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유중원 대표 단편선> 마지막 점프
 닉네임 : 유중원 변호사  2017-01-06 16:35:14   조회: 192   
마지막 점프


춤이란 훨씬 생동하는 것으로 존재에 훨씬 가깝다.
― B.S. 라즈니시

맹주석은 겨울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남자 쇼트 프로그램에 전체 선수 30명 중 18번째로 나선다. 그는 추첨 결과 18번을 뽑았다. 이번 대회 쇼트 프로그램은 6명이 한 조를 이뤄 전체 5개 조로 경기를 한다.
이런 뒷번 순서가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워밍업을 하고 난 다음 초조하게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길고 빙판 상태도 다른 선수들이 먼저 연기한 다음이라 좋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최근 연습을 할 때마다 괜찮은 몸 상태를 보이고 있어 추첨 순서가 경기력에 별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고, 자기 자신을 완전하게 조절할 수 있다고, 지금 기분이 결코 나쁘지 않다고, 자신을 달랜다.
이번 추첨은 현재의 세계 랭킹을 바탕으로 진행되었다. 이번 올림픽에 출전하는 30명 중 가장 랭킹이 높은 12명이 차례대로 19번부터 30번까지 순서를 정한 것이다. 이어서 참가 선수 중에서 세계 랭킹 순서대로 13번에서 15번째 선수가 16번에서 18번 사이의 번호를 뽑았다. 랭킹이 낮은 나머지 15명이 1~15번을 가렸다.
러시아의 알렉산드로 키릴로코프는 대리 추첨으로 25번을 잡았고 그의 라이벌인 일본 선수는 가장 마지막 순서인 30번이었다.
맹주석은 참가 선수 가운데 세계 랭킹이 15번째이기 때문에 16~18번에 해당할 수밖에 없다. 지난 시즌에는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우승했지만 이번 시즌에는 왼쪽 무릎 부상 탓에 국제빙상연맹이 주관하는 그랑프리 시리즈 두 번을 불참하고 B급 국제 대회에 불과한 ‘골든 스핀’에만 출전해 1위를 했다. 골든 스핀은 그랑프리 같은 메이저급 대회보다 순위 포인트가 훨씬 낮기 때문에 1위를 하더라도 세계 랭킹을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올림픽 우승을 노리는 그는 쇼트 프로그램에서 ‘어릿광대를 보내주오’를 음악적 배경으로 하여 연기를 펼쳤다. 쇼트 프로그램에서 상위 24위 안에 들어야만 프리 스케이팅에 나가 메달을 겨룰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점수가 합산되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야 했다.
그는 이번에는 반드시 금메달을 목에 걸고 의기양양하게 귀국하고 싶었다. 그래야만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고 피겨 스케이트 불모지에서 처음으로 이루어낸 국가적 영웅으로 길이 역사에 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광고업계의 아이콘으로 수십 건의 광고 계약을 체결하게 될 것이다. 이제 큰 돈을 벌게 될 절호의 찬스가 찾아온 것이다. 지난 번 대회의 은메달과 이번 대회의 금메달은 그 값어치에 있어서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는 무게의 차이를 느낄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1등만 기억하니까.
그의 최대 라이벌은 일본 선수였다. 지난 대회에서 그가 은메달을, 일본 선수는 동메달을 땄는데 금메달을 땄던 이탈리아 선수는 이미 은퇴했기 때문에 모든 관계자들은 두 사람의 대결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었다. 더욱이 일본 선수는 이번에는 기필코 금메달을 따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모든 메스컴에서 그렇게들 떠들어댔다. 덩달아 운명적인 한일 대결에는 언제나 열렬한 국민적 응원과 관심까지 받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 대회는 그의 생애에 있어서 마지막이 될 것이다. 그는 지금 정점에 와있고 곧 점점 하강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동기는 행위의 원동력으로 작용하여 목표의 선택과 결과에 영향을 미치므로 욕구나 충동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정서적 흥분을 일으키고 심리적인 긴장 상태를 가져오게 된다. 그는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목표를 확고하게 설정하였으므로 이를 성취하기 위해서 도전적으로 훈련하였다. 그래서 자신감과 만족감을 증가시켰고 오랜 훈련에서 오는 지루함을 덜어낼 수 있었다. 그러므로 정서적으로 안정되었고 매사에 능동적이고 적극적이었다.

그는 추첨을 하는 그 순간 자신에게 몇 번이고 다짐했다.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동작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하자.
평소대로 침착하게 하자.
모든 걸 여기서 다 보여주자.
방심은 금물이다.
나를 믿어야 한다.
그래, 좋다. 한 번 해 보자.
나는 내 플레이만 하겠다.

그러나 곧바로 다시 불안감이 찾아왔다. 관중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TV카메라가 잠시 지나가면서부터이다.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불규칙적이 되어 감정이 고조되었다. 손에 땀이 나고 얼굴이 화끈 거렸다. 근육이 굳어지고 주의 집중이 잘 안 된다. 몸이 긴장되면서 침이 마르고 메스꺼움을 느꼈다. 몸이 과도하게 민감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기량을 잘 발휘할 수 없다면? 초조하고 경기에 대해 너무 신경이 쓰인다. 그 쪽 심판들이 불리한 판정을 내린다면? 어느 동작에서 삐끗해서 실수한다면?
그는 몇 번이고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정신적으로 안정을 찾으면서 조금씩 여유가 생겼지만 그래도 손은 여전히 끈적 거린다. 경기에 대처할 자신감이 생긴 것일까. 정신적 압박을 견디어 낼 자신감으로 충만해졌다.

쇼트 프로그램은 프리 스케이팅과 페어 스케이팅 경기에 대한 규정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프리를 짧게 한 프로그램이라고 하는 정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경기에서는 체조의 규정처럼 모든 선수가 7개의 요소로 구성된 똑같은 기술을 연기하게 되어있다. 고도의 기술을 익힌 선수들의 기술을 보다 간편하게 비교 검토하기 위해 국제스케이팅연맹에 의해 시행되고 있다.
프리 스케이팅이란 러닝, 스핀, 스텝, 그레이프 바인, 스프레드 이글, 스파이럴, 피벗 서클, 점프 등 연기 중에서 사용되는 각종 기술을 총괄해서 요소라고 부르는데 여러 가지 요소를 음악에 맞추고 개성을 발휘해서 자유로이 활주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그 내용이 어떠하더라도, 몸짓이나 손짓이 아무리 다채롭더라도 빙판에 그려지는 트레이스 trace는 피겨 스케이팅의 컴펄서리 피겨 compulsory figure를 기초로 하여 빙판에 자유로운 도형을 그린다. 그러므로 컴펄서리 피겨에 비해 매우 동적이며 리드미컬하여 피겨 스케이트의 특징을 잘 나타낼 수 있다.
고도의 기술과 음악의 이해, 표현력이 함께 요구되기 때문에 프리는 빙판을 이용한 종합 예술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생명체의 움직임.
춤은 육체의 율동을 상징하는 것이며 인간의 감정을 그대로 고백하는 육체의 언어이다. 춤추는 기술은 인간이 최초로 스스로를 표현한 모든 기술의 원천이다. 그러므로 춤은 신체의 동작을 시적 언어로 사용한다.
신체의 동작 중에서 가장 극적이고 재미있는 것 중 하나는 몸을 바닥에서 들어 올리는 것이다. 두 발이 점프에 의해 바닥에서 떨어지며 공중에 순간적으로 머물다 신체의 왼쪽이었던 곳이 신체의 앞쪽이 되도록 오른쪽으로 돌게 된다. 또는 반대로 돌게 된다. 이게 피겨 스케이트에서의 점프와 회전 동작이다. 점프와 점프 상태에서의 회전은 우선 몸을 공중으로 들어 올려야 하므로 빠르고 강한 다리의 힘과 동작이 필요하다. 공중에서 회전을 하기 위해 점프는 높고 넓어야 한다. 중력의 법칙과 싸워야 한다. 그러므로 점프는 몸과 시간과 공간과 힘이 조화를 이루어야 가능해진다.
그는 언제나 환영을 보았고 불꽃인 양 공중에서 춤을 추었다.
오늘은 프리 스케이팅을 할 차례이다. 그는 스케이트화의 신발 끈을 조이고 있다. 여전히 쓸데없는 걱정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특히 필살기인 쿼드러플 점프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내 발에 딱 맞춘 부츠이긴 하지만 점프 후 착지를 할 때 말썽을 부리진 않을 것인가? 그래야만 한다. 그럴 것이다. 만약 실수해서 넘어지면 관중들의 야유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밤잠을 설치고 TV를 볼 고국의 열성 팬들의 실망감은? 금메달은커녕 동메달도 못 따는 게 아닌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스스로 자신에게 다짐한다.
맹주석이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빙판에 들어선다. 음악이 잔잔히 흘러나오자 천천히 두 팔을 뻗으며 역동적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그는 정신을 집중하였다. 정신적 평온 상태가 유지되어야 한다. 그에게는 최고 또는 절정의 경험이 있다. 그것이 일종의 지각 상태나 황홀의 상태 또는 어떤 것을 이루어낼 수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만든다. 그러면 보통 이상의 에너지, 엄청난 힘, 속도, 지속성, 평형감 그리고 커다란 평안감과 감각들을 느끼게 해준다.
몸의 좌우 균형을 잘 잡은 후 공중으로 솟구쳐 세 바퀴를 돌고 한 바퀴를 더 비틀었고 그 순간 바닥이 보이면서 감각이 사라지고 허공에서 무아지경이 되었다. 그리고 안전하게 두 발이 바닥에 붙었다. 숨죽이고 그의 연기를 바라보던 수많은 관중이 열광했다.
그는 발에 스프링을 단 것처럼 높이 날았고 빙판에 몸을 내려놓았을 때는 접착제를 바른 듯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착지하였다.
그는 마치 귀신에 홀린 듯 자기 자신을 완전히 다스릴 수 있었다. 시간이 매우 느리게 진행되는 것 같았고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완전한 주의 집중 그리고 적당한 긴장을 가지고 스케이팅을 한다.
무아지경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너무 긴장을 해서 긴장했다는 것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긴장을 했는데도 긴장하지 않은 것 같고 오히려 차분해진 것이다. 그랬으므로 몸이 너무 가벼워지면서 자신감과 긍정적인 느낌을 가졌다. 불안이나 공포를 느낄 수 없었고 전체적으로는 즐거운 스케이팅이었다. 심리적으로 매우 안정되어 있음은 물론 거의 모든 감각들이 평온하다는 느낌과 거의 모든 동작들이 자동적으로 진행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맹주석은 마구 헐떡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생각했다.
프리 스케이팅이 끝났다. 끝내고 내가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어떤 표정이었을지 생각할 수가 없다. 긴장했던 탓도 있었을 것이다.
어휴, 힘들었지! 힘들고말고! 이제는 끝났지! 끝났다고!
지난 번 올림픽 때는 너무 긴장했기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잤다. 그래서 컨디션을 맞출 수가 없었다.
점수가 안 나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좋은 점수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쇼트 프로그램 분위기를 볼 때 그럴 거라고 예상할 수밖에 없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니까. 내가 아무리 잘해도 점수가 예상했던 만큼 나오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오로지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 온 것은 아니었다. 그냥 무덤덤했다. 그건 거짓말이다. 나는 오직 금메달만이 목표였다. 그래야만 나의 앞길이 훤히 열리지 않겠는가. IOC 선수위원에도 출마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CF계약이 수십 건이나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나는 지금 금메달이 목마르다.
일단 끝이 나니까 홀가분하네. 이렇게 홀가분할 수가…… 쇼트 프로그램와 프리 스케이팅 모두 큰 실수 없이 경기를 마쳤으니까 기분이 너무 좋구만.
나의 라이벌이었던 일본 선수 (나는 지금 여전히 약간 흥분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의 이름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를 제외하면 다른 선수들의 경기를 제대로 보지 않았다. 오직 그만 이기면 금메달은 따 놓은 당상이니까. 내가 인정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내가 제대로 하긴 한 것일까?
대충 들어서 알고 있었다. 다들 조금씩 실수했다는 수근거림이 들린다. 전체적으로 점수가 높았다. 어느 대회든 편파 판정이라는 이야기가 늘 나오기 마련이다.
너무 신경이 쓰인다. 진짜 끝일까? 마지막일까? 아무 미련도 없을까? 끝났으니까 아무 생각이 없을까?

그의 평생 라이벌이었던 일본 선수는 프리 스케이팅에서 어느 때보다 큰 부담감을 안고 연기를 펼쳐야 했다. 이번 올림픽 피겨 단체전에 이어 쇼트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전매특허인 공중 4회전을 도는 쿼드러플 점프에서 모두 실패했기 때문이다.
프리 스케이트에서 전체 24명 중 12번째로 나선 그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에 맞춰 힘차게 연기를 시작했다. 첫 점프인 트리플 악셀을 깔끔하게 처리했으니 그동안 두 발로 착지하며 불안했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그래서 가산점을 부여 받았다. 힘든 첫 관문을 무사히 통과한 그는 자신감을 얻은 듯 경쾌한 연기를 이어 나갔다. 그는 이날 남자 피겨 사상 처음으로 쿼드러플 점프에서 몇 차례 성공하면서 자신의 역대 최고 프리 스케이팅 점수를 받았다. 두 차례 점프 회전수 부족과 롱 에지로 감점이 있었지만 자신의 명성에 걸 맞는 연기로 손색이 없었다.
그는 혼신의 연기를 펼치고 난 뒤 그동안 마음고생을 털어내듯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관중도 박수갈채를 보냈다. 이게 바로 그가 하고 싶었던 연기였을까? 비록 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그날 그는 모든 것을 다 보여주었던 것이다.
세계선수권 대회 6위까지 떨어지는 등 부진에 빠지자 은퇴설까지 나왔다. 실패가 더 많았던 쿼드러플 점프는 번번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2월 2년 반 만에 쿼드러플 점프에 성공하며 자신감을 되찾았다. 지난 번 겨울 올림픽 때 맹주석에 이어 3위를 했던 그는 이번에 금메달을 노리고 다시 나왔다. 쇼트 프로그램의 부진 탓에 메달권에서 멀어졌지만 프리 스케이팅에선 개인 통산 최고 점수를 따냈다.
맹주석은 몸을 풀려고 나왔을 때 그 일본 선수가 경기를 하고 있어서 TV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가 연기를 마치고 울먹일 때 맹주석도 좀 울컥했다. 맹주석은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로는 역시 일본 선수를 꼽을 것이다.
그는 생각했다.
우리 둘만큼 꾸준히 비교당하며 경기한 선수도 없었다. 10년 넘게 라이벌이라는 상황 속에서 경기했으니까. 그때는 일본의 동갑내기 선수에게 항상 밀렸다. 처음 출전한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선 그 선수에게 20점이나 뒤진 2위에 만족해야 했다.
주니어 시절부터 그와 경쟁하면서 힘든 점도 있었지만 그 덕분에 나도 성장할 수 있었다. 스케이트 인생에서 하나의 좋은 추억이 아닐까.
그는 쇼트에서 크게 실수했다. 그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혼자 예측하고 혼자 판단했던 것이 아닐까? 그러다보니 집중력이 흐트러졌을 것이다.
나는 매번 그가 점프를 완벽하게 연기하기를 한편으로 원하면서 한편으로는 두려워하고 추락하는 순간을 기다렸었다.
어쨌거나 나는 다시는 그와 경쟁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내가 은퇴하니까. 그러나 그는 나처럼 바로 은퇴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의 집념을 보면 그렇게 생각된다.

피겨 스케이팅에서 심판진이 편파 판정의 비난을 받는 부분은 기술수행 점수의 가산점이다. 심판진이 장난을 치기 쉬우니까 여기서 승부가 뒤집어질 수 있다. 심판들은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각 심판들이 개별적으로 얼마나 많은 점수들을 퍼주는지 공개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금 같은 제도에선 불합리한 점수가 나오면 조작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의심해 볼 수밖에 없다.
맹주석은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 프리 스케이팅에서 192.19점을, 알렉산드르 키릴로코프는 194.95점을 받았다. 맹주석은 전날 쇼트 프로그램 1위였고, 키릴로코프는 2위였지만 프리 스케이팅에서 전복되었다. 프리 스케이팅은 예술점수와 기술점수로 나뉜다. 예술점수에선 맹주석이 99.50점으로 키릴로코프의 98.41점보다 약간 앞섰다. 예술점수에는 스케이팅 기술은 물론이고 음악의 해석과 표현 능력도 포함되는데 그는 다양한 표정과 몸동작으로 성숙하게 감정을 표현하면서 우아한 연결 동작으로 항목별로 고득점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기술점수에서 맹주석은 92.69점인 반면, 키릴로코프는 96.54점이나 받았다. 이 차이가 맹주석의 올림픽 우승을 막았다.
그런데 기술점수는 다시 기술의 기본점수와 가산점으로 나뉜다. 가산점은 기술을 깔끔하게 소화하면 높아지지만, 반대로 실수를 하면 감점을 받는다. 키릴로코프는 기본점수를 모두 챙겼으나 맹주석은 낮은 점수를 받았다. 맹주석은 낮은 기본점수를 특유의 정확한 점프로 만회해왔다. 점프에서 높은 가산점을 받아 기본점수의 부족을 채워왔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오히려 불이익을 받았던 것이다.
맹주석은 8번의 점프 과제 중 트리플 러츠와 쿼드러플 살코, 쿼드러플 콤비네이션 점프와 코레오 그래픽 시퀀스에서 비교적 높은 가산점을 받았지만 나머지 부분에서는 대부분 그보다 낮은 가산점을 받았다.
공중에서 보다 많은 회전을 하기 위해서는 보다 높이 뛰어 올라야 한다. 점프는 호쾌할 뿐만 아니라 우아하다. 그러나 높이와 거리의 균형이 필요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스피드를 잃지 않는 전체적인 움직임과 함께 타이밍이 맞아 떨어져야 한다. (4회전을 돌아야 하는) 쿼드러플 점프는 남자 선수가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다. 연습 도중 부상과 실제 경기 할 때 실수 할 위험성이 아주 크지만 성공했을 때는 기본점수는 물론이고 난이도에 따른 가산 점수까지 높기 때문이다.
그는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 다시 말하면 쿼드러플 점프의 종류와 횟수를 늘리기 위해서 쿼드러플 점프 연습에 온 힘을 기울였던 것이다.
반대로 키릴로코프는 트리플 플립과 더블 토루프, 더블 루프 콤비네이션 점프에서만 약간 감점을 받았고, 나머지 점프에서는 모두 후한 가산점을 받았다. 트리플 루프, 더블 악셀과 쿼드러플 콤비네이션 점프, 스텝 시퀀스 등에서는 더욱 후한 가산점을 받았다. 키릴로코프의 프리 스케이팅 가산점은 높은 반면, 맹주석은 그보다 낮았다. 쇼트 프로그램에서도 키릴로코프는 많은 가산점을 받은 반면, 맹주석은 낮은 가산점을 받았다.

겨울 올림픽 피겨 남자 싱글에서 심판의 판정 문제는 이들의 채점표인 ‘프로토콜’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러시아인이 2명이나 포함된 심판진은 러시아 선수들에게 높은 가산점을 안겼지만 맹주석 등 라이벌에겐 박한 점수를 주어서 판정 논란을 일으킨 것이다.
피겨 남자 싱글에서 ‘테크니컬 컨트롤러’로 참가한 러시아인 테크니컬 패널의 수장은 이번 채점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프로그램 내 기술의 인정 여부와 등급 부여를 맡은 테크니컬 패널의 편파 판정은 쇼트 프로그램에 이어 프리 스케이팅에서도 계속 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편파 판정이 2명의 러시아 선수들의 점프에서 감점 요소를 제대로 지적하지 않은 것이다.
금메달을 딴 알렉산드로 키릴로코프는 첫 점프인 트리플 너츠와 쿼드러플 콤비네이션 점프에서 규정인 아웃 에지 대신 인 에지를 사용해 롱 에지 의혹이 불거졌지만 정상적인 동작으로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테크니컬 패널의 판정과 별개로 심판 중 1명은 그의 콤비네이션 점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서 1점을 감점했기 때문에 편파 판정 가능성이 더욱 높은 것이다. 그는 3연속 점프를 뛰는 과정에서도 마지막 점프에서 착지가 매우 불안했지만 테크니컬 패널은 이를 프로토콜에 명시하지 않았다. 또 다른 러시아 선수도 2차례의 실수 중 1차례만 롱 에지 판정을 받았을 뿐이다.
테크니컬 패널의 또 다른 문제점은 스핀과 시퀀스에서의 레벨 부여에 관한 것이다. 스텝 시퀀스에서 키릴로코프는 수차례 뻣뻣한 움직임이나 부정확한 무릎 사용을 보였지만 테크니컬 패널은 이 연기에 레벨 4를 줬다. 그러나 맹주석의 단호한 스텝 시퀀스엔 한 단계 낮은 레벨 3을 부과해서 점수 차를 만들어냈다. 맹주석은 점프 외에도 연기력과 정확성으로 고득점이 예상되었지만 스텝 시퀀스에서 노골적인 편파 판정이 나와 불이익을 받았다.
애시당초 심판진의 구성이 문제였다. 새로 합류한 러시아인 심판 외에 벨로루시 출신의 심판과 몰도바 출신의 심판 등 옛 소련 출신 심판이 2명이나 들어가 러시아 선수에게 유리한 편파 판정의 가능성이 한층 커졌던 것이다.
친 러시아적인 심판이 4명이나 포함된 심판진의 노골적 판정은 이들이 매긴 점수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각 점프의 수행점수 가산점에서 키릴로코프가 받았던 최고 점수는 무려 33개로 13개를 부여받은 맹주석의 3배에 가깝다. 그 대신 맹주석은 무려 41개의 감점을 받아 감점이 9개뿐인 키릴로코프보다 훨씬 박한 점수를 받았다. 9명의 심판들은 쇼트 프로그램 3위로 키릴로코프의 경쟁자였던 이탈리아 선수에게도 11개 최고점과 39개의 감점을 줬다. 특히 이들 중 최소 3명의 심판은 노골적으로 맹주석에게 박한 점수를 준 반면, 키릴로코프에겐 높은 점수를 퍼준 것으로 나타났다.
심판들의 주관성이 반영될 수 있는 예술점수에선 노골적인 편파 판정이 더욱 두드러졌다. 예술점수에서 맹주석은 동작 간 연결부문에서 키릴로코프와 동급이란 평가를 받았다. 이와 함께 최고 강점으로 부과됐던 안무 복합에서도 키릴로코프에게 오히려 뒤졌다.
맹주석은 전 세계 시청자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이 받아야 할 금메달을 강탈당한 것일까? 러시아는 자국 선수들을 돕기 위해 국제빙상연맹에 입김을 불어넣어 채점 시스템을 미리 바꾼 것일까?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피겨 스케이팅에서 스캔들과 사기극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지만 이번처럼 터무니없이 조작된 적은 없었을까? 맹주석을 제치고 금메달을 차지한 알렉산드르 키릴로코프의 지난 세계선수권에서 쇼트 프로그램에선 90점에 못 미치는 89.62점을 받았는데, 이번 올림픽에선 110점을 훌쩍 넘는 점수를 받았다면 이는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불과 1년 만에 말이다. 또 프리 스케이팅에서도 세계선수권에서는 171.36점이었으나 이번 올림픽에서는 20점 이상 차이가 나는 194.95점을 받았다. 이게 과연 가능할까?
특히 키릴로코프의 올림픽 프리 스케이팅 연기는 지난 세계선수권의 연기의 완벽한 복제판이었는데 어떻게 하여 1년 만에 거의 50점이나 넘게 오를 수가 있겠는가? 국제빙상연맹이 피겨스케이팅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는 전 세계 팬들을 속이기 위해 수준 낮은 점프에도 무차별적인 점수를 주며 이번 쿠데타를 모의한 것일까?
여러 가지 의문점 투성이었지만 더 이상 어쩔 수는 없었다.

겨울 올림픽 때 금지 약물 5가지를 섞은 칵테일 술을 선수 수십 명에게 줬다. 약물이 빨리 흡수되어 효과가 바로 나타나지만 체내 잔류 기간은 줄이기 위한 방법이었다. 정보국에는 1년 전부터 극비리에 특별팀이 구성되어 치밀하게 준비를 하였다. 정보국 직원들은 경기를 마친 선수들의 소변 샘플을 몇 달 전 것으로 바꿔치기하였다. 정보국 직원 3명이 배관공의 옷을 입은 채 샘플 보관 장소 옆 비밀방에서 머물다 밤이 되면 벽에 뚫린 작은 구멍으로 샘플을 받아 갔다. 그 당시 도핑 검사에서 적발된 선수가 없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술책 덕분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정부가 주도해서 금지약물이 포함된 술을 선수들에게 먹였던 것이다. 금지약물 5가지와 술을 섞은 이 칵테일은 별명이 고상한 귀부인 duchess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이 오묘하게 제조된 칵테일은 선수의 불안감을 잠재우고 정신적으로 안정시킬 뿐만 아니라 신체적 기능을 최고조로 상승시켜 선수의 동작 하나하나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겨울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갈라쇼 무대.
이번 대회 피겨 스케이팅에서 메달을 따낸 참가자 중 19번째 순서로 맹주석이 등장했다.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빙판에 들어선 맹주석은 팝송이 잔잔히 흘러나오자 눈을 들어 천장을 바라보고 난 후 천천히 두 팔을 휘저으며 연기를 시작했다.
이날 갈라쇼는 맹주석의 진정한 마지막 무대였다. 앞으로 아이스쇼 등을 통해 그를 볼 기회가 더 있을지 모르겠지만 현역 선수 신분으로서는 이날 연기가 마지막이었던 것이다. 맹주석은 온 세상의 평화를 기원하는 노랫말과 선율에 따라 트리플 악셀 점프와 스핀, 스파이럴 등을 선보였다.

해돋이는 어떻게 하고
비는 어떻게 하고
그 모든 것들은 다 어쩌고
킬링필드는 어떻게 하나요?
때가 있을까?
그 모든 것들은 다 어떻게 하고요?
당신이 말했던 것은 당신과 나의 것들
깨닫기 위해서 멈춰본 적이 있나요?
우리가 이전에 흘린 모든 피들
깨닫기 위해서 멈춰본 적이 있나요?
울고 있는 지구에 대해, 울고 있는 호수들에 대해
우리가 세상에 무슨 짓을 한 걸까요?

맹주석은 가슴 앞으로 두 손을 모아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을 보였다가 환호하듯 두 손을 높이 치켜들며 연기를 끝냈다.
그러나 맹주석의 연기는 힘이 빠져 있었다. 그는 고난도 연기를 하면서 실수를 연발했고 최고의 정점까지 튀어 올라가는 점프를 할 때는 착지를 하면서 비틀거렸다.
자신의 차례가 끝나고 나서 수건으로 얼굴을 닦는데 목구멍이 콱 막히고 가슴이 울렁거렸다.
맹주석은 생각했다.
어제는 경기가 끝난 후 도핑검사를 했고 인터뷰도 했다. 기자들의 질문은 언제나 겉돌았고 사람을 더욱 피곤하게 만들었다. 이래저래 숙소에 늦게 갔다. 나는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머리가 지끈거렸고 온몸이 쑤셨다. 팔다리가, 가슴이, 뼈마디가. 난 먹는 걸 포기했다.
새벽이 밝아오며 연무처럼 뿌연 회색빛이 뚫고 들어오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냥 완전히 다 끝났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여전히 홀가분하고 편안한 기분이 아니다.
처음 선수촌 밖에 잡았던 숙소는 너무 산만해서 좋지 않았다. 그래서 중간에 선수촌에 들어가면서 아버지와는 떨어져 있게 되었다. 우리는 카톡으로만 얘기를 주고받았다. 아버지는 점수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켰다. 그 심정이 오죽했을까. 내가 ‘다 끝났으니까 너무 열받지 마세요. 이제부터는 후련하게 자유를 즐기자구요. 저보다 더 간절한 사람에게 금메달이 돌아간 거라구요.’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때 내 가슴은 너무 억울하고 슬픈 나머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아마 아버지 면전이라면 분명히 그렇게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펑펑 울었을 것이다. 제멋대로 쏟아져 내리는 눈물을 어떻게 하여 막을 수 있었겠는가.
아버지를 만나는 게 너무 두려웠다. 그 멍한 눈빛을, 아주 머나먼 곳을 바라보는 것 같은 그 슬픈 듯, 비어있는 듯한 눈을 마주하는 게 두려웠다.
너무 혼란스러워서 마음의 평정을 잃었기 때문에 갈라쇼는 엉망이 되었다. 마지막이 될 갈라쇼에서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냥 마음껏 즐겼어야 했는데…… 마음이 꽁꽁 얼어붙어 있었으니……
매번 경기를 준비할 때마다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선수로서의 삶을 살아가면서 너무 제한적인 것도 많았다. 그런 것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 얼마나 홀가분한 일인가. 옛날엔 살이 찔까 봐 고기를 못 먹었는데 이번엔 살이 찌지 않아 근육을 만들려고 고기를 의무적으로 먹을 때가 많았다. 그랬으니 신경 써서 먹어야 하고 훈련할 때도 불편하다 싶으면 확 예민해졌다. 몸이 아픈 것에 대해 스트레스가 많았고 사소한 것들에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이 많았다.
연기에 집중하느라 연기를 하는 동안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아직 끝났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내가 경기를 마치고 무대 뒤에서 흘린 눈물은 솔직하게 말해서 억울함이나 속상함 때문이 아니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힘들었던 것들이 가슴에 맺혔다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판정 논란에 대해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다들 내가 속으로는 억울하지만 겉으로는 괜찮은 척 연기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솔직히 그렇다. 왜 아니겠는가.
그나저나 맹주석이라는 피겨 선수가 있었다는 걸 사람들이 기억해주면 좋겠다.
이제 올림픽이 막 끝나서 쉬어야 할 것 같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도 많이 해야겠지. 그동안 경기와 연습을 핑계로 삶의 진실한 경험을 쌓지 못했지 않은가. 그렇지만 여유 있게 살아가고 싶군.
아버지가 아들을 단련시키기 위해서 시킨 운동이었다. 나는 미숙아로 태어났고 어린 시절 내성적이고 겁이 많았다. 아버지는 나를 모험적이고 감수성이 강한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서 또한 건강 유지와 체력 증진을 위한 목적이었다. 나는 8살 때인가 아버지 손에 억지로 이끌려 새로 지은 시민회관의 실내 빙상장을 찾은 게 기억난다. 그때 아버지는 알코올 의존증이였고 과대망상증에 시달렸기 때문에 술만 마시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곧바로 내 아들이 최고라고 떠들어댔다.
그러나 지도자였던 코치는 내게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코치는 은근히 나에게 운동하지 말라고 했다. 유연성이 좋은 편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렸을 때는 유연성만 보고 따지니까 그런 판단을 한 것이다. 그랬으니 모두가 반신반의했고 아버지 말에 콧방귀를 뀌었다.
나는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이를 악물었다. 나는 무엇인가 도전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어려운 훈련을 소화했고 만족감을 느꼈다. 차츰 재미가 있었다. 재미가 있으니까 나오지 말라고 해도 나갔다. 어떤 동작에 몰입한다는 느낌이 좋았기 때문이다. 몸에 와이어를 달고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점프연습을 하면서 하나 둘씩 기술을 성공해 나갔다. 오늘 성공 못하면 집에 안 간다는 초등학생답지 않은 독기도 있었다. 그때는 연습이 끝나면 손가락 하나 꿈쩍할 수 없는 피로감으로 고통 받았고 가끔 구역질이 나고 토했다.
사람들은 체조 선수나 피겨 선수는 몸집이 작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피겨를 해서 몸집이 작은 것이다. 피겨 선수는 잘 크지 않는다. 피겨 선수가 언제 크는가? 운동을 하다가 어딘가 부러져서 연습을 못할 때 그때 키가 자란다. 몸을 쉬는 동안 키가 크는 것이다. 근육이 잡히고 매일 돌고 돌면서 엉덩방아를 찧으면 키는 자랄 수가 없다. 근육이 풀리고 바로 서면 그때 키가 크는 것이다.
그리고 활발한 리듬을 귀에 익히게 되면 자연스럽게 손과 발과 몸이 박자를 맞추게 되고, 즐거운 멜로디를 들으면 몸이 먼저 알아채고 기뻐서 들뜨게 되고, 슬픈 멜로디를 들으면 눈물이 나오게 되는데 이러한 직관적 느낌과 감정은 빙판에서의 연기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 그러므로 좋은 음악에는 모든 감정이 다 들어있다. 나는 음악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깊은 감정에 도달하면서 경기에 몰입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음악을 열심히 들었고 음악으로부터 영향을 흡수하였다.
그러나 연습 과정에는 부침도 있었다. 고관절 근육 손상 등 부상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가출을 한 적이 있었고 밖에 나가서는 담배 피우며 술을 실컷 마시고 친구들과 어울렸다. 그래서 훈련을 소홀히 했다. 부모님께 대들고 형한테도 대들고 코치하고도 싸웠다. 나는 그때 검은 가죽 잠바를 입고 홍콩 영화배우 장국영 머리를 하였으며 돌청바지라고 하는 물빠진 청바지를 입고 끝이 뾰족한 희한한 신발을 신고 다녔다. 여자애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한껏 멋을 부린 것이다. 사춘기의 위기를 겪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되돌아 올 수밖에 없었다. 몸 관리를 철저히 하면서 겨우겨우 회복할 수 있었다. 그는 점프력을 높이기 위해서 필요한 근육을 키웠다. 그리고 힘들었던 일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담아두지 않고 털어버리려고 애썼다. 그러나 여전히 발가락과 발목, 무릎과 허리는 온전치 못하다.
결국 나는 피겨 스케이트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이 되고 말았다. 어쩔 수 없는 내 운명이었다.
이번에 내가 경기를 하면서 그리고 경기가 끝난 후 채점 결과가 발표되고 메달의 색깔이 결정되었을 때 깨달은 것, 생각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중요한 의미가 있었을까? 그러면 그 험난했던 연습 과정이 더 중요했을까? 사람들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결과가 중요하겠지만 나는 영혼과 땀, 눈물이 담겨 있는 과정에서 느끼고 깨달은 것이 더 많았지 않았을까?
나에게는 여러 연령층의 팬들이 많았다. 잘할 때도 있었고 못할 때도 있었지만 한결같이 응원해주었다.
지금 미래의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아무런 계획이 없다. 내가 미래의 계획을 세운 적이 있었던가? 또 다른 꿈이 있었던가? 나의 미래는 결코 찬란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짝사랑하는 그녀는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다. 그녀는 짧은 머리카락에 남자처럼 가슴이 납작했지만 나보다 키가 컸고 온몸은 근육으로 단단히 뭉쳐 있었다. 미인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래도 검고 촉촉하고 생기 넘치는 큰 눈에는 묘한 여성적 매력이 있었다. 그녀는 네일아트에 관심이 많았다. 빙상장에서 훈련할 때 예쁘게 손질한 그녀의 손톱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녀가 말했었다.
“워낙 뭔가 꾸미는 것을 좋아해요. 이런 여가 생활을 하면 스트레스가 확 풀리잖아요. 그래서 경기 나가기 전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네일아트를 합니다. 일종의 징크스겠죠. 그리고 자신에 대한 투자이지요.
이걸 혼자서 하지만 서울에 있을 때는 신촌의 단골 네일샵에 가요. 원장님은 남자예요. 그 원장님이 제 스타일을 다 아니까 화려하게 해줄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장난스럽게 해줄 때도 있죠. 전 중학교 때부터 어쩐 일인지 손톱에 관심이 많았답니다.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할 때는 얼굴 빼고 거의 유일하게 보이는 게 손 밖에 없잖아요. 그러니 예쁘게 해야죠.”
그녀는 이번 대회에서 1000미터 세계 신기록 보유자답게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나는 질투가 아니라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싶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그녀는 나를 사랑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2017-01-06 16:3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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