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유중원 대표 중편선> 달빛 죽이기 (上)
 닉네임 : 유중원 변호사  2016-05-26 11:00:09   조회: 597   
달빛 죽이기


아름다운 태양이여 떠올라라, 그리하여 질투하는 달을 살해하거라.
그 달은 벌써 슬픔으로 병들어 창백하여라.
- 셰익스피어


김규현은 공대 건축과를 1980년에 졸업했다. 그 해 봄에 (주)공간(우리가 듣기로는 회사의 창업자는 공간이라는 두 글자가 최초로 등장하는 ‘興廢論人果屬天 空間變滅幾雲煙―흥하고 망하고를 인간으로서 논하건대 과연 그것은 하늘에 달린 일이고, 빈터는 사라져서 마침내 연기가 되었네.’에서 힌트를 얻어 회사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에 입사하여 주로 건축설계 업무를 담당했다.
그동안 회사의 배려로 3년여 동안 프랑스에 유학을 다녀온 것 외에 오직 건축설계에만 매달렸으니, 그가 독자적으로 또는 책임 설계자로 참여한 설계는 300여 건이 넘었다. 그 중에는 어느 지방 도시의 예술의 전당, 대사관 건물, 유명 재벌 그룹의 본사 사옥, 교회와 천주교 성당, 컨트리클럽, 법원 청사, 시청, 대학 본부 건물과 도서관, 영빈관, 개인 저택, 미술관 등 상용 문화 종교 교육 시설 등 종류를 불문하였으며 그가 설계한 유명 건물의 목록은 일일이 헤아릴 수조차 없다.
특히 그가 설계하고 감리까지 한 한남동에 있는 그 유명한 ○○미술관 건물은 그를 일약 최고의 건축가로 유명세를 떨치게 하였다. 그 건물은 우리나라 건축 사상 최고의 경이로운 건축물로 두고두고 회자되었고 대한민국 또는 서울특별시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건물이 되었다.
사람들은 전시된 유명한 미술품보다도 그 건물 자체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 건물은 독특한 분위기, 단순성, 아름다운 형태, 투명성, 미묘한 윤곽선, 색채, 빛 (끊임없이 동요하는 빛이 마치 건물이 살아 숨을 쉬는 듯한 인상을 준다.), 건물 내부의 동선 때문에 유명하였다. 세심하게 설계된 곡선들, 천장의 무게를 지탱하면서도 생동감을 주는 약간 뒤틀린 크고 작은 기둥들이 각양각색의 조합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질서정연하면서도 무질서한 외관은 모든 사람들의 경탄과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그 건물은 한남동의 경사진 언덕과는 조화를 이루고 있다. 미술관 건너편으로 한강이 흐르고 있고 창문을 통해 그 도도한 강물이 흐르는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
비평가들이건 일반인이건 이구동성으로 경이롭다, 색다르다, 충격적이다, 대담하다, 독특하다, 매력적이다, 유일무이하다, 탁월한 독창성이 돋보인다, 그리고 매우 아름답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랬으니 무수한 카메라의 세례를 받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건축계의 족보에 의하면 지금은 고인이 된 김수근과 김중업을 잇고, 같은 세대에는 그의 유명세와 지명도, 업적에 있어서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할 건축가는 없다. 그만큼 그는 탁월한 건축가로 인정을 받은 것이다.

주식회사 공간은 건축설계, 건설사업 관리(CM), 건설 감리(CS)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종합 건축사 사무소이다. 그는 회사 내에서 토목공사와 건물의 설계와 공사 감리를 담당했다. 그러므로, 조금 과장한다면, 어떤 종류의 건설공사이건 설계와 공정 관리에 관한 한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의 머리는 컴퓨터처럼 정밀하여, 복잡하기 짝이 없는 대형 공사의 모든 설계와 공정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그리고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번쩍이는 천재적인 영감이란!
그러나 그는 항상 과묵하였고, 겸손하였으며, 아무런 가면도 쓰지 않았고, 고단한 인간의 삶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처세술 따위도 잘 알지 못하였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투덜거리지 않았다. 그러나 약간은 고집스러웠다. 그러한 성격적 특성들은 그라는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회사의 업무처리는 빈틈없이 신속하게 처리하면서도, 전혀 티를 내지 않고 조용히 처리하였다. 그래서 상하 모두 그를 신뢰하고, 좋아하였다. 회사에서는 그가 곧 전무로 승진할 것이라는 확실한 소문이 돌았다. 그렇다고, 그가 별다른 결점이 없는 그런 유형의 인간은 결코 아니었다. 거의 병적인 결벽증을 갖고 있었다. 그는 업무 처리에서 완벽주의를 추구하여 맡은 업무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집착하는 성향을 보였다. 때로는 업무가 예정대로 진행되지 않을 경우 위아래 구분할 것 없이 마구 화를 내고, 심하게 까탈을 부리기도 하였다. 그럴 때는 혼자 마구 중얼거렸다. 그건 그의 오래된, 어쩔 수 없는 버릇이었다.
그는 미적거리면서 건축 설계에 있어서 핵심적 사항에 대해 공식적인 결정을 마지막 순간까지 늦추려고 안간힘을 다하였다. 지금 그 방식 이외에 다른 방식이 있는 건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그 방식이 타당한 모든 이유를 캐내려고 고심하고 또 고심하였다. 그는 건축 설계에서 결코 만족할 줄 모른다. 땅을 깡그리 뒤집어엎고는 다시 돌아와서 그 땅을 다시 파는 식인 것이다. 그는 일하는 과정 그 자체에 너무 집착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만든 설계도가 흡족할 만큼 마음에 든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제도판이 놓여있는 탁자 밑에는 그리다 말고 버린 파지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그 완성된 물건에는 자기 충족적인 마술의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언제나 좀 더 시간이 지나가면 그보다 나은 작품이 나올 것이라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다. 그는 건축물의 질서와 본질, 절제와 단순성, 완성도 같은 것에 대해 최고 수준의 기준을 세워놓고 그 기준을 충족키 위해서 주의를 기울이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때로는 너무 높고 비현실적인 기준을 스스로 설정해서 자신에게 채찍질하고 스스로 자아비판을 하며 자신의 실수, 결점, 상상력 부족, 참신한 독창성의 결여, 예술적 감각의 부족을 결코 용납하지 못했다.
그의 예리한 시선은 아주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완벽에 대한 갈망 때문인지 설계도에 광적으로 집착했다. 너무 집착하다보면 판단력이 흐려지는 일은 없을 것인가? 그와 함께 일하는 사람은 모두 녹초가 되어 지쳐버렸다. 그는 사람들을 혹사 시켰다. 그러나 자신을 더욱 혹사했다.
그리고 끊임없이 외쳤다. ‘과도한 장식은 죄악이야! 생략, 생략이 필요하지!’
그는 항상 마감 시간에 쫓겼다. 그럴 때마다 “여전히 무언가 빠져있어! 참신한 독창성이 부족하단 말이야!”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외쳤다.
그때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독한 술을 한 잔씩 걸쳤다. 그의 변명인즉 더 이상 미치지 않으려면 술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암페타민을 복용해 가면서 며칠씩 밤을 새워 작업에 몰두하였고, 때로는 그와 반대로 불면증 때문에 시달리며 불안감과 강박관념을 억누르기 위해서 억지로 잠을 자야했으므로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하기도 하였다.
그는 어떤 프로젝트를 맡아서 처음 시작할 때는 먼저 현장 답사를 하였다. 그때 그는 무작정 부지 주위를 몇 번이고 걸어서 맴돌았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걸었다. 그리고 공간 스케치를 하였다. 그는 스케치 없이는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었다 (그는 부지 주위의 자연과 지형, 태양, 바람, 나무에 그렇게 집착하였다.). 그런 다음 건축주의 까다로운 주문 사항을, 그 건물과 그걸 사용할 사람들과의 긴밀한 관계를 심사숙고하였다. 그리고 그는 작곡가가 그의 오페라를 머릿속에 그리듯이 건축물을, 그것이 수용해야 하는 형태, 공간과 벽, 빛과 그림자, 기술적 사항들을 완벽하게 머릿속에 그려 넣었다. 그러고 나서 팀원들과 회의, 토론, 분석을 한 후 드로잉을 하고 모형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모든 선이 또렷하게 드러나는 흑백 드로잉을 좋아했다. 그것은 상상 속의 물체에 더욱 구체적인 물질적 형태를 부여하였다. 이제 꿈이 현실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작업의 마지막 단계인, 그 설계의 종점이라고 할 수 있는 종합 단계에서 그는 마지막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그때 한눈으로 전체를 훑어보면서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점검하였다.
그리고, 그 후에는 공사 현장이라는 현실 세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설계도면은 공정 과정 속에서 숙성하고 계속 발전하기 때문에 건축가가 건축의 전 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그곳에는 모순과 갈등, 역동성과 변화가 넘쳐났다. 건설회사와 건축 기술자, 건축주와의 갈등을 피할 수 없었다. 그들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그의 꿈은 엉망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완벽하고 열정적인 모습을 보이다가도 어떤 결정적인 순간에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갑자기 안절부절못하거나 불안하게 흔들리기도 하였다. 어느 날 갑자기 심한 무기력증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주로 동료들이나 부하 직원들에게 불필요한 위험부담을 떠넘기기 싫어하여 자신이 모든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는 심리적 중압감 때문일 수도 있고, 그에게 평생 동안 붙어 다니면서 어느덧 그의 잠재의식 속에 각인되어버린 어린 시절의 불행한 경험에서 비롯된 증상 때문일 수도 있었다.

그는 그즈음 자신에게 진지하게 질문하였다. “그런데, 나에게도 평생의 꿈, 희망 같은 것이 있긴 있었나. 진짜, 실현 가능한 꿈 말이야. 경이로운 건축물. 순수한 창작물. 건축가 생애에서 마지막 건축물. 공중정원.”
그는 언젠가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건축설계 사무소를 갖는다는 막연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 사무소에서 경이로운 건축물을 설계하고 공사 시공을 감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외적인 영업에는 전혀 자신이 서지 않았다. 여의치 않으면 대학 동창이 운영하는 국내에서는 꽤 이름 있는 건축사무소로 옮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건축사무소는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고 재정 상태도 건전하였다. 끊임없이 해외 진출을 모색 중에 있었다.
그 친구가 말했다.
“우리 쪽에서 함께 일하게 되면 말이지, 네가 가고 싶은 곳은 언제든지 마음대로 가도 좋아. 떠나고 싶어서 온몸이 근질근질 할 테니까, 그걸 어떻게 말려, 상관하지 않을 거야. 모든 경비를 부담해 줄 수도 있어. 하지만 혼신을 다한 건축 작품 몇 개쯤은 남겨야 할 거야. 그걸 설계하는 데는 네가 꼭 필요하지. 모든 여건은 원하는 대로 해줄 수 있어.
우리나라에선 아직도 건축 설계가 예술보다도 산업으로 인식되고 있어서 문제야. 건축은 문화인데 말이지. 네가 그런 인식을 깨는 데 한몫을 해야 될 거야. 그래서, 넌 건축 부문에서 미국의 IDEA 같은 세계적인 디자인상 또는 건축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 상을 받아야만 되지. 일본 건축계에서는 벌써 여러 사람이 이 상을 받았지. 너는 끊임없이 연구하고, 완벽하게 준비하는 스타일이니까. 무엇보다도 건축 철학이 정립되어 있고, 위대한 건축물에 대한 사명감도 가지고 있지.
그러면, 마케팅 측면에서 너의 이름을 활용하여 회사가 해외로 진출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겠지. 그것만이 아니야. 우리 회사가 국제적인 건축설계 업체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외국 회사와의 합작 또는 중요 설계 공모전에서 컨소시엄 구성이 필수적인데, 너의 국제적인 감각과 탁월한 외국어 능력이 필요하지.
지금 너는 그 회사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돼. 그 회사는 한때는 정상이었지만 지금은 정체되어 있지. 가까운 시일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찌 알겠어. 이 바닥이 워낙 경쟁이 심해서 말이야. 그리고…… 그런데 말이야…… 우리 대학 선배 말인데 네가 어떻게 그런 사이코와 같은 회사에서 함께 근무할 수 있겠어? 네 인내심을 칭찬해야만 할까? 시간을 너무 낭비하고 있어. 더 늦으면 안 될 거야. 위대한 승리자가 될 기회를 놓치면 안 되겠지. 그걸 빨리 약속하란 말이야.”
그는 그 즈음 자신의 삶에서 중대한 변화의 시기가 도래하고 있음을 감지하고 있었다. 적당한 시기에 회사를 떠나야 할 것이다. 그는 타성에 젖어서 자신의 꿈을 잊어버린 채로 안정된 생활과 그것이 주는 안락함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는 결단을 내리지 못한 채 우물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그에게 육체적이건, 정신적이건 평화를 안겨주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실체도 없는 안정된 미래라는 것이 그의 영혼을 심각하게 좀먹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평생 동안 무슨 야심 때문에 또는 성공하기 위해서 싸우지는 않았다. 다만 정들었던 회사와 회사 사람들과 헤어지는 일은 감당하기 힘든 일로 느껴졌다. 그 회사는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모든 열정을 쏟았던, 그의 삶이 살아 숨 쉬고 펼쳐졌던 터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자신의 삶에 대해 아무런 불만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는 그가 꿈꾸던 경이로운 건축물을 사막의 오아시스, 선과 악을 초월하고, 아름다움과 추함의 구별이 없으며, 희생의 제물이 되는 자와 가해자가 없는 무구한 세계, 법과 분쟁, 재판도, 중상모략도 없고 자연과 함께,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삶만이 존재하는 세계, 아늑한 평화만이 존재하는 세계, 과거 황금시대에 우리가 그렇게 살았고 또다시 그렇게 살아야할 세계인 에덴동산에 세우기로 작정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황무지 속에 숨어있으리라. 그 척박한 황토 빛 대지에 기적처럼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바람에 서걱대는 대추야자나무와 무화과나무가 작은 숲을 이루고, 흙벽돌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염소 떼를 몰고 목초지로 가는 아이들과 나귀에 짐을 싣고 가는 노인들이 보이리라. 꿈에서 태어나고 꿈에서 보았던 곳이리라.
건설하는 데만 100년 이상이 걸린 시리아 팔미라의 바알 신전이나, 고대 아랍 민족이었던 나바테안이 와디 무사 계곡에 건설하였던 요르단의 시간의 반만큼 오래된 장밋빛 빨간 도시인 페트라의 폐허는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물이 풍부한 오아시스에 건설된 것들이다. 척박한 사막의 중심부에 존재하면서도 신선한 물이 콸콸 흐르고, 토양이 비옥하여 꽃과 나무, 과일과 야채가 풍성한 오아시스는 사람과 짐승, 새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순결한 휴식 공간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사막에 있는 꿈의 왕국이었다. 그는 인생이라는 광활한 사막에서 이 한 줄기 오아시스를 찾아 평생을 헤맨 것이다. 그 오아시스는 인간이 수천 년 동안 찾아내려고 발버둥 쳤던 아틀란티스, 담카르, 샹그릴라, 툴레, 유토피아, 북극 거인들의 땅처럼 비밀의 장소이면서 전설적인 땅이었다.
하지만 인간들은 사바나에서 어린 가젤이 치타에게 쫓기듯이, 지금 시간이라는 괴물에게 치명적으로 쫓기고 있어. 그것은 볼 수도, 들을 수도, 만질 수도 없는데 말이야. 시간은 순간일 뿐인데, 언제나 시간에 쫓기며, 시간을 의식하고 살고 있지. 하긴 시간이 소리로 변하긴 하지, 벽시계가 재깍재깍 소리를 낼 때는 말이지. 그런데 그 소리는 말이지, 단순히 시간의 흐름을 알리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중요한 무엇인가를 사람들에게 진지하게 말하고 싶어 하지. 그래서 귀에 거슬리는 거야. 그래, 인간은 평생을 그 시간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어. 시간은 잡을 수가 없는 존재이지. 또 묶어놓을 수도 없고. 살다보면, 그것은 허무일 뿐이고, 어리석음에 불과한데도 말이지. 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의 시간을 갖게 되는데 말이지. 그 시간이 진정으로 자신의 시간인 한에서 그 시간은 생명을 갖게 되는데 말이지……. 그런데, 일부 오만한 인간들은 시간마저도 다른 모든 것처럼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지.
그것뿐만이 아니야, 공간도 문제가 있긴 마찬가지야. 세상은 너무 복잡하여 온통 감옥이야. 단 사막만은 빼 놓고서 말이야. 인간들은 수평선, 지평선도 없는, 질식할 듯한 폐쇄된 공간에 갇혀서 서로 부대끼면서 아등바등 살고 있어. 시간과 공간이라는 인간의 숙명을 초월할 필요가 있어. 그런 거야. 인간은 무한한 시간과 공간의 한 조각 미물에 불과하거늘, 그걸 깨달을 필요가 있는 거야.
그러려면, 영혼의 삶을 살아야 하는 거야. 사막만이 그 모든 것을 허용하고 있어. 사막은 그 무한한 공간과 여백이 본질을 이루고 있으니까. 사막에서 황금 같은 것이 무궁무진한들 무슨 소용인가. 문명시대가 도래하기 이전의, 인류 초기의 황금시대처럼 소유가 필요 없으니 갈등과 대립, 질투 같은 것도 없을 수밖에 ……. 그렇다면 사막은 권력과 법률이 필요 없는 인류 최후의 보루가 될 수도 있을 거야.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진정한 자유가 존재하는 환상적인 공간이 되는 것이지. 바로 그거야, 20세기 바빌론의 공중정원을 사막에 건설하는 거야. 옛날 옛적에 신바빌론 왕국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처럼 말이지. 그러나 건물의 쓰임새는 그때와는 달라야겠지. 그러니까 ‘벅시 시걸’처럼 황량한 모하비 사막 한 가운데서 술과 도박, 질펀한 오락, 여자를 결합한 사막의 오아시스, 즉 라스베이거스를 만들려고 해서는 안 되겠지.
그렇다고, 내가, 현실주의자이고 실용주의자인 내가 소위 실험적 건축가들처럼 오직 건축에 대한 집착과 열정 때문에 아무런 제약이 없는 상상력만으로 애시당초부터 지어질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물을 꿈꾸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지평선에 병적으로 집착해서 길을 걷다가 지치고 발이 부르튼 사람이면, 상처 받은 사람이면 누구든지 편히 쉬어갈 수 있는 안식처를 마련하고 싶은 것이다. 오디세우스처럼 향수병에 걸린 지친 여행자들이 자기 집에 온 것처럼 편히 쉬어갈 수 있는 쉼터를 짓는 거였다. 그곳에서는 향수병을 조금은 치료해줄 것이다. 그래서 그 건물의 입구에는 위대한 모험가이고 심각한 향수병자이고 여행의 신이라고 할 수 있는 오디세우스의 청동 신상을 세워놓아야 한다. 그것은 어떤 상징물이 될 것이다.

아랍의 왕자님이 필요해. 건축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돈 많은 아랍의 왕자님을 만나야 될 거야. 그 돈 많은 남자는 아주 거만하게 말하겠지.
“고대 로마 건축물 같은 거를 만들려고? 그러니까 비슷하거나 비슷한 느낌이라도 들게 말이지.”
“쓸데없는 장식은 죄악인 거지요. 누군가, 적을수록 더 많다고 했습니다.”
“그렇지, 맞는 말이군. 생략이 필요한 거야. 그래야만 단순하고 조용하니까. 하지만 단순한 것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을 순 없겠지. 사물의 본질에 접근하면 할수록 단순성에 도달하는 거지.”
“그렇다고 직선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무엇 때문에 거액의 돈을 투자해야 하는지 설명해 보시지, 그대는 그곳이 유토피아인지, 에덴동산인지 증거를 보여줄 수 있어. 그러니까, 그 건물이 정말 역사적인, 세계적인 명물이 될 수 있는 거야? 그래서, 사람들이 건축주인 내 이름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겠느냐 말이야? 그대는 니므롯처럼 바벨탑을 건설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건 엉뚱하고 바보스러운 일이고 불경한 짓이었지. 하찮은 인간이 무례한 호기심 때문에 신의 권위에 감히 도전하는 일이었으니까. 그러니 관대한 신께서도 불같이 화를 낼 수밖에 없었겠지. 그리고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부부인 아크나톤과 네페르티티가 깨끗하고 순수한 사막에 세운 아케타텐의 몰락한 운명도 기억해야 할 거야.”
그는 다시 말하겠지.
“사막에다 요즘 유행하는 고층 빌딩을 지을 생각인가? 당신은 건축주의 이야기는 무시하고 자신만의 생각을 표현하려고 고집하는 고집불통 건축가이겠지? 그런데 말이지, 그대의 말을 들어 보니까 건물을 위한 건물, 말하자면 예술을 위한 예술을 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예술 작품은 존재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거지? 그러나 건축물은 그림과는 다른 거야.”
그러면 나는 단호히 고개를 흔들어야 하겠지.
“그렇지 않습니다. 건물에는 반드시 용도가 있는 것이지요. 그냥 존재하기 위해 짓는 건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 아무데도 쓸모없는 것을 지을 수 있겠습니까. 그건 낭비에 불과한 것이지요. 그러나 고층 건물은 아닙니다. 사막에서는 절대로 아닙니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입니다. 고층 건물은 나무젓가락처럼 생겨가지고 수직이고 막다른 골목입니다. 들어왔던 문 이외에는 다른 출구가 없지요. 그래서는 안 되지요. 그 복합 건물은 옆으로 눕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채움과 비움이 적절한 비례를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또 건축 재료의 경우, 전 유리와 철을 안 쓸 생각입니다. 지나치게 현대적이니까요. 돌과 벽돌을…….
그리고 가급적 화려한 디자인을 무시해야 할 것입니다. 최소한 만. 현대에 와서 모두들 디자인, 디자인 하지요. 그러나 그것은 허식에 불과한 것이고 본질이 아닙니다. 그건 장식적 아름다움인 것이지요. 그런데 장식적 아름다움이 건축의 가치나 목적이 될 수는 없겠지요. 요즘 너무 경박스럽습니다. 얄팍하지요.”
그가 또다시 묻겠지.
“그대에게 어려운 질문을 해야겠군. 그대는 왜 경이로운 건축물에 집착하는 거지? 왜? 평생을 먹고 살 돈을 벌고 싶은 거야? 아니면 건축가로서 이름을 남기고 싶은 거야?”
“전,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그저 건축물을 그 자리에 세우고 싶을 뿐입니다. 그 어느 것도 모방하지 않은 순수한 창작물인 건축물을 짓고 싶을 뿐입니다. 건축물은 말보다 오래 남지요. 역사는 건축물로 기억됩니다. 그러니 건축물보다 더 중요한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건축 양식을 포함한 조형예술은 한 시대의 특징을 고스란히 나타내준다고 할 수 있겠지. 그 시대의 모든 삶의 형태가 양식을 통해 그대로 표출되는 것이거든. 그대는 인도의 타지마할을 당연히 알고 있겠지. 인도 사람들은 인간을 두 부류로 분류하는데 타지마할을 본 사람과 보지 않은 사람으로 말이야. 그런데 무굴 왕조의 5대 황제였던 샤 자한, 그게 ‘세상의 왕’이라는 의미라고 하는데, 그는 건축은 가장 고귀하고 유용한 예술임을 인정했지. 그리고 기념비적 건축물은 많은 국민들에게 왕과 국가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의 명성에 대한 불멸의 기억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여겼지. 그래서 왕은 태양처럼 형형한 마음으로 ‘진정으로 우리의 기념물이 우리에게 말하노니’라고 생각하고, 영원한 명성을 누릴 우주적 건축물인 타지마할을 건설하였던 거야. 그 건물은 신의 오묘한 법칙인 기하학적 대칭성을 극명하게 구현하였지. 극히 작은 세부 장식에 이르기까지 소재와 형식은 물론이고, 또한 하얀 대리석과 붉은 사암이라는 색채의 구성 역시 동서고금을 통틀어 가장 탁월했던 거야. 지금까지 이 세상에 태어난 건물 중에서 단연 최고 압권이지.”
“하지만 그 타지마할 역시 중앙아시아와 인도, 페르시아, 유럽의 성당이나 궁전의 전통을 모방해서 혼합한 것에 불과하지요. 그 역시 모사품인 것이지요. 분명히 모사품. 물론 위작이라고 까지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위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압도적이지요. 그러니까 말입니다, 르네상스 이후 지금까지 이름을 날린 수많은 예술가들, 예컨대 미술가, 조각가, 건축가 모두 모사품만 만들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쟁이에 불과하였지요. 다시 말씀드리면, 환쟁이, 조각쟁이, 건축쟁이에 불과했지요.
그런데도 왕은 다시는 그와 같은 건물을 지을 수 없도록 건축설계사와 기술자, 인부들 수천 명을 땅속에 파묻어 버렸지요. 우아르자자테 유적의 왕처럼 말입니다. 저는 왕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왕이니까요. 그리고 그들도 행복하게 죽었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렇지요. 그 건축물이 완성되고 나면 절 잔인하게 죽여도 좋습니다. 차라리 제가 스스로 먼저 죽겠습니다. 꿈을 이루었기 때문이지요. 무얼 더 바랄 수 있겠습니까.
지금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왕에 죽음의 이야기가 나오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삶도 죽음도 환영에 불과한 것이지요. 생은 다만 그림자, 실낱같은 겨울 태양 아래 어른거리는 하나의 환영이고, 그리고 얼마만큼의 광기이고, 그것이 전부이지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요. 전 언제든지 죽기를 바라고 있지요. 내가 전부 죽어야만…… 그때서야 비로소 진리의 빛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대는 죽을 수 있는 자, 자유롭게 산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게야……. 그건 그렇고, 그대는 참으로 한심한 건축가이다. 허영심이 많은 사람이겠지. 아니면 도저히 치료가 불가능한 중증의 과대망상 환자이거나…….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 지금까지 나온 서양 철학은 그의 이론에 대한 한낱 주석에 불과하다고 하지 않더냐, 플라톤은 그림이나 조각, 건축은 모방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주 일찍부터 설파하였다. 그리고 천재 예술가인 레오나르도는 그림은 시보다 위대한데 그 이유인즉 그림은 자연을 표현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위대한 조각가인 미켈란젤로는 한 술 더 떠서 그림보다는 조각이 더 위대한데 그것은 조각이 그림보다 자연과 더 밀접하다는 점 때문이라고 하였다. 어디 그 뿐인가. 프랑스에서 백과전서를 만들었던 사람들은 예술을 체계적으로 정의하였는데 그 기준이 바로 자연의 모방이었다.
물론 덜떨어진 일부 작자들, 그러니까 자칭 모더니스트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그렇지, 그래, 자연은 불쾌한 거야. 도저히 참아줄 수가 없어.’라고 말하기는 했었지.
그러니까, 예술가는 오직 모방을 할 뿐인 거다. 모방하고, 모방하고. 그대 역시 모방을 하라. 모방의 모방을. 오직 창조적 모방을, 아름다운 모방을 말이다.”
그렇지만, 끝까지 상세한 지도, 설계도와 청사진을 보여주고 그를 잘 설득하는 거야. 진실을 보여주는 거지. 진실이 중요해. 과연, 진실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의문이긴 하지만. 그렇게 해서 투자를 이끌어 내는 것이지.
그에게 알려줄 게 있지, 이 건축물은 너무 단단해서 지진에도 쓰러지지 않고, 대화재에도 끄떡없을 거라구. 그래서,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그것의 이름과 함께 영원히 살아남을 거라구. 불멸의 존재로 남을 거라구. 건축가도, 건축주도 그 이름은 금방 사라져버리겠지만, 완성된 순수 창작물은 그 자체의 생명력을 가지고 영원히 존속한다는 것을……. 우아르자자테의 폐허처럼 아름다운 유적으로 남을 거라는 것을.
아니면, 천 년이 지나 폐허가 되더라도 그 건물은 여전히 아름답게 보일 거라고, 사람들은 사람이 살지 않는 폐허의 문을 두드리면서 감동을 느낄 거라구, 그에게 한참 동안 설명해야 할 거야. 세상의 것들은 그 무엇도 오래가기가 힘들다고, 그러므로 천 년을 견딘다면 그건 대단한 일이 될 거라고 말이지.
그런데 말이지, 모든 위대한 것, 아름다운 것, 과거의 화려한 영광은 결국 모두 무덤 속으로 사라지지. 시간의 무자비한 유린 때문에…… 파괴된 채로 흙더미 속에 묻혀있는 몇 조각의 파편과 폐허만 남는 거지. 그게 그것들의 정해진 운명인 거지. 그 뒤에는 바빌론의 공중정원처럼 그 순수한 이름, 위대한 이름, 적어도 이름만은 후세에 남긴다는 것을 그가 이해해야 할 거야.

그는 대형 프로젝트의 설계를 맡아 오랜 기간에 걸친 고된 작업이 끝나면 모든 걸 훌훌 털어버리기 위하여, 설계도를 마지막 완성하는 과정에서 한껏 고양된 자기감정에 몰입하였다가 그로부터 벗어나 현실로 복귀하면서 느끼는 허탈감을 극복하기 위하여, 그동안 자제하였던 술을 며칠간 폭음하고 나서, 몇 달이건 장기휴가를 얻어 여행을 떠나곤 하였다. 그는 장기여행을 떠나기 위하여 늘 회사의 인사부 직원들과는 휴가기간을 둘러싸고 어려운 협상을 하여야 하였다. 그는 1년 중 9개월은 설계 작업에 몰두하고, 나머지 3개월은 사막과 밀림 속으로 오지 여행을 떠났다. 또는 1년간은 죽도록 작업을 하고, 다음 해 반년간은 여행을 하였다. (그러나 굳이 분류하자면 그는 분명히 관광객tourist 스타일은 아니고 인류학자처럼 오염되지 않은 사막과 밀림 속으로 들어가는 탐험가 혹은 방랑자, 고행자 유형의 여행자traveler라고 할 수 있다. 여행travel이란 단어는 오랜 기간 하는 심한 육체적 노동 또는 극심한 고통, 뜻밖의 위험을 의미하지 않는가.)
그는 떠나기 위하여 태어난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어느 날 일어서서 떠나야 했다. 쏟아지는 긴장 때문에 당겨진 활시위처럼 팽팽한 신경 줄을 잠시 풀어놓아야만 했다. 단지 낯선 곳으로 떠나는 것만이 의미가 있었다. 떠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연락할 수 없는 머나만 곳으로 가야만 했다. 핸드폰도 통하지 않고, 팩시밀리도 없으며, 이메일도 배달되지 않는 그곳으로. 잠적 혹은 실종.

김규현은 건축가이다. 그의 건축 미학은 무엇인가. 건축은 예술인가, 아니면 인간이 그 속에서 살아가는 단순한 생활공간에 불과한 것인가. 건축과 그 토대가 되는 대지 또는 자연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다시 말하면, 건축은 자연에 대항하는 개념인가, 그래서 자연은 정복과 극복의 대상인가. 아니면 인간이 자연의 일부인 것처럼 건축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자연에 순응하여만 하는가. 그리고 건축물은 기능적인 목적, 즉 실용성utilitas과 힘firmitas이 중요한 것인가, 아니면 우아하고 명쾌한 아름다움venustas이 더 우선인가. 둘 다인가. 필립 존슨은 ‘건축은 예술이다.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는데 건축과 예술의 접점이 있을까.
그는 무얼 짓고자 했던 것인가. 그게 그의 평생에 걸친 원대한 꿈이었을까.
건물이 지나치게 웅장해서는 안 될 것이다. 쓸데없이 위압감만 주기 때문이다. 알맞은, 적절한, 평범한 건물 규모와 사막의 모래 결을 연상시키는 물결치는 듯한 외관, 질리지 않고 한층 풍부한 표정을 지닌 사막의 색채, 직선과 곡선의 배합, 엄격한 대칭 또는 비대칭이 있어야 할 거야. 그러나…… 인간의 주거는 근본적인 거고, 본질적인 것이기 때문에 형식과 스타일보다는 그것을 걷어내고 공통적으로 남아 있는 건물의 원형…… 건물의 본질이 중요해. 그러므로…… 건물의 외관이 풍기는 분위기라든지, 감동 같은 것은 가면에 불과하니까 무시해야할 거야. 무작정 탐미주의에 빠져서는 안 되겠지.
그런데, 사람들은 침묵을 경청하는 것이 중요하지. 모든 좋은 언어에는 그보다 더 좋은 침묵이 담겨있는 법이니까. 침묵의 소리가 들리는, 시대의 무의식을 반영하는 진공과 같은 공간이 건물에는 필요한 거야…….

그는 오랫동안 머릿속에 그것을 그리고 있었다. 그가 반평생 추구했던 그 무엇은 건축가의 꿈이었다. 그것은 그의 불멸의 꿈이었지만 지금은 악몽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죽음을 눈앞에 둔 그 순간에도 예술가적인 창조적 본능에 따라 평생을 추구해온 건축의 생명력에 대해, 미학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인간이여, 그대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죽음을 맞이하는구나. 죽는 법을 배우지도 못한 채…….
나는 여태껏 아무것도…… 도대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거야. 그런데, 그걸 완공하려면 20년, 30년은 더 살아야 할 텐데? 지금 누구한테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할 수 있겠어? 사막의 신께? 나는 인간의 구원을, 기적을, 행복이나 천국을 믿은 적이 없었지. 그건 헛된 꿈이거든. 현실을 무시한 채 이상만 쫓던 삶이 실패작이었음을 깨닫고 죽어간 돈키호테의 심정을 지금쯤은 깨달아야겠지만……. 나는 여전히 그 꿈을 버릴 수 없어. 허망한 꿈일망정…….
그 공사는 아무리 머리를 짜내 공기를 단축해도 십 년, 이십 년쯤은 걸리겠지. 에스코리알을 짓는 데는 20년이 걸렸어. 건축에서 즉흥성은 건축학적 타락일 뿐이야. 요즈음은 모든 공사가 너무 공기에 쫓기는 것이 문제지. 속도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데 말이지…….
그것은 예술적 조형물이어야 할까? 건물 그 자체가 고유한 생명력을 지닌 작품이어야 할까? 건물이 단순히 비바람을 막아주는 존재가 아닌 것은 확실하지만 그러나 예술인지는 모르겠어. 어쨌거나 건축이 예술이라면 실용적인 예술이겠지만. 공간을 창조하는 예술. 그러나 그 건축물이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견고하고 사용하기 편하고 보기 좋은 조건을 충족시켜야만 하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나는 2000년 여름, 사하라 사막의 남쪽을 여행하던 중 길을 잃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가쁘게 숨을 몰아쉬고 있다. 나는 지금 죽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 순간에도 다른 건 도대체 머리에 떠오르질 않았다. 과거에 설계했던 건물에 대한 후회 같은 것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좀 더 더 완벽하게…… 그때 생각을 완전히 비틀어야 했는데…… 그걸 폭파해버리고 다시 짓는다면…… 건축설계사로서 직업의식에 사로잡혀 지치지 않고 건축 설계에 대해 생각했다.

그렇지만, 건물 내부에는 길게 이어진 회랑이 꼭대기 층까지 구불구불 이어져 있어야 할 거야. 인생 자체가 미로이지. 그 미로는 사람들이 현기증을 느끼지 않도록 대신동의 골목길처럼 아늑하게 만들지 않으면 안 될 거야. 사람들은 익숙한 뒷골목에서 안도감을 느끼지. 사람들에게 안식을 제공하는 평화로운 공간이 필요한 거야. 영혼이 머무는 것처럼 평온함을 느껴야 할 거야…….
그러니까, 거대하고 웅장한 유럽의 궁전, 고성, 성당 같은 건물을 모방해서는 안 될 거야……. 왜 유럽의 성당은 값비싼 성화와 조각품, 금박 입힌 성서들로 빈틈없이 꽉 차있어야 하는가? 쓸데없이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돼 있어서 지나치게 화려하고 복잡한 것은 흠이지…… 그게 아름다움의 표상은 아닌 거야. 예수님은 누추한 마구간에서 태어나서 평생을 맨발로 걸어 다니며 가난하게 살았고, 벌거벗은 채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는데 말이지, 그를 찬양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성당은 왜 그렇게 화려해야 하는지?
한없이 높고 크고 웅대하라. 그리고 정교하고, 화려하라. 신의 위대함과 신의 대리인인 사제들의 권위를 그렇게 건물의 위용이나 내부 치장을 통해 나타내고자 했던 것인가? 이 모든 종류의 거대성과 화려함은 인간의 내적 공허, 한없는 허약함을 감추기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닌가? 그들은 그 화려함 속에서 속절없이 들뜨지는 않을까? 아니면 성당의 아주 높고 어두운 천장에서 신에 대한 외경심 대신 무한한 공포심을 느끼지는 않을 것인가? 그러니까, 내부 장식만큼은 아주 단순해야지. 복잡한 것은 비본질적이지. 절제. 간결성. 그러면 아름다움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거지. 이 복합 건물에 극도의 긴장감을 불어넣는 것은 정말 쓸데없는 일이 될 거야.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살리는 것이 중요해…….
그는 여전히 건물에 대해, 환상에 다름 아닌 영원한 꿈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깊은 좌절감을 느꼈다. 그는 그때 자신이 과거에 설계했던 건물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우선 자신의 기억에 남을 만한 건물을 설계한 적이 있었던가? 나의 꿈과 낭만, 건축 미학 등이 모두 용해된 건물을 설계 했던가? 장소와 그 주위의 자연 환경과 풍경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것들과 어울리는 설계를 하였던가, 그러면서도 너무 두드러지지 않는 것을 지으려고 노력했던가? 건물의 용도와 관련해서 요구할 권리를 가진 사람들의 모든 적절한 요구를 제대로 수용했었던가? 건축가를 위한 괴상한 건축 이론, 다시 말하면 건축가에 의한, 건축가를 위한 엉뚱한 건축 이론을 신봉하지는 않았던가? 건축주의 요구 사항이 나의 사고체계와 엄청나게 차이가 날 때 과감하게 그 일을 맡지 않겠다고 거절하였던가? 건축 허가의 승인과 거절, 보류를 좌지우지하며 간섭하는 관료주의적 공무원들과 맞서 싸웠던가? 건축가는 설계도면을 그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공사가 완공될 때까지 책임을 져야한다는 원칙을 충실하게 이행하였던가? 문득 자식이 보고 싶은 것처럼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있었던가? 볼수록 만감이 교차하는 게……. 건축 과정에서 건축주와 기술자들을 상대로 그들을 충분히 다루었던가? 건축주의 부당한 간섭 때문에, 적은 공사비와 짧은 공기에 쫓겨서 어쩔 도리가 없었노라고 변명만 늘어놓아도 될까?
별들이 흩뿌려져 반짝이는 하늘. 비현실적인 밤하늘. 상황은 여전히 절망적. 악몽의 연속. 계속 기다리는 수밖에. 무한한 인내심. 모든 것들이 작고 덧없다.
어젯밤 처음으로 모래언덕에서 불을 피웠다. 누가 불빛을 발견할까? 희망이 있을까? 사하라 남쪽 저지대 사막을 건너기 위해서는 자신을 놓아버릴 줄 알아야 한다. 이 지옥의 사막을 건너려는 담대한 방랑자들에게는 이런 극기가 필요할 것이다. 내가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리던 순간이 온 건가. 나는 이 험난한 길을 지나야 한다. 내게 부여된 운명을 알고 있다. 나는 언제나 서슴없이 떠났다. 나는 걷는다. 강의 근원과 하류의 삼각지를 찾아서. 그러므로, 나는 그 옛날 연금술사들이 찾아 헤맸던 ‘현자의 돌’을 찾으려고 떠나는 것이 아니었지. 그러나, 나에게는 어디에도 최종 목적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돌아가 안주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사막의 거친 숨결을 느껴야 한다. 고독은 영원하고 나의 몸과 영혼에 나 있는 상처이자 종양이다. 이 여행은 지금 생각해 보면, 나에게는 인간의 불멸성을 찾아 지옥을 헤매는 길가메쉬의 대담한 모험이고, 율리시스의 험난한 귀향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벌거벗은 영혼이 두려움에 떨면서 새로운 허무를 찾아 떠난 모험의 여정.

젠네의 대사원을 찾아서
나는 건축가로서, 사막 여행가로서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말리의 수도 바마코에서부터 니제르의 수도 니아메까지 노예의 강인 니제르 (또는 나이저) 강 유역을 답사한 적이 있었다.
그때 당시 그 사원에 간 적이 있다.
그곳은 나의 머릿속 지도에서는 이 세상에 남아있는 가장 구석진 곳이었다. 그리고 그 사원은 나의 눈으로 반드시 확인해야 할 마지막 건축물이었다. 내가 평생에 걸쳐 작성하고 수정한, 반드시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할 건축물들의 목록 중에서 마지막 건축물. 우아르자자테 유적의 향수를 느끼게 해주는 건축물.
젠네의 사원은 흙벽돌로 쌓아 올리고 사이에 진흙 모르타르를 발라 지어진 것이다. 하늘로 치솟은 첨탑과 함께 빛이 바랜 진홍색 벽면에는 야자나무 줄기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촘촘하게 돌출해 있다. 그것은 장식적 효과라기보다는 큰 비가 내린 후에 수시로 하는 보수공사 시 발판으로 이용하기 위한 것이긴 하지만 묘한 기하학적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젠네의 대사원은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할 만큼 세계에서 가장 큰 진흙 벽돌로 지은 건축물이다. 말리의 중세 도시인 젠네는 내륙도시라고 할 수 있지만, 그 거대하고 우아한 사원은 니제르 강의 한 지류라고 할 수 있는 바니 강의 작은 섬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사진작가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코아의 모스크는 말리 쪽 니제르 강의 푸른 수면 위로 가공되지 않은 소박한 아름다움을 그대로 드리우고 있다.
하지만 신전 안은 예전에는 성대한 의식을 거행했을 제단만 덩그러니 놓인 채 온통 텅 비어 있다. 삐쩍 마른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있을 뿐이다. 무심한 세월과 텅 비어 있는 신전. 인간들이 그 신전을 스스로 차지하기 위해 거기서마저 신을 쫓아버렸던 것일까. 그래서 어두침침한 텅 빈 공간에서 공허감마저 느낀다. 그러나 그곳에는 단순한 검소함이, 절제가 있고, 그리고 장엄한 침묵이 도사리고 있다. 그 공간은 초월적이고 추상적이다. 그러므로 그 건물의 용도가 신을 의심하는 자들에게 과시와 위협을 하기 위해서 쓸데없이 화려한 유럽의 성당과는 너무나 이질적이고 대조적이었다.
말리 중남부의 나이저 강 유역 내륙 삼각주에서는 점과 무당이 성행하였다. 무당과 그들의 점괘는 말리 사람들의 삶에서 빠져서는 안 될 일종의 생활필수품이었다. 그때 젠네에서 만난 도곤족 출신의 늙은 남자 점술가가 자기 종족의 조상신과 위대한 알라신이 함께 내려준 신통한 점괘를 자세히 풀이해 주었다.
돌과 어도비 벽돌로 지은 그의 집은 도곤족 마을에서 몇 그루 바오밥나무가 서있는 언덕을 지나서 가파른 절벽 꼭대기에 있었다. 도곤족들은 단층의 암석지대 절벽에 집을 짓고 독특하고 폐쇄적인 정체성을 유지하였던 것이다. 그 길에는 딱새들이 황토층에 굴을 뚫어 둥지를 틀고 있었고 꿀새는 바오밥나무의 마른 가지로 날아올라 소리치고 날갯짓을 하였다. 그러나 그 집에 가려면 틈틈이 선인장과 가시덤불이 숭숭 자라고 있는 아주 험한 길을 올라가야만 했다.
바람이 일면서 흙먼지가 단조로운 회색 풍경을 연출하였다. 공기는 무겁고 탁했다. 물을 못 마신지 몇 시간이나 지났고 지금 더위를 먹은 상태이다. 콧잔등에서 큰 땀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자신은 아주 보잘 것 없고 언제부터인가 인생의 방향 감각을 잃어버린 존재라고 느꼈다. 실체가 없는 두려움과 추상적이고 순순한 공포심이 나를 짓누르고 있다.
그는 80세에 가까운 나이에도 불구하고 허리가 꼿꼿하였다. 차분한 풍채에서 원숙한 우아함마저 느껴진다. 그러나 강렬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목에는 유리구슬이 달린 황동 목걸이를 달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장식일까, 아니면 부적일까, 신에게 바치는 어떤 상징적인 표식일 것인가? 신앙심이 깊은 이 이슬람교도는 온화하고 그윽한 눈을 들어 사람을 쳐다본다. 위엄 있고 관대한 사람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코미디의 달인이자 광대이고 마법사이고 예언자인 그가 저음의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한다. 프랑스어로 주문을 거는 듯한 낮은 음성으로 아주 느릿느릿 말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먼저 말해주겠는데 내 이름을 알려고는 하지 마. 나는 이름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니까. 그러면 이제부터 묻겠어. 여기에 온 이유는? 그럼 원하는 게 뭔지를 말해보시지. 자신을 속일 생각은 하지 말아야지. 그대가 진정 원하는 게 있을 것 아닌가. 가족을 떠나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여기까지 왔다면…… 가진 돈 모두 털어서 그 먼 거리를 거쳐서 여기까지 왔다면……. 틀림없이 마누라는 질색했을 거야.”
“내가 정말 뭘 원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지요. 말로 설명하기가 난감하지요. 막연한 갈망이거나 무의식적인 충동일지 모르겠네요.”
“허튼소리. 날 속일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대가 날 속이면 나 역시 그댈 속이게 되는 거지. 그대가 말하는 갈망이라는 것이 공명심이나 명예욕 때문은 아닐 거야. 그러면, 복수심? 누구에 대한? 그게 자신에 대한 터무니없는 복수심 때문이라면? 어쨌거나 그대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걱정이 많겠지. 건강에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자식들이나 마누라하고 심각한 문제가 있을 거야? 안 그런가? 그건 누구나 있는 법이니까. 전쟁이 끝나고 돌아오니 마누라는 딴 놈과 눈이 맞아서 어디론가 도망가고 없었어……. 왜? 하필 내 여자를? 그 놈이 멀리 달아나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내가 두 사람 모두 잔인하게 죽였겠지.”
“그런데, 세상과의 불화 때문인가?”
“대단한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그냥 어딘지 가고 싶어요. 아무 데도 아닌 곳에서 아무 데도 아닌 곳으로 말이지요. 아직 못 가본 곳이 수두룩하지요. 그러니까 암흑의 심장부에는 그 근처에도 못 가본 것이지요.”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암흑의 대륙 깊은 곳을 말하는 거겠지. 통나무배를 타고 강을 건너고, 늪지대를 거쳐 밀림 속으로 들어가는 거. 거기에 전설의 공룡은 없을 거라고…….”
“당신은 모험가도 아니고 탐험가도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거길 왜 가려고?”
“나도 잘 모르겠어요. 아니에요. 아니……. 그저 뭘 해야 할지 몰라요. 불안하고 혼란스럽거든요.”
“그대는 불안으로 빚은 포도주라도 마신 건가. 하지만 종교 재판소의 재판관이 준비해 놓은 고문 중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불안이라네. 그러나, 당신 실수하는 거야. 그건 용기가 아니라 만용에 불과해. 검은 숲에는 악귀가 살고 있거든. 그 악귀는 온몸에 수백 마리의 무서운 살모사와 코브라를 휘감고 있고, 거대한 왕도마뱀과 비단구렁이, 체체파리 떼를 거느리고 있지. 그리고 그녀의 폐에는 에볼라 바이러스가 우글거리는데 숨을 내쉴 때마다 그걸 내뱉는 거야. 그것들이 숲으로 들어오는 침입자를 방어하고 있는 거지.
그나저나 심장부에 들어가기도 전에 피그미가 쏘는 독화살이나 밀렵꾼이 쏘는 칼라슈니코트 총탄…… 수류탄에…… 맞아 죽을 거야. 아니면 날이 넓고 무거운 칼인 마체테가 그대 몸을 난도질을 할 수도 있거든”
“그렇군요. 그래요.”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하군. 산전수전 다 겪었거든. 그 참혹한 전쟁에도 끌려갔었지. 그 전쟁에서 알게 된 건데 백인들은 참으로 잔인한 악마라고 할 수 있지. 증오와 파괴 욕…… 불바다……. 그들은 인간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가를 시험해보는 것 같았어. 서로 죽이기 위해 만나서 수만, 수십만을 죽이고 평생 불구로 만든 뒤,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게 해주신 은혜에 대해 그들의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올린 거야.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우리 하나님.
물론 나도 죽고 나면 백인이 될 거야. 모든 죽은 자들의 혼령은 하얗거든. 내가 백인들을 부러워하는 게 있는데, 바로 그들의 술과 담배이지. 맛이 최고인 거야.
곰곰이 생각해보면 당신이 찾는 게 뭔지 알 것 같단 말이야. 인생의 비밀 같은 거, 또는 그곳에 정말 신이 있는지를 알고 싶은 거야.”
“본론으로 들어가면 어떨까요? 본론으로 말이지요. 신의 말씀을 듣고 싶군요.”
“어쨌거나 아주 멀리서 왔구먼. 이 세상의 저쪽 끝에서 온 거야. 신도 동양인은 처음일 거야. 그 신은 흑인이거든. 그렇지만, 신은 시리우스별에서 이 세상 끝까지 구석구석 내려다보고 있으니까, 당신의 운명도 알 수가 있지. 신은 전지전능하시거든. 무슨 말인지 알겠어? 다시 말하자면…… 신은 땅과 하늘, 바다의 주인이시니, 동서고금을 통해 이 세상에 일어난 모든 일을 죄다 알고 계실 뿐더러 지금도 이 세상 구석구석에 일어나는 모든 걸 보시고, 모든 걸 듣고 계신단 말이지. 나는 이븐시나가 아니라 알가잘리를 숭배하거든. 이븐시나는 신, 당신은 까마득히 높은 곳에 계시기 때문에 인간을 대충 매우 개괄적이고 관념적으로 알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었지. 그러나 그건 말도 안 되는 말씀이지. 쿠란을 완전히 곡해하였으니까 결국 알라를 모욕하는 거지. 한 때 신앙의 위기를 겪다가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 가슴에 비추어주신 한 줄기 빛’ 덕분에 이를 극복한 알가잘리는 이를 반박했지, 이슬람이 인정하는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샅샅이 알고 평가하신다고 했거든.
하지만 요즈음 신도 늙으니까 기억력이 점점 가물가물해지는 것이 아닐까 하고 걱정이 들거든. 신인들 나이를 어쩌겠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모든 걸 세밀하게 장부에다 기록하고 있을 거라고. 그런데 신에게도 성격이 있을까? 신경질적이고 병적으로 질투가 심하거나 지독한 허풍쟁이이거나 또는 심술첨지이겠지.
그렇지만 신은 전지전능하니까. 인간의 생명과 죽음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마음대로 하나를 고를 수 있는 거야. 이게 당신의 이름인가. 신께 당신이 이 성소를 방문한 사실과 당신의 이름을 알려 드려야지. 신께 묻고 싶은 게 많을 테지. 그러나, 신은 전지전능하니까, 전지전능하다니까…… 그렇고말고. 당신의 이름만 알아도 당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누구인지, 어디로 갈 것인지, 무얼 알고 싶은지 다 알고 있으니까, 염려할 것은 하나도 없어.
여기는 인간의 더러운 손길이 닿지 않는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성소야. 여기에 있는 낡은 쿠란에 신의 성령이 강림하지. 조개껍질이나 호리병박, 야자나무 껍질이나 거북이 등껍질을 가지고 점을 치는 것은 완전히 미신이야. 해괴한 미신에 불과하지. 그런 것에 속을 건 없어. 당신만 바보가 되는 거야. 난 오직 신께 정성껏 기도하고 성령을 통해 신과 진지한 대화를 하지. 그러면 위대한 신께서 그의 비밀을 귀띔해 주는 거야. 알겠어?
그런데, 프랑스에는 왜 성직자보다 점성가가 더 많겠어. 너무 많은 돈을 주었어. 하지만 거절하진 않겠어. 신께서도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지. 돈은 많을수록 좋은 거야. 나도 마을에 내려가면 돈 쓸 일이 많아. 요즈음 극심한 가뭄 때문에 시달리고 있지. 모든 게 말라버렸어. 그랬으니 쌀값이 몇 배나 뛰었단 말이지.”
그는 몇 시간째 눈을 지그시 감고서 계속 고개를 끄덕이고 가끔 입술을 달그락거리면서 이상한 주문을 외운다. 그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자세로 접신接神을 하면서 진지하게 신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는 무아지경에서 신의 말을 듣고 있었다. 오두막집의 어스름 속에서 그의 신성한 얼굴에 땀이 흐르는 것이 보였다. 마침내 환희에 들떠서 몸을 부르르 떨더니 깊은 신음소리를 토해냈다. 그리고 눈을 떴다. 신이 은유적으로 넌지시 한 말을 알아들은 게 분명하였다.
“조용히, 조용히. 엄숙한 순간이야. 제발 집중해주게. 그래야만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까. 신의 말씀엔 아무런 논리가 없어, 눈곱만큼의 논리도 없으니까 그냥 믿으라고. 믿음이 필요하지. 그런데 당신은 착한 사람이야. 참으로 마음에 드는 사람이지. 얼굴에 그렇게 쓰여 있어. 그건 신께 물어볼 필요도 없어.
하지만, 당신은 여자도 없고 자식도 없어. 스스로 불행을 안고 사는 사람이지. 그래서 외로운 거야. 지금 지독한 외로움을 겪고 있는 거야. 왜 스스로 인생을 즐기지 않나? 삶은 균형이야. 슬픔과 기쁨, 행복과 불행, 선과 악 등. 평생 갈 상처를 안고 있으니, 그러다가 자살하거나 미쳐버릴지도 모르겠군. 잊어버리라구. 그게 필요해.
문제는 당신이야. 그걸 신이 정확히 지적했어. 당신은 만날 여자한테서 도망만 다닌단 말이지. 예쁜 여자인지 못생긴 여자인지 가리지 않고. 여자 쪽에서 미쳤다고 도망가는 남자를 쫓아가겠어, 그건 애시당초 도대체 기대하지도 마. 여자에게 거절당하는 것이 두려워서 사랑을 고백조차 못해서야 안 되겠지. 그건 세상을 사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과 똑같은 거야. 사랑은 현실이야. 아름답지도 순수하지도 위대하지도 않는 거야. 그런 허황된 말에 속아 넘어 갈만큼 바보는 아니겠지. 하찮은, 정말 하찮은 게…… 그러니까 여자를 만나거든 겁먹지 말고 끝까지 쫓아가란 말이야. 그러면 진짜 좋은 배필이 찾아와서 당신에게 잘해 줄 거야. 아이도 열 명쯤 낳아주고 말이지. 신이 분명히 그렇게 말했어.
그런데, 당신 직업이 참으로 수상해. 허구한 날 길을 걷다가 지쳐서 쓰러지는 거야. 여기저기 길이 있는 곳마다 막 쏘다니고 있구먼. 그러니까, 도대체 큰돈을 벌 기회가 없는 거야. 그 원대한 꿈을 이룰 수도 없고. 그 병을 고치기가 난감해. 당신은 다리가 병나기 전에는 계속 걸을 테니까. 그건 신도 어쩔 수 없다고 하네. 이쯤에서 결론을 내려야겠지. 당신은 멀리서 온 사람이고 또 멀리 갈 사람이야. 그리고 길에서 외롭게 죽을 운명이야.
마지막으로 늙은이가 인간적 충고를 하나 하고 싶군. 그걸 알게나. 늙어가는 사람만큼 인생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는 거라네.
그대는 자신에게 너무 잔인한 거겠지. 스스로에게 얼마나 잔인해지고 싶은 거야. 자기 자신을 적대시하고 있으니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스스로를 위로하고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지는 거야. 인생에는 두 가지 기본 원칙이 있는 거야. 첫 번째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지 마라, 둘째는 모든 게 사소한 일이다. 하나님은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고 하셨어.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만용이 아니라 지혜인 거야.
그렇다고…… 당신더러 왜 집에 편히 있지 않고 이 세상에서 가장 먼 구석인 사막까지 와서 당신의 뼈를 묻으려고 하는가? 라고 묻지는 않겠어. 쓸데없이, 괜히…….
알라신이여! 위대한 신이시여! 이 사람을 지켜주소서! 이 사람을 보호하소서.”
나는 어느 정도 신통한 점괘에 아연실색하였다. 족집게처럼 맞췄다고 할까. 나는 나 자신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상당히 많은 돈을 추가로 내밀면서 그 무당에게 행운을 가져다 줄 영험한 부적을 신신당부하였다.
내가 말했다. “나의 적이나 불운,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 날 보호해줄게 필요하지요. 나는 보호가 필요하다고요. 그리고 나에게 방향 감각을 주고 인생의 목적을 밝혀주는 게 있어야 하지요.”
그러나 그 현자는 그 돈을 냉정하게 거절하였다. 나에게는 지금 어떤 부적도 효험을 발휘할 수 없으니 돈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가 말했다. “불가능한 일이야, 부적으로는. 신이 미리 정해놓은 거지. 그건 희생 제물을 바쳐도 소용없을 거야.”
푸른빛과 다양한 색채가 오묘하게 결합하여 시시각각 변화하는 아프리카의 하늘을 배경으로 하여 아득히 펼쳐져 있는 저지대의 황량한 황갈색 땅을 무심하게 내려다보며 나는 어느덧 무성하게 자란 검은 턱수염을 쓸었다. 그러나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2016-05-26 11: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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