳 어디에서나 눈부시게 빛날 것이다. 봄의 희망이 온 사방으로 퍼지고 있지 않은가. 고속도로가 쭉 매끄럽게 뻗어있다. 나는 약간 과속으로 달리면서 콧노래가 저절로 나왔다. 대검 과학수사부는 DNA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회신을 보내온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오! 기적이! 나는 형사 12부 재판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피고인은 무죄입니다. 이 사건 당시 DNA 감정은 증거로서 가치가 없습니다. 피고인의 자백은 DNA 감정 결과에 짜 맞추기 위한 허위인 것이 명백합니다. 피고인은 오랫동안 구속되어 있었습니다. 그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에 대해서 뭐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릴 수 있을까요. 제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라고 말하고 나서 참여 사무관에게 무죄판결을 공시하도록 지시할 거라고, 상상했다.
나는 김영남의 수척한 얼굴이 환하게 펴지면서 활짝 웃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하염없이 울겠지. 그래, 그렇지. 실컷 울어야지, 실컷 울라고. 20년의 세월이 그렇게 하염없이 흘러갔지 않은가.

나는 자기혐오의 굴레를 벗어났고 그러므로 삶에 대해, 인간의 생명력에 대해 충만한 경외심을 느꼈다. 나는 행복했다. 나는 그제서야 눈물이 내 뺨을 타고 내리는 것을 알았다.
2017-05-09 14: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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