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유중원 대표 중편선> 인간의 초상 (下)
 닉네임 : 유중원 변호사  2016-05-26 11:08:58   조회: 459   
김정현 병장.
6개월 과정의 월남어 교육대 출신의 대민 심리전 요원. 실종자 (혹은 탈영병). 그는 월남 파병 동기였고 나이는 한 살 위였다. 그는 어김없이 형님, 그것도 큰형님 행세를 하였고 나는 이를 긍정하였다. 나는 흉내조차 낼 수 없게 멋있게, 악기를 자유자재로 연주하는 것처럼 휘파람을 불 수 있고, 성숙한 인간이었으니까. 어쨌거나 우린 친했고 서로 모든 걸 솔직하게 털어 놓을 수 있는 사이였던 것이다.
그가 맨날 내 귀에 못이 박히도록 심문 (또는 고문)하는 고정 메뉴가 있었다.
넌 순진하긴 한데 쪼다라고 할 수 있어. 완전한 쪼다. 순진한 게 좋은 게 아니야. 그건 병신 머저리라는 말의 완곡어법에 불과한 거지. 넌 담배도 못 피우지…… 술도 안마시지…… 붕붕도 못하지… … 노름도 못하지. 도대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느냐 말이야? 그것들이야 말로 인간 성체의 징표인데 말이지. 너 혹시 독실한 예수쟁이 아니야?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목사 아니면 전도사 집안인 거지? 황금 십자가와 묵주는 어디에 숨겨놓은 거야? 네놈이 월남까지 왔으면 기념으로 붕붕쯤은 해야 될 거 아냐. 딱지를 떼란 말이야. 너 같은 놈만 있다면 말이야, 수진 마을에서 젊고 예쁜 여자 2,000명이 날이면 날마다 목을 빼고 남잘 기다리고 있는데…… 그러면 걔들은 도대체 뭘 먹고 살겠어. 물만 마시고 사느냐 말이야. 너는 도대체 말이야, 인간의 본성인 연민의식이 없는 거야. 난 전투 수당을 몽땅 수진에 갖다 바쳤어. 내가 공짜로 시켜줄게. 제발 좀 따라만 와주라. 진짜배기 아라비아산 낙타눈깔도 줄게. 그게 말이야, 신비한 요물이거든. 여자가 환장을 하는 거지. 남자도 덩달아 환장을 하고 말이지. 이 형님의 당면한 소원이 뭐겠어. 네놈 물건이 퉁퉁 부어 가지고 농이 질질 흐르는 꼴을 보는 게 나의 소원이지. 알겠어? 입에서 아직도 젖비린내 나는 놈아, 그걸 고상하게 말하면 구상유취라고 하는 거야. 그런데 말이지, 그래야만, 네가 비로소 인간이, 사내가 되는 거야. 너에겐 지금 하나의 과정이 필요한 거야. 인간 성체가 되기 위한 통과의례……. 넌 알에서 하루 빨리 부화해야 하는 거야.
나는 늘 똑같이 반응했다. 또, 쓸데없는 소릴……. 나도 부화할 때가 있겠지. 반드시 부화할 거야.
4월 20일. 20일. 20일.
그날 저녁, 어스름 빛 속에서 나무들을 말끔하게 베어낸 개활지와 늪지대를 지나 조림된 고무나무 밭과 검고 칙칙한 열대의 숲이 멀리 보였다. 그러나 강에서부터 기어오른 짙은 회색 물안개가 주위를 감싸기 시작했다. 입에서 여전히 술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다. 김 병장이 마리화나를 피워 물며 말했다.
이건 정신적 고통을 완화시켜주는 진통제이거든. 온몸이 노곤해지고, 그리고 황홀해지지. 며칠 전 수진에 갔다 왔지. 근 한 달 동안이나 못 만났거든.
뻔할 뻔자지, 보고 싶었던 거지. 그게 아니고 하고 싶었던 거지. 그래, 그렇게 좋아? 그 여자 이제 지겹지도 않아?
그 앤 그런 여자가 아닌 거야. 단순한 배설구는 아니었지. 내 여자이지. 영혼만은 순결하지. 난 랑린의 순수하고 달콤한 냄새를 맡고 들이마시지. 그 앨 보면 오히려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드는 거야. 작은 물고기가 내 혈관 여기저기를, 심장에서 모세혈관까지 헤엄치고 다니는 기분이 들지. 하지만 그 앤 가끔 눈물을 보일 때가 있는 거야. 메콩 강을 그리워하는 거지. 자신은 그 강의 일부라고……. 그 앤 내가 사준 은팔찌를 항상 차고 다녔던 거야. 그 앤 내 아이를 갖고 싶어 해.
얼씨구, 열녀 춘향이가 따로 없네. 아예 결혼해서 한국으로 모시고 가지 그래.
야, 임마, 난 이래봬도 뼈대 있는 종갓집의 장손이야. 그 낡고 고루한 집안에서 용납하겠어. 야단법석, 난리가 나겠지.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내가 다급하게 랑린을 찾자 마담년이 뚱했어. 여기에 없다는 거야. 내가 신경질 부리고 눈을 부라려도 그년은 비웃었지. 자기는 모른다고 딱 잡아떼는 거야. 그러면서 그 앤 결코 돌아오지 않을 거라구, 죽은 셈 치라는 거야. 다른 애들이, 새로 온 여자 애들이 있으니 마음대로 고르라는 거였어. 마담 밑에는 모두 열 명의 아가씨가 있다는 거지. 그년은 철저히 장삿속인 거야. 다른 집에 단골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지. 개 같은 년, 내가 1년 동안이나 다른 애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일편단심 그 애만 만난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말이야. 그래서, 단도를 빼들고 마담의 목을 겨누었지. 그때는 눈이 뒤집혀서 정말 목을 따 버릴 작정이었어. 그제서야 마담이 털어놨어. 랑린이 고향으로 이미 떠났다는 거야. 몬순 계절이 되면 메콩 강 델타는 엄청나게 범람한다는 거지. 그 전에 서둘러서 메콩 강 하류에 있는 빈롱으로 출발하였다는 거야. 고향에는 늙은 홀어머니가 계시지. 아버지도, 두 오빠도 전쟁 중에 죽었거든…….
나는 어떤 아득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이제, 어쩔 셈인데?
나에겐 랑린밖에 없는 거야. 나도 떠날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탈영하는 거지. 그 앨 찾아서. 이게 사랑인지, 뭔지 알 수는 없지만……. 람브레터 또는 지붕에 승객을 태우는 장거리 버스를 교대로 타고서 무작정 1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는 거지. 빈롱까지 가는 거야. 메콩 강이 꿈결처럼 흘러 흘러들어서 마침내 태평양 바다와 만나 곳이지. 여기서부터 천릿길이 되겠지. 나는 원래 방랑자적 기질이 있으니까……. 이런 여행쯤이야. 돈이 좀 필요하지. 네가 가지고 있는 걸 몽땅 내놔야 할 거야.
지금, 제정신이냐! 제정신이냐구? 대관절 사랑이 뭔데! 그렇게도 사랑 때문에 단맛, 쓴맛을 봤으면서……. 지금 자신을 기만하고 있는 거야.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의 여윈 얼굴에 피로한 눈빛과 냉소적인 미소가 어려 있다. 그가 다시 마리화나를 피워 물었다.
그만 해둬. 부대는 잠시 난리가 날 거야. 그러나, 걱정하지 마라. 그건 잠깐뿐일 거야. 작전 중 행방불명이나 사고사로 처리하겠지. 전쟁터에서 병사가 탈영하면 부대장의 경력에 엄청 흠이 되는 거지. 진급에도 악영향을 끼칠 거고. 그러니까 헌병대나 보안대에 신고는 못 할 거야. 쉬쉬할 거라구. 수배령도 내리지 않을 거구. 그렇게 하면 탄로 나니까. 월남에서 허위 보고는 식은 죽 떠먹기지.
나는 당황하였다. 헤아릴 수 없는 짧은 침묵이 그 순간을 짓눌렀다. 갑자기 뱃속이 울렁거린다. 연민과 분노와 당혹감 때문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터질 듯했다.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절망적으로 말했다.
형은 그럴 수 없어! 형은 그래서는 안 되는 거야!
그의 얼굴 표정에 비장한 것이 서려있다. 어떤 헤아릴 길 없는 깊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나를 뚫어져라 쏘아 보았다. 나는 온몸에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잘 들어라. 어느 날 내가 감쪽같이 사라지면 그렇게 알라구. 넌, 날 말릴 수 없어. 너마저 그러면 M16으로 내 머리통을 갈겨 버릴 거니까. 악랄한 내 주인에게 총을 쏴버리는 거지. 나는 전투만 시작되면 얼어붙어 버려서 총을 한 방도 쏠 수 없었지. 방아쇠를 당기는 팔에 마비 증세가 오는 거야. 그때마다 내 얼굴은 땀과 흙으로 뒤범벅이 되었고, 오줌을 지렸고, 몽땅 토해버렸어. 그러나 날 겨냥하고 쏠 수는 있어. 그건 가능한 일이지.
우린 오늘 밤이 마지막이야. 우리 서로 Cool하자고. 울지 마라. 넌 아직도 눈물이 남아 있니. 넌 알고 있을 거야. 내가 고국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정말 싫지. 쓰라린 과거를 생각나게 하는 곳이지. 너만 그런 게 아니지, 나 역시 옛날, 입대하기 전 일은 지겹고, 역겹지. 그건 악몽이었어. 우린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포유동물인 거지. 전쟁터에서 그 분노를 폭발해버리면 치유가 되는 줄로 알았지만… …. 그때 일들은 기억상실증에 걸렸어야 하는데……. 그러나, 나는 도망가는 게 아닌 거야. 내 길을 찾아가는 거지. 자기 자리를……. 여기에 처박혀 넉맘 냄새를 실컷 맡으며 살고 싶은 거야. 이 난리 통에 가능할지 모르지만…….

그가 천천히 속삭인다. 그 억양이 가볍고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그녀를 감싸 안아서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고려대 불문과를 3년간 다녔고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들은 거의 전부 완벽하게 암송할 수 있는 남자. 젊은 날의 통과의례에 불과한 첫사랑의 상처 때문에 죽고 싶도록 고통을 느꼈고 그래서 일찍 군에 자원입대했고 또다시 월남전에 자원했던 남자. 가난한 시인이 되고 시골 벽지에서 학교 교사가 되고 싶었던 남자. 문학적 재능이 있는지는 몰라도 너무나 융통성이 없었던 남자. 그러나 인간을 향해 총을 쏠 수는 없었으나 자신의 머리에는 감히 총을 쏠 수 있다고 자신했던 휴머니스트.
메콩 강의 강폭이 한없이 넓어지고 강물이 유장하게 흐르는 메콩 강 삼각주의 빈롱에서 천리 길을 거슬러 올라가, 거대한 미군 군수기지가 있던 캄란 만 입구의 집장촌인 수진 마을까지 흘러들어온 영혼이 맑은 여자.
그는 여자의 갈색 피부를 쓰다듬고 그녀의 불타는 듯한 눈과 얼굴 위로 자신의 얼굴을 덮는다. 그는 그녀의 눈 깊은 곳에서 빛을, 구원의 빛을, 어떤 계시를 발견한다. 그녀를 위한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가능하다고, 그는 그렇게 다짐한다. 그는 이제 지껄이지 않는다. 희망과 욕망, 탐닉이 묘하게 섞여있는 격정적인 몸부림에 자신의 몸을 맡긴다. 그는 그 순간 아무것도 생각해서는 안 되리라. 여기 밀림에서는 의식은 가물가물해지며 몽롱할 뿐이다. 꿈도 꿀 수 없다.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고통도 벌써 희미해져 버렸다. 그때는 죽음을 갈망했었는데. 모든 추억이 사라져버렸다. (민들레가 피어있는 논둑길. 따뜻한 봄날의 햇빛. 흰 구름. 냇가. 소녀. 사랑. 입술. 이별. 불면하는 밤들. 침묵. 망망대해. 무인도. 미완성인 한 묶음의 원고들.)
오직 군화와 철모, M16 소총, 수류탄.
그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생각한다. 나는 소진되어 버렸는가? 도피자인가? 이미 사라져 버렸는가?
밤이 완전히 내려앉았다. 짙은 어둠 속에서 C포병 중대에서 발사하는 105미리 곡사포의 포탄 터지는 소리가 밤의 유령이 토해내는 괴성처럼 아득히 들려왔다.
그때의 생생한 장면, 대화 내용, 내 가슴 속에 각인된 김 병장의 비장한 얼굴을, 그의 의지를, 욕망을, 내가 느껴야 했던 그 무력감을 어찌 오랫동안 잊을 수 있었겠는가. 날카로운 가시 면류관을 쓴 채 피를 뚝뚝 흘리는 김 병장의 모습이 그 후 한 세대 동안이나 자주 꿈속에 나타났다. 그런 게 아니라 나타났다고 생각하였다. 김 병장을, 그를 끝내 붙잡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나의 강박관념이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한때 그 강박관념을 몰아내기 위해, 망각을 위해, 알코올 의존자가 되어 살아야 했다. 매일 알코올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만취해서 인사불성이 되고 머릿속 찌꺼기를 말끔히 씻어낼 수 있다면. 필름이 완전히 끊겨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를 마음껏 분출할 수 있다면. 분노의 순간에 격정을 폭발할 수 있다면. 나를 산산이 파괴할 수 있다면. 섹스에 탐닉할 수 있다면.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면. 식어버리고 사라져버린 사랑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사랑의 기쁨은 잠시이고 덧없이 사라진다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은 끝내 좌절하고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유아기적 껍데기를 깨고 인간 성체로 성숙할 수 있다면. 자기 자신을 찾을 수가 있다면. 그러나 나는 길에서 왝왝 토하는 일 외에는 항상 말짱했다. 도대체 취해지지가 않았다. 그러므로 술이라면 진저리를 치기 시작했다. 그래도 계속 마셨지만 말이다.

빈롱. 수목이 빽빽하게 우거진 밀림의 가장자리 얕은 언덕에 있는 랑린의 집 (마을에서도 조금 떨어져서 그 오두막은 홀로 서있다.)에서 멀리 메콩 강 삼각주와 유장하게 흐르는 누런 강물이 내려다 보였다. 밤이 깊어 가면서 물안개가 피어올랐다.
내가 말했다. 김 병장은 어디에 갔지? 밖에? 들판에? 난 김 병장을 만나러 왔지. 아주 멀리서 말이야. 죽고 싶도록 보고 싶었거든. 그녀가 말했다. (그 목소리가 감정이 배어 있지 않은 기계음처럼 들렸다.) 그는 죽었어요. 틀림없이 죽었단 말이에요. 모르겠어요? 여기에 오지 않았어요. 아마, 민병대 또는 베트콩한테……. 아니에요, 아니. 그는 안 죽었어요. 내 가슴 속에서 살아 있지요. 내가 말했다. 그럴 리가. 그녀가 깔깔거리며 말했다. 그만 잊으세요. 잊어……. 나는 지금 외롭고 힘들어요. 죽을 맛이에요. 나를 어디론가 데려다 주세요. 제발.
그 순간 난 깨달았다. 그녀와 나, 살아있는 사람들은 이제 그에 대해 아무런 미련도 남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엄연히 살아있고 그녀와 나는 각자의 삶이 있다. 그리고 문득 이미 오래전부터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은 그를 잊기 위해서, 그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이심전심으로 암암리에 공모자가 되었다. 그녀는 이제 울지 않는다. 침묵이 있었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다. 그녀의 까만 머리, 까만 눈, 잘록한 허리가 은근히 유혹적이다.
그녀가 말했다. 당신 얼굴을 만지게 해주세요. 나를 꼭 껴안아 주세요. 그리고 그 짧은 순간 나는 갑자기 그녀를 억세게 끌어안고 나의 입술로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나의 혀를, 빨간 혀를 그녀의 입 속으로 깊숙이 밀어 넣고 키스를 하였다. 나는 짚으로 된 푹신푹신한 침대에 그녀를 눕혔다.
그녀가 노래를 했다.
메콩 강은 알고 있다네 강물은 깊어라 슬픔도 깊어라 강은 시시로 변하네 아침에 푸르던 그것이 저녁이면 핏빛으로 물드네
강 쪽에서 거대한 잿빛 구름이 몰려오고 잠깐 동안 천둥 번개를 동반한 지독한 폭우가 쏟아져 내렸다.
나는 새벽의 희붐한 여명이 창문으로 밀려들 때쯤 밤늦게까지 뒤척이다 겨우 눈을 붙인 잠에서 깨어났다. 너무 오랫동안 김병장을 잊고 지냈다는 미안한 마음이 들고 랑린은 잘 있는지 그녀가 궁금했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 3학년 시절 초여름에 마을 냇가에서 친구들과 물놀이를 하다가 왼쪽 무릎을 심하게 다쳤는데, 그 당시 두메산골—고향 동네 송정리는 면사무소에서도 10리를 더 들어간 산골짝에 있다.—에서 속수무책으로 방치하였다가 관절염이 심하게 악화된 것이다. 내 무릎은 주위가 빨갛게 되어 통통 부어오르고, 물이 차고 고름이 차고 나중에는 굽혔다 펼 수조차 없게 되면서 그 때문에 견딜 수 없는 통증을 느꼈다. 그리고 사람을 탈진하게 하는 신열과 오한, 피로감, 구역질 등에 시달려야 했다.
온갖 민간요법과 떠돌이 한의사의 마구잡이식 침놓기, 이 십리쯤 떨어진 동네 도사 할머니의 신통한 주문과 비방도 소용이 없었다. 고흥 읍내의 한지의사는 여기서는 치료할 수 없으니 순천이나 광주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그제서야 아버지는 문전옥답 논을 팔아서 마련한 돈으로 도시의 병원으로 가게 되었는데 의사는 희미하고 검고 회색의 엑스레이 사진을 이리저리 들여다보며 완치하기 위해서는 무릎 위부터 잘라야 하거나 아니면 무릎 수술을 해도 그 후유증으로 다리를 심하게 절 수 밖에 없다고 냉정하게 선언하였다. (그때부터, 유년의 저 깊은 심연 속에 뿌리 내린 냉혹한 공포감이 평생 동안 나를 따라다녔다.) 두말할 것도 없이 사색이 된 아버지는 몇 군데 병원을 전전하다가 어쨌거나 정형외과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고 오랜 물리 치료와 끝없이 길고 긴, 지루한 재활 훈련 끝에 기적처럼 완치될 수 있었다. 그러나 무릎 바로 위에 옆으로 길게 패인 수술 자국은 그때의 고통과 상처를 지금도 상기시켜 준다.
지금 돌이켜보면 무릎을 절단하는 수술, 혹은 무릎 수술로 내가 심하게 다리를 절게 되었다면 내 운명은 어찌 되었을까. 우선 군대도 안가고 전쟁터에도 안 끌려가고. 그러나 내 인생은 지금과는 송두리째 달라졌을 것이다. 지금의 아내와도 만나지 못하였을 것이고, 그러면 내 두 딸도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정체성마저 바뀌었을 것이다. 지금의 나와는 전혀 다른 누구였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내 성격상 나이가 들어갈수록 심하게 좌절한 나머지 우울증과 폐쇄공포증에 시달리고, 매일같이 독한 술을 마시며 알코올에 의존해야 되었을 것이고, 그래서는 변변한 직업도 없이 평생을 고통 받고 자포자기한 삶을 살았을 터였다. 그랬으니 결혼도 못했을 것이고 미구에 자살했을 지도 모른다. 그 때문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젊은 시절 삶의 고뇌에 허우적거리며 헤어나지 못할 때 존재론적 회의에 빠져서 몇 번씩이나 자살의 충동을 경험하지 않았던가.
돌이켜 보면, 그건 행운이었다. 내가 목숨을 건지고 회복되었으니 말이다. 두 번의 경우 모두 내게는 커다란 행운이 뒤따랐다. 그렇지만 그들 행운은 내 자유의지와는 상관없이 결정된 것이다. 그것은 어떻든 오래 전부터, 아마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을까? 그러니 내가 어떤 은총을 입은 게 아닌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내게 또다시 파랑새가 하늘 높이 비상하는 행운이 계속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건 공평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어떤 운명이 닥칠지라도 그것에 저항하지 말고 순종해야 하리라. 그렇지만 운명의 여신인 포르투나Fortuna처럼 행운 역시 눈이 멀었다고 하였으니까, 누가 어떤 혜택을 입게 될지는 어떻게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눈 먼 행운.
내가 물놀이에서 무릎을 다치고 회복된 일이나 열대지방의 정글에서 정체불명의 병에 걸리고 기적적으로 회복된 것은 아주 우연처럼 보이지만 그건 운명이었고 우연이란 막다른 운명의 다른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종착지에 이르기까지 구불구불한 길이라고 할 수 있는) 삶을 결정짓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오로지 운명일 뿐이다. 인간은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결국에 가서 이기는 쪽은 우리가 아니라 이 세상인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니체가 말한 철학적 용어인 운명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운명을 사랑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운명은 팔자이니 운명에 맡기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체념이나 단념이야말로 인간의 미덕이 된다. 그러니까 나의 인생행로가 뒤틀렸거나 순조로웠거나 상관없이 운명은 결국 내 삶의 순리인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적 운명론에서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웅대한 예정론에서는, 칼뱅의 예정설에서는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탓으로 돌렸으니, 그렇다면 운명이야말로 신적인 것이다. 그들이 말했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러나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알고 있으니 모든 걸 그분에게 맡겨라. 그분이 결정할 터이다.
오래 전 일이 아니다. 강남역 부근에 있는 유명한 교회의 집사인 친구가 말했다.
“네가 지금 살아남은 것이 우연일 수가 없는 거야.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운명 따위는 없어. 오직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을 뿐이야. 신은 인간 삶의 모든 국면을 조종하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나는 그쪽 신을 믿지 않거든. 신앙심이 없는 내가 신의 은총을 입을 수가 있다고……? 그렇다고 할 수 있나……?”
“네가 무슨 쓸모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신의 구원이 일찍부터 예정되어 있었다니까.”
“왜, 하필 내가?”
“신의 의지를 어떻게 알 수 있겠어.”

정글과 열대. 살과 피가 튀는 야만적인 전쟁.
지금은 기억의 초상.
그것은 나의 삶을 분명하게 두 부분으로 쪼개버렸다. 비록 과거의 그 어떤 상처가 치유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전쟁 전과 전쟁 후의 나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랬으니 전쟁은 나의 인생에 있어서 진정한 전환점이었다.
그러나 과거는 망각일 뿐이다. 과거가 나를 만든 것이 아니다. 나는 과거의 산물이 아니다. 그러니 나의 과거는 사라지지 않았고, 놀랍게도 나의 과거는 추억이 되었고, 현명한 지혜로 바뀌었다고, 자신을 속일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긴밀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라는 공동체, 무리로부터 떨어져 나와 단절과 균열, 이질감, (인간에 의한 인간에 대한 저주인) 소외, 외로움을 느꼈다. 나는 비사교적이었지만 매우 순종적이었다. 그러나 나의 내부에는 항상 해소할 길이 없는 욕구불만과 분노가 들끓고 있었으니 오랫동안 그들과 융화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그 집요한 강박관념 때문에, 외로운 인간, 국외자라는 콤플렉스 때문에 내 어둠 속 내면으로 다시 돌아가 움츠러들었다. 그리고 자신을 경멸하고 그 반사작용으로 그들을 경멸하였다. 나는 호모 사피엔스인 인간 종 모두를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로 여기고 불신하였다. 그리고 서로 간에 가학적이고 피학적인 관계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20대, 젊은 날에 그들 운명적 사건의 경험을 토대로 내가 인간 본성 (특히 그것의 상대성)에 대해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랬더라면 인생의 우여곡절과 좌절을 맛보지 않고 좀 더 충실한 삶을 살았을 터이다. 그리고 그 시절의 통과의례인 사랑의 감정과 배신과 고통은 어떠한 (감상적인 말이거나 수사적 표현이 아닌) 상처를 남겼던가? 그때 나는 벌써 일종의 허무주의에 빠져있었으니, 항상 분열되어 있었으니, 자신을 벗어나서 타자의 세계로 들어갈 수 없었으니, 평생 동안 따라다닌 불안감을 여전히 떨쳐내지 못했으니, 내 인생의 명확한 길과 목표가 세워질 수 없었다.
신비와 공포의 상징물이었던 바다, 사막.
멀리 달아나 버린 꿈.
장밋빛 인생은 없었다. 나는 초라했다. 정말 초라했다. 누가 나를 위로해 준 적이 있었던가? 그러므로 나에게 한 순간인들 삶의 고결한 순간은 없었다. 삶의 좌절에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있지 않았던가. 그때는 언제나 눈앞이 캄캄하고 막막했다. 나는 벌써 마지막 항해를 끝내고 자신의 항구로 귀향한 늙은 선원이 된다. 얼빠진 사람, 살과 뼈가 없는 무기력한 인간, 여전히 세상이라는 거친 바다가 야기한 공포에 몸을 떠는 인간, 바다의 폭풍우 속에서 악마의 얼굴을 보았던 인간, 끊임없이 근원적 불안감에 시달리는 인간.
그러나, 나는 30대 후반을 지나면서부터 삶이 얼마나 느릿느릿 지나가는지를, 삶을 보다 가볍게 여겨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뭘 더 바랄 수 있었겠는가. 나는 시간의 흐름에, 나를 둘러싸고 있는 단조로운 일상에 자신을 맡기기로 어설픈 타협을 하였다.

나는 오랜만에 (근 10여 년 만에)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 (아마, 그때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이었으니까 할머니 제사 때문에) 송정리 고향집에 내려갔고 한때 꿈과 몽상에 젖어 오매불망 그리워했던 그러나 이미 가슴 속에서 지워져버린 남쪽 바다를 다시 만났다.
멀리서 어떤 목소리가…… 바다 쪽에서…… 울부짖었다. ‘돌아오라고! 돌아……! 고향으로……! 네 고향은 바로 바다인 거야.’
겨울 바다에 돌풍과 같은 강한 바람이 불었고 파도는 하얀 이를 드러낸 채 으르렁거렸다. 통통선 어선이 거친 파도를 헤치며 부두로 귀환하고 있다.
나는 해안선을 따라 만의 동쪽 끝 동백나무 숲까지 하염없이 걸었다. 하늘은 푸르고 아름다웠다. 한나절 동안 (그날 오후 무렵이었을 것이다.) 진정한 정신적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깊고 푸른 바다의 냄새를 흠뻑 맡으며 걸었다.
…… 달에게 그 가슴을 드러내 놓은 바다여!
…… 밀려와라, 그대 깊고 검푸른 바다여!
나는 아주 슬프지도 않았지만 아주 행복한 것도 아니었다. 그때 바다가 내게 무슨 말을 했었던가, 바다는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무슨 말인가를 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나는 건너편 이름도 없는 무인도인 작은 섬을 바라다보았다. 그 외로운 섬. 내가 어렸을 적에는 두 가구가 염소를 키우며 살았었다. 까마득한 옛날 일이다. 그러나 그 섬에서의 생활은 너무나 혹독한 것이었으리라. 나는 그들의 고립되고 힘든 삶을 상상했다. 그리고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불가해하고 희미한 장면들을 이것저것 떠올렸지만 (내가 유치한 감상에 젖어있었던 건 아니다.) 그때 무슨 심각한 또는 애잔한 생각을 했었는지는 기억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부질없이 눈물을, 자기 연민의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만은 확실할 것이다. 내 눈에서 그것은 아주 옛날에 말라버렸지 않았던가.
나는 생각했었다.
이제는 그 지긋지긋한 어둠을 뚫고 나아가야 한다. 무엇이 그토록 불안하고 두려운 것인가? 도대체 뭐 때문에 죄책감에 시달려야 하는가? 그 끈질긴 열등감을 마침내 극복할 수 있을까? 지금 막다른 골목에서 길을 잃은 채 내 인생은 종막을 내려야만 하는가? 나는 끊임없이 변해야만 한다. 그럴 수 있을까? 희망의 출구가 보이긴 하는가? 지금 당장 자신감과 함께 당당함이 필요하다. 그리고 어쩌면 자기 자신한테도 거짓말을 할 수 있을 만큼 뻔뻔함까지. 나는 인생의 어느 순간에도 희생자가 아니었고 가해자가 된 적도 없었다. 타자에게 또는 나 자신에게 도덕적 이중성을 해명할 필요가 있을까? 그러므로 이중인격자라는 비난을 감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를 보호하고 방어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위선적이거나 위험한 변신까지도 할 수 있다. 왜 불가능하겠는가.
하지만 그 집사 친구의 끈질긴 권유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무릎 꿇고 기도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는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그 신께 믿음으로 의지하면 신이 믿음에 응답하리라고 말했지만. 그는 가벼운 뇌졸중을 앓은 이후로는 아주 느리게 말했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보통 사람의 일상적인 삶 속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안주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게 할 것이다.
단순성. 반복. 익숙함.
그러자 나를 오랫동안 짓누르고 있던 바위덩어리 같은 무엇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날 밤에는 고향에 남아서 미역 공장을 하는 초등학교 동창생을 오랜만에 만나 통음하며 어린 시절의 그리운 추억담에 빠졌었다. 몹시 가난했던 그 시절은, 그러나 회상하면 아름답게 느껴진다. 어슴푸레한 새벽빛이 우리를 감쌌다. 우리는 지쳐서 서로 엉킨 채 잠이 들었다.
깊고 깊은 잠이었다.
그날 밤 친구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고향에는 아주 오랜만에 내려온 거지. 많이 변한 것 같으면서도 하나도 안 변했지. 바다가 어떻게 변할 수 있겠어. 너는 많이 변한 것 같지만…….”
그리고 초등학교 동창생 김병주의 소식을 들었었다.
“네가 월남 갔다 왔다는 걸…… 언젠가 누구한테서 들었던 거 같은데?”
“그랬었지. 내가 그곳에 갔다는 게…… 그렇지 뭐. 난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았었지.”
“그래? 너도 알고 있겠지?”
“누구?”
“김병주 말이야. 걔는 어렵게 3사관학교 나와서 육군 장교가 됐었거든. 마지막 끝물에 월남에 갔다가 지뢰가 터져서 양쪽 다리 모두 무릎 위쪽까지 잘라냈지. 그렇게 됐다고 그러더라고. 제대하고 고향에 돌아와서는 휠체어 타고 다녔거든. 매일 술로 지새니깐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었어. 나도 가끔 함께 술을 마셨지. 여기로 찾아왔었거든. 그는 늘 입버릇처럼 ‘사람 죽이는 일은 쉬운 게 아냐, 차라리 내가 죽는 게 낫지.’라고 말했었지. 한동안 술도 끊고 괜찮았는데…… 휠체어가 바다로 빠져 죽었어. 그게 사고인지 자살인지 알 수 없었지.”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그때 벌써 불혹지년의 나이었고 흐르는 세월이야말로 가장 좋은 정신적 치료제이어서 도저히 아물지 않을 것 같았던 그 심각한 상처는 내가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어느덧 회복되었다. 그때부터 생활은 점점 안정되었다. 나는 벌써 직업적 타성에 젖었고 일상생활도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인간의 삶을 명료하게 이해하기에는 여전히 자아형성이 되어있지 않았고 정신적으로 미성숙했다. 나의 마음 깊은 곳에는 아직 견고한 장벽이 존재했고 그것을 스스로 허물 수 없었으므로 그 곳으로는 누구도 들어올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언제쯤 성숙한 어른이 되어 진짜 철이 들 것인가. 미성숙에서 성숙으로 이행과 자아의 정체성 확립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므로 내가 그걸 희미하게나마 깨닫기 시작한 것은 인생의 단맛 쓴맛을 다 겪고 난 훨씬 후의 일이다.

나는 어느새 육십이이순六十而耳順의 나이가 되어버렸다. 이때쯤에 점차 소멸되어 가는 추억의 희미한 발자국을 반추하면서 나의 굴곡진 삶의 총체적 의미를 어느 정도 이해한다는 일이 비로소 가능한 일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성공과 좌절의 명확한 인과관계를 밝혀서 결산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존재론적으로 원인과 결과의 영역 밖에 있는 성찰 (이 얼마나 철학적이고 이해하기 어렵고 전율을 느끼게 하는 말인가)에 대한 것이리라.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솔직하게 말해야 하리라. 누굴 속일 수 있겠는가. 더욱이 자신을 더 이상 속여서는 안 될 것이다. 내가 언제 진지하게 자기 성찰을 한 일이 있었던가. 그것은 무용한 짓이 아니었던가. 그렇다. 그렇고말고. 그렇게 되었다. 나 자신을 알려고 더 이상 애쓸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내가 나로 다시 환원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나는 매일 아침 일찍 동네의 낮은 산을 오른다. 그건 산이 아니라 언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언덕 너머에 뭐가 있어서 나를 기다리는 것은 없다. 그러나 그 언덕에는 계절이 되면 아름다운 꽃들이 피고 나무에는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아나며 녹음이 우거지고 새들이 지저귀고 줄무늬다람쥐가 참나무 우듬지까지 기어오르니 온통 생명이 넘쳐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언덕에는 수많은 신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인간과 세상이 한없이 두렵게 느껴지면서 이 세상에 미만해 있는 무수히 많은 신들의 존재를 믿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야전병원의 침대에 누워 있을 때 매일 복용하는 엄청난 양의 진통제의 작용 때문인지 몽롱한 채로 마치 하얀 새털 구름 위에 떠있는 환상에 사로잡혔었다. 그리고 하얀 연기가 하늘로 올라갈 때 어떤 환영, 신의 환영을 보았던 것이다. 믿을 수 없는게 기억이긴 하지만 그렇게 기억한다. 나는 그때부터 신을 부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신의 부정을 부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신의 존재를 확신한 것은, 오랜 시간이 흘러간 뒤였다.
내가 인간이 얼마나 하찮고 왜소하다는 사실을, 이 세상에는 인간 이외에 타자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신을 몰아내고 신이 사라진 언덕에 인간이 대신 올라설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그래서 신의 존재를 믿기까지는 가혹하고도 평생에 걸친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에필로그
적자생존의 법칙이 적용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식을 키우며 먹고 살려고 분투하는 사이 세월은 미처 깨달을 새도 없이 빨리 지나가 버렸다. 아버지의 처지가 바로 그런 것이다. 처자식이 딸리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치사한 것도, 부당한 것도 꾹 참아야 한다. (우리의 삶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자신의 신념을 고수할 때와 굽히거나 버릴 때를 아는 것인데) 필요하다면 이념도 신념도 헌신짝처럼 버려 버리거나 재빨리 바꿔야 한다.
그러나 시간이란 참으로 좋은 약이다.
나는 2000년대를 기준으로 한다면 구닥다리 구시대의 인물도 아니고 그렇다고 촐랑거리는 신시대 인간도 아니다. 완전히 구세대에 속하기에는 너무 늦게 태어난 것이고, 신세대에 속하기에는 너무 일찍 태어난 것이다. 나는 원래 진보적 낙관론자였으나 당연히 오랫동안 흔들렸다. 그래서 한때는 더할 나위 없이 철저한 비관론자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민주 투사도, 좌파도, 운동권도, 이데올로그도 아니었다. 1970년대나 1980년대를 지나오면서 그 엄혹한 권위주의 체제에 대해 아무런 반감도 저항도 없이 순응했으니 시대의 흐름이나 상황은 나와는 무관했다. 그랬으니 형무소나 심지어 경찰서 보호실에도 가본 적이 없다. 나의 오직 관심사는 내 개인사에 관한 것이었다.)
지금은 퇴행성 관절염이 조만간 생길 가능성이 있는 나이 탓에, 이마에는 자잘한 주름들이, 양쪽 볼에는 쭈글쭈글하다 못해 깊은 골이 패이고, 올챙이배처럼 배가 튀어나오고, 온몸은 군데군데 점점 커져가는 검버섯이 독버섯처럼 나있고, 다리와 팔은 점점 가늘어져 가고, 머리가죽에 들러붙은 머리털이 온통 하얘진 탓에 보수적 낙관론자가 되었다. 나이란 그런 것이다.
그 전쟁이 끝난 지가 언제인데. 나는 진즉 그 옛날 그 시절의 나와는 연결 고리가 끊어져있었다. 기억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한꺼번에 남김없이 잊히는 건 아니지만, 벌써부터 기억에 크고 작은 구멍이 뚫리면서 그저 조금씩, 하나씩 부스러져서 사라진 것이다.
우리는 잊는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은 잊게 된다. 절대 잊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들도 너무 빨리 잊는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언제 죽음을 갈망했던가. 중요한 건 인생이다. 아! 아름다운 인생이여. 삶에의 의지. 그러니 이제는 그 과거의 일들을 대수롭지 않게 까발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지금 물질적으로 풍족하고 가정생활은 원만하여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으니 매일 명랑하고 유쾌하다. 내 인생의 과정은 행복과 불행이 뒤섞이면서 어느 정도 균형을 잡은 것이다. 내가 무엇 때문에 수도승처럼 살 일이 있는가. 행복이란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시쳇말로 하는 그런 행복이라면 정말 행복하다고 할 수 있다. 그건 구제불능의 행복이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무장해제된 것처럼 정신적 고뇌는 나날이 희미해지고 지워지기 시작했다. 내 삶이 육상선수처럼 빨리 달려가고, 먹이를 낚아채려고 빠르게 내려오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는데, 지금 가혹한 시험을 하여 자신을 괴롭힐 하등의 이유가 없다.
단테는 나이 35세쯤에 ‘우리 삶의 노정 중간’에 이르렀다고 했는데 나는 지금 산술적으로나 정신적 육체적으로 삶의 노정에서 중간보다 훨씬 멀리 와 있다.
(그런데 나이 든 사람은 지혜가 있거나 총명한 것이 아니라 단지 노회하고 능구렁이가 다 되었을 뿐이므로) 나는 요즈음 필요할 경우 다소간 권모술수와 감언이설을 사용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도 없고, 오히려 부동산 투기와 주식투자를 해서 재산을 많이 모으는데 관심이 많다. 돈이란 이 정도면 충분하지, 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고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래 살기 위해서 건강식과 값비싼 보약을 열심히 먹고 있다. 그렇지, 오래, 오래 살아야만 한다. 그래야만 손자들이 크는 모습을 지켜보고 그들의 결혼식에도 참석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그러나 내 삶과 인생이 점차 해지고 스러져가고 있으니. 나는 지금 소멸의 과정 중에 있다. 하지만 나를 점점 잃어간다고 해도 여전히 나 자신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2016-05-26 11:08:58
121.xxx.xxx.160


닉네임 :  비밀번호 :  자동등록방지 :    


번호
제 목
작성자
첨부
날짜
조회
117
  <유중원 대표 단편선> 자백   유중원 변호사   -   2017-05-09   49
116
  <유중원 대표 에세이> 표절(剽竊)에 대한 단상 (혹은 ‘난 한물 간 가수’)   유중원 변호사   -   2017-01-17   172
115
  <유중원 대표 단편선> 마지막 점프   유중원 변호사   -   2017-01-06   191
114
  <유중원 대표 에세이> 퀴어 연가   유중원 변호사   -   2016-10-18   282
113
  <유중원 대표 단편선> 말! 말! 말! 말!!! 말!!!   유중원 변호사   -   2016-10-11   337
112
  <유중원 대표 에세이> 애니멀 킹과 호모 사피엔스   유중원 변호사   -   2016-08-30   344
111
  <유중원 대표 단편선> 라이언 킹 lion king   유중원 변호사   -   2016-08-30   322
110
  <유중원 대표 단편선>재판? 아니면?   유중원 변호사   -   2016-08-05   362
109
  <유중원 대표 단편선> 김명성 의원   유중원 변호사   -   2016-06-21   423
108
  작가의 말 [4]   유중원 변호사   -   2016-05-26   409
107
  작가의 말 [3]   유중원 변호사   -   2016-05-26   441
106
  작가란 무엇인가   유중원 변호사   -   2016-05-26   502
105
  <유중원 대표 중편선> 인간의 초상 (上)   유중원 변호사   -   2016-05-26   471
104
  <유중원 대표 중편선> 인간의 초상 (下)   유중원 변호사   -   2016-05-26   459
103
  <유중원 대표 중편선> 시인의 죽음 (上)   유중원 변호사   -   2016-05-26   491
102
  <유중원 대표 중편선> 시인의 죽음 (下)   유중원 변호사   -   2016-05-26   532
101
  <유중원 대표 중편선> 달빛 죽이기 (上)   유중원 변호사   -   2016-05-26   502
100
  <유중원 대표 중편선> 달빛 죽이기 (下)   유중원 변호사   -   2016-05-26   532
99
  <유중원 대표 중편선> 결별의 기억 (上)   유중원 변호사   -   2016-05-26   475
98
  <유중원 대표 중편선> 결별의 기억 (下)   유중원 변호사   -   2016-05-26   436
제목 내용 제목+내용 이름
 1 | 2 | 3 | 4 | 5 | 6 
Copyright © 2017 대한변협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news.koreanbar.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